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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2012

우월감 섬김 그리고 겸손

"겸손하게 낮아져 섬기는 것은 가장 차원높은 사랑입니다.... 잘 섬기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우월감입니다...교만한 사람은 가르칠수는 있으나 섬길수는 없습니다. 진심으로 섬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겸손한 사람뿐입니다." 최순자 박사

오랬동안 발로 뛰는 선교를 하신 MOM선교회의 최순자 박사님을 거의 10년만에 다시 뵈었다. 퍼주는 선교와 가르치는 선교는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의 정신을 담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문제를 야기시킨다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의존심, 거지근성, 그리고 주종관계가 형성되면 선교사의 제자는 길러낼 지 모르지만 주체적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예수의 제자는 만들어 내기 어렵다.

어디 선교지와 선교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겠는가 생각해 보니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늘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목회자는 예수의 제자가 아닌 자신의 제자를 만들어낼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있는 것 같다. 목회현장에도 의존성, 거지근성, 그리고 주종관계가 만연하다. 목회자의 가르침이 섬김이 되어 성도들이 신앙의 주체로 해방되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통전적인 신앙생활을 하도록 도우려면 먼저 인격적 만남과 상호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형성하는 데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성육신은 신-인 의사소통 구조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하나님나라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창출해 가시는 하나님의 인간섬김의 사건이지않은가!

bk

1.06.2011

Best Christmas present Ever!

Dear dad,

Merry Christmas!!!
I am very sorry that I don't have much to give you as a gift.
Please forgive me for the things I did.
I love you very much.
I keep doing bad stuff, like hitting your butt, but I am really sorry.
But you kept forgiving me.

Thank you for comforting me when I am sad and blue.
Thank you for helping and cheering me up when I am sick.
It made me feel much better.
I am sad when you are sad.
When you are sick, I am sad.
I pray for you when there is trouble.

You are so caring, nice, kind, funny, silly, handsome, comforting, loving and helpful.
You buy me food, cloths, shelter, and watch after me.
You pray for me when I am in trouble.
I had great time reading the Bible with you.
When I missed the bus you dropped me off.
You changed my blankets and pillows.
You moved me to my bed.
You say good night and give time to read.
You play with us. You are joking and laughing.
You clean after me.
you tell great stories.
I learn from you.
You help me wash.
You check on us in the night.

I don't know a better dad then you.
You are the best dad I know of.
I wouldn't want any other dad but you.
I don't like it when you fight...

You are the best dad ever.
You always encourage me.
You remind me not to give up.
You make me feel brave.
You tell me to be strong and courageous.

I am sorry that I don't have much, but please take this I want to thank you for all of it.
I love you.

Your loving child, C.K.

December 24, 2010

P.S. You taught me a lot. You are a true dad.

1.04.2011

사람에 대한 신뢰와 발달주의의 한계

They talk about the people, but they do not trust them; and trusting the people is the indispensable precondition for revolutionary change. A real humanist can be identified more by his trust in the people, which engages him in their struggle, than by a thousand actions in their favor without that trust."
Paulo Freire, Pedagogy of the Oppressed, 30th Anniversary Edition, p. 60

의식화(Conscientization) 교육의 창시자인 프레리는 주입적 암기와 반복rote memory을 통해 이루어 지는 은행예금식 학습(Banking education)은 학습자들의 주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을 구속함으로서 개인의 인격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종속적이며 타율적인 인간을 양성한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학습의 실천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현격히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대화와 활동를 거부하여 배움을 고립된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공부"로 축소시켰음을 지적하였다. 그에게 있어서의 교육은 학습자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고 (Problem-posing education) 비평적 의식을 스스로 일깨우도록 도움으로 환경과 상황의 압제로 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변혁과 갱신의 주체자로 개발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의 "빨간책"은 독재자들의 금서목록 1호였으며 동시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회 운동가들의 사회과학 필독서 1위였다. 

거지에게 많은 돈을 적선하기 보다, 왜 거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가를 묻고 거지생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용기와 자기희생, 그리고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타적 자기 희생의 사랑은 의식화 교육이나 주체화 교육으로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남미의 사회적 상황과 공산체제의 붕괴는 여실히 가르쳐 준다.  

일반적인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한계는 프레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간됨의 이해,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죄성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순진하다.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인간의 궁극적인 개발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필요로 할 만큼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또 다른 한계는 목적과 수단의 혼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 목적(또는 이차적 목적)이 궁극적 목적(일차적 목적)을 대치하게 되면 마치 외발자전거를 타는 것 같은 멈출 수 없는 순환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타르타로스의 언덕에서 끝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돌을  계속해서 올려대야 했던 시지프스처럼, 성취될 수 없기에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면 그것은 허무의 형벌에 해당하는 것이지 결코 진보와 발전일 수 없다. 사회 구조의 변혁과 갱신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왜냐햐면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으로 인해, 하나의 변혁과 갱신은 반드시 또 다른 변혁과 갱신을 긴급하게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으로서의 개발은 "인간됨"이라는 유한하고 상대적 가치에 묶여 있을 때 가장 크게 왜곡되고 제한된다. 모든 발달주의자들이 부르짖는 "인간 개발"은 누구에 의한,  어떤 목적을 가진, 어떤 방식의 개발이냐에 대한 질문에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궁극적인 지향점을 인간에서 옮겨 무한한 초월적 존재에 위치 시킬 때에라야 가변적이고 순환적인 상대적 가치가 영원하고 절대적 가치로 승화 될 수 있으며 비로서 구조와 방향을 갖춘 진정한 의미로서의 개발이 현실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개발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이 아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 두가지는 분리되어있지 않고 상호적으로 맞물려 있다.

