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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2011

헌신

나는 무엇에 대해 헌신하는가?

첫째, 나는 하나님께 헌신한다.
둘째,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사람들에 대해 헌신한다.
셋째,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삶의 방식에 대해 헌신한다.

나는 무엇에 대해 헌신하지 않는가?

첫째, 나는 내가 하고자 원하는 일이나 그 일을 이루는 방식 자체에 헌신하지 않는다. 일은 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둘째, 나는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에 헌신하지 않는다. 소유에 대한 헌신은 나의 자유를 빼앗고 나를 억압하기 때문이다.
셋째, 나는 내가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내 욕구에 헌신하지 않는다. 욕구에 대한 헌신은 나의 영혼을 눈멀게 하여 가치에 혼돈을 가져오며 판단을 흐리게 하여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게 하기 때문이다.

bk

1.20.2011

성화와 인간발달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신 것은 참으로 창조 당시의 인간의 목적에로 돌아가게 하시기 위함이다. 구원받은 인간은 여전히 잔존하는 죄의 영향을 받는다. 그는 끊임없는 성화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쇄신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참된 신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신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함이다."
John Owen's Works,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 1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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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의 대부인 존 오웬의 인간론은 신학적 또는 창조적 발달주의를 반영한다. 중생과 성화는 하나님의 창조의도를 회복하는 것이며 이것은 순환적 발달주의의한계를 극복하고 목적 지향적인 발달을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의 세계창조의 목적은 인간됨의 최대 발현을 통해 전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bk

5.18.2010

죄 죽이기mortification와 영적 성장

"죄를 크게 죽여 본 사례를 가지는 것은 죄의 몸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다. 또한, 죄에 강타를 퍼부어서 비틀거리게 하고 주춤거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죄와 싸울 수 있는 튼튼한 기반과 발판을 얻게 되며, 죄는 쓰러지기 직전이 되고, 다음 번에 우리는 죄와 더 쉽게 싸울 수 있게 된다. 죄는 점점 겁을 먹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쉽게 죄를 굴복시킬 수 있으며 적어도 죄와 싸우는 것이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마음대로 죄를 죽일 수 있다. 죄를 크게 죽여 본 사례들과 자기를 부인해 본 경험 없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옛 사람이 계속해서 자기 자리를 잡고 있다. 옛 사람은 억세고 끈질기기 때문에 작은 타격에는 요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것이 왜 수많은 성도들이 은혜 안에서 민감하게 성장하지 못하는가 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 가장 크게 죄를 죽이고 난 후에 나는 언제나 가장 큰 위로를 체험한다...."

조나단 에드워즈, 1723년 1월 14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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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한다는 것은 성서와 역사가 증언하는 엄중한 사실이다. 죄된 본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최고의 선 대신 차선을 택하는 선의 결핍, 즉 "악"을 초래하게 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된 본성은 살살 달래야하는 우는 아기가 아니다. 철저히 소멸시켜야 하는 악의 근원이며 생명을 걸고 대적해 싸워야 하는 비열하고 악랄하며 끈질긴 원수이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살아나 나를 죽이려 덤벼드는 터미네이터 같다고나 할까.

죄를 다룸에 있어 신앙의 선배들은 성서의 교훈과 명령을 쫓아 "죄 죽이기"를 훈련하였다. 바울은 죄된 본성으로서의 육체적 소욕은 성령의 소욕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성령을 따라 살려는 모든 의지를 무력화시키려한다고 설명하고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사람들은 이러한 육체의 소욕을 성령의 능력으로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밖아 죽여버리는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였다. 칼빈은 바울의 가르침을 수용하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자들의 성화과정이 "항구적 금식"과 같은 죄죽이기mortification의 연속이라고 표현하였다. 청교도였던 존 오웬은 신자들의 영적 성장과 생명력, 그리고 영혼의 참된 위로가 죄죽이기mortification에 달려 있다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그 방법을 자세하고 조직적으로 설명하였다. 결국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과 자기만을 사랑하는 이기심, 허탄한 자기 자랑을 추구하는 욕망은 길들일 대상이 아니라 죽여버려야 할 대상이다.

자기 자신을 "크게 죽여본 경험"이 중요하다고 본 에드워즈의 통찰은 참으로 귀하다. 처음이 어려우면 갈수록 쉬워진다. 그러나 처음에 타협하여 쉬운 길을 택한다면 영원히 시작과 포기를 반복하다 말 것이다. 적당한 만족과 합리적인 포기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라고 유혹하는 육체의 소욕은 피가 튀기고 살점이 뜯기는 혈투를 통해서만 장악될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성적이며 상대적인 가치가 존중되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교회의 훈련과 교육 역시 "죄 죽이기"가 강조되고 훈련되어야 한다면 지금의 설교와 가르침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

bk

5.15.2010

성화의 의미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그러나 절대로 그대로 두지는 않으신다.

