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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2012

고통과 계시

그러나 고통은 고집스럽게 우리의 주목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악하면서도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무언가 '들어맞지'않는다는 사실, 자신이 우주의 법칙에 따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C. S. Lewis, "고통의 문제," 홍성사, 141.


5.17.2010

한번도 가지 않은 길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나섰다.
난데 없이 교회 뒤쪽으로 난 산을 따라 걸으며 기도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내 마음이 "가보자"와 "가지말자"로 나뉘어 분열하기 시작했다.
가지 말자는 쪽이 더 좋은 그리고 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가보자는 쪽은 시덥지 않은 한두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한가지 이유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소망이었다.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이 있으리라는, 어렵더라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소망과 기대 말이다. 소망이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 때 배웠다 .

아직도 검푸른 여명속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두려운 마음을 흥얼흥얼 찬양으로 잠재우며 걷다가 작은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갑자기 큰 개가 미친듯이 짖어대며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너무 놀라 거의 중심을 잃고 나 자빠지려 하는 찬라에 내 몸을 덮칠 그녀석의 거친 앞발과 내 목을 향해 날아오는 날카로운 이빨을 상상했다. 그러나 나는 넘어지지도 물리지 않았다. 개와 나 사이에는 철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놀랬으나 현실적으로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 "돌아갈까?"하는 마음이 놓치지 않고 고개를 바짝 들었으나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번연의 주인공 크리스천이 쇠줄에 묶인 사자의 포효에 주춤하며 전진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계속 짓어대는 개에게 예수님처럼 "잠잠하라"고 영어로 말해 주었다-shut up!

물이 말라버린 얕으막한 계곡에 지저분한 쓰레기들과 버려진 차들이 보였다. 높은 기둥에 마치 피가 흐른듯이 빨간색 페인트로 갱단원들이 한 것 처럼 여겨지는 지저분하고 기괴한 낙서들이 역겨운  냄새와 함께 기분을 상하게 하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결코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소망이 위협을 당하자 다시 두려움이 업습한다. "돌아가자..."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웠고 아찍 끝나지 않았다는 새로운 소망거리를 찾아내었다.
한 30분을 더 기도하며 산을 오르자 온 몸에서는 땀이 흐르고 기도는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산의 정상에 섰을 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아름다운 절경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인내하지 앟았으면, 두려움을 물리치지 않았으면, 소망을 포기했다면 결코 볼 수 없었던 장관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가득 차 올랐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그리고 소망은 사랑으로 가득찬 성품을 만들어 낸다는 바울의 고백을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정상에서 내려 올 때 하나님은 또다른 선물을 준비하고 계셨다. 산을 오를 때 겪었던 장애물들의 실체가 찬란한 아침 햇빛 아래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위협적이었던 모든 것들이 별것 아닌 것이 되어있었다. 오를 때 의심되었던 하나님의 임재가 내려갈 때는 자부심과 성취감, 보람과 삶의 긍정으로 충만하였다. 시내산을 내려가는 모세의 기분이 그랬을까?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은 두려운 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길이 행복하고  의미있고 보람된 길이 된다는 사실 또한 틀림없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 자신이 행복이며 의미이며 보람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길을 끝까지 마쳐본 사람만이 그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으며, 그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성숙을 노래할 수 있을뿐이다. 

bk

8.21.2009

김대중 선생의 삶과 헤르만 헤세의 기도

"희망과 좌절, 기쁨과 공포, 그리고 해결과 의혹의 갈등과 번민을 매일 되풀이해왔고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 그분이 나와 같이 계시며,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그 사랑 때문에 지금의 이 고난을 허락하셨으며, 나를 위하여 사소한 일까지 돌보시며, 지금 이 시간에도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한 역사를 쉬지 않고 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나의 감정이나 지식으로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통감하면서 부족한 믿음에 절망하고 화를 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현재의 환경도 주님이 주신 것이며, 주님이 보실 때 최선이 아니면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의 뜻과 앞으로의 계획하심을 알 수는 없으나 오직 주님의 사랑만을 믿고 순종하며 찬양하겠습니다."

죽음을 앞둔 감옥에서
후광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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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믿음에 절망하고 화를 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만이 참 믿음이라고 성서와 신앙의 선배들은 늘 강조했다. 예수를 믿는 신앙은 철저한 자기 부정에서 출발한다. 스스로에 대한 절망은 신앙의 자궁이다. 스스로에 대해 절망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선"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절대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절망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죄성은 스스로 살기 위해 나와 이웃의 목숨마져 위태롭게 할 만 큼 뿌리 깊고 강력하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 대한 절망 마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며 기도가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당신 안에서 기꺼이 멸망하고 싶다"고 기도한 헤르만 헤세의 외침도 울림이 크지만, 후광의 기도는 헤세의 기도를 온 삶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헤세보다 더욱 위대하다.

기도

신이여, 저를 절망케 해주소서.
당신에게가 아니라, 제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미친 듯 모든 슬픔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모든 치욕을 맛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가눌 수 있게 돕지 마시고,
제가 뻗어 나가는 것을 돕지 마소서.
하나 저 자신 모두가 이지러질 때,
그 떼에는 제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보내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어가고 싶습니다만,
저는 오직 당신 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 (Hernman Hesse, 1877-1962)

10.08.2008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다

푸르르던 교정이 이제 노랑, 주황, 빨강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아릅답습니다. 비록 이제 나뭇잎은 찬 바람에 다 지고 차가운 겨울을 맞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 마져도 아름다울 것입니다. 끝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너 무성한 잎을 내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면서 성숙하고 성장할 것이기에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