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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2011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다.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다
                                                                          
                                                 -박해조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합니다.
둘은 혼인해 살게 됩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합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을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합니다.
문제를 잘못 풀어 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소와 사자는 다툽니다.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헤어지며 서로에게 한 말,
"난 최선을 다했어"였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입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를 못보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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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이루는 가정을 비평적으로 평가하여 자신의 관점을 교정하는 일련의 사고방식을 "비평적 사고critical thinking"라 한다. 중요한 점은 공동체, 즉 갈등과 그 너머를 수용할 수 있는 관계가 없이는 비평적 사고는 일어날 수도 그리고 교정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bk 

1.04.2011

사람에 대한 신뢰와 발달주의의 한계

They talk about the people, but they do not trust them; and trusting the people is the indispensable precondition for revolutionary change. A real humanist can be identified more by his trust in the people, which engages him in their struggle, than by a thousand actions in their favor without that trust."
Paulo Freire, Pedagogy of the Oppressed, 30th Anniversary Edition, p. 60

의식화(Conscientization) 교육의 창시자인 프레리는 주입적 암기와 반복rote memory을 통해 이루어 지는 은행예금식 학습(Banking education)은 학습자들의 주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을 구속함으로서 개인의 인격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종속적이며 타율적인 인간을 양성한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학습의 실천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현격히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대화와 활동를 거부하여 배움을 고립된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공부"로 축소시켰음을 지적하였다. 그에게 있어서의 교육은 학습자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고 (Problem-posing education) 비평적 의식을 스스로 일깨우도록 도움으로 환경과 상황의 압제로 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변혁과 갱신의 주체자로 개발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의 "빨간책"은 독재자들의 금서목록 1호였으며 동시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회 운동가들의 사회과학 필독서 1위였다. 

거지에게 많은 돈을 적선하기 보다, 왜 거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가를 묻고 거지생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용기와 자기희생, 그리고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타적 자기 희생의 사랑은 의식화 교육이나 주체화 교육으로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남미의 사회적 상황과 공산체제의 붕괴는 여실히 가르쳐 준다.  

일반적인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한계는 프레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간됨의 이해,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죄성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순진하다.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인간의 궁극적인 개발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필요로 할 만큼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또 다른 한계는 목적과 수단의 혼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 목적(또는 이차적 목적)이 궁극적 목적(일차적 목적)을 대치하게 되면 마치 외발자전거를 타는 것 같은 멈출 수 없는 순환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타르타로스의 언덕에서 끝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돌을  계속해서 올려대야 했던 시지프스처럼, 성취될 수 없기에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면 그것은 허무의 형벌에 해당하는 것이지 결코 진보와 발전일 수 없다. 사회 구조의 변혁과 갱신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왜냐햐면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으로 인해, 하나의 변혁과 갱신은 반드시 또 다른 변혁과 갱신을 긴급하게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으로서의 개발은 "인간됨"이라는 유한하고 상대적 가치에 묶여 있을 때 가장 크게 왜곡되고 제한된다. 모든 발달주의자들이 부르짖는 "인간 개발"은 누구에 의한,  어떤 목적을 가진, 어떤 방식의 개발이냐에 대한 질문에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궁극적인 지향점을 인간에서 옮겨 무한한 초월적 존재에 위치 시킬 때에라야 가변적이고 순환적인 상대적 가치가 영원하고 절대적 가치로 승화 될 수 있으며 비로서 구조와 방향을 갖춘 진정한 의미로서의 개발이 현실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개발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이 아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 두가지는 분리되어있지 않고 상호적으로 맞물려 있다.

고독과 허무, 존재적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인간의 왜곡된 자기 인식과 한계때문에 인간의 내적 가능성에서도 찾을 수 없고, 사회 구조적인 변혁과 개혁으로 실현될 수도 없다. 오직 인간의 실존을 뚫고 침입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역동적 역사와 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실천적 신앙을 통해 부분적으로 경험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의 구원의 완성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레리가 주장한 인간 신뢰의 필요성은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 안에서는 인도주의자들 만큼의 사람사랑이 이루어 지기는 커녕, 권위주의적이고 폭압적인 맹신과 맹종의 교육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의 해방적 교육은 신앙교육을 평가하고 교정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bk