맥스 루케도, 예수님 처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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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거룩은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완전한 아름다움이시며 모든 아름다움의 제일 원인이시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주변의 상황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는 피조물의 아름다움과는 달리 영원하고 무한하며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를 가능하게 하시어 아름다움을 창조하시는 아름다움의 근원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절대기준이시며 존재를 아름답게 만드는 아름다움의 시혜자이시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미적 기준에 머무르지 않고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확장되어 거룩(kadosh, holy)로 표현된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모든 피조물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하게 되기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쫓아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은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다.

캘빈은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의 과정은 항구적 금식과 같은 고행mortification으로 보았지만, 그것이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한한 만족과 기쁨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성화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본 조나단 에드워즈의 통찰은 참으로 귀하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되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bk

10.03.2009

자기 중심성과 하나님 나라 (1/6)

'하늘에 계신' 이라고 말하지 말라,
세상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말하지 말라,
너 혼자만을 생각하며 살아 가면서...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살아가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말하지 말라,
실제론, 자기 이름을 빛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말라,
물질 만능의 이 세상을 좋아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라고 하지 말라,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며'라고 말하지 말라,
속으로는 평생토록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오니, 저희를 용서해 주옵시고' 라고 말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지금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며'라고 말하지 말라,
죄 지을 기회를 은밀히 찾아 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옵시며'라고 말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으면서...
'아멘'하지 말라,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를 조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우루과이의 어느 성당에 써 있다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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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문(엄격하게 말한다면, 주께서 가르치신 또는 명령하신 기도모범)은 그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 메세지를 담지하고 있다. 특히 마태판에서의 주기도문은 산상수훈의 정 가운데 위치함으로 '하나님 나라'공동체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에 절정부분을 차지한다. 여섯 가지의 요청/청원으로 되어 있는 주기도문은 그당시 다양한 유대공동체에서 회람되던 생활 기도문들과 비교하여 볼 때, 문학적 형식과 일상에서의 사용방식을 공유하지만, 그 내용은 현격히 다르다. 특별히 인간의 근원적 죄성인 자기 중심성에 기반한 기도를 우주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염원으로 교정하고, 실제 삶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한 의도적 실천(orthopraxis)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마태판에서 등장하는 '하늘에 계신'의 수식은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하늘(uranos)은 초월과 궁극을 상징하는 메타포임과 동시에 '늘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무소부재의 속성을 내포한다.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 안에 계시고, 만물을 통해 계시는 무한한 창조주가 '우리 아빠'가 되셨다는 선포는 그래서 혁명적이다. 무한한 하나님이 한낱 먼지와 같은 피조물과 생명 세계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으셨다! '아버지와 자녀들'의 관계는 영원한 신뢰와 사랑, 자비와 긍휼, 용서와 수용, 보호와 공급의 언약관계가 공동체적으로 주어졌음을 천명하며 창조주의 피조물을 향한 기이한 사랑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기도는 비인격적인 주문이나 부적일 수 없고, 왕에게 고하는 신하의 상소도 아니다. 기도는 어린 자녀가 아빠와 갖는 친밀한 관계의 속삭임이며 전 존재의 의지적 의존과 하나됨이다. "아빠"를 부르는 순간은 창조의 영과 인간 영의 교통이 시작되고 왜곡된 자아와 뒤틀린 세계를 강압하는 존재의 허무를 부수고 무한한 생명의 파장으로 침투하시는 성령의 사건이 발생한다.

일인칭 복수 소유격인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창조주와 언약공동체인 자녀들과의 공동체적 관계를 통해 구현됨을 암시한다. '우리 아빠'는 개체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수직관계를 형제와 자매된 공동체원들과의 관계 보다 우선시 하려는 시도가 가지는 불합리성을 지적한다. 초월적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만 도달하는 것이며 따라서 실존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우리"가 없이는 "아빠"도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가 가능해 진다. 세종대왕이 예수를 경험적으로 알리 만무하며 이순신 장군이 "하나님 나라"를 상상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다른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초월적 하늘 아빠와 피조물이 관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의 은혜를 믿음으로 수용하여 아버지와 자녀들의 "공동체적 언약관계"가 성립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뿐이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한 까닭은 동료가 없을 때 경험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함이 아니며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존재양식 자체가 세분의 하나님이 한 하나님이 되시는 완전한 공동체이심을 상기한다면 기도는 공동체의 공동체에 의한 공동체를 위한 것임이 자명해 진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는 나의 나에의한 나를 위한 기도가 가지는 중요성과 한계를 동시에 인식하게 하고 기도주체는 언약 공동체임을, 하나님의 나라는 언약 공동체에 기초함을 각인시킨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도하는 이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는 청원의 주체와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실존적 차이와 이를 뛰어 넘는 하늘아버지의 사랑을 인식하며, 깊은 신뢰와 함께 두렵고 떨림의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간구할 것을 요청한다. 따라서 이러한 실존적 차이를 극복하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럽게 하늘 아버지의 속성들이 찬양되고 인정되기를 바라는 첫번 째 청원으로 연결된다.

