중생이란 이런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일이며, 동시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기쁘고, 놀라우면서도 신비하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일이다. 중생은 능력 면에서 창조 사역이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The Canons of Dort, Article 12
Abraham Kuyer (1837-1920)
또 하나, 학문이 융성하기 위하여 대중의 마음이 자유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교회는 삶이ㅡ 유일한 목적을 그 공로를 통해 하늘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교회가 이 주된 목적과 일치한다고 인정하는 만큼만 세상에서 향유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무도 지상적 실존에 대한 연구에 공감을 갖거나 헌신할 수가 없었다. … 모든 참된 칼빈주의자에게 이 복된 상태는 '중생'에서 자라며 '성도의 견인에 의하여 보증된다. 이 '믿음의 확실성'을 근거로,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에게 창조 명령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그 가운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땅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고, 대양과 자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이 자연의 속성과 법칙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문을 권장하기를 꺼리는 백성이 새롭고 활기 넘치는 힘으로 자유의 느낌을 향유하도록 학문에 박차를 가했다.
이 갈등은 신앙과 학문의 갈등이 아니다. 그런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학문은 어느 정도 신앙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학문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잘못된 신
앙이거나 미신이다. 참되고 진정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신앙을 전제한다.
특별히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원리에서 신앙을 전제한다. 이는 학문적 탐구에 필요한 모든 공리가 우리의 자의식과 더불어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반면에 모든 신앙은 발언하려는 충동을 내적으로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신앙은 말과 용어와 표현을 필요로 하고, 이 말들은 사상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 이 사상들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함께 상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이 우리의 의식에 빛을 비추자마자 학문과 논증의 필요가 생겨난다.
따라서 갈등은 신앙과 학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우주가 정상적 상태인가 비정상적 상태인가 하는 주장 사이에 존재한다. 만일 우주가 정상이라면, 우주는 잠재력에서 이상(ideal)으로 가는 영원한 진화의 의미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주가 비정상이
라면, 과거에 혼란이 일어났고 그 목적의 최종적 달성을 보증할 수 있는 것은 중생적 능력뿐이다. 이 대립은 학문의 영역에서 사유하는 두 가지 지성을 전투 대형으로 나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 뇌의 마음 - 월터 J. 프리먼 지음, 진성록 옮김/부글북스 나는 무엇일까? 내 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누가 좀 꺼내 봐 주었으면... 그래서 내가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
| 인간이란 무엇인가. 특히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은 신앙과 학문 등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철학자 칸트는 이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를 철학의 근본 물음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세 가지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철학을 ‘인간학’이라고 정의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5월 들어 나란히 번역 출간된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 이야기’(이현복 지음, 아카넷), ‘의식의 재발견-현대 뇌과학과 철학의 대화’(마르틴 후베르트 지음, 원석영 옮김, 프로네시스), ‘꿈꾸는 기계의 진화-뇌과학으로 보는 철학 명제’(로돌포 R. 이나스 지음, 김미선 옮김, 북센스)는 모두 끝없는 물음의 원천인 ‘인간’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들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 이야기’는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이고, 그 본성은 어떻게 파악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떠한지 등 인간 본성과 관련해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인류가 축적한 철학적 사유를 총동원해 고찰하고 있다. 한양대 이현복 교수를 비롯해 세종대 이태하, 경북대 손성철, 서강대 김영건 류제동 교수 등 대학에서 철학과 종교학을 강의하는 13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정낙림 경북대 교수는 ‘자기를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에서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
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고 있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는 니체의 사유를 인용하며 인간을 설명했다. ‘인간은 자유의지의 주인인가 신경 회로의 노예인가’라는 화두를 먼저 던지고 출발하는 ‘의식의 재발견’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이전인 16세기까지 인간은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며 하늘은 한낱 지구를 도는 바퀴로 상상했으나 지금은 지구란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점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듯이, 현재 인간은 자신의 사유기관을 들여다보는 기계들을 만들어 내 뇌 속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수천 년간 지속하여 온 인간에 대한 견고한 생각은 타격을 입었고, ‘인간은 한 조각 자연에 불과하다’는 자조까지 하게 됐다. 물론, 인간이 느끼는 황혼의 장려함이나 바이올린 현의 미묘한 울림, 사랑에 빠진 순간의 불가해한 심적 상황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미국 뉴욕대 의대 생리학 및 신경학과 학과장 로돌포 R 이나스가 쓴 ‘꿈꾸는 기계의 진화’는 인간 뇌의 운동을 단순한 ‘작용’으로 파악하지 않고, 생명의 ‘기억’으로 바라본다. ‘마음은 곧 뇌’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뇌의 신비를 단일 신경세포 단위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나스 교수는 ▲뇌의 기능과 언어·감정은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된다 ▲뇌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예측한다 ▲인지능력의 대부분은 유전적으로 갖추어진 채 태어난다 ▲운동과 언어와 감정은 이미 패턴화되어 있다는 등 네 가지 특징으로 인간의 뇌과학 연구 성과를 정리한다. ‘마음은 생명체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진화의 산물’이라고 결론 내린 이나스 교수는 “인간의 유전자에는 30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온 인류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이를 ‘생명체의 기억’이라고 표현한 나이스 교수는 “마음의 본성을 완전히 이해하는 날, 우리는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찬미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쯤 되니, 인간은 곧 우주이고, 인간은 곧 한울님이라는 종교의 경지가 낯설지 않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Nancy Murphy 교수님을 통해 신경과학과 철학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대화 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물질적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플라톤-데카르트식의 이원론을 극복하는 인간 이해가 절실히 요청된다. Non-reductive monism... |
{Trans-cultural}fides quaerens intellectum
"Theology is a continuing search for the fullness of the truth of God made known in Jesus Christ."
TIME지에 게재된 시간과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떤 생활형인가에 따라 효과적인 삶을 영위하는 시간대에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에 맞추어 시간표를 짜고 생활한다면 더 효율적인 성과를 거두는 인생을 살지 않을까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