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 are the learning organism par excellence. The drive to learn is as strong as the sexual drive--it begins earlier and lasts longer."
Edward Hall
학습에 대한 욕구는 성욕보다 강하다. 학습욕구는 성욕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며 보다 오랫동안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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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2009
1.01.2009
열망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는 자기만의 무언가에 집중하고 헌신하고 싶어하는 형언하기 어려운 열망이 존재한다.
Covey, 25
Covey, 25
사랑의 욕구
모든 사랑의 욕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욕구이다. 그것이 왜곡된 것이든, 아니면 아름다운 것이든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아야 하는 근원적 욕구를 가지도록 창조되었다.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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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2008
자랑
What do you boast about?
은연중 내가 자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뽐내고 싶을까?
다른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사도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사랑 받기를 원한다.
대단한 능력, 많은 경험, 높은 학식, 뛰어난 지혜, 풍부한 소유, 아름다운 외모...
모두 다 자랑거리들이다.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관심을 끈다.
사랑받고 존경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조정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모두 왕자이고 싶고, 공주이고 싶다.
사도바울이 말한다:
"If I must boast, I will boast the things that show my weakness."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사랑받는 자들이다.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그분의 인정, 관심, 보호, 인도, 공급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영원하고 다함없는 그분의 성품을 쫓아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굳이 자랑을 해야 한다면, 그것을 자랑할 일이다.
얼마나 내가 부족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연약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미련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가난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상처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잔인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이기적인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교만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조급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무식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고집센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산만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게으른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정욕적인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비판적인 사람인지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추악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당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신다.
이것이 내가 자랑하며 노래할 유일한 제목이다.
12.27.2008
12.09.2008
게으름의 발전: 정욕

3. 게으름의 발전: 정욕
게으름이 게으름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의무가 필요합니다. 의무가 없는 곳에서는 그 사람의 게으름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작 단계의 게으름은 늘 이러한 형태고 출발합니다. 아예 의무를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귀찮은 부분을 소흘히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게으름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그것은 바로 의무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계속 발전하는 것은 게으름의 원인인 자기 사랑이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은 영육간에 편안한 삶을 이룬 것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삶은 게으름의 소극적인 목표일 뿐입니다. 이 소극적인 목표가 만족되고 나면 나타나는 적극적인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쾌락입니다. 이처럼 게으름의 끝에는 길이 없습니다.
신자로서 해야 할 선하고 마땅한 의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급기야 그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편안함은 획득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에서 오는 사랑의 연합이 주는 신령한 기쁨도 사라졌습니다. 이 때 육체는 게으름으로 얻을 수 있는 편안함보다 더 자극적인 즐거움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요구의 대부분은 죄를 짓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청교도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행동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욕구를 살펴라. 그 사람의 욕구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다."
발전된 게으름은 정욕들을 계속 솟아나게 하여, 신자로 하여금 의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 편안함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악을 행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고자 하도록 만듭니다...더구나 이 후자의 욕구는 전자의 욕구보다 훨씬 강합니다. 죄를 지은 대가를 치르며 느끼는 괴로움 보다는, 불타오르는 정욕에도 불구하고 그 죄에 접근하지 못할 때에 느끼는 안타까움이 더 힘든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게으름 때문에 정욕에 완전히 사로잡힌 존재로 전락하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은혜의 통치 아래 사는 사람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죄의 지배 아래서 죄의 종이 되어,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방불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게으름이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하는 종착지는 바로 여기이며, 이것을 행해 게으름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달프지만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으로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일에 충성하고 분투하는 과정에 대해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땀 흘리는 부지런함, 게으름의 욕구를 꺾는 삶, 의무를 실천하고자 하는 진지한 몸부림이 있을 때, '하나님, 도와주세요'하는 기도에 눈물과 진액이 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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