거룩의 일차적 개념은 윤리적이기 보다 관계적이다. 영원한 타자로서의 하나님은 유한한 피조물과 극명히 대조되는 초월적 존재이시다. 하나님의 존재선포인 그분의 이름에 외경심을 느끼고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카도쉬)이 돌려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아버지와 자녀들이 갖는 '관계의 진실성'을 반증한다. 즉 하나님의 이름에 두려움도, 떨림도, 흠모함도, 깊은 신뢰나 사랑도 느낄 수 없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마땅히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이 없다면, 스스로 하늘아빠와 맺고 있는 언약관계를 점검해야 한다.

이러한 초월적 절대 타자와의 특별한 관계맺음에서 거룩의 이차적 개념인 윤리성이 도출된다. 하나님의 거룩은 그와 관계맺는 인간의 속성과 존재가치를 무한히 끌어 올려 상대적이며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도덕과 윤리를 지고한 보편과 궁극의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 놓는다. 하나님을 경외함과 성스러움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충만한 삶을 보장하는 샬롬의 기반이며 자유와 평등, 정의와 인권, 평화와 행복의 가치들을 인간됨, 또는 인간관계의 "기본"조건으로 승격시킨다.

따라서 하나님 이름의 거룩함을 부르짖는 기도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에 대한 광대하고 우주적인 선포이며 인간의 거대한 절망과 한계를 미세한 분진으로 축소시키는 강력한 인식의 전환이다. 동시에 거룩에의 청원은 찬양과 경배의 대상에 인간 자신을 위치시키려는 죄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게 함으로 지독하게 뿌리깊은 자기 우상화를 경계하고 동료인간과 전 피조세계에 샬롬을 천착시키려는 갈망과 의지를 독려한다. 말과 행동과 의지와 생각과 태도에서 하나님의 성스러움을 힘입어 그분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 드리려는 마음과 결단의 표현은 경배와 예배를 배타적 집단이 갖는 자기 만족의 사적 종교의식에서 벗어나 전 인류의 발전과 피조세계의 중흥을 신의 주권에 맡기고 의탁하는 웅혼한 축제로 승화하게 한다.

bk


10.01.2009

고착된 마음의 틀, 성장하는 마음의 틀

Fixed Mindset vs. Growth Mindset: Which One Are You?

By Michael Graham Richard
Here is an excerpt from an article about Carol Dweck, a professor of psychology at Stanford University:
Through more than three decades of systematic research, [Carol Dweck] has been figuring out answers to why some people achieve their potential while equally talented others don’t—why some become Muhammad Ali and others Mike Tyson. The key, she found, isn’t ability; it’s whether you look at ability as something inherent that needs to be demonstrated or as something that can be developed.
To anyone who is into personal growth and self-improvement, this seems obvious. But clearly, it is not obvious to everybody: look at thethis diagram by Nigel Holmes representing the two types of mindsets and I’ll sure you’ll recognize the attitudes of many people you know.

Fixed Mindset

Let’s have a look, starting with the Fixed Mindset side:
fixed-001
People who hold these beliefs think that “they are the way they are”, but that doesn’t mean that they have less of a desire for a positive self-image than anyone else. So of course they want to perform well and look smart. But to achieve these goals…
fixed-002
By definition, a challenge is hard and success is not assured, so rather than risk failing and negatively impacting their self-image, they will often avoid challenges and stick to what they know they can do well.
fixed-003
Same with obstacles. The difference here, as I see it, is that challenges are things that you can decide to do while obstacles are external forces that get in your way.
fixed-004
What’s the point of working hard and making efforts if afterwards you are still on square one? If your worldview tells you that effort is an unpleasant thing that doesn’t really pay dividends, then the smart thing to do is to avoid it as much as possible.
fixed-005
Useful negative feedback is ignored in the best of cases, and taken as an insult the rest of the time. The Fixed Mindset logically leads you to believe that any criticism of your capabilities is criticism of you. This usually discourages the people around and after a while they stop giving any negative feedback, further isolating the person from external influences that could generate some change.
fixed-006
The success of others is seen as a benchmark against which the person looks bad. Usually when others succeed, people with a Fixed Mindset will try to convince themselves and the people around them that the success was due to either luck (after all, almost everything is due to luck in the Fixed Mindset world) or objectionable actions. In some cases, they will even try to tarnish the success of others by bringing up things that are completely unrelated (”Yes, but did you know about his…”).
fixed-007
As a result, they don’t reach their full potential and their beliefs feed on themselves: They don’t change or improve much with time, if at all, and so to them this confirms that “they are as they are”.