고독과 허무, 존재적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인간의 왜곡된 자기 인식과 한계때문에 인간의 내적 가능성에서도 찾을 수 없고, 사회 구조적인 변혁과 개혁으로 실현될 수도 없다. 오직 인간의 실존을 뚫고 침입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역동적 역사와 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실천적 신앙을 통해 부분적으로 경험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의 구원의 완성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레리가 주장한 인간 신뢰의 필요성은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 안에서는 인도주의자들 만큼의 사람사랑이 이루어 지기는 커녕, 권위주의적이고 폭압적인 맹신과 맹종의 교육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의 해방적 교육은 신앙교육을 평가하고 교정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bk

12.27.2010

개념 없는 인식은 무지

"Percept without concept is blind" I. Kant

경험이란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이기 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이다. 의미를 만들거나 의미를 변경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의미를 만드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근원적으로 중요하다. 인식에 개념이 부과된다면 의미가 된다. 같은 인식에 다른 개념을 부여한다면 의미의 변경 즉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인식하는 방식/틀/구조 자체가 변화된다면 의미구조meaning perspective,  즉 인식의 지평이 확장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 구조의 변화(changes of form)을 교육계에서는 변형학습 trans-from-ative learning 이라 부르고 심리학계에서는 구조-발달주의constructive developmentalism 이라고 한다. 

bk

10.04.2010

주체적 사고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아이러니irony," 즉 의심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 형식으로서의 풍자가 만들어낸 결정적인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성찰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natural attitude를 우회적으로 해체시켰다는 것이다. (풍자irony를 통해) 개인은 객관적 지식의 확실성을 상실하는 반면에 자기 자신(또는 주관적 자기해석)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야 비로소 개인은 자신이 지식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닿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지식이 '무엇'인가라고 묻기 보다, 개인이 어떻게 지식과 자기 자신을 연결시키면서 자기 주관을 유지하는 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키에르케고르가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인식하는 사람과 그가 인식하는 내용을 날카롭게 분리시켜버렸다. 어떻게 인식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인식하는 내용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Ronald J. Manheimer, Kierkegaard as Educator,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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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2010

사랑하는 딸아, 내가 같이 울어줄께

Joanne, my beloved daughter,

When I saw you for the first time,
you were crying because you were so excited to be born
and I was crying too because I was also excited to be a father.

A few minutes later, You were calm and went to sleep,
but I was keep crying because you were so beautiful.

When you woke up and cried again asking me to hold you,
I was crying because I was so happy that you needed me.

Three years later, when you went to a preschool for the first time,
you cried a lot because you were scared, and
I was crying too because I was also scared that you wouldn't be fine without me.

Sometimes when you were crying being spanked by me,
I was crying too because I felt terrible about me.

From now on, I don't know how often you will cry through out your life,
but I am pretty sure that you will cry sometimes for good or ill.



However,  Joanne, I want you to remember that
whenever you cry, I will cry with you
because I am your father and you are my daughter always and forever.


Happy birth day!

June 20, 2010

Your Dad, BK

3.14.2010

인간됨의 결정적 조건

"A defining condition of being human is our urgent need to understand and order the meaning of our experience, to integrate it with what we know to avoid the threat of chaos." Jack Mezirow (2000)

인간됨의 결정적 조건중 하나는 우리의 경험을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과 연결해 이해하며 조직화함으로 혼란과 혼동이 주는 위협을 피하려는 절박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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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며, 의미를 구성하고, 의미에 의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의미는 인간에게 생명과 같다. 무의미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투쟁은 죽음의 힘 보다 더 강력하다. 인생의 의미를 구성하지 못할 때 조차, 인간은 죽음으로써 삶의 무의미를 종식시키려 할 만큼 인간에게 있어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며 의미를 구성/재구성하는 행위는 근원적 본능이다. 그렇다면 의미란 무슨 의미인가? 의미를 추구한다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어떻게 의미를 추구하는가? 무슨 의미를 추구하는가? 의미는 발견하는 것인가 아니면 형성되는 것인가? 의미는 어떻게 변형/변화 되는가?

매저로는  구조주의적 인식론을 바탕으로이러한 질문들을 탐구해 나간다. 비판적 사고를 통한 인식구조의 변혁과 확장은 구조주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이며 이러한 인식구조의 변형을 성인교육의 영역에서 설명하고 통합한 공로로 그는 변형적 학습이론transformative learning theory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그러나 매저로에게 있어 왜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가? 어떤 의미가 의미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의미의 근거는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무시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인간의 의미구성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구조주의 인식론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존재론에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사회과학적 접근이 보변적으로 기반하는 암묵적 가정의 오류이다. 즉 관찰자의 실존적 한계를 간과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는 스스로 알 수 없으며 나의 나됨을 인식하려면 절대 타자의 거울앞에 서야 한다는 것이 성경이 증언하는 바이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 첫머리를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혜, 즉 참되고 온전한 지혜는 거의 모두가 두 가지 부분으로 구성된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다. 이 두 지식은 여러 끊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그 중 어떤 것이 먼저오며, 어떤 것이 그 결과로 파생되는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Institute I.i.1).

