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도전이다.
소망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열정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반박청구이며 언약신학의 선포이다.
소망은 실제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간섭하시도록 자극하는 행위이다.
자크 엘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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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죄송해요. 올해는 하나님을 많이 자극하기로 결심했어요. ^^
괜찮으시겠죠?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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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010
2.13.2009
종교 교육의 목적
William Ellery Channing이라는 미국 교육자가 쓰신 글을 읽다가 감동받은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Channing은 1780년에 태어나신 분이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조선시대 정조때 사람이에요. 이 분이 1830년에 선데이스쿨 연합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내용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요.
"진정한 종교교육의 목적은, 그것이 주일학교에서건, 아니면 가정에서건 간에, 우리의 생각을 아이들의 마음에 도장 찍듯 새겨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불러 일으키도록 돕는 것이며; 아이들이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탐구하면서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정해진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고취시키는 것이며; 외적 규범들을 형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며; 암기의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능력을 강화시키고 촉진시키는 것이며; 편협하고 좁은 특정한 그룹의 뿌리깊은 편견으로 아이들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주제이든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며; 진정한 기반 없이 그저 어른들의 전통과 규칙들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일깨우고 도덕적 분별력을 함양하게 함으로 아이들이 자신과 세계를 위해 궁극적으로 선하고 옳은 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안과 밖에서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 눈을 열어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광대하신 성품을 보게 하여 그를 흠모하며 닮아가고 싶은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William E. Channing, The Sunday School: A Discourse Pronounced Before the Sunday School Society (Boston: James Munroe, 1838), 9-10.
너무나 옳기에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한 진술이지요? 그런데 이분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그저 위대한 선생님으로 보는 유니테리안주의자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가 무슨 주의의 사람이었건 간에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 많큼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말로 설명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주셨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되 한번도 강요하신 적이 없으세요. 다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자라도록 꿈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그분은 한번도 자기처럼 생각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대신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전하셨고, 정형화된 교리와 도덕주의에 안주하며 사람들을 정죄하고 스스로 분리되려고 했던 종교지도자들을 무섭게 비판하시고는 말씀과 율법에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현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무시당하던 절대 약자인 아이들을 "천국의 주인"으로 표준화 하시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시고는 꼬질꼬질 더럽고 냄새나고 천방지축인 가난한 아이들을 사랑으로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교사이셨던 그분의 가르침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어디 아이들 뿐 이겠습니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죽는 그날 까지 배워가는 평생 학습자들입니다. 진정한 개인과 사회의 변화는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상대를 존중하고, 공동체를 가치있게 여기며, 서로 다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배우고 자라가려는 겸손한 마음의 태도 속에서, 그리고 각자가 처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너른 상상력과 공교한 실천적 지혜로 대안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무엇보다 우리 안에서 일을 이루어 가시는 삼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러한 믿음을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180년 전에 선포된 Channing의 교육에 대한 메세지를 대하면서 내가 받았던 교육과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을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끄러운 복잡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부러 "사람으로는 할 수 없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어 보며, 아이들과 우리 자신을 위한 특별한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무릎꿇기를 고대해 봅니다.
오늘도 힘내시고 많이 행복하세요.
bk
1.01.2009
비전과 필요
예외적으로 갑자기 비전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비전은 사회적 필요를 느끼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양심이 작용할 때 생긴다. 하나의 필요를 충족시키면 또 다른 필요가 나와서 충족시키는 과정이 계속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차 그 필요를 보편화하고, 자신의 노력을 체계화시킬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열망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는 자기만의 무언가에 집중하고 헌신하고 싶어하는 형언하기 어려운 열망이 존재한다.
Covey, 25
Covey, 25
12.24.2008
위선
Jonathan Edwards, Religious Affections (1746), ed. John E Smith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9), 411.
12.15.2008
기도와 소망
기도는 소망의 행위이며 종말론적 행위이다.
기도는 기도하기 싫어하는 본능과의 싸움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도전이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열정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반박 청구이며 언약신학의 표현이다.
소망은 실제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간섭하시도록 자극하는 행위이다.
-자크 엘룰-
12.08.2008
게으름의 뿌리: 자기 사랑
2. 게으름의 뿌리: 자기사랑
게으른 자라고 해서 그의 혀까지 게으르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게으른 자일수록 핑계가 많고 변명이 많습니다. 몸은 게을러도 혀는 게으르지 않은 것입니다...대부분의 경우 게으른 사람은 본질적으로 빗나간 자기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게으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태도의 옳지 못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따라 충실하게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끊임없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우리의 발목을 붙드는 자기 사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위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인간의 게으름은 거룩한 삶의 목표를 성취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얻는 보람보다, 지금 당장 좀더 편하게 살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육적인 요구를 붙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온전히 자신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사진을 향한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의 위치와 목적, 그 하나님께 받는 사랑의 정체, 그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행복,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된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자각하고 거기에 자기를 정확하게 맞출 때에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위없이는 누구도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방향으로 흐리지 않고, 온전하게 자기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지런함은 단지 기계적인 성실함과 근면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과 함께 지혜로움도 필요합니다. 여기서 지혜롭다는 것은 쓸모 없이 낭비되던 시간들을 정돈하여 보다 중요한 일에 사용할 줄 아는 것이고, 급한 일과 꼭 해야 할 일들을 조화롭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며, 맡은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소유한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해야 할 일을 안 할 구실을 찾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해야 될 것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현재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는 일의 대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일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놓으면, 전 인생을 두고 엄청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다름 사람에게 맡기고, 제가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함에 있어서 늘 보다 빠르고 완벽하게 수행하는 방법들을 터득해 가고자 애를 쓰며 삽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한된 시간을 남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김남준,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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