Growth Mindset

Let’s now look at the Growth Mindset:
growth-001
People who hold the Growth Mindset believe that intelligence can be developed, that the brain is like a muscle that can be trained. This leads to the desire to improve.
growth-002
And how do you improve? First, you embrace challenges, because you know that you’ll come out stronger on the other side.
growth-003
Similarly, obstacles – external setbacks – do not discourage you. Your self-image is not tied to your success and how you will look to others; failure is an opportunity to learn, and so whatever happens you win.
growth-004
Effort is seen not as something useless to be avoid but as necessaryto grow and master useful skills.
growth-005
Criticism and negative feedback are sources of information. That doesn’t mean that all criticism is worth integrating or that nothing is never taken personally, but at least the Growth Mindset individual knowns that he or she can change and improve, so the negative feedback is not perceived as being directly about them as a person, but rather about their current abilities.
growth-006
The success of others is seen as a source of inspiration and information. To Growth Mindset individuals, success is not seen as azero-sum game.
growth-007
And so, Growth Mindset individuals will improve and this will create a positive feedback loops that encourages them to keep learning and improving.

What Now

The good news – especially if you just recognized yourself as being someone who holds the Fixed Mindset worldview – is that it is possible to change from one to the other. In fact, I think this should be taught to all children.
What’s more, Dweck has shown that people can learn to adopt the latter belief and make dramatic strides in performance. [...]
The most dramatic proof comes from a recent study by Dweck and Lisa Sorich Blackwell of low-achieving seventh graders. All students participated in sessions on study skills, the brain and the like; in addition, one group attended a neutral session on memory while the other learned that intelligence, like a muscle, grows stronger through exercise. Training students to adopt a growth mind-set about intelligence had a catalytic effect on motivation and math grades; students in the control group showed no improvement despite all the other interventions.
“Study skills and learning skills are inert until they’re powered by an active ingredient,” Dweck explains. Students may know how to study, but won’t want to if they believe their efforts are futile. “If you target that belief, you can see more benefit than you have any reason to hope for.”
Does the Fixed vs. Growth Mindset theory fits with your personal experience? Does it describe well the people around you? Please let me know in the comments below.
Thanks to Guy Kawasaki.
Images credit: Nigel Holmes
See also:
Update: Carol Dweck recently published The Secret to Raising Smart Kids in Scientific American.

8.27.2009

천천히 설교합시다.

천천히 설교합시다

요즘 다른 목사의 설교집을 제법 많이 읽었습니다. 인터넷이나 기독교 방송을 통해서 여러 분의 설교도 직접 들었습니다. 옛날부터 느낀 바이지만, 설교자들이 청중을 너무 어린애 다루듯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아이의 특성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결정해주면 그저 따르는 것으로 만족해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판단 능력이 없을 때도 있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정서적으로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합니다. 어린이들이 담임선생님 말씀을 무조건 순종하듯이 신자들은 목사의 설교를 그렇게 순종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목사들은 신자들을 그렇게 어린애로 만들어놓아야 설교하기가 쉽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 신자들의 유아성은 너무 심각한 상태입니다. 심지어 대학교 선생이나 의사·변호사 등 나름대로 사회 지도층 인사인데도 불구하고 신앙 부분에서는 어린애와 똑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목사들은 속으로 즐겁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국 한국 교회의 토대가 위태로워지는 길입니다. 약간 다른 상황이지만 니체는 이런 유럽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가리켜 '가축떼' 윤리라고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사육되는 가축 말입니다.

나는 니체의 비판이 그렇게 빗나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가축떼'로 사육되고 있습니다. '순종하라'는 말씀을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린애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만족하듯이 종교적 만족감에 젖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본 회퍼가 말하는 '값싼 은혜'이기도 합니다. 값싼 은혜에 만족하고 아무런 영적 에너지를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요? 그 문제를 지금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목사의 설교가 너무 조급증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만 합니다. 설교자들이 너무 설치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겨우 성서 내용을 정보로만 알고 있으면서 대단한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열을 올립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격언이 딱 어울립니다.

저는 그런 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나면 너무 허무해집니다. 자신이 아는 것만큼만 정직하게 설교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이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그 설교를 완성시키십니다. 그 비밀을 모르는 설교자들은 자신이 당장 청중의 신앙적 결단을 끌어내기 위해서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쏟아놓습니다. 본인이나 청중이나 허탈해집니다. 그런 허탈을 모면하기 위해서 자극적인 예화를 끌어들이거나 신앙을 과장합니다.