12.27.2010

개념 없는 인식은 무지

"Percept without concept is blind" I. Kant

경험이란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이기 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이다. 의미를 만들거나 의미를 변경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의미를 만드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근원적으로 중요하다. 인식에 개념이 부과된다면 의미가 된다. 같은 인식에 다른 개념을 부여한다면 의미의 변경 즉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인식하는 방식/틀/구조 자체가 변화된다면 의미구조meaning perspective,  즉 인식의 지평이 확장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 구조의 변화(changes of form)을 교육계에서는 변형학습 trans-from-ative learning 이라 부르고 심리학계에서는 구조-발달주의constructive developmentalism 이라고 한다. 

bk

9.18.2010

성공하는 가르침의 10가지 법칙

1. 가르치려 하지 말라; 대신 가르치려는 대로 살아라.
2. 말로 바뀔것이라는 근거없는 가정을 버려라.
3.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대신 직접 보여 주어라.
4. "벌"로서 다스리려 하지 말아라; 고래조차 벌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로 변한다.
5. 최고의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아라; 대신 최고의 학습자가 되도록 도우라.
6. 당신이 알고있는 것에 집중하게 말아라; 학습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주목하도록 하라.
7. 학습자를 과소평가하지 말아라; 대신 그들의 눈높이에서 시작하라.
8. 책에 의존하지 말아라; 책은 필수적이나 삶은 책에 제한되지 않는다.
9.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경청은 배움의 시작이요 끝이다. 반드시 개발되어져야한다.
10. 속해있는 교육기관의 문화를 존중하라.

Dr. Ted W. Ward
Professor Emeritus of Education and International Studies
Michigan State University and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http://www.wardconsultation.org/
http://www2.talbot.edu/ce20/educators/view.cfm?n=ted_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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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종이에 글을 써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이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강한 흔적을 남김으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사람이 있다. 워드 박사의 삶은 후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미시건 주립대(MSU)와 트리니티 신학대학원(TEDS)에서 40년 이상을 가르쳤던 테드 워드박사는 교육자 리더십 개발에 있어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제자들이 미국 신학대학원과 선교단체를 식민지화하고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돌 정도이면 그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의 가르침은 학습자의 역량을 최대한 그리고 지속적으로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그의 확고부동한 교육철학에 기초한다. 이를 위해 워드 박사는 학습자 중심의 가르침, 학습공동체를 통한 협동학습, 그리고 엄격한 질적연구조사방법을 강조하였다.

80에 가까운 노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정신은 날카롭고 균형있으며 그의 마음은 따듯하고 겸손하다. 평생을 교육자 개발에 헌신해 온 그가 이제 막 박사과정에 입문한 교육자들에게 작은 선물처럼 전해 준 "성공적인 교사의 십계명" 생각해 보니 그의 교육철학에 뭍어있는 집요하고도 지혜로우며 깊이있는 사람사랑을 느낄 수 있다.

bk

12.15.2009

인생성공 단십백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내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온 존재로 호흡하는 시대정신을 분별하며,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절대명령의 소명을 받들고 살아가려면 깊이있고 체계적인 독서와 사색이 필수적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명의 샘물을 길어 마시는 지혜를 터득하려면 같은 고민과 질문 속에 몸부림첬던 인생선배들의 정돈된 생각들로부터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독서와 사색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삶의 습관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들에게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 필수적이듯 실천적 삶을 위한 독서와 사색도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효과적인 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 지도자, 그리고 헌신된 팀의 삼요소가 갖추어 져야 합니다.

이제 막 독서와 사색의 훈련을 통해 변화를 소망하며 발걸음을 내딛는 크리스찬 젊은이들을 위해 필요한 책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책 선정의 기준은 (1) 꾸준히 영향력을 주는 고전에 속할 것, (2) 너무 전문적이거나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 (3) 분량이 적절해야 할 것, (4) 지속적인 독서를 권장하고 지침을 줄 것, (5) 다양한 분야를 망라할 것을 고려하였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수정 보완하여 "내 인생의 100권의 책"을 만들고 그 책들을 통해 받은 유익을 정리해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 봅니다. "인생 성공 단십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스승 한분, 마음을 나누는 친구 열명, 그리고 삶의 토대를 제공해 줄 백권의 좋은 책을 가지고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뜻이겠지요. 진정한 스승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삶을 나누기로 헌신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나의 인생을 풍성하고 견고하게 할 100권의 책을 정리해 보는 일일 것입니다.


