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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012

우월감 섬김 그리고 겸손

"겸손하게 낮아져 섬기는 것은 가장 차원높은 사랑입니다.... 잘 섬기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우월감입니다...교만한 사람은 가르칠수는 있으나 섬길수는 없습니다. 진심으로 섬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겸손한 사람뿐입니다." 최순자 박사

오랬동안 발로 뛰는 선교를 하신 MOM선교회의 최순자 박사님을 거의 10년만에 다시 뵈었다. 퍼주는 선교와 가르치는 선교는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의 정신을 담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문제를 야기시킨다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의존심, 거지근성, 그리고 주종관계가 형성되면 선교사의 제자는 길러낼 지 모르지만 주체적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예수의 제자는 만들어 내기 어렵다.

어디 선교지와 선교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는가 생각해 보니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늘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목회자는 예수의 제자가 아닌 자신의 제자를 만들어낼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있는 것 같다. 목회현장에도 의존성, 거지근성, 그리고 주종관계가 만연하다. 목회자의 가르침이 섬김이 되어 성도들이 신앙의 주체로 해방되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통전적인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우려면 먼저 인격적 만남과 상호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성육신은 신-인 의사소통 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창출해 가시는 하나님의 인간섬김의 사건이지않은가!

bk

1.20.2012

서른 여섯의 당신이 보여주는 서른 여섯가지 아름다움


서른 여섯의 당신이 보여주는 서른 여섯가지 아름다움

1.       남편에게 유일한 여자가 아니라면 지구의 종말을 생각하는 아름다움
2.       무슨 음식이든 적절하게 딱 맛있게 할 줄 아는 아름다움
3.       아이들과 남편의 상태에 따라 반응할 줄 아는 아름다움
4.       부드럽게 말할 줄 아는 아름다움
5.       하루에 서른 여섯 가지 복잡한 일을 해 내는 아름다움
6.       남편의 수입과 상관없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는 아름다움
7.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름다움
8.       가정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함을 긍정적으로 보는 아름다움
9.       끊임없이 참아주고 기다려 주는 아름다움
10.    부모님들, 동생들, 사촌들을 꼼꼼히 챙겨 주는 아름다움
11.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는 아름다움
12.    게으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름다움
13.    말씀과 기도를 쉬지 않으려는 아름다움
14.    분노 속에서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아름다움
15.    퇴보하는 여러 기능과 상태를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아름다움
16.   다른 것에서도 바른 것을 찾을 줄 아는 아름다움
17.    남편이 약속을 어겨도 30분 정도만 화내고 풀어 버리는 아름다움
18.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고 싶은 꿈을 불어넣어 주는 아름다움
19.    한결같이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름다움
20.    시동생들에게 친언니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움
21.    시부모님들에게 칭찬받고 사랑받는 아름다움
22.    절기 때 마다 가족의 전통을 만들어 주는 아름다움
23.    남편이 제일 멋있다고 진짜로 말해주는 아름다움
24.    경제적인 풍요로움으로 행복한 것을 내려놓는 아름다움
25.    가계부를 8년 이상 꾸준히 써가는 아름다움
26.   새벽과 한 밤에도 불구하고 필요가 있을 때 빨래를 하는 아름다움
27.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아름다움
28.   12년 동안 무사고, 1 티켓으로 선방한 모범운전의 아름다움
29.    혼자서 아이들과 코스코와 타겟, 한국마켓과 옷 가게를 하루에 쇼핑하는 아름다움
30.    결혼 생활 11년 동안 3년 빼고 학생이었고 앞으로도 수년 동안 학생 일  남편을 끊임없이 격려해 주는 아름다움
31.    남편이 큰소리내면 무섭다며 눈물 흘리는 시늉을 하는 아름다움
32.    남편과 아이들이 파충류로 변할 때 난동을 미리 예방해 주는 아름다움
33.    도시락을 싸서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놀러 와 주는 아름다움
34.    16년 전 연애할 때 이야기를 자꾸 듣고 싶어하는 아름다움
35.    새 옷을 고를 때 예쁘냐고 어울리냐고 50번쯤 물어보는 아름다움
36.   다시 태어나도 나만을 사랑하겠다고 진짜처럼 말해주는 아름다움 