우리 설교자들, 조급하게 설교하지 맙시다. 구원은 우리의 말재주가 아니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하십니다. 우리의 영역이 줄어들어야 영의 영역이 늘어납니다.
천천히 목회하고 천천히 설교합시다. 우리의 주제를 잘 파악하고 그분에게 많은 부분을 맡깁시다. 그래도 교회는 잘 굴러갈 테니까, 그래도 신자들의 신앙은 줄어들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맙시다.

정용섭 / 샘터교회 목사·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Pasted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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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 만큼, 경험한 것 만큼, 삶으로 체득한 것 만큼만 설교해야 할 일이다. 풍부한 언어와 현란한 수사, 정교한 논리, 깜짝 놀랄만한 통찰에 집착하게 될 때, 사람을 잠시 설득할 수는 있겠으나, 오히려 자신과 공동체를 진리와 성령의 초월적 은혜의 자리에 깊이 머무르게 하는 것을 방해할 소지가 더 많다. 진리는 단순하며 인격적이다. 그 진리가 오셔서 성령의 역동적 역사로 일하실 수 있도록 천천히, 차분히, 그리고 진리를 실천함으로 설교해야 한다. 내 삶이 설교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과 행해야 할 것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하고는 그대로 행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복음은 말의 지혜에 제한 받지 않는다 (고전 1:17). 오히려 나의 말과 행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구속당해야 할 것이며, 그러할 때 드러나는 삼위 하나님의 초월적 역사를 공동체가 함께 경험하도록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 하나 하나가 주체적으로 말씀을 통해 세상과 자신을 깊이 반추하여 각성하고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bk

8.10.2009

위대한 그리스도인

몇 해 동안 톰 랜드리는 미국인의 우상이었다. 그는 최고의 미식축구 팀 중 하나인 '달라스 카우보이즈'의 수석 코치였다. 몇 번인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코치로 일하는 동안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만났지요. 하지만 위대한 선수는 극소수예요. 훌륭한 선수와 위대한 선수는 단 45센티미터 차이로 판가름이 납니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죠. 경험으로 볼 때, 훌륭한 선수는 특출한 자질을 갖추고 있어요. 그러나 위대한 선수는 열정 어린 마음을 가진 선수에요. 즉 자기 희생, 잔인하리만치 길고 고도니 훈련과 연습, 전심전력을 다하는 집중력으로 결국 위대한 성과를 이뤄 냅니다."

거의 30년에 걸쳐 기독교 사역을 하는 동안 나 역시 그랬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많이 만나 봤지만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였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 돈, 욕구를 희생하는 그리스도인,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포기하려는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의 직업, 명성, 신분, 우정, 재산, 심지어 생명까지 바치려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 어린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앤 그레이엄 로츠, 위기속에 만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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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그리스도인이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에게 잔해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단지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앙의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 당해야 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기 원했고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그들은 예수를 너무도 사랑했다. 자기 생명보다 예수가 더 귀했다.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인간적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로츠"를 잘 못 이해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잔인하리만치 길고 고된 훈련과 연습"은 그만큼 강한 동기와 열정이 없다면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생명"까지 희생하는 삶의 모습은 절대로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단 한가지 만이 그 위대함을 가능하게 한다. 그건 사랑이다.

따라서,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사랑"으로 만들어 진다. 예수의 무한한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에 빠져 든 사람은 거부할 수 없는 예수의 사랑으로 자신을 초월 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저주를 달게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수의 위대함, 예수의 능력, 예수의 아름다움을 맛본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를 초월하여 위대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즉 예수의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 물으시는 주님 앞에서, 사랑할 능력조차 없고 사랑받을 가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신실하게 사랑하시는 주님 발앞에 겸손한 무릎을 조아리는 사람이 될 일이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과 감사와 감격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그분을 인정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될 일이다.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이뤄 내는"것이 아니라 "은혜로 수용하며 반응하는"것이라는 점에서 랜드리와 로츠는 오해했다.

bk

5.19.2009

저주를 통해 도달하는 직업

"Theologians are not made by reading and studying books but by living and dying and being damned."
Martin Luther

신학자들은 서적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통해 만들어 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살고 또 죽으며 저주받음을 통해 만들어 집니다.
-마틴 루터-

십자가의 신학을 주창한 마틴루터 다운 말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그분의 진리에 노출되는 것은 추상적 관념의 사색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한 복판에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되는" 역설을 온 몸으로 체득하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나를 따를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를 쫓아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그러니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하단 말인가? Sola Gracia는 그렇게 죽음과 저주를 기쁨으로 수용하는 자들을 가능하게 하고 또한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만 확증된다. 그러니 신학자라고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bk

2.13.2009

종교 교육의 목적

사랑하는 당신에게,

William Ellery Channing이라는 미국 교육자가 쓰신 글을 읽다가 감동받은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Channing은 1780년에 태어나신 분이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조선시대 정조때 사람이에요. 이 분이 1830년에 선데이스쿨 연합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내용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요.