(Link) 내 인생의 100권의 책: The 100 Books of My Life

bk

11.03.2009

선배로 부터 듣는 리더십 훈수

리더의 책무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들과 팀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다른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세운 후에는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덴버 세미나리를 떠나올 때 학교의 전통에 따라 초상화를 찍을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팀으로 일했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면 팀 모두가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초상화 대신 함께 일한 팀사진을 건다면 승락하겠다고 했더니 실무자들은 무척 난감해 했고 이사들은 화를 내었습니다. 이상하죠? 리더가 팀으로 일한다는 것은 리더의 존재적 전제조건이기도 합니다. 팀이 없는데 무슨 리더가 존재한단말입니까? 좋은 리더가 있다는 것은 좋은 팀이 있다는 전제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좋은 팀의 핵심은 유기적 다양성과 하나됨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리더는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교만한 이상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즉 리더는 전략적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리더십 스타일에도 해당되겠지만 또한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모든 부서가 A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상적으로는 모든 부서들이 보통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리더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몇가지에 신중하게 계획된 에너지와 자원을 집중해 탁월성을 나타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참 이상하게도 나머지 부분들도 같이 개발되기 시작할 테지만, 그렇지 못하면 모든 것이 지리멸렬해 집니다.

전략적 목표세우기는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가 트리니티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배운 것 중 가장 값진 것은 "문화인류학적 연구조사ethnographical research"방법을 배운 것입니다. 즉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기저에 감춰진 문제의 핵심을 찾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학과 철학 뿐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문화학등을 배우지 않습니까? 어떤 한 현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합니다. 리더는 단편적인 이해를 가지고 현상을 해결하려 하면 안됩니다. 보이는 현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잠재된 다른 문제들을 부상시켜 어려움을 가중시키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현상을 가져온 더 근본적인 수준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이런 능력은 경험이 쌓인다고 저절로 갖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의도적이고 깊이있는 대화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팀 모두가 이러한 자질을 갖추도록 함께 배우는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리더십의 덕목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왜 Trinity 의 EDS program이 전 세계의 수많은 리더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와 연관됩니다. 리더는 기본적으로 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리더는 항상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귀에 따갑도록 들었겠지만 배움learning은 혼자하는 지식 습득으로서의 공부study가 아닙니다. 배운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사고 패턴을 교정하고 확장해 가는 과정입니다. 필연적으로 자기 생각의 습관과 틀을 비평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내 방식을 고집하는 것, 자신의 직관을 의심하지 않는 것, 듣고 이해하고 질문하기 보다는 지시하고 설명하고 통제하는 것, 의사소통이 권위적으로 되는 것, 홀로 스타가 되어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리더들이 진정한 "배움의 자세"를 잃어 버렸을 때 나타나는 부정적 증상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일들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꿈과 비전이 (내 것이 아니라) 현실화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고정된 사고체계가 배움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교정되고 확장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점에서 리더는 모든 상황과 환경, 특별히 하나님이 함께 두신 동료들을 통해 심각한 자세로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리더에게 요구하시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하나님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은 우리를 낙심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리더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도전의 한복판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리더들은 책임감responsibility을 통해 힘을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책임을 감당하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도전들보다 크시며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십니다. 그리고 감당할 힘을 주시고 친히 이끌어 가십니다. 도전이 클수록 책임은 무거워 지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도 더 커지고 감당할 능력도 더욱 강하게 자라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을 때 책임을 통해 힘을 얻게 되며 배움에 대한 "용기"와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일련의 교과과정(Curriculum)이니까요. 그리고 그 교과과정은 언제나 완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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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신학대학원과 대학교에 신임 총장으로 부임한 Craig Williford는 덴버 세미나리의 전 총장이었으며 오랫동안 지역교회를 목회하기도 하였다. Ted Ward, Linda Cannell, Warren Benson, Perry Downs의 지도로 성인교육과 영성개발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가 선배로서 EDS Advisee Meeting 에 시간을 내어 참석하였고 함께 피자를 먹으며 나눈 대화에서 연륜있는 크리스찬 리더의 깊은 통찰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내가 배운 것들이 장래에 어떻게 쓰여질 것인가에 대한 한 모델을 보는 것 같아 기뻤다. 여러 질문과 대답을 통해 진술된 내용을 나름대로 요약 정리 각색해 보았다.
bk

7.20.2009

학습욕구

"Humans are the learning organism par excellence. The drive to learn is as strong as the sexual drive--it begins earlier and lasts longer."

