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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2010

소명, 사명자, 그리고 배신자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잊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요한복음 6: 37-38

소명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소명의 내용에 집중한 나머지 소명을 주신 분을 잊어 버리는 것이다. 소명의 중요성은 소명의 내용에 있지 않고 소명의 원인자인 “부르시는 분”에게 있다.  소명의 원인자이며 조력자이시고 완성자이신 부르신 분의, 부르신 분을 위한, 부르신 분에 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명자라고 부른다. 사명자의 문자적 의미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명령을 부여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사명자는 어디로 부르시든, 무엇으로 부르시든, 언제 부르시든 간에 부르신 분에게 집중하고 그 분을 위해, 그 분을 향해, 그리고 그 분에 의해 살아간다. 아버지의 일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고 선포하고 십자가를 지신 행복했던 예수를 쫓아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려 보냈던" 초대교회의 사명자들을 향해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일방적인 방식을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진실되고 진지한 논의와 공동체적 기도 없이 더 크고 부유한 교회를 "섬기기"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미 부르심을 받은 교회 공동체를 일방적으로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영적 리더들의 "소명"운운은 아전인수의 극치이다. 예수의 소명은 자신에게 맏겨진 양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양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망한 자기의 야망을 비전이라는 허울로 포장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한 지체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면서 맡겨준신 공동체를 자신의 꿈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야심가들을 하나님은 증오하신다고 지적한 본 회퍼의 통찰이 가슴에 칼을 대는 듯 하며, "나는 성공이 아니라 성실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테레사 수녀의 말씀이 머리를 울린다. 

bk

8.10.2009

위대한 그리스도인

몇 해 동안 톰 랜드리는 미국인의 우상이었다. 그는 최고의 미식축구 팀 중 하나인 '달라스 카우보이즈'의 수석 코치였다. 몇 번인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코치로 일하는 동안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만났지요. 하지만 위대한 선수는 극소수예요. 훌륭한 선수와 위대한 선수는 단 45센티미터 차이로 판가름이 납니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죠. 경험으로 볼 때, 훌륭한 선수는 특출한 자질을 갖추고 있어요. 그러나 위대한 선수는 열정 어린 마음을 가진 선수에요. 즉 자기 희생, 잔인하리만치 길고 고도니 훈련과 연습, 전심전력을 다하는 집중력으로 결국 위대한 성과를 이뤄 냅니다."

거의 30년에 걸쳐 기독교 사역을 하는 동안 나 역시 그랬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많이 만나 봤지만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였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 돈, 욕구를 희생하는 그리스도인,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포기하려는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의 직업, 명성, 신분, 우정, 재산, 심지어 생명까지 바치려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 어린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앤 그레이엄 로츠, 위기속에 만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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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그리스도인이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에게 잔해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단지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앙의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 당해야 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기 원했고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그들은 예수를 너무도 사랑했다. 자기 생명보다 예수가 더 귀했다.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인간적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로츠"를 잘 못 이해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잔인하리만치 길고 고된 훈련과 연습"은 그만큼 강한 동기와 열정이 없다면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생명"까지 희생하는 삶의 모습은 절대로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단 한가지 만이 그 위대함을 가능하게 한다. 그건 사랑이다.

따라서,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사랑"으로 만들어 진다. 예수의 무한한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에 빠져 든 사람은 거부할 수 없는 예수의 사랑으로 자신을 초월 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저주를 달게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수의 위대함, 예수의 능력, 예수의 아름다움을 맛본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를 초월하여 위대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즉 예수의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 물으시는 주님 앞에서, 사랑할 능력조차 없고 사랑받을 가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신실하게 사랑하시는 주님 발앞에 겸손한 무릎을 조아리는 사람이 될 일이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과 감사와 감격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그분을 인정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될 일이다.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이뤄 내는"것이 아니라 "은혜로 수용하며 반응하는"것이라는 점에서 랜드리와 로츠는 오해했다.

bk

1.18.2009

UnChristian 나쁜 그리스도인

미국 바나 그룹이 3년간 10회에 걸쳐 20만명 이상의 기독교 밖의 와부인들에 대한 리서치와 특히 버스터 세대의 저 연령층(30세 이하)과 모자이크 세대에 속한 16세에서 29세의 젊은이들을 인터뷰한 결과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1. 위선적이다.
2. 전도에만 열을 올린다.
3. 동성애자를 혐오한다.
4. 안일하다.
5.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6. 타인을 판단하려고 한다.

B.R Nov. 2008

1.03.2009

행복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행복해 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C. S. Lewis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는 하나님의 열심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고로 행복하는 것과 하나님이 최고로 영광받으시는 것은 하나이다. 모든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고로 행복할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최고로 영광받으시는 것이다. 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