2008  360가지 아름다움을 쓰고 싶지만 꾹꾹 참으며 남편이 

11.25.2011

사랑과 계시

"우리에게는 역사 변혁의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셔서 이 시대를 바꾸실 것이라고 믿는 역사 변혁의 주인공의식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하나님은 자신을 사용하여 한 시대를 움직이실 것이라고 믿는 폭발적인 열망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사람에게로부터 비롯된 야망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꿈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꿈을 가진 사람들만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오늘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거룩한 비밀을 알리시고 당신이 이루고자 하시는 놀라운 계획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김남준, 자네 정말 그길을 가려나,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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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꿈을 성서는 "계시" 또는 "비전"이라 지칭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눈물겹도록 행복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꿈을 심으시며 그 꿈을 이루어 가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방식이며 계시의 기본적인 요건이다. (요 14:21)

"역사변혁의 주인공의식"이  "폭발적인 열망"으로 충만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흐르자 패기는 수그러들고 열정은 식어간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의식과 열망보다는 내 안에 역사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의식과 열망을 더욱 신뢰한다. 그것이 나의 야망을 꺽고 하나님의 뜻(계시)을 수용하고 순종하는 데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나의 하늘 아버지는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폭발적인 열망을 철저하게 의뢰하는 것이 "역사변혁의 주인공의식"을 가장 현실적으로 지혜롭게 그리고 중단없이 실천해 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운다. 

bk 

1.08.2011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오늘 새벽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다.
내 마음에 가득찬 죄의 비열함과 부패의 역겨움
입을 여는 것 조차 두려운 절망  


그러나 주님은 찬양을 주셨고, 내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
나의 죄악에 고통하시는 하늘 아빠의 가슴아픔
죄악된 나와 일그러진 세상을 회복하시려는 창조주의 열정
그 말씀하신 바를 결단코 이루시는 전능자의 결심

내 마음은 녹아내렸으며 새로운 책임감과 삶에 대한 의욕이 솟아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를 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단순한 기쁨이나 만족보다 더 깊은 차원의 갈망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카도쉬!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주소서 (x2)

1.06.2011

Best Christmas present Ever!

Dear dad,

Merry Christmas!!!
I am very sorry that I don't have much to give you as a gift.
Please forgive me for the things I did.
I love you very much.
I keep doing bad stuff, like hitting your butt, but I am really sorry.
But you kept forgiving me.

Thank you for comforting me when I am sad and blue.
Thank you for helping and cheering me up when I am sick.
It made me feel much better.
I am sad when you are sad.
When you are sick, I am sad.
I pray for you when there is trouble.

You are so caring, nice, kind, funny, silly, handsome, comforting, loving and helpful.
You buy me food, cloths, shelter, and watch after me.
You pray for me when I am in trouble.
I had great time reading the Bible with you.
When I missed the bus you dropped me off.
You changed my blankets and pillows.
You moved me to my bed.
You say good night and give time to read.
You play with us. You are joking and laughing.
You clean after me.
you tell great stories.
I learn from you.
You help me wash.
You check on us in the night.

I don't know a better dad then you.
You are the best dad I know of.
I wouldn't want any other dad but you.
I don't like it when you fight...

You are the best dad ever.
You always encourage me.
You remind me not to give up.
You make me feel brave.
You tell me to be strong and courageous.

I am sorry that I don't have much, but please take this I want to thank you for all of it.
I love you.

Your loving child, C.K.

December 24, 2010

P.S. You taught me a lot. You are a true dad.

