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y talk about the people, but they do not trust them; and trusting the people is the indispensable precondition for revolutionary change. A real humanist can be identified more by his trust in the people, which engages him in their struggle, than by a thousand actions in their favor without that trust."
Paulo Freire, Pedagogy of the Oppressed, 30th Anniversary Edition, p. 60
의식화(Conscientization) 교육의 창시자인 프레리는 주입적 암기와 반복rote memory을 통해 이루어 지는 은행예금식 학습(Banking education)은 학습자들의 주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을 구속함으로서 개인의 인격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종속적이며 타율적인 인간을 양성한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학습의 실천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현격히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대화와 활동를 거부하여 배움을 고립된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공부"로 축소시켰음을 지적하였다. 그에게 있어서의 교육은 학습자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고 (Problem-posing education) 비평적 의식을 스스로 일깨우도록 도움으로 환경과 상황의 압제로 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변혁과 갱신의 주체자로 개발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의 "빨간책"은 독재자들의 금서목록 1호였으며 동시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회 운동가들의 사회과학 필독서 1위였다.
거지에게 많은 돈을 적선하기 보다, 왜 거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가를 묻고 거지생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용기와 자기희생, 그리고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타적 자기 희생의 사랑은 의식화 교육이나 주체화 교육으로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남미의 사회적 상황과 공산체제의 붕괴는 여실히 가르쳐 준다.
일반적인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한계는 프레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간됨의 이해,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죄성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순진하다.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인간의 궁극적인 개발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필요로 할 만큼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또 다른 한계는 목적과 수단의 혼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 목적(또는 이차적 목적)이 궁극적 목적(일차적 목적)을 대치하게 되면 마치 외발자전거를 타는 것 같은 멈출 수 없는 순환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타르타로스의 언덕에서 끝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돌을 계속해서 올려대야 했던 시지프스처럼, 성취될 수 없기에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면 그것은 허무의 형벌에 해당하는 것이지 결코 진보와 발전일 수 없다. 사회 구조의 변혁과 갱신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왜냐햐면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으로 인해, 하나의 변혁과 갱신은 반드시 또 다른 변혁과 갱신을 긴급하게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으로서의 개발은 "인간됨"이라는 유한하고 상대적 가치에 묶여 있을 때 가장 크게 왜곡되고 제한된다. 모든 발달주의자들이 부르짖는 "인간 개발"은 누구에 의한, 어떤 목적을 가진, 어떤 방식의 개발이냐에 대한 질문에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궁극적인 지향점을 인간에서 옮겨 무한한 초월적 존재에 위치 시킬 때에라야 가변적이고 순환적인 상대적 가치가 영원하고 절대적 가치로 승화 될 수 있으며 비로서 구조와 방향을 갖춘 진정한 의미로서의 개발이 현실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개발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이 아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 두가지는 분리되어있지 않고 상호적으로 맞물려 있다.
고독과 허무, 존재적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인간의 왜곡된 자기 인식과 한계때문에 인간의 내적 가능성에서도 찾을 수 없고, 사회 구조적인 변혁과 개혁으로 실현될 수도 없다. 오직 인간의 실존을 뚫고 침입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역동적 역사와 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실천적 신앙을 통해 부분적으로 경험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의 구원의 완성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레리가 주장한 인간 신뢰의 필요성은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 안에서는 인도주의자들 만큼의 사람사랑이 이루어 지기는 커녕, 권위주의적이고 폭압적인 맹신과 맹종의 교육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의 해방적 교육은 신앙교육을 평가하고 교정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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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2011
2.13.2009
종교 교육의 목적
William Ellery Channing이라는 미국 교육자가 쓰신 글을 읽다가 감동받은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Channing은 1780년에 태어나신 분이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조선시대 정조때 사람이에요. 이 분이 1830년에 선데이스쿨 연합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내용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요.
"진정한 종교교육의 목적은, 그것이 주일학교에서건, 아니면 가정에서건 간에, 우리의 생각을 아이들의 마음에 도장 찍듯 새겨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불러 일으키도록 돕는 것이며; 아이들이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탐구하면서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정해진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고취시키는 것이며; 외적 규범들을 형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며; 암기의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능력을 강화시키고 촉진시키는 것이며; 편협하고 좁은 특정한 그룹의 뿌리깊은 편견으로 아이들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주제이든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며; 진정한 기반 없이 그저 어른들의 전통과 규칙들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일깨우고 도덕적 분별력을 함양하게 함으로 아이들이 자신과 세계를 위해 궁극적으로 선하고 옳은 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안과 밖에서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 눈을 열어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광대하신 성품을 보게 하여 그를 흠모하며 닮아가고 싶은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William E. Channing, The Sunday School: A Discourse Pronounced Before the Sunday School Society (Boston: James Munroe, 1838), 9-10.
너무나 옳기에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한 진술이지요? 그런데 이분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그저 위대한 선생님으로 보는 유니테리안주의자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가 무슨 주의의 사람이었건 간에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 많큼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말로 설명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주셨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되 한번도 강요하신 적이 없으세요. 다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자라도록 꿈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그분은 한번도 자기처럼 생각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대신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전하셨고, 정형화된 교리와 도덕주의에 안주하며 사람들을 정죄하고 스스로 분리되려고 했던 종교지도자들을 무섭게 비판하시고는 말씀과 율법에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현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무시당하던 절대 약자인 아이들을 "천국의 주인"으로 표준화 하시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시고는 꼬질꼬질 더럽고 냄새나고 천방지축인 가난한 아이들을 사랑으로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교사이셨던 그분의 가르침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어디 아이들 뿐 이겠습니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죽는 그날 까지 배워가는 평생 학습자들입니다. 진정한 개인과 사회의 변화는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상대를 존중하고, 공동체를 가치있게 여기며, 서로 다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배우고 자라가려는 겸손한 마음의 태도 속에서, 그리고 각자가 처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너른 상상력과 공교한 실천적 지혜로 대안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무엇보다 우리 안에서 일을 이루어 가시는 삼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러한 믿음을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180년 전에 선포된 Channing의 교육에 대한 메세지를 대하면서 내가 받았던 교육과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을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끄러운 복잡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부러 "사람으로는 할 수 없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어 보며, 아이들과 우리 자신을 위한 특별한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무릎꿇기를 고대해 봅니다.
오늘도 힘내시고 많이 행복하세요.
bk
12.29.2008
Education for Freedom or for Kingdom
진정한 교육이란 한 인간이 처한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닫혀진 특수성들로 부터 해방키키고 자유케 해 인간의 이해와 상상, 욕구들의 너른 가능성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Summarized by Nicolas Wolterstorff from Oakeshott, "Education: The engagement and Its Frustration," in Education and the Development of Reason, edited by R. F. Dearden, P. H. Hirst, and R. S.
"Education is by a kingodm and for citizenship in that kingdom." Education is always religious in its import. the situation is not that the Christian educator practices committed education while everyone else practices neutral eduction; ultimately everyone practices committed education.
The goal of Christian education for Jellema was to initiate the student into the Christian mind.
Students must be freed from the bondage of thinking with the mind of modernity and led to think with the Christian mind.
12.15.2008
Paulo Freire
Paulo Freire (1921-1997)
Brazilian educational philosopher and social educator
Christian humanist
"Our pedagogy cannot do without a vision of man and his world. It formulates a scientific humanist conception which finds its expression in a dialogical praxis in which teachers and learners, together, in the act of analyzing a dehumanizing reality, denounce it while announcing its transformation in the name of the liberation of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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