그렇다면, 인간됨의 결정적인 조건은 "혼란과 혼동을 피하려는 절박한 필요때문에 의미를 구성하려는 습성"이기 보다는, 그러한 갈망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절대의미, 의미의 절대기준, 의미를 추구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인간과 우주의 존재적 의미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내 자신을 알아가기를 통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향방없는 의미추구가 주는 허무와 절망의 긴 터널 통과한 후 증언한 어거스틴의 고백은 이런 점에서 울림이 크다: "당신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찬양하기를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당신을 향하여 살도록 당신이 우리를 창조하신 까닭이니 우리 심령은 당신 안에서 쉼을 얻을 때가지 평안할 수 없습니다." (Confessio 1.1.1).

bk

2.06.2010

성장=지속성+방향성

성장은 지속성과 방향성의 두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정체되어 있다면 성장이 아니겠죠. 그러나 무작정 변화되는 것도 성장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변화가 의도된 방향성대로 일어나야 성장하는 것입니다. 어떤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와 어떻게 그 방향으로 계속 발전할 것인가는 함께 맞물려 있는 톱니와 같습니다. 목표가 없으면 변화의 원동력이 사라집니다. 변화함이 없이는 목표를 이룰 수 없겠죠.

John Dewey, Experience and Education, 1938, 36

10.01.2009

고착된 마음의 틀, 성장하는 마음의 틀

Fixed Mindset vs. Growth Mindset: Which One Are You?

By Michael Graham Richard
Here is an excerpt from an article about Carol Dweck, a professor of psychology at Stanford University:
Through more than three decades of systematic research, [Carol Dweck] has been figuring out answers to why some people achieve their potential while equally talented others don’t—why some become Muhammad Ali and others Mike Tyson. The key, she found, isn’t ability; it’s whether you look at ability as something inherent that needs to be demonstrated or as something that can be developed.
To anyone who is into personal growth and self-improvement, this seems obvious. But clearly, it is not obvious to everybody: look at thethis diagram by Nigel Holmes representing the two types of mindsets and I’ll sure you’ll recognize the attitudes of many people you know.

Fixed Mindset

Let’s have a look, starting with the Fixed Mindset side:
fixed-001
People who hold these beliefs think that “they are the way they are”, but that doesn’t mean that they have less of a desire for a positive self-image than anyone else. So of course they want to perform well and look smart. But to achieve these goals…
fixed-002
By definition, a challenge is hard and success is not assured, so rather than risk failing and negatively impacting their self-image, they will often avoid challenges and stick to what they know they can do well.
fixed-003
Same with obstacles. The difference here, as I see it, is that challenges are things that you can decide to do while obstacles are external forces that get in your way.
fixed-004
What’s the point of working hard and making efforts if afterwards you are still on square one? If your worldview tells you that effort is an unpleasant thing that doesn’t really pay dividends, then the smart thing to do is to avoid it as much as possible.
fixed-005
Useful negative feedback is ignored in the best of cases, and taken as an insult the rest of the time. The Fixed Mindset logically leads you to believe that any criticism of your capabilities is criticism of you. This usually discourages the people around and after a while they stop giving any negative feedback, further isolating the person from external influences that could generate some change.
fixed-006
The success of others is seen as a benchmark against which the person looks bad. Usually when others succeed, people with a Fixed Mindset will try to convince themselves and the people around them that the success was due to either luck (after all, almost everything is due to luck in the Fixed Mindset world) or objectionable actions. In some cases, they will even try to tarnish the success of others by bringing up things that are completely unrelated (”Yes, but did you know about his…”).
fixed-007
As a result, they don’t reach their full potential and their beliefs feed on themselves: They don’t change or improve much with time, if at all, and so to them this confirms that “they are as they are”.

Growth Mindset

Let’s now look at the Growth Mindset:
growth-001
People who hold the Growth Mindset believe that intelligence can be developed, that the brain is like a muscle that can be trained. This leads to the desire to improve.
growth-002
And how do you improve? First, you embrace challenges, because you know that you’ll come out stronger on the other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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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ilarly, obstacles – external setbacks – do not discourage you. Your self-image is not tied to your success and how you will look to others; failure is an opportunity to learn, and so whatever happens you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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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fort is seen not as something useless to be avoid but as necessaryto grow and master useful ski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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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cism and negative feedback are sources of information. That doesn’t mean that all criticism is worth integrating or that nothing is never taken personally, but at least the Growth Mindset individual knowns that he or she can change and improve, so the negative feedback is not perceived as being directly about them as a person, but rather about their current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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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uccess of others is seen as a source of inspiration and information. To Growth Mindset individuals, success is not seen as azero-sum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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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so, Growth Mindset individuals will improve and this will create a positive feedback loops that encourages them to keep learning and improving.

