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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2012

고통과 계시

그러나 고통은 고집스럽게 우리의 주목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며, 고통 속에서 소리치십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불러 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입니다. 악하면서도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무언가 '들어맞지'않는다는 사실, 자신이 우주의 법칙에 따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C. S. Lewis, "고통의 문제," 홍성사, 141.


5.17.2010

상처의 결과

상처와 아픔은 죄의 결과이지만, 성숙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상처와 아픔을 통해 어떤이는 미라가 된다.
진정한 자아를 감춘채 이웃과 마음의 담을 쌓고 치유와 회복을 거부한다.

상처와 아픔을 통해 어떤이는 고슴도치가 된다.
수동적인 자기 방어적 태도나 호전적인 공격성은 자신과 다른이의 상처와 아픔을 더 심화시킨다.

그러나 상처와 아픔을 통해 어떤이는 진주가 된다.
시련과 연단은 상처와 아픔이지만 믿음과 소망으로 인내하며 삶을 긍정하고 다른 이들과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할 때 상처와 아픔은 보석과 같은 인격과 성품이 만들어 지는 과정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bk

8.21.2009

김대중 선생의 삶과 헤르만 헤세의 기도

"희망과 좌절, 기쁨과 공포, 그리고 해결과 의혹의 갈등과 번민을 매일 되풀이해왔고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 그분이 나와 같이 계시며,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그 사랑 때문에 지금의 이 고난을 허락하셨으며, 나를 위하여 사소한 일까지 돌보시며, 지금 이 시간에도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한 역사를 쉬지 않고 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나의 감정이나 지식으로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통감하면서 부족한 믿음에 절망하고 화를 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현재의 환경도 주님이 주신 것이며, 주님이 보실 때 최선이 아니면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의 뜻과 앞으로의 계획하심을 알 수는 없으나 오직 주님의 사랑만을 믿고 순종하며 찬양하겠습니다."

죽음을 앞둔 감옥에서
후광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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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믿음에 절망하고 화를 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만이 참 믿음이라고 성서와 신앙의 선배들은 늘 강조했다. 예수를 믿는 신앙은 철저한 자기 부정에서 출발한다. 스스로에 대한 절망은 신앙의 자궁이다. 스스로에 대해 절망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선"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절대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절망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죄성은 스스로 살기 위해 나와 이웃의 목숨마져 위태롭게 할 만 큼 뿌리 깊고 강력하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 대한 절망 마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며 기도가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당신 안에서 기꺼이 멸망하고 싶다"고 기도한 헤르만 헤세의 외침도 울림이 크지만, 후광의 기도는 헤세의 기도를 온 삶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헤세보다 더욱 위대하다.

기도

신이여, 저를 절망케 해주소서.
당신에게가 아니라, 제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미친 듯 모든 슬픔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모든 치욕을 맛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가눌 수 있게 돕지 마시고,
제가 뻗어 나가는 것을 돕지 마소서.
하나 저 자신 모두가 이지러질 때,
그 떼에는 제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보내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어가고 싶습니다만,
저는 오직 당신 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 (Hernman Hesse, 1877-1962)

7.18.2009

로마서를 읽다가 십자가 앞에 서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깊다.
나무는 푸르고 바람은 시원하다.
세상은 아름답고 평온해 보인다.

난 두려워하고 있다.
"두려워말라"
그래도 두렵다고
너무도 떨린다고
두눈을 감는다.

온 세계를 덮어버린 칧흙같은 어두움
폭풍우 속에 성난 산 솟구친 파도
내려 꽃히는 번개 찟을 듯한 천둥사이
삼켜져 버릴듯 요동치는 배 한조각
그 속에 쪼그라든 내가 웅크려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평안하라고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증거를 보이라고

벌거벗긴채
침뱃음을 당하는
만왕의 왕

가시로 만든
왕관에 찔려
나무에 매달린
하나님의 아들

아하 아하
하나님의 아들이여
만왕의 왕이여
스스로 구원하고
거기서 내려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물처럼 쏟아지는 피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갈증
터처버린 심장
뻣뻣해진 근육
멈추고 싶은 호흡
마비되는 정신

"일로이 일로이 라마 사박다니"
외로운 외침
소망 향한 절규

"나의 주 당신의 손에
다시 또 한번
당신을 위해
나의 영혼을 맡겨 드리니

내가 사는
이세상
죽음까지도
당신의 손에 있는것

내가 살아가는
바로 그 목적
내가 노래하는
바로 그 이유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당신의 품에
그렇게 영원히
나 있기에..."