1.01.2011

진정한 장벽

1947년 10월 14일, 조종사 척 예거 (Chuck Yeager, 1923-)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알려져 온 음속의 한계를 돌파함으로써 마침내 초음속 비행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저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음속의 한계는 결코 깨뜨릴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다른 과학자들 역시 마하 1의 속도에서는 조종사와 비행기 모두가 산산 조각날 것이라느니, 혹은 조종사는 목소리를 잃고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또 극심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등 섬뜩한 예견들을 하던 터였다. 그러나 예거는 그 역사적인 날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벨 항공(Bell-Aviation)의 X-1기에 탑승하여 시속 700마일 (마하 1.06)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3주후 마하 1.35로 비행했고, 6년 후에는 다시 시속 1,612마일(마하 2.44)이라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깨뜨릴 수 없는 장벽에 대한 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이었다.

예거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비행은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마하를 가리키는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늘은 마하 0.965에 도달했고, 곧 속도계의 오른쪽 끝이 기울었다. 나는 마치 환각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초음속을 날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어린아기의 엉덩이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그 편안함이라면 나이 든 할머니라도 거기 않아서 레모네이드를 즐길 수 있으리라! 나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염려하고 그토록 기대했건만, 막상 음속을 돌파하고 나니 오히려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미지의 것이었던 음속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실은 포크로 젤리를 가르는 것처럼, 마치 잘 포장되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쉬웠다. 그러나 나는 훗날 그때의 임무가 왜 그렇게 실망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그건 진정한 장벽은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음속 비행에 관한 우리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븐 코비, 원칙 중심의 리덥십, 김영사,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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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웃과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진보와 개혁을 가로막는 장벽은 외부의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장벽은 인간의 지식과 경험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절대 진리인양 확신해 버리는 내적 교만과 아집, 그리고 두려움이며, 초월적 힘을 간과하고 부러 잊으려 하는 영적 완고함과 둔감함입니다.

내 안에 있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 넘으려면 절대 타자에 대한 절대적 의존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훈련함으로 성취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절대진리에 대한 감정적 확신으로서의 믿음, 하나님 신앙을 기반으로 한 풍부하고 건강한 상상력의 발현으로서의 소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시위된 희생적 섬김의 사랑을 연습하고 경험함으로 길러집니다.

bk

12.27.2010

아브라함 링컨의 기도

아브라함 링컨의 기도

제일은,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생활에 힘쓸 것이다.

제이는,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할 것이다.

제삼은, 나는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날마다 겸손히 기도할 것이다.

제사는, 나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이다.

제오는, 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것이다.

제육은,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것이다.

제칠은, 나는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려 드릴 것이다.

제팔은, 나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하며 평등하다고 믿는다.

제구는,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것이다.

제십은, 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할 것이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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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링컨이이 기도문을 만들고 기도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특히 그의 유려한 문체와 깊은 사고에 비해 너무 짧고 또 인위적이다. 차라리 한국의 보수교회 지도자들의 형식적 기도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링컨이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첫째로는 기도의 내용에 하나님 사랑과 사람사랑이 담뿍 묻어나는 것 때문이요, 둘째로는 그가 이 기도문대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했으며 고난과 역경을 뚫고 이 기도를 실현해 내려 몸부림쳤음을 역사가 증언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기도문대로 살아가기를 다짐해 보며 이에 나의 중보기도수첩에 적어 놓는다.

적다 보니 십계명을 따라가며 기도문을 만들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 경천애인이라 했던가? 기도의 핵심이며 삶의 확고부동한 원칙이어야 한다. 링컨의 유명한 케티스버그Gettysburg의 연설(사실 수많은 전사자들의 무덤앞에서 유족들에게 행한 연설이다) 가운데 삽입된 그의 기도생활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노력한 바를 증언한다.