What Now

The good news – especially if you just recognized yourself as being someone who holds the Fixed Mindset worldview – is that it is possible to change from one to the other. In fact, I think this should be taught to all children.
What’s more, Dweck has shown that people can learn to adopt the latter belief and make dramatic strides in performance. [...]
The most dramatic proof comes from a recent study by Dweck and Lisa Sorich Blackwell of low-achieving seventh graders. All students participated in sessions on study skills, the brain and the like; in addition, one group attended a neutral session on memory while the other learned that intelligence, like a muscle, grows stronger through exercise. Training students to adopt a growth mind-set about intelligence had a catalytic effect on motivation and math grades; students in the control group showed no improvement despite all the other interventions.
“Study skills and learning skills are inert until they’re powered by an active ingredient,” Dweck explains. Students may know how to study, but won’t want to if they believe their efforts are futile. “If you target that belief, you can see more benefit than you have any reason to hope for.”
Does the Fixed vs. Growth Mindset theory fits with your personal experience? Does it describe well the people around you? Please let me know in the comments below.
Thanks to Guy Kawasaki.
Images credit: Nigel Holmes
See also:
Update: Carol Dweck recently published The Secret to Raising Smart Kids in Scientific American.

7.20.2009

학습욕구

"Humans are the learning organism par excellence. The drive to learn is as strong as the sexual drive--it begins earlier and lasts longer."

Edward Hall

학습에 대한 욕구는 성욕보다 강하다. 학습욕구는 성욕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며 보다 오랫동안 지속된다.

7.14.2009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학습에 대한 두 관점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학습에 대한 두 관점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한국 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나라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어떤 면에서는 현재까지도 지배적인, 학습문화는 "수용"적 학습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수용적 학습관은 학습learning을 "지식의 수용"으로 이해한다. 이는 "공장의 생산라인"이나 "은행구좌"같은 메타포로 설명될 수 있다. 지식은 전달자(교사)로 부터 수용자(학습자)으로 전달되며 단시간 최대량의 지식을 전달하고 저장하는 것이 학습의 목표가 된다. 학습의 평가는 교사가 전달한 지식과 학생이 획득한 지식이 얼마만큼 일치하는가, 교사가 전달한 지식을 학습자가 얼마나 저장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수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오랬동안 수용된 지식을 정확하게 저장할 수 있는가가 최고의 관심이다.

수용적 학습관에 기초한 지식의 획득과 저장을 특징으로 하는 학습문화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담고 있다. (1) 지식은 객관적이며 독립적이다. 이 세상의 실체는 인식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지식은 실재에 대한 객관적인 표상이다. 지식은 언어를 포함한 매체를 통해 그 순수성을 상실하지 않고 유통될 수 있다. (2) 가르침 또는 교수instruction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교사는 축척되고 조직된 지식을 효과적으로 학습자들에게 전달하는 전달자transformer이다. (3) 학습learning은 전달된 지식을 획득하고 저장하는 것이다. (4) 저장된 지식은 언제든지 다른 상황에 적용된다. 지식의 적용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기초적이고 일반화된, 추상적 지식이 선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수용적 학습관은 여러가지 면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Paulo Freire는 수용적 학습관을 폭압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주입적 암기와 반복rote memory을 통해 이루어 지는 은행예금식(banking) 학습은 학습자들의 주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을 구속함으로서 개인의 인격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종속적이며 타율적인 인간을 양성한다고 보았다. 또한 학습의 실천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현격히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대화와 활동를 거부하여 배움을 고립된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공부"로 축소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수용적 학습문화는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창의력, 그리고 상상력같은 고차원적 사고의 발달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데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었다.

행동주의와 인지발달주의를 거처 1970년대 이후 끊임없이 주목을 받아온 학습에 대한 관점은 구성주의constructionism 관점이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지식은 인식의 주체인 학습자가 내적 인식과 외적 환경사이에서 끊임없이 구성, 해체, 재구성된다. 학습은 이러한 인식 주체의 능동적 지식 구성의 과정이다. 구성주의 학습관에서는 학습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학습자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과정이 학습이라고 보기 때문에 학습은 본질적으로 상황 의존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가가 학습의 내용과 결과를 규정하게 된다. 따라서 학습은 고립된 개인의 활동일 수 없으며 전달자와 수용자의 관계에서 처럼 일방적일 수도 없다.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구체적 학습의 상황이나 학습자가 처한 사회문화적 환경등이 학습에 있어 본질적인 요소들이며 따라서 학습은 상황적이고 사회적이다.

이러한 학습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교사와 학습자의 역할에 근본적 변화를 요청한다. 교사는 학습자가 주체적으로 지식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 또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학습자가 최대로 자기 자신을 개발 할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최적화 해 주어야 한다. 또한 학습자 개개인의 특성과 역사를 이해하며 그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인격적인 신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습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학습자를 신뢰하고 인내함으로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문화와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학습자는 학습의 주체로 자기 주도적이며, 창의적이고 비평적이며 탐구적인 학습행위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지식구성행위에 능동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스스로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을 떠받치고 있는 전제와 가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고와 행동에서 대립되는 차이점을 긍정하고 수용하며 상호 발전시키는 자세와 노력이 요구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함께 배워가려는 겸허한 마음과 구성된 지식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검증하고 확인하는 용기와 도전이 있어야 한다.