"진정한 종교교육의 목적은, 그것이 주일학교에서건, 아니면 가정에서건 간에, 우리의 생각을 아이들의 마음에 도장 찍듯 새겨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불러 일으키도록 돕는 것이며; 아이들이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탐구하면서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정해진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고취시키는 것이며; 외적 규범들을 형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며; 암기의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능력을 강화시키고 촉진시키는 것이며; 편협하고 좁은 특정한 그룹의 뿌리깊은 편견으로 아이들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주제이든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며; 진정한 기반 없이 그저 어른들의 전통과 규칙들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일깨우고 도덕적 분별력을 함양하게 함으로 아이들이 자신과 세계를 위해 궁극적으로 선하고 옳은 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안과 밖에서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 눈을 열어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광대하신 성품을 보게 하여 그를 흠모하며 닮아가고 싶은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William E. Channing, The Sunday School: A Discourse Pronounced Before the Sunday School Society (Boston: James Munroe, 1838), 9-10.

너무나 옳기에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한 진술이지요? 그런데 이분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그저 위대한 선생님으로 보는 유니테리안주의자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가 무슨 주의의 사람이었건 간에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 많큼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말로 설명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주셨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되 한번도 강요하신 적이 없으세요. 다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자라도록 꿈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그분은 한번도 자기처럼 생각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대신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전하셨고, 정형화된 교리와 도덕주의에 안주하며 사람들을 정죄하고 스스로 분리되려고 했던 종교지도자들을 무섭게 비판하시고는 말씀과 율법에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현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무시당하던 절대 약자인 아이들을 "천국의 주인"으로 표준화 하시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시고는 꼬질꼬질 더럽고 냄새나고 천방지축인 가난한 아이들을 사랑으로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교사이셨던 그분의 가르침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어디 아이들 뿐 이겠습니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죽는 그날 까지 배워가는 평생 학습자들입니다. 진정한 개인과 사회의 변화는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상대를 존중하고, 공동체를 가치있게 여기며, 서로 다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배우고 자라가려는 겸손한 마음의 태도 속에서, 그리고 각자가 처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너른 상상력과 공교한 실천적 지혜로 대안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무엇보다 우리 안에서 일을 이루어 가시는 삼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러한 믿음을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180년 전에 선포된 Channing의 교육에 대한 메세지를 대하면서 내가 받았던 교육과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을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끄러운 복잡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부러 "사람으로는 할 수 없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어 보며, 아이들과 우리 자신을 위한 특별한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무릎꿇기를 고대해 봅니다.

오늘도 힘내시고 많이 행복하세요.

bk

1.26.2009

학습 공동체


Learning Organization is a place where people continually expand their capacity to create the results they truly desire, where new and expansive patterns of thinking are nurtured, where collective aspiration is set free, and where people are continually learning how to learn together.

Peter M. Senge, The Fifth Discipline: The Art & Practice of the Learning Organization


(1) 학습조직의 정의

Peter Senge는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을 전통적인 조직과 구별하여 그 성격과 요건을 규정하였다. 그의 이론은 개방체제모형과 자기실현적 인간관을 전제적 이론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외재적 조건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교호작용 양태를 더 중요시한다. 조직은 사람들의 생각과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Senge가 말한 학습조직이란 ⅰ) 조직구성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과를 창출할 능력을 지속적으로 신장할 것, ⅱ) 새롭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이 육성될 것, ⅲ) 공동의 갈망이 자유롭게 분출될 수 있게 할 것, ⅳ) 조직구성원들이 함께 배우는 방법을 계속적으로 배울 것 등의 조건이 구비된 조직이다.



(2) 다섯가지 수련(제5의 수련)

Senge 는 학습조직의 성립에 필요한 다섯 가지 수련(훈련·계율·과정 : disciplines)을 제시하였다. 이들 수련은 학습조직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요건이며 방법이고 기술(component technologies)이다. 서로 수렴해 가는 다섯 가지의 새로운 기술 또는 수련이 함께 학습조직을 탄생시킨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새롭게 사고하고 교호작용하는 방법을 깨닫고 이를 행동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려는 다섯 가지 수련은 다음과 같다.

1) 자기완성(personal mastery) : 이에 관한 수련은 생애와 일에 관한 개인의 접근방법을 성숙시키는 것이다. 각 개인은 원하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는 자기역량의 확대방법을 학습해야 한다. 조직은 그 구성원들이 선택한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2) 사고의 틀(mental models) : 이에 관한 수련은 뇌리에 깊이 박힌 전제 또는 정신적 이미지를 성찰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다. 세상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과 관점,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가다듬어야 한다.