"Well, I will tell you how it was. In the pinch of the campaign up there (at Gettysburg) when everybody seemed panic stricken and nobody could tell what was going to happen, oppressed by the gravity of our affairs, I went to my room one day and locked the door and got down on my knees before Almighty God and prayed to Him mightily for victory at Gettysburg. I told Him that this war was His war, and our cause His cause, but we could not stand another Fredericksburg or Chancellorsville... And after that, I don't know how it was, and I cannot explain it, but soon a sweet comfort crept into my soul. The feeling came that God had taken the whole business into His own hands and that things would go right at Gettysburg and that is why I had no fears about you." [July 5, 1863]

bk

12.15.2010

Integrity 인테그리티

"Integrity without knowledge is weak and useless, and knowledge without integrity is dangerous and dreadful." Samuel Johnson

지식이 없는 성실함은 약하거나 쓸모가 없다. 성실함이 없는 지식은 위험하고 위협적이다.
실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사랑할 줄 아는 인격과 인품이 합쳐졌을 때 거기서 우리는 신의 성품을 맛본다. 헤세드!

bk

12.14.2010

십자가의 깊이와 폭력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히 12:3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겼던 사람에게 배신과 경멸과 모욕을 당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기 스스로가 하늘 아버지의 형용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모욕하고 경멸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사랑하는 이로부터 당한 배신때문에 분노와 복수심으로 온 밤을 하얗게 지새는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은혜는 고통을 댓가로 지불한 깨달음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복수와 응징의 폭력 액션영화를 즐기는 사이, 우리는 이 히브리서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더 상실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인간의 사랑이 가진 한계와 대조된 십자가 사랑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살이 찣기고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맞서 싸우는 일은, 아이러니겠지만 폭력을 통해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다.

bk

11.10.2010

피그말리온 효과

redwiki: 피그말리온 효과

고대 그리이스에 살던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는 고민을 했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어야하는데 모델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예쁘다는 여자를 봐도 성에 차질 않았고, 자기가 찾는 이상적인 모델을 찾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모델 없이 조각을 하기로 결정했다. 현실에서는 없는, 자기 머릿속에만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기로 한 것이다.


이 조각상은 지상의 어느 여자도 감히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한 처녀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작품에 완전히 빠져 버린 피그말리온은 이 조각상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수줍음을 많이 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조각상인 갈라테아를 깊이 흠모하게 되었다.


그는 조각상이 살아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가끔씩 만지기도 하고, 끌어 안기도 하고, 여러 장신구들로 꾸미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조각상이 단지 상아에 불과하다는 것 때문에 슬픔을 갖게 되었다. 슬픔이 깊어지자 그는 조각상에 옷을 입히고, 보석으로 장식도 해주며 한없는 애정으로 슬픔을 달랬다.


덕분에 조각상은 갈수록 더 살아있는 것 같았다. 급기야 피그말리온은 뮈로스 지방에서 나는 염료로 물들인 천을 덮은 침대와 부드러운 깃털을 넣고 만든 베개에 갈라테아를 눕히고, 그녀를 아내인양 대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프로디테의 제전이 다가왔다. 피그말리온은 이 제전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다 끝내고 난 후 제단 앞에서 갈라테아와 같은 여인을 아내로 점지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이 때 제전에 참석해 있던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알아채고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표시로 제단의 불길을 세 번이나 위로 솟아오르게 하였다.


소원을 빌고 집에 돌아 온 피그말리온은 침대에 있는 사랑스런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각상의 입술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피그말리온은 놀라면서 이번에는 조각상의 손을 만져보았다. 조각상은 피그말리온의 손을 잡았다.


조각상은 그의 소원대로 살아있었다.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고 기쁨에 겨워 다시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다. 조각상은 그의 입맞춤에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피그말리온을 바라보았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본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맺어준 아름다운 한 쌍의 연인들에게 한없는 축복을 내렸다.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과 결혼을 하고 파포스라는 딸을 낳게 된다.





심리학자 로젠탈(T.L.Rosenthal)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한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어린이 지능향상을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테스트 입니다. (사실은 거짓말)"


라고 설명을 해 놓고 검사를 실시했다. 그 후 20% 정도의 아이를 난수로 뽑아 놓고 "이 애들은 앞으로 지적발달이나 학업이 틀림없이 급상승할 것입니다"라고 선생님에게 결과보고를 해 주었다.