학습에 대한 수용적 관점과 구성적 관점의 차이점은 교회 사역에 대해 심각한 시사점들을 제공한다.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부터 시작하여 예배와 선교에 이르기 까지 교회 사역 본질중 하나는 칼빈이 지적한 바 대로 어머니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성도들을 단순한 성경지식의 전달과 문화화된 교회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도록 강요함으로서 현재도 상당히 진행되어 온 교회의 세속화를 심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을 준거의 틀로 삼아 개인과 공동체의 성향과 활동에 녹아 있는 세속성을 분별하도록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함양하게 하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문화를 창조하여 세상에 대안을 제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양육할지는 교회의 책임있는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학습"에 대한 이해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학습에 대한 두 관점을 생각하면서 실제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사역을 예로 들어 성찰해 보자. 위성을 통한 예배, 인터넷을 통한 신앙강좌, 텔레비전을 통한 복음 전도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성서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서는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수용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터넷이나 기타 위성과 텔레비전을 통한 신앙행위들은 원하는 정보를 습득하고 주관적 감정을 움직이는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데에는 상당한 도움을 주고 또 효과적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학습자/성도들의 필요와 취향에 따라 지식습득(신앙/말씀 강좌)과 신앙적 행위(예배)를 선택하고 향유할 수 있기 대문이다. 따라서 지식의 전달과 수용, 그리고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인터넷 예배나 성경공부는 탁월한 학습의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

한편, 구성주의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본다면, 학습자 또는 청중의 컨텍스트와 특성이 고려 될 수 없는 일방적 전달의 의사소통과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속에서의 상호작용이 없는 정보의 수동적 수용은 개인의 비판적 성찰 능력을 개발하고 더 넓은 진리를 이해하며 실천하는 데 주체적 노력을 기울이는 변화와 성숙을 가져 오기에는 제약되는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축척된 (수용된) 지식이나 경험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질적인 적용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는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

설교에 있어서 예를 들어 보자.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선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설교자를 "말씀의 대언자"로 보려는 시각이 있었다. 이러한 접근은 지식의 수용적 관점을 그대로 대변한다. 선포자는 전달하며 청중은 수용하고 축적한다. 성서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설교자의 고독한 작업에 의존하며 일체의 질문과 의심을 용납되지 않는다. "믿으시면 아멘하세요!"라는 설교자의 외침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토마스 롱을 주축으로 하는 "공동체적 증언"의 관점으로 설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설교자를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중 하나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역시 지식의 구성주의적 측면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대화적 설교dialogical preaching"를 통해 설교자가 청중들과 서로 양방향의 의사소통을 추구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고차원의 학습을 통한 창조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학습자의 필요와 동기, 그리고 삶의 현장과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일어나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학습을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듯 실제 삶에서 살아가는 방식, 즉 의사소통의 스타일, 조직의 구조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많은 차이를 나타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회과학의 발견과 발전을 잘 이해하여 좀 더 신학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 왕성하게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bk

7.08.2009

혁명적 복음과 알깨기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알은 한 세계다. 태어나려하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은 아프락서스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보낸 편지 중
헤르만헤세, 데미안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자신을 둘러 싼 낡은 현실의 파괴와 맞닿아 있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구절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던지고 평화를 파괴하는 검을 주러 왔다고 가르치셨다. 또한 종교와 정치, 교육과 경제의 실질적 중심이었고 한 민족의 아이덴티티였던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주장하셨고 그로 인해 신성모독의 죄목으로 정치적 타살을 당하셨다. 예수의 복음은 그 본질상 '전복적'subversive이고 해체적이며 혁명적이다. 이 말은 폭력적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개인과 집단의 죄성으로 인한 모든 불의와 죄악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새로운 생명은 안전하게 무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참생명 또는 온전한 삶은 죄와 사망의 세력에 대항하는 혁명과 전쟁의 댓가를 지불하고 획득하는 것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의 옮김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흘림을 비용으로 치뤄야 할 만큼 치열하고 맹렬한 세상과의 전쟁을 치루고 난 후 얻어지는 것이다.

복음의 선포는 이렇듯 기존의 질서와 갈등관계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예수의 삼중 직 중, 선지자로서의 예수는 사회와 도통 어울릴 수가 없다. 기득권자들과 좋은 관계일 수 없으며, 지도자들과 화평할 수가 없고, 지식인들과 논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삼중직은 그의 몸으로서 교회에게 위임된 것이다. 왕과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실행하는 것 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선지자만으로도 안된다. 모두가 다 필요하다. 그러니 모든 교회가 다 필요할 것이 아닌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는 서로 견제하며 대화하고 협력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자신을 둘러싼 자신의 세계를 인식하고 확장하려는 인간 영혼의 투쟁을 심리적으로는 "자아 발달"로 교육이론으로는 "변형적 학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발달과 변형이론들의 핵심은 인간의 "인식 구조" 또는 "인식의 틀"이 신체, 나이, 성별, 사회적 환경, 문화에 따라 어떻게, 어떤 과정에 따라, 어떤 촉매적 요건들을 통해 발달 또는 변형되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구조변형의 이해들은 인식구조의 발달과 변화의 설계자이며 원인자이고 협력자인 동시에 완성자이신 창조의 영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자기 인식의 한계에 갖히는 심각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반면 교회에서의 설교와 가르침은 보편은혜에 기반한 창조원리의 구조적 측면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 깊이있는 이해를 추구하려 노력하지 않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사회과학을 통해 발견된 인간 발달과 인식구조 변형의 원리들이 근거가 빈약한 오류이며 교회의 신학과 신앙적 실천에 마치 원수나 되는 것 처럼 떠벌여 유치한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한 싸움을 부추키기도 한다. 이로서 자기 인식의 한계안에 갖혀 있는 자신의 가련함을 보지 못한 채, 진리를 자기 호주머니 속에 넣고 있는 양 호들갑을 떠는 어리석음과 오만함을 보이기까지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교만함으로 스스로를 갱신할 줄 아는 능력을 상실한 교회는 세상의 권위주의적이고, 성취지향적(또는 경쟁적)이며, 가변적이고 폭압적인 세상문화의 사회화 과정에 저항하고 극복하여 그리스도의 문화를 창출해 냄으로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스스로 경쟁하여 분쟁하고 결국 분열하여 자멸하게 된다는 점이다.