다윗의 노래를 따라
수백번 수천번
겟세마네에서 드렸던
바로 그 기도

나의 주님 그렇게
기도하시다
마치지도 못한 채
운명하셨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신뢰하는 자
부끄러움 없으리

하나님의 눈물
땅을 뒤덮고
막혀진 죄의 휘장
찟겨 나갔다.

into your hand I commit again
with all I am
for you Lord

you hold my world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I'm yours forever

Jesus I believe in you
Jesus I belong to you
You're the reason that I live
the reason that I sing
with all I am

I'll walk with you
wherever you go
throguh tears and joy
I'll trust you

and I will live
in all of your ways and
your promises forever

I will worship
I will worship you
forever

Amen

-Hillsong United-
Psalm 22
Mark 15
Romans 10


bk

5.19.2009

저주를 통해 도달하는 직업

"Theologians are not made by reading and studying books but by living and dying and being damned."
Martin Luther

신학자들은 서적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고 또 죽으며 저주받음을 통해 만들어 집니다.
-마틴 루터-

십자가의 신학을 주창한 마틴루터 다운 말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그분의 진리에 노출되는 것은 추상적 관념의 사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한 복판에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되는" 역설을 온 몸으로 체득하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나를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를 쫓아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그러니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Sola Gracia는 그렇게 죽음과 저주를 기쁨으로 수용하는 자들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만 확증된다. 그러니 신학자라고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bk

1.10.2009

인간 본성


According to Niebuhr, humankind exists in a dual state of finite and self-transcendence. Since we face our mortality and yet our ability to at times “go beyond” ourselves, human exists in a state of anxiety. To deal with this anxiety, we pursue pride to cover up our finitude resulting in self-justification, self-rationalization, and the stereotyping of the oppressed. We also pursue sensuality to abdicate responsibility resulting in resentment, rebellion, and repression. Consequently, human sin is making self efforts to cover up their finitude without trusting God. To combat sin, we should correct our sins by mutual support in the community.

1.09.2009

"Deep down...man is not only executioner, not only victim, not only spectator; he is all three at once."

Elie Viesel, The Town Beyond the Wall, 174

12.09.2008

게으름의 발전: 정욕



3. 게으름의 발전: 정욕

게으름이 게으름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의무가 필요합니다. 의무가 없는 곳에서는 그 사람의 게으름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작 단계의 게으름은 늘 이러한 형태고 출발합니다. 아예 의무를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귀찮은 부분을 소흘히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게으름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그것은 바로 의무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계속 발전하는 것은 게으름의 원인인 자기 사랑이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은 영육간에 편안한 삶을 이룬 것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삶은 게으름의 소극적인 목표일 뿐입니다. 이 소극적인 목표가 만족되고 나면 나타나는 적극적인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쾌락입니다. 이처럼 게으름의 끝에는 길이 없습니다.
신자로서 해야 할 선하고 마땅한 의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급기야 그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편안함은 획득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에서 오는 사랑의 연합이 주는 신령한 기쁨도 사라졌습니다. 이 때 육체는 게으름으로 얻을 수 있는 편안함보다 더 자극적인 즐거움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요구의 대부분은 죄를 짓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청교도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행동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욕구를 살펴라. 그 사람의 욕구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다."

발전된 게으름은 정욕들을 계속 솟아나게 하여, 신자로 하여금 의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 편안함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악을 행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고자 하도록 만듭니다...더구나 이 후자의 욕구는 전자의 욕구보다 훨씬 강합니다. 죄를 지은 대가를 치르며 느끼는 괴로움 보다는, 불타오르는 정욕에도 불구하고 그 죄에 접근하지 못할 때에 느끼는 안타까움이 더 힘든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게으름 때문에 정욕에 완전히 사로잡힌 존재로 전락하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은혜의 통치 아래 사는 사람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죄의 지배 아래서 죄의 종이 되어,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방불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게으름이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하는 종착지는 바로 여기이며, 이것을 행해 게으름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달프지만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으로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일에 충성하고 분투하는 과정에 대해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땀 흘리는 부지런함, 게으름의 욕구를 꺾는 삶, 의무를 실천하고자 하는 진지한 몸부림이 있을 때, '하나님, 도와주세요'하는 기도에 눈물과 진액이 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