그런 암시후 8개월이 지난 다음 과거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지능 테스트를 하여 지난 번의 지능테스트 결과와 비교해 보았다. 그랬더니 앞으로 잘 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던 이이들의 지능이 다른 아이들의 지능에 비하여 현저하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의 이름을 따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선생님이 20%의 아이들을 지적 발달과 학업성적이 향상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정성껏 돌보고 칭찬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니까 공부하는 태도도 변하고 공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결국 능력까지 변하게 된 것이다.


이 결과로 "칭찬하면 칭찬한 만큼 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은 직장에서도 적용된다. 주위에 칭찬과 격려가 풍부하게 흘러다니는 부서와, 질책이나 강요만이 남발하는 부서는 그 구성원들의 애착심이나 생산성에 있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나타나려면 무엇보다도 구성원 상호간의 진지한 관심과 애정 및 인간적인 존중감이 실린 칭찬과 기대가 전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조직의 리더는 부하사원들에게 칭찬을 통하여 회사생활의 즐거움과 기대감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기다림





기다림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좀더 많은 기다림을 내 생활 속에 만들어 놓고 살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나누게 될 아름다운 사랑의 기다림, 좋은 우정의 기다림, 행복한 결혼의 기다림, 배움과 성숙의 기다림, 지혜와 겸손의 기다림 등등. 많은 기다림을 바다에 그물을 내리듯 내 생활 속에 펼쳐 놓으면 많은 행복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기다림은 삶의 맛을 달게 하며 향기롭고 윤기나게 하며, 늘 지금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믿음과 신뢰가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소망이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오면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강이 또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을 따라 지나간 날들의 그리움과 앞으로 올 날들의 기다림을 하나씩 만나게 될것입니다. 올 가을에는 지난날의 그리움도 만나야 하겠지만 좋은 기다림을 더 많이 만나보면 좋겠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The Giving Tree

신앙이 능력인 이유

신앙은 실제적 능력(Power)이다. 그것은 인간의 약함으로 하나님의 전능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인간의 잠재력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철저하고 겸손하게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실존적 사랑에 존재를 내어 맏기는 행복한 의존이다.
bk

9.18.2010

성공하는 가르침의 10가지 법칙

1. 가르치려 하지 말라; 대신 가르치려는 대로 살아라.
2. 말로 바뀔것이라는 근거없는 가정을 버려라.
3.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대신 직접 보여 주어라.
4. "벌"로서 다스리려 하지 말아라; 고래조차 벌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로 변한다.
5. 최고의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아라; 대신 최고의 학습자가 되도록 도우라.
6. 당신이 알고있는 것에 집중하게 말아라; 학습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주목하도록 하라.
7. 학습자를 과소평가하지 말아라; 대신 그들의 눈높이에서 시작하라.
8. 책에 의존하지 말아라; 책은 필수적이나 삶은 책에 제한되지 않는다.
9.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경청은 배움의 시작이요 끝이다. 반드시 개발되어져야한다.
10. 속해있는 교육기관의 문화를 존중하라.

Dr. Ted W. Ward
Professor Emeritus of Education and International Studies
Michigan State University and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http://www.wardconsultation.org/
http://www2.talbot.edu/ce20/educators/view.cfm?n=ted_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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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종이에 글을 써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이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강한 흔적을 남김으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사람이 있다. 워드 박사의 삶은 후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미시건 주립대(MSU)와 트리니티 신학대학원(TEDS)에서 40년 이상을 가르쳤던 테드 워드박사는 교육자 리더십 개발에 있어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제자들이 미국 신학대학원과 선교단체를 식민지화하고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돌 정도이면 그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의 가르침은 학습자의 역량을 최대한 그리고 지속적으로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그의 확고부동한 교육철학에 기초한다. 이를 위해 워드 박사는 학습자 중심의 가르침, 학습공동체를 통한 협동학습, 그리고 엄격한 질적연구조사방법을 강조하였다.