전통과 인습, 도그마와 자기 경험의 한계에 갖혀있는 사람들을 향해 "새술은 새부대"에 담을 수 밖에 없다고 일갈하신 예수의 통렬한 지적은 금식 논쟁과 같은 지엽적인 실천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똑같은 성정을 가진 나사렛의 젊은 목수를 창조주의 아들로 인정해야 하는 믿음은 기존의 인식구조의 틀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인식구조로의 전환paradigm shift이 없이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바로 이 시작점에서 부터 죽어야 살고, 나눠주어야 풍성해지며, 낮아져야 높아지고, 포기해야 얻는 다는 불가해한 역설이 시대와 상황과 문화를 초월한 삶의 근원적 원리로 존중되기 시작한다.

그러니 이렇듯 자기의 존재의 집인 "자기 세계"를 부수는 일이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자기한계의 인식만이 우리를 죽은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창조의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로 인도한다. 또한 이를 삶으로 증명해 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 우리 안에서 그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믿음과 힘 주심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고백하도록 한다. 나의 한 부분인 세계를 파괴하는 일은 그래서 하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다.

bk

6.19.2009

회개와 배움

To grasp the meaning of "metanoia" is to grasp the deeper meaning of "learning," for learning also involves a fundamental shift or movement of mind.

Peter Senge, The Fifth Discipline, Doubleday, 2006 revised ed., p. 13

배움은 그 깊고 진정한 의미에 있어 "회개"에 상응한다. 진정한 배움은 단순한 지식습득의 피상성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과 생각과 감정과 행동의 통전적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와 왔다"는 요한과 예수의 선포는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가치체계, 새로운 관점으로의 인식의 전환을 명령한 것이었다. 실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생각의 틀'에 비판적 성찰을 요청한 후에는 예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원리를 선포하는 discourse강화들이 뒤따르며 이를 바탕으로 실제 삶에서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와 교정이 촉구된다.
진정한 배움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변화이며 더 나아가 전 인격의 통합으로서 "영혼의 변화"이다. 이런 점에서 탁월한 조직은 계속적인 "회개"를 통해 세상과 개인의 의미있는 발전과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직이라는 Senge의 통찰이 기업 경영의 영역에서 활발히 논의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나의 가정, 내가 속한 공동체가 "회개"하는 공동체인가 생각하고 점검하며 진정으로 회개할 일이다.

bk

4.07.2009

존재 이유와 존재 양식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우리가 교회의 존재 이유와 존재양식을 혼동하는 것입니다...예배와 선교 자체가 교육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모든 영역이 교육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구원의 주체도, 매개도 아닙니다... 교회는 화해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은준관-

초기 웨스터호프John Westerhoff의 공동체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그는 90년대 이후 개신교회의 양적 정체와 사회적 신임 상실에 대한 원인을 웨스터호프의 이론에서 찾으며 신앙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어 지는 것이며 공동체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Westerhoff의 주장을 한국적 상황에 접목시키려 애쓰고 있다.

이런 점에서 100여년 전 스미스Shelton Smith의 비판은 예언자적이다. 역사는 주일학교를 통해 교회 공동체에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을 한번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래서 진정한 기독교 교육은 구속적 학습공동체의 존재양식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기능적 측면에서도 적합성을 가진다는 나의 생각은 더욱 공고해 진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 나라의 구속적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 16, 28; 요 17, 엡1, 4).
bk

3.05.2009

호기심

Curiosity is the thirst of the soul.
호기심은 영혼의 갈증이다.

Samuel Johnson

2.27.2009

우주적 그리스도

장공 김재준(金在俊, 1901~1987)

"크리스챤이 역사에 대하는 태도란 언제든지 구속사적 입장과 성격 안에서 이 현실의 역사를 비판해야 하며, 동시에 그 역사로 하여금 구원의 목표를 지향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 비판과 지향에서 크리스찬은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독교 사상 제2권 3호-

장공의 사상은 변혁적이며 문화적이고 창조적이다. 무엇보다 역사참여의식이 강한 선지자적 '얼'을 담고 있다. 바르트와 니버의 신정통주의를 수용하는데 있어 민족적 주체성이라는 자기의식을 잃지 않는다. 장공은 주체적 한국 신학을 정립하고 그 정신을 역사속에 구현하려 몸부림쳤던 선지자였다. 그에게 있어 복음의 핵심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초월적 하나님이 강조된 신정통주의를 수용하며 한국의 근대상황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강조함으로 주체적 신학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강조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초월성보다 내재적 그리스도를 더욱 강조하는 진보신학의 토대가 되면서 토착화 신학, 민중신학등의 원류를 제공한다.