3) 공동의 비전(shared vision) : 이에 관한 수련은 조직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목표와 원칙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4) 집단적 학습(team learning) : 이에 관한 수련은 집단구성원들이 진정한 대화와 집단적인 사고의 과정을 통해 개인적 능력의 합계를 능가하는 지혜와 능력을 구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5) 시스템 중심의 사고(systems thinking) : 이에 관한 수련은 체제를 구성하는 여러 연관 요인들을 통합적인 이론체계 또는 실천체계로 융합시키는 능력을 키우는 통합적 훈련이다.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결정하는 요인들과 그들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훈련,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1.18.2009

"이성"은 희생의 결과

"In a real sense, I came to believe moral selflessness is a prerequisite for the life of reason-not its consequence, as so many philosophers contend."

Rangdon Gilkey, Shantung Compound, 1966. p.93


도덕적 자기희생은 이성적인 삶을 위한 전제이지 그 결과가 아니다.

UnChristian 나쁜 그리스도인

미국 바나 그룹이 3년간 10회에 걸쳐 20만명 이상의 기독교 밖의 와부인들에 대한 리서치와 특히 버스터 세대의 저 연령층(30세 이하)과 모자이크 세대에 속한 16세에서 29세의 젊은이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1. 위선적이다.
2. 전도에만 열을 올린다.
3. 동성애자를 혐오한다.
4. 안일하다.
5.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6. 타인을 판단하려고 한다.

B.R Nov. 2008

12.31.2008

개혁주의

개혁주의자들은 세가지 중요한 강조점을 가진다.

1. 개혁주의자들은 "교리주의자들 the doctrinalist"이다.
교리주의자들은 교리를 영원 불변한 것이라고 고집하여 구체적인 조건과 변화된 상황, 새로운 인식과 실천적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고정된 개념과 문자적 의미에 매여 무비판적이 되는 교조주의dogmatism와는 다르다. 교리주의자들은 성경에 의해 가르쳐지고 신조들에 의해 정리된 기독교의 교리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가 삶에 궁극적인 변화와 영향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자들은 (1) 성경을 영감되고inspired, 절대적이며infallable, 권위있는authoritative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2) 개혁주의자들은 창조-타락-구속으로 설명되는 구속사적 성경관을 믿는다. (3) 개혁주의자들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를 철저히 배재하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믿는다. (4)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과 그 백성들이 맺으시는 특별한 관계로서의 언약을 믿는다. (5) 개혁주의자들은 죄를 억제하셔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보존하시고 구속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일반은총을 사용하신다고 믿는다.

2. 개혁주의자들은 "경건주의자들the pietiest"이다.
교리주의자들에 대한 강조는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함이 삶 속에 어떻게 구현되는가? 어떻게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가?
경건주의자들로서 개혁주의자들은 경건에 있어 (1)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2) 성화로 이끄시는 성령의 역사와 사역을 강조한다. (3) 성화의 과정을 은혜의 조건이 아닌 은혜의 결과로 보며 감사를 강조한다. (4)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강조한다. (5) 말씀과 성례가 가지는 독특성과 중요성을 강조한다.

3. 개혁주의자들은 "변혁주의자들the transfomationalist"이다.
개혁주의자들은 문화와 세계관, 그리고 문화를 변혁하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다. 어떻게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
변혁주의자들로서 개혁주의자들은 (1)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의 주되심을 강조한다. (2) 이미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강조한다. (3) 말과 행위의 일치를 강조한다. (4)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창달하는 문화적 명령을 강조한다. (5) 가정과 학교와 교회의 세가지 영역에서의 기독교 교육을 강조한다. (6) 각각의 부르심에 따라 일하는 직업적 소명을 강조한다.

12.27.2008

매슬로우 욕구 5단계



기측기와 영성 테스터

도시를 떠나 산 속 깊은 곳에 사시는 한 집사님 집을 방문했다가 기를 측정하는 기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기측기(氣測器)(?)라고나 할까요? 기구까지라고 할 수 도 없는 이 기역(ㄱ) 자 같이 생긴 두 개의 쇠막대는 신통하게도 물건이나 공간, 사람의 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가늠해 줍니다. 만약 양 손에 이 쇠막대를 잡고 그 물건이나 공간, 사람을 향해 들면 기의 양에 따라 오므려졌다 펴졌다 합니다. 만약 기가 적다면 이 막대기가 거의 X자를 만들지만 기가 많다면 각이 넓은 V를 만들게 되지요. 그 집사님이 시험 삼아 제 머리에 그 쇠막대를 접근시켰을 때 저는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그 짧은 순간 속으로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주님. 그래도 명색이 목산데 기가 안 나와 영성이 모자란다거나 머리가 나쁘다거나 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산다면 제 망신 주님 망신 단체망신입니다. 힘좀 써 주세요. 네? 그러면서 복어처럼 머리에 힘을 바짝 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기가 많이 나와 쇠막대가 V자를 그려졌지만 그 집사님 웃으면서 그러시더군요. 목사님. 힘주면 기 대신에 응아 나와요

