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3대 책무
1. 방향설정 (Direction)
2. 동기부여 (Motivation)
3. 전략개발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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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미나에서 들었던 내용이다. 일단 단순 명쾌하다. 그리고 단계적인 우선순위를 보여준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독단적이고 상명하복의 권위주로 흐를 가능성이 있는 것 외에도 관계중심이기 보다 일중심의 사고가 강조된다. 군대 지도자의 3대 의무라면 적절하겠나?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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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2010
2.21.2009
나의 사명
좌옹 윤치호(1864-1945)
일기, 1권 410쪽, 1889년 12월 14일
윤치호는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 신학도였다. 신사유람단의 일행으로 김옥균, 박영효등의 개화인사들에게 영향을 받은 윤치호는 1884년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허망하게 끝나자 삶을 회의하고 좌절하였으나 '그리스도 신앙'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1888년 부터 Vandervilt 신학부에서 3년 Emory대학에서 2년 도합 5년간 수학하였으며 신학 외에도 정치와 경제, 그리고 심리학등을 배웠다.
인간의 개혁과 사회적 혁신이라는 실용주의적 관심이 지대했던 윤치호는 조선말기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관리들의 악과 그들의 사상적 뿌리인 유교에 실랄한 비판을 가한다. 스스로 도덕적 타락을 경험했던 윤치호는 "자기 부정"을 통한 인간갱신은 바른 종교만으로 가능하며 종교를 통한 "이기심의 극복"만이 도덕적 사회를 건설하는 기초라고 보았다.
귀국 후 정치를 통해 민족의 갱신을 도모하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국운을 돌이킬 수는 없자 교육운동에 전념하였다. 한미서원(1906년, 후일 송도 고등보통학교로 개편)과 황성기독청년회 (조선YMCA, 1903)를 중심으로 민족의식과 민족성 개혁운동을 벌였던 그는 백성을 근대화하는 실업교육을 중요하게 여겼다.
윤치호는 하나님 사랑과 나라사랑을 하나로 보담았던 시인이기도 하였다. 그가 만든 찬송시 중 이런 낮익은 것이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말으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 대한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찬미가 14장 1절-
1900년의 마지막 날 일기에 "시간이 지나면 조선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문명한 나라가 될 것이다...그렇다. 이 모든 꿈은 꼭 실현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아, 300년 후 이 달라진 모습을 보기 위해 이 조선에 다시 돌아고 싶구나" 라고 소망하였던 윤치호가 100년이 조금 지난 오늘 천국에서 한국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못 궁금하다.
bk
1.03.2009
행복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행복해 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C. S. Lewis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는 하나님의 열심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고로 행복하는 것과 하나님이 최고로 영광받으시는 것은 하나이다. 모든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고로 행복할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최고로 영광받으시는 것이다. bk
C. S. Lewis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심은 인간의 행복을 위하는 하나님의 열심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고로 행복하는 것과 하나님이 최고로 영광받으시는 것은 하나이다. 모든 행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고로 행복할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최고로 영광받으시는 것이다. bk
12.16.2008
Getting Things Done
12.09.2008
게으름의 발전: 정욕

3. 게으름의 발전: 정욕
게으름이 게으름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의무가 필요합니다. 의무가 없는 곳에서는 그 사람의 게으름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작 단계의 게으름은 늘 이러한 형태고 출발합니다. 아예 의무를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귀찮은 부분을 소흘히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게으름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그것은 바로 의무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계속 발전하는 것은 게으름의 원인인 자기 사랑이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은 영육간에 편안한 삶을 이룬 것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삶은 게으름의 소극적인 목표일 뿐입니다. 이 소극적인 목표가 만족되고 나면 나타나는 적극적인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쾌락입니다. 이처럼 게으름의 끝에는 길이 없습니다.
신자로서 해야 할 선하고 마땅한 의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급기야 그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편안함은 획득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에서 오는 사랑의 연합이 주는 신령한 기쁨도 사라졌습니다. 이 때 육체는 게으름으로 얻을 수 있는 편안함보다 더 자극적인 즐거움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요구의 대부분은 죄를 짓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청교도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행동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욕구를 살펴라. 그 사람의 욕구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다."
발전된 게으름은 정욕들을 계속 솟아나게 하여, 신자로 하여금 의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 편안함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악을 행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고자 하도록 만듭니다...더구나 이 후자의 욕구는 전자의 욕구보다 훨씬 강합니다. 죄를 지은 대가를 치르며 느끼는 괴로움 보다는, 불타오르는 정욕에도 불구하고 그 죄에 접근하지 못할 때에 느끼는 안타까움이 더 힘든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게으름 때문에 정욕에 완전히 사로잡힌 존재로 전락하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은혜의 통치 아래 사는 사람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죄의 지배 아래서 죄의 종이 되어,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방불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게으름이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하는 종착지는 바로 여기이며, 이것을 행해 게으름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달프지만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으로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일에 충성하고 분투하는 과정에 대해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땀 흘리는 부지런함, 게으름의 욕구를 꺾는 삶, 의무를 실천하고자 하는 진지한 몸부림이 있을 때, '하나님, 도와주세요'하는 기도에 눈물과 진액이 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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