장공은 시대의 사상적 조류를 꿰뚤어 보는 넓은 안목을 지닌 학자였다. 자신을 공격하는 수구 보수세력의 신학적 정체성과 그 뚜렸한 한계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의 장로교가 19세기 말부터 사멸의 길을 걷는 구프린스턴 중심의 근본주의에 과도히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성경 연구에 과학적 방법을 수용하면서도 사도적 신앙을 타협하지 않는 자율적 신학과 역사참여적 신앙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신학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을 변혁하는 창조적인 소수를 양성하고자 애썼다. 강원용,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등은 그가 배출한 인물들이었다.

그의 선교의식 역시 선지자적이다. 교회의 선교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전도로 축소될 수 없다. 역사속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의 역사를 변혁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뜻인 자유와 사랑과 정의의 평화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다.

장공의 신학과 사상은 주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우주적이었다. 그에게 우주는 "하느님의 집," "아버지의 집"이었고 삶의 목표는 "범세계적, 더 넓게는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카인의 문명과 아벨의 구속사가 하나로 통합이 되는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그것을 실현하는 주체가 교회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선교였다.

함석헌, 김교신, 이용도와 함께 1901년 생인 그는 구한말 "역사의 어둠이 짙었을 때에" 태어나 질곡의 한국 근대사를 걸었다. 그러나 암울하고 폭압적인 역사앞에 좌절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의 여명"이 왔음을 선포했고, 은둔과 자적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인류의 횃불이 될 것"을 노래했다 (새찬582). 20세기를 살며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역사를 변혁하려 했던 그의 정신과 자취는 강렬한 빛이 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여전히 밝고 따습게 비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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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09

나의 사명

"나는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리고 내 일생은 나의 이 의무들을 얼마나 잘 감당하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내 사명이란 곧 나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과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좌옹 윤치호(1864-1945)
일기, 1권 410쪽, 1889년 12월 14일

윤치호는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 신학도였다. 신사유람단의 일행으로 김옥균, 박영효등의 개화인사들에게 영향을 받은 윤치호는 1884년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허망하게 끝나자 삶을 회의하고 좌절하였으나 '그리스도 신앙'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1888년 부터 Vandervilt 신학부에서 3년 Emory대학에서 2년 도합 5년간 수학하였으며 신학 외에도 정치와 경제, 그리고 심리학등을 배웠다.

인간의 개혁과 사회적 혁신이라는 실용주의적 관심이 지대했던 윤치호는 조선말기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관리들의 악과 그들의 사상적 뿌리인 유교에 실랄한 비판을 가한다. 스스로 도덕적 타락을 경험했던 윤치호는 "자기 부정"을 통한 인간갱신은 바른 종교만으로 가능하며 종교를 통한 "이기심의 극복"만이 도덕적 사회를 건설하는 기초라고 보았다.

귀국 후 정치를 통해 민족의 갱신을 도모하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국운을 돌이킬 수는 없자 교육운동에 전념하였다. 한미서원(1906년, 후일 송도 고등보통학교로 개편)과 황성기독청년회 (조선YMCA, 1903)를 중심으로 민족의식과 민족성 개혁운동을 벌였던 그는 백성을 근대화하는 실업교육을 중요하게 여겼다.

윤치호는 하나님 사랑과 나라사랑을 하나로 보담았던 시인이기도 하였다. 그가 만든 찬송시 중 이런 낮익은 것이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찬미가 14장 1절-

1900년의 마지막 날 일기에 "시간이 지나면 조선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문명한 나라가 될 것이다...그렇다. 이 모든 꿈은 꼭 실현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아, 300년 후 이 달라진 모습을 보기 위해 이 조선에 다시 돌아고 싶구나" 라고 소망하였던 윤치호가 100년이 조금 지난 오늘 천국에서 한국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bk

2.13.2009

종교 교육의 목적

사랑하는 당신에게,

William Ellery Channing이라는 미국 교육자가 쓰신 글을 읽다가 감동받은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Channing은 1780년에 태어나신 분이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조선시대 정조때 사람이에요. 이 분이 1830년에 선데이스쿨 연합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내용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요.

"진정한 종교교육의 목적은, 그것이 주일학교에서건, 아니면 가정에서건 간에, 우리의 생각을 아이들의 마음에 도장 찍듯 새겨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불러 일으키도록 돕는 것이며; 아이들이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탐구하면서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정해진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고취시키는 것이며; 외적 규범들을 형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며; 암기의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능력을 강화시키고 촉진시키는 것이며; 편협하고 좁은 특정한 그룹의 뿌리깊은 편견으로 아이들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주제이든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며; 진정한 기반 없이 그저 어른들의 전통과 규칙들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일깨우고 도덕적 분별력을 함양하게 함으로 아이들이 자신과 세계를 위해 궁극적으로 선하고 옳은 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안과 밖에서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 눈을 열어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광대하신 성품을 보게 하여 그를 흠모하며 닮아가고 싶은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William E. Channing, The Sunday School: A Discourse Pronounced Before the Sunday School Society (Boston: James Munroe, 1838), 9-10.