기는 생명력이다라고 정의하시면서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기가 있다고 설명해 주시는 집사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을 측정하는 그런 도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딱 갔다 대면 얼마나 성령으로 충만한지, 얼마나 영성이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지를 알려주는 그런 도구. 그런 도구가 있다면 매일 매일 내 영성을 측정해 보면서 최고의 영적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할 텐데. 또 다른 사람들의 영성을 측정해 주고 말만 많고 아무런 능력 없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봐라 당신은 살아있지만 실제는 죽었다.고 말해주면서 도전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공상을 부담 없이 하고 있을 때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그런 도구가 이미 있단다.흠짓 놀라며 주님. 그런 도구가 정말 있단 말입니까? (큰일인데) 라고 묻는 제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도구가 아니라 테스터, 즉 시험지란다. 90점 만점의 시험지이지. 영성을 측정하는 시험지 뿐만 아니라 타락의 정도를 측정하는 시험지도 같이 있단다. 한번 풀어보렴. 그리고 네 점수에 너무 놀라거나 낙심하지는 말거라. 시험에 점수에 상관 없이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시험지는 네가 가진 성경 신약 308쪽에 있단다."

여러분의 편의를 위해 영성 테스터(시험지)를 제가 여기 복사해 놓습니다.(바울에게 저작권이 있는 문제지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부로 복사하셔도 무방합니다. 사용료는 각자 교회에다 내세요; 갈 5:22-23). 총 9개의 문제이구요 특히 1번 문제는 20점이 만점이구요 나머지는 문제들은 각각 10점이 만점입니다. 그러면 100점이 만점이겠지요? 건투를 빕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0점) 어쩌다 그렇다. (3점) 가끔 그렇다. (5점) 종종 그렇다. (7점) 항상 그렇다. (10점)

1. 나는 내 삶 속에서 예수님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경험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하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 처럼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 (점수에 2를 곱하세요. )
2. 나는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삶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다. 그래서 매사에 긍정적이다.
3. 나는 예수님 때문에 환경과 상황과 조건들을 초월하는 마음의 평강과 평안이 있다.
4. 나는 내 삶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나를 짓누르는 여러가지 조건들과 사람들에 대해 끝까지 참고 인내한다.
5. 나는 예수님처럼 어려운 일을 당했거나 힘든 사람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같이 아파하며 돕는다.
6. 나는 예수님처럼 악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악을 행함으로 지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긴다.
7. 나는 예수님처럼 늘 신실하며 약속을 잘 지키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산다.
8. 나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세우고 섬기기 위해 나의 자랑이나 지위나 권리, 힘을 유보하는 온유함을 실천한다.
9. 나는 예수님처럼 식욕, 성욕, 수면욕, 구매욕, 음주 흡연욕, 소유욕, 노동욕, 게으름 등등의 욕구를 주님의 요구에 따라 조절(Control)한다.

참고로 본인이나 타인의 타락 정도를 측정하고 싶으시다면 같은 페이지의 갈라디아서 6장 16절부터 21절까지를 참조하세요.


bk



12.24.2008

개혁

종교개혁은 반드시 우주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장소와 모든 사람과 모든 직업을 개혁해야 합니다. 사법부를 개혁하고 대학교를 개혁하고 도시를 개혁하고 국가를 개혁하고...안식일을 개혁하고 성직을 개혁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개혁해야 합니다.

Thomas Case recited from Michael Walzer, The revolution of the Saints: A Study in the Origins of Radical Politic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5), 1-2.

위선

열정을 전하려 하다보면 쉽게 말이 앞선다. 말은 값싼 것이지만...크리스천의 행위는 값비싼 노동이다. 크리스천들에게 요구되는 자기부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은 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위선자들은... 성자처럼 말하는 사람이다.

Jonathan Edwards, Religious Affections (1746), ed. John E Smith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9), 411.

문: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으로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나를 고소하기를
하나님의 명령에 저항하여 지독히 죄를 지음으로
결코 그 명령들을 지키지 않으며
여전히 모든 죄악으로 향하는 죄성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무가치한 나를 순전한 은혜로써
마치 내가 한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마치 내가 완전히 순종한 것 처럼
그리스도의 나를 위한 순종으로
그분의 완전한 보상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내게 부어주시고 나의 것으로 여겨 주셨습니다.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은
믿는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The Heidelberg Catechism Q/A 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