80에 가까운 노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정신은 날카롭고 균형있으며 그의 마음은 따듯하고 겸손하다. 평생을 교육자 개발에 헌신해 온 그가 이제 막 박사과정에 입문한 교육자들에게 작은 선물처럼 전해 준 "성공적인 교사의 십계명" 생각해 보니 그의 교육철학에 뭍어있는 집요하고도 지혜로우며 깊이있는 사람사랑을 느낄 수 있다.

bk

6.20.2010

사랑하는 딸아, 내가 같이 울어줄께

Joanne, my beloved daughter,

When I saw you for the first time,
you were crying because you were so excited to be born
and I was crying too because I was also excited to be a father.

A few minutes later, You were calm and went to sleep,
but I was keep crying because you were so beautiful.

When you woke up and cried again asking me to hold you,
I was crying because I was so happy that you needed me.

Three years later, when you went to a preschool for the first time,
you cried a lot because you were scared, and
I was crying too because I was also scared that you wouldn't be fine without me.

Sometimes when you were crying being spanked by me,
I was crying too because I felt terrible about me.

From now on, I don't know how often you will cry through out your life,
but I am pretty sure that you will cry sometimes for good or ill.



However,  Joanne, I want you to remember that
whenever you cry, I will cry with you
because I am your father and you are my daughter always and forever.


Happy birth day!

June 20, 2010

Your Dad, BK

5.17.2010

한번도 가지 않은 길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나섰다.
난데 없이 교회 뒤쪽으로 난 산을 따라 걸으며 기도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내 마음이 "가보자"와 "가지말자"로 나뉘어 분열하기 시작했다.
가지 말자는 쪽이 더 좋은 그리고 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가보자는 쪽은 시덥지 않은 한두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한가지 이유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소망이었다.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이 있으리라는, 어렵더라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소망과 기대 말이다. 소망이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 때 배웠다 .

아직도 검푸른 여명속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두려운 마음을 흥얼흥얼 찬양으로 잠재우며 걷다가 작은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갑자기 큰 개가 미친듯이 짖어대며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너무 놀라 거의 중심을 잃고 나 자빠지려 하는 찬라에 내 몸을 덮칠 그녀석의 거친 앞발과 내 목을 향해 날아오는 날카로운 이빨을 상상했다. 그러나 나는 넘어지지도 물리지 않았다. 개와 나 사이에는 철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놀랬으나 현실적으로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 "돌아갈까?"하는 마음이 놓치지 않고 고개를 바짝 들었으나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번연의 주인공 크리스천이 쇠줄에 묶인 사자의 포효에 주춤하며 전진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계속 짓어대는 개에게 예수님처럼 "잠잠하라"고 영어로 말해 주었다-shut up!

물이 말라버린 얕으막한 계곡에 지저분한 쓰레기들과 버려진 차들이 보였다. 높은 기둥에 마치 피가 흐른듯이 빨간색 페인트로 갱단원들이 한 것 처럼 여겨지는 지저분하고 기괴한 낙서들이 역겨운  냄새와 함께 기분을 상하게 하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결코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소망이 위협을 당하자 다시 두려움이 업습한다. "돌아가자..."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웠고 아찍 끝나지 않았다는 새로운 소망거리를 찾아내었다.
한 30분을 더 기도하며 산을 오르자 온 몸에서는 땀이 흐르고 기도는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산의 정상에 섰을 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아름다운 절경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인내하지 앟았으면, 두려움을 물리치지 않았으면, 소망을 포기했다면 결코 볼 수 없었던 장관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가득 차 올랐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그리고 소망은 사랑으로 가득찬 성품을 만들어 낸다는 바울의 고백을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정상에서 내려 올 때 하나님은 또다른 선물을 준비하고 계셨다. 산을 오를 때 겪었던 장애물들의 실체가 찬란한 아침 햇빛 아래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위협적이었던 모든 것들이 별것 아닌 것이 되어있었다. 오를 때 의심되었던 하나님의 임재가 내려갈 때는 자부심과 성취감, 보람과 삶의 긍정으로 충만하였다. 시내산을 내려가는 모세의 기분이 그랬을까?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은 두려운 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길이 행복하고  의미있고 보람된 길이 된다는 사실 또한 틀림없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 자신이 행복이며 의미이며 보람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길을 끝까지 마쳐본 사람만이 그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으며, 그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성숙을 노래할 수 있을뿐이다. 

bk

5.15.2010

성화의 의미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절대로 그대로 두지는 않으신다.