너무나 옳기에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한 진술이지요? 그런데 이분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그저 위대한 선생님으로 보는 유니테리안주의자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가 무슨 주의의 사람이었건 간에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 많큼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말로 설명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주셨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되 한번도 강요하신 적이 없으세요. 다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자라도록 꿈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그분은 한번도 자기처럼 생각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대신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전하셨고, 정형화된 교리와 도덕주의에 안주하며 사람들을 정죄하고 스스로 분리되려고 했던 종교지도자들을 무섭게 비판하시고는 말씀과 율법에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현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무시당하던 절대 약자인 아이들을 "천국의 주인"으로 표준화 하시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시고는 꼬질꼬질 더럽고 냄새나고 천방지축인 가난한 아이들을 사랑으로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교사이셨던 그분의 가르침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어디 아이들 뿐 이겠습니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죽는 그날 까지 배워가는 평생 학습자들입니다. 진정한 개인과 사회의 변화는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상대를 존중하고, 공동체를 가치있게 여기며, 서로 다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배우고 자라가려는 겸손한 마음의 태도 속에서, 그리고 각자가 처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너른 상상력과 공교한 실천적 지혜로 대안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무엇보다 우리 안에서 일을 이루어 가시는 삼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러한 믿음을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180년 전에 선포된 Channing의 교육에 대한 메세지를 대하면서 내가 받았던 교육과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을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끄러운 복잡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부러 "사람으로는 할 수 없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어 보며, 아이들과 우리 자신을 위한 특별한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무릎꿇기를 고대해 봅니다.

오늘도 힘내시고 많이 행복하세요.

bk

2.10.2009

배움이란

배움이란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현재의 경험들을 의미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들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 통일성을 부여하고, 일관된 설명이 가능하게 하는 것, 즉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움이란 끊임없는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즉 경험의 해석과정이다.

Jack Mezirow, Transformative Dimensions of Adult Learning, 1991. p. 11

사람들은 저마다의 "습관화된 기대의 틀sets of habitual expectation" 또는 "의미관점meaning perspective"을 통해 감각된 자료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기억한다. 의미관점은 Albert Wolters가 설명한 세계관일 수도 있고, Thomas Kuhn의 패러다임일 수도 있고, Sara Little의 신념체계일 수도 있다. 여기서 매저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점은 사람들이 외부의 정보들을 수용할 때 주체적으로 이미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구조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과를 본다고 할 때, 그 사과가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과일로, 다른 사람에게는 누가 남기고 간 쓰레기로,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고 싶은 대상물로 수용된다. 이렇게 같은 사물을 놓고도 다른 의미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원인은 그 대상물 자체의 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실체를 수용하는 수용자의 "의미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의미를 느낀다",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를 창출한다", 또는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은 모두 외부의 자료를 수용하는 데 있어 "의미관점"을 활발하게 사용하여 외부의 자료들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사실상 언어라는 시스템을 통해 구체화된다. 사과를 인식할 때 이미 거기에는 "사과"라는 언어로 제한된 의미가 부여된 또는 분류categorized된"사과"의 개념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트겐쉬타인을 좀 공부해 놓을 것을 그랬다. 소쉬르로 부터 시작되는 언어사회학/기호학의 기본 개념을 배워둘 필요가 있다. 랑그와 빠롤, 그리고 기표와 기의를 구분하고자 했던가? 랑그는 빠롤이 가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기의와 기표의 관계는 사물과 단어가 아니라 개념과 청각이미지와의 관계이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언어가 역사와 사회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의미관점은 사회의 산물이며 문화적 상황에 항상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상인과 현대의 비즈니스맨은 언어만 다른 것이 아니다. 의미는 선언어적으로는 prelingustically 상황과 상징적 모델들을 통해,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언어를 통해 구성된다.

의미관점은 새로운 자료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일정한 구조를 따르게 하며 수용된 경험은 다시 의미관점을 재형성하고 확장시킨다. 배움이라는 것은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기존의 의미관점에 커다란 변화가 올때 일어난다. 이미 구성화된 의미관점들, 선입관, 가정, 전제,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입장, 사회적 상태와 교육된 이해들의 복잡한 의미관점들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매저로는 이를 관점의 변화perspective transformation라고 지칭한다.

배움은 해석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의미관점을 통해 대상들이나 사건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보통은 이미 형성된 의미관점을 가지고 현재 사건이나 대상을 해석한다. 그러나 변화학습은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지나간 과거의 경험을 재해석하여 결국 과거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관점을 창조해 낸다.

배움은 현재 경험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 장래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이다.

2.05.2009

Bloom's Taxonomy


시대가 지남에 따라 앎의 내용과 과정은 변화한다. 디지탈시대에 앎이란 컴퓨터와 인터넷에 상호 의존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구글링과 블로깅은 인식의 내용과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이 그렇듯 긍정적것과 부정적인 것이 혼재한다.

지식의 진정한 기반이 유동적이며 가변적일 때 그것은 더이상 기반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끊임없는 해체와 재구성, 창조적 발달을 지향하면서도 그것이 바른 방향성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거대한 외부, 또는 절대 타자에 의존적이어야 한다는 가정을 믿음으로 수용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그것은 곧 신앙공동체의 신학하는 삶을 통해 확증되고 구현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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