Edward Hall

학습에 대한 욕구는 성욕보다 강하다. 학습욕구는 성욕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며 보다 오랫동안 지속된다.

7.14.2009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학습에 대한 두 관점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학습에 대한 두 관점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한국 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나라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어떤 면에서는 현재까지도 지배적인, 학습문화는 "수용"적 학습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수용적 학습관은 학습learning을 "지식의 수용"으로 이해한다. 이는 "공장의 생산라인"이나 "은행구좌"같은 메타포로 설명될 수 있다. 지식은 전달자(교사)로 부터 수용자(학습자)으로 전달되며 단시간 최대량의 지식을 전달하고 저장하는 것이 학습의 목표가 된다. 학습의 평가는 교사가 전달한 지식과 학생이 획득한 지식이 얼마만큼 일치하는가, 교사가 전달한 지식을 학습자가 얼마나 저장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수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오랬동안 수용된 지식을 정확하게 저장할 수 있는가가 최고의 관심이다.

수용적 학습관에 기초한 지식의 획득과 저장을 특징으로 하는 학습문화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담고 있다. (1) 지식은 객관적이며 독립적이다. 이 세상의 실체는 인식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지식은 실재에 대한 객관적인 표상이다. 지식은 언어를 포함한 매체를 통해 그 순수성을 상실하지 않고 유통될 수 있다. (2) 가르침 또는 교수instruction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교사는 축척되고 조직된 지식을 효과적으로 학습자들에게 전달하는 전달자transformer이다. (3) 학습learning은 전달된 지식을 획득하고 저장하는 것이다. (4) 저장된 지식은 언제든지 다른 상황에 적용된다. 지식의 적용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기초적이고 일반화된, 추상적 지식이 선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수용적 학습관은 여러가지 면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Paulo Freire는 수용적 학습관을 폭압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주입적 암기와 반복rote memory을 통해 이루어 지는 은행예금식(banking) 학습은 학습자들의 주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을 구속함으로서 개인의 인격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종속적이며 타율적인 인간을 양성한다고 보았다. 또한 학습의 실천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현격히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대화와 활동를 거부하여 배움을 고립된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공부"로 축소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수용적 학습문화는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창의력, 그리고 상상력같은 고차원적 사고의 발달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데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었다.

행동주의와 인지발달주의를 거처 1970년대 이후 끊임없이 주목을 받아온 학습에 대한 관점은 구성주의constructionism 관점이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지식은 인식의 주체인 학습자가 내적 인식과 외적 환경사이에서 끊임없이 구성, 해체, 재구성된다. 학습은 이러한 인식 주체의 능동적 지식 구성의 과정이다. 구성주의 학습관에서는 학습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학습자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과정이 학습이라고 보기 때문에 학습은 본질적으로 상황 의존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가가 학습의 내용과 결과를 규정하게 된다. 따라서 학습은 고립된 개인의 활동일 수 없으며 전달자와 수용자의 관계에서 처럼 일방적일 수도 없다.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구체적 학습의 상황이나 학습자가 처한 사회문화적 환경등이 학습에 있어 본질적인 요소들이며 따라서 학습은 상황적이고 사회적이다.

이러한 학습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교사와 학습자의 역할에 근본적 변화를 요청한다. 교사는 학습자가 주체적으로 지식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 또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학습자가 최대로 자기 자신을 개발 할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최적화 해 주어야 한다. 또한 학습자 개개인의 특성과 역사를 이해하며 그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인격적인 신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습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학습자를 신뢰하고 인내함으로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문화와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학습자는 학습의 주체로 자기 주도적이며, 창의적이고 비평적이며 탐구적인 학습행위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지식구성행위에 능동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스스로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을 떠받치고 있는 전제와 가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고와 행동에서 대립되는 차이점을 긍정하고 수용하며 상호 발전시키는 자세와 노력이 요구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함께 배워가려는 겸허한 마음과 구성된 지식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검증하고 확인하는 용기와 도전이 있어야 한다.

