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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2009

수용과 견딤

'수용'은 매력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소비자 만족'이 중심인 시대에 사람들은 직접 메뉴를 살펴보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원하지 않는 것을 거절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환영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힘든 현실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수용하는 것은 더욱 낯설고 불편할 뿐입니다.

'견딤'도 매력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빠른 변화, 초고속 인터넷, 퀵 서비스 등으로 원하는 모든 것이 신혹히 제공되는 시대에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싫증이 나면 쉽게 버리고 새것으로 바꿉니다. 불만족스러운 사람과의 관계나 상황을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라는 말씀은 무겁고 힘든 부담일 뿐입니다.

그러나 수용과 견딤의 과정이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사람이란 단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령한 은사로 능력을 행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수용과 견딤을 통해 주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게 되고 그를 통해 복음과 생명이 전해집니다.

이훈 "영성의 길 9"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15:7)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19)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을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3)

12.31.2008

고백

주여, 당신의 눈앞에서는 사람의 양심이 그 바닥까지도 "벌거벗은 것같이" (히4:13) 드러나오니, 내 속에 있는 것 가운데 당신께 고백하기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그 무엇이 감춰질 수 있겠습니까? 이는 내가 당신을 보지 않으려 내 눈을 가릴 수는 있어도, 나 자신을 당신에게서 숨길 수는 없음입니다.
이제 나는, 나의 한숨이 증거 하듯, 나 자신이 싫사오니, 당신이 내게 빛을 비추사 당신에게서 만족을 얻게 하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나 자신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껴 나 자신을 버리게 해 주십시오! 대신 당신을 붙들게 하셔서 오직 당신께 의지함으로 당신을 만족케 나며, 나 자신을 만족케 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Augustiuns, Confessio, 497, 10.2.2

주님, 당신으로 인해 만족을 얻게 해 주십시오. 내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에는 열심이고 부지런했지만 그 결과는 만족이 아닌 허무와 절망과 좌절뿐이었습니다. 내 양심이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을 얻기 위해 달려간 그 곳에서 양심의 호된 질책과 꾸지람을 듣고 낙망하였으며, 내가 만족을 얻지 못한 것은 아직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다른 강렬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혼돈이요 무질서였습니다. 성난 파도에 휩슬리는 작은 배 처럼 나의 영혼은 그렇게 흔들리었습니다. 달리고 달리면서도 불안하고 고독하였으며 결국은 죄책감에 만신창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내 영혼의 만족과 쉼은 그저 당신 뿐이었건만 나는 그것이 싫었고, 내 스스로 나를 만족시키고 쉼을 얻으려 그렇게 당신을 뒤로 하고 달려만 갔습니다.
주님, 이제 내게 당신의 빛을 비추사 당신을 사랑함으로, 당신께 돌아옴으로 만족을 누리고 행복을 맛보게 해 주