맥스 루케도, 예수님 처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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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거룩은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완전한 아름다움이시며 모든 아름다움의 제일 원인이시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주변의 상황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 피조물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영원하고 무한하며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를 가능하게 하시어 아름다움을 창조하시는 아름다움의 근원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절대기준이시며 존재를 아름답게 만드는 아름다움의 시혜자이시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미적 기준에 머무르지 않고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확장되어 거룩(kadosh, holy)로 표현된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모든 피조물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하게 되기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쫓아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은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다.

캘빈은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의 과정은 항구적 금식과 같은 고행mortification으로 보았지만, 그것이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한한 만족과 기쁨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성화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본 조나단 에드워즈의 통찰은 참으로 귀하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되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bk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사랑이다.
내가 그분을 상대하지 않아도, 무시해도, 퇴짜를 놓아도, 멸시해도, 불순종해도 그분은 변하지 않으신다.
나의 악이 그분의 사랑을 줄어들게 할 수 없다.
나의 선이 그분의 사랑을 더 커지게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매하다고 잃는 것도 아니요
믿음으로 얻어내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한다고 덜 사랑하시고
성공한다고 더 사랑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는 사랑이다.

맥스 루케도, 예수님처럼, 95

1.15.2010

신앙

첫째, 신앙은 인간 존재의 확실성을 준다. 인간이 가지는 존재적 절망은 오직 하나님께서 수여하시는 신앙을 통해서만 극복된다. 따라서 신앙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기반이다. 이런 점에서 신앙은 단순히 의미 구성을 통한 인식론적 확장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보다 포괄적이다.

둘째, 신앙은 미래지향적이다. 신앙은 현재의 갈등을 치유하고 회복하여 미래를 현실화시키는 힘이다. 따라서 신앙은 현재속에 미래를 배태하며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신앙은 현재의 상태를 초월한다.

셋째, 신앙은 역동적이며 초월적인 능력이다. 신앙은 실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절망을 뚫고 침투하시는 창조주의 초월성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넷째, 신앙은 공동체를 통해 경험된다. 신앙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는 증거와 고백을 필요로 한다. 개인적 인식의 확장은 신앙의 결과일 수 있으나 신앙 그 자체는 아니다.

다섯째, 신앙은 구체적이다. 삶의 구체적인 사건들속에서 신앙은 형성되고 변형된다. 신앙은 인지구조의 확장에 제한될 수 없으며 삶의 행위들이 발생하는 상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섯째, 신앙은 구속적이다.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샬롬회복이다. 신앙은 성취되거나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초월적이며 구속적 은혜로 계속해서 변형되어가는과정이다.

파울러의 신앙이해에 대한 로더의 반박 중, The Logic of the Spirit, 257

1.14.2010

같음과 다름은 하나됨의 다른 이름입니다.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때 우리는 혼란과 갈등의 가능성 앞에 노출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흔히 사용되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통된 경험과 사고를 강조하는 것 입니다. "서로 같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가치이겠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각기 다른 사고와 경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린 서로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어느것이 더 좋은 방법일까요?

그렇습니다. 두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공통된 인식의 기반이 없다면 대화자체가 불가능하겠죠. 그러나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모든 대화는 획일과 강압, 그리고 조정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같음을 기반으로 다름을 수용할 때 혼란과 갈등의 위기는 새로운 창조와 진보의 기회로 변할 것입니다. 서로 같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그리고 어떻게/왜 다른지 (무엇이 다른지가 아니라..)를 탐구해 보세요.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될 거에요.  그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멋진 방법에 대해서 말이죠. 종국에는 "무한히 이질적이고 영원히 저급한 나"와 같음을 공유하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사시고는 나무에 달려 돌아가신 삼위 하나님의 무한한 "다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야 같음과 다름은 하나됨의 다른 두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겠죠.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때문에 괴로워하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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