학습에 대한 수용적 관점과 구성적 관점의 차이점은 교회 사역에 대해 심각한 시사점들을 제공한다.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부터 시작하여 예배와 선교에 이르기 까지 교회 사역 본질중 하나는 칼빈이 지적한 바 대로 어머니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성도들을 단순한 성경지식의 전달과 문화화된 교회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도록 강요함으로서 현재도 상당히 진행되어 온 교회의 세속화를 심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을 준거의 틀로 삼아 개인과 공동체의 성향과 활동에 녹아 있는 세속성을 분별하도록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함양하게 하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문화를 창조하여 세상에 대안을 제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양육할지는 교회의 책임있는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학습"에 대한 이해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학습에 대한 두 관점을 생각하면서 실제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사역을 예로 들어 성찰해 보자. 위성을 통한 예배, 인터넷을 통한 신앙강좌, 텔레비전을 통한 복음 전도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성서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서는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수용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터넷이나 기타 위성과 텔레비전을 통한 신앙행위들은 원하는 정보를 습득하고 주관적 감정을 움직이는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데에는 상당한 도움을 주고 또 효과적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학습자/성도들의 필요와 취향에 따라 지식습득(신앙/말씀 강좌)과 신앙적 행위(예배)를 선택하고 향유할 수 있기 대문이다. 따라서 지식의 전달과 수용, 그리고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인터넷 예배나 성경공부는 탁월한 학습의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

한편, 구성주의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본다면, 학습자 또는 청중의 컨텍스트와 특성이 고려 될 수 없는 일방적 전달의 의사소통과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속에서의 상호작용이 없는 정보의 수동적 수용은 개인의 비판적 성찰 능력을 개발하고 더 넓은 진리를 이해하며 실천하는 데 주체적 노력을 기울이는 변화와 성숙을 가져 오기에는 제약되는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축척된 (수용된) 지식이나 경험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질적인 적용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는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

설교에 있어서 예를 들어 보자.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선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설교자를 "말씀의 대언자"로 보려는 시각이 있었다. 이러한 접근은 지식의 수용적 관점을 그대로 대변한다. 선포자는 전달하며 청중은 수용하고 축적한다. 성서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설교자의 고독한 작업에 의존하며 일체의 질문과 의심을 용납되지 않는다. "믿으시면 아멘하세요!"라는 설교자의 외침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토마스 롱을 주축으로 하는 "공동체적 증언"의 관점으로 설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설교자를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중 하나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역시 지식의 구성주의적 측면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대화적 설교dialogical preaching"를 통해 설교자가 청중들과 서로 양방향의 의사소통을 추구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고차원의 학습을 통한 창조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학습자의 필요와 동기, 그리고 삶의 현장과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일어나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학습을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듯 실제 삶에서 살아가는 방식, 즉 의사소통의 스타일, 조직의 구조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많은 차이를 나타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회과학의 발견과 발전을 잘 이해하여 좀 더 신학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 왕성하게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bk

7.04.2009

배움을 위한 기도

배우게 하소서 -존 베일리-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을 잘 이용하여
죄의 열매를 거두지 않고
성결의 열매를 거두게 하소서

실망으로 희망을 배우게 하소서
성공으로 감사를 배우게 하소서
불안으로 참음을 배우게 하소서
위험으로 담대함을 배우게 하소서

비난으로 오래 참음을 배우게 하소서
칭찬으로 겸손을 배우게 하소서
기쁨으로 절제를 배우게 하소서
고통으로 인내를 배우게 하소서

6.19.2009

회개와 배움

To grasp the meaning of "metanoia" is to grasp the deeper meaning of "learning," for learning also involves a fundamental shift or movement of mind.

Peter Senge, The Fifth Discipline, Doubleday, 2006 revised ed., p. 13

배움은 그 깊고 진정한 의미에 있어 "회개"에 상응한다. 진정한 배움은 단순한 지식습득의 피상성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과 생각과 감정과 행동의 통전적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와 왔다"는 요한과 예수의 선포는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가치체계, 새로운 관점으로의 인식의 전환을 명령한 것이었다. 실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생각의 틀'에 비판적 성찰을 요청한 후에는 예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원리를 선포하는 discourse강화들이 뒤따르며 이를 바탕으로 실제 삶에서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와 교정이 촉구된다.
진정한 배움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변화이며 더 나아가 전 인격의 통합으로서 "영혼의 변화"이다. 이런 점에서 탁월한 조직은 계속적인 "회개"를 통해 세상과 개인의 의미있는 발전과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직이라는 Senge의 통찰이 기업 경영의 영역에서 활발히 논의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나의 가정, 내가 속한 공동체가 "회개"하는 공동체인가 생각하고 점검하며 진정으로 회개할 일이다.

bk

5.23.2009

앎은 사건이다

"Knowing-generally and convictionally-is first, foremost, and fundamentally an event."
James E. Loder, Transforming Moment, p.33

앎은 사건이다.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존재가 변화되는 사건이다.

5.19.2009

저주를 통해 도달하는 직업

"Theologians are not made by reading and studying books but by living and dying and being damned."
Martin Luther

신학자들은 서적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고 또 죽으며 저주받음을 통해 만들어 집니다.
-마틴 루터-

십자가의 신학을 주창한 마틴루터 다운 말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그분의 진리에 노출되는 것은 추상적 관념의 사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한 복판에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되는" 역설을 온 몸으로 체득하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나를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를 쫓아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그러니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Sola Gracia는 그렇게 죽음과 저주를 기쁨으로 수용하는 자들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만 확증된다. 그러니 신학자라고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bk

4.07.2009

존재 이유와 존재 양식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우리가 교회의 존재 이유와 존재양식을 혼동하는 것입니다...예배와 선교 자체가 교육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모든 영역이 교육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구원의 주체도, 매개도 아닙니다... 교회는 화해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은준관-

초기 웨스터호프John Westerhoff의 공동체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그는 90년대 이후 개신교회의 양적 정체와 사회적 신임 상실에 대한 원인을 웨스터호프의 이론에서 찾으며 신앙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어 지는 것이며 공동체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Westerhoff의 주장을 한국적 상황에 접목시키려 애쓰고 있다.

이런 점에서 100여년 전 스미스Shelton Smith의 비판은 예언자적이다. 역사는 주일학교를 통해 교회 공동체에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을 한번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래서 진정한 기독교 교육은 구속적 학습공동체의 존재양식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기능적 측면에서도 적합성을 가진다는 나의 생각은 더욱 공고해 진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 나라의 구속적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 16, 28; 요 17, 엡1, 4).
bk

3.05.2009

호기심

Curiosity is the thirst of the soul.
호기심은 영혼의 갈증이다.

Samuel Johnson

2.10.2009

배움이란

배움이란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현재의 경험들을 의미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들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 통일성을 부여하고, 일관된 설명이 가능하게 하는 것, 즉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움이란 끊임없는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즉 경험의 해석과정이다.

Jack Mezirow, Transformative Dimensions of Adult Learning, 1991. p. 11

사람들은 저마다의 "습관화된 기대의 틀sets of habitual expectation" 또는 "의미관점meaning perspective"을 통해 감각된 자료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기억한다. 의미관점은 Albert Wolters가 설명한 세계관일 수도 있고, Thomas Kuhn의 패러다임일 수도 있고, Sara Little의 신념체계일 수도 있다. 여기서 매저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점은 사람들이 외부의 정보들을 수용할 때 주체적으로 이미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구조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과를 본다고 할 때, 그 사과가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과일로, 다른 사람에게는 누가 남기고 간 쓰레기로,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고 싶은 대상물로 수용된다. 이렇게 같은 사물을 놓고도 다른 의미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원인은 그 대상물 자체의 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실체를 수용하는 수용자의 "의미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의미를 느낀다",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를 창출한다", 또는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은 모두 외부의 자료를 수용하는 데 있어 "의미관점"을 활발하게 사용하여 외부의 자료들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사실상 언어라는 시스템을 통해 구체화된다. 사과를 인식할 때 이미 거기에는 "사과"라는 언어로 제한된 의미가 부여된 또는 분류categorized된"사과"의 개념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트겐쉬타인을 좀 공부해 놓을 것을 그랬다. 소쉬르로 부터 시작되는 언어사회학/기호학의 기본 개념을 배워둘 필요가 있다. 랑그와 빠롤, 그리고 기표와 기의를 구분하고자 했던가? 랑그는 빠롤이 가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기의와 기표의 관계는 사물과 단어가 아니라 개념과 청각이미지와의 관계이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언어가 역사와 사회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의미관점은 사회의 산물이며 문화적 상황에 항상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상인과 현대의 비즈니스맨은 언어만 다른 것이 아니다. 의미는 선언어적으로는 prelingustically 상황과 상징적 모델들을 통해,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언어를 통해 구성된다.

의미관점은 새로운 자료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일정한 구조를 따르게 하며 수용된 경험은 다시 의미관점을 재형성하고 확장시킨다. 배움이라는 것은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기존의 의미관점에 커다란 변화가 올때 일어난다. 이미 구성화된 의미관점들, 선입관, 가정, 전제,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입장, 사회적 상태와 교육된 이해들의 복잡한 의미관점들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매저로는 이를 관점의 변화perspective transformation라고 지칭한다.

배움은 해석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의미관점을 통해 대상들이나 사건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보통은 이미 형성된 의미관점을 가지고 현재 사건이나 대상을 해석한다. 그러나 변화학습은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지나간 과거의 경험을 재해석하여 결국 과거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관점을 창조해 낸다.

배움은 현재 경험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 장래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이다.

1.27.2009

변화를 가져오는 배움

Adult education in congregations should equip adults for their ministries and invite them to engage in a "critically reflective practice" of Christian faith for the sake of the world.to do so requires that adult Christians bring critical theological reflection to their various practices of ministry.

1.26.2009

학습 공동체


Learning Organization is a place where people continually expand their capacity to create the results they truly desire, where new and expansive patterns of thinking are nurtured, where collective aspiration is set free, and where people are continually learning how to learn together.

Peter M. Senge, The Fifth Discipline: The Art & Practice of the Learning Organization


(1) 학습조직의 정의

Peter Senge는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을 전통적인 조직과 구별하여 그 성격과 요건을 규정하였다. 그의 이론은 개방체제모형과 자기실현적 인간관을 전제적 이론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외재적 조건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교호작용 양태를 더 중요시한다. 조직은 사람들의 생각과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Senge가 말한 학습조직이란 ⅰ) 조직구성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과를 창출할 능력을 지속적으로 신장할 것, ⅱ) 새롭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육성될 것, ⅲ) 공동의 갈망이 자유롭게 분출될 수 있게 할 것, ⅳ) 조직구성원들이 함께 배우는 방법을 계속적으로 배울 것 등의 조건이 구비된 조직이다.



(2) 다섯가지 수련(제5의 수련)

Senge 는 학습조직의 성립에 필요한 다섯 가지 수련(훈련·계율·과정 : disciplines)을 제시하였다. 이들 수련은 학습조직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요건이며 방법이고 기술(component technologies)이다. 서로 수렴해 가는 다섯 가지의 새로운 기술 또는 수련이 함께 학습조직을 탄생시킨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새롭게 사고하고 교호작용하는 방법을 깨닫고 이를 행동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려는 다섯 가지 수련은 다음과 같다.

1) 자기완성(personal mastery) : 이에 관한 수련은 생애와 일에 관한 개인의 접근방법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각 개인은 원하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는 자기역량의 확대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조직은 그 구성원들이 선택한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2) 사고의 틀(mental models) : 이에 관한 수련은 뇌리에 깊이 박힌 전제 또는 정신적 이미지를 성찰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가다듬어야 한다.

3) 공동의 비전(shared vision) : 이에 관한 수련은 조직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원칙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4) 집단적 학습(team learning) : 이에 관한 수련은 집단구성원들이 진정한 대화와 집단적인 사고의 과정을 통해 개인적 능력의 합계를 능가하는 지혜와 능력을 구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5) 시스템 중심의 사고(systems thinking) : 이에 관한 수련은 체제를 구성하는 여러 연관 요인들을 통합적인 이론체계 또는 실천체계로 융합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통합적 훈련이다.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결정하는 요인들과 그들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훈련,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1.23.2009

학습공동체 Learning Community

4 Characteristics of Learning Community

1. Shared Vision
2. Commitment to Learning
3. Dialogue and Discussion
4. Systematic Problem Solving

Measuring and Creating Learning Organization
Three Overlapping Stages
1. Cognitive
2. Behavioral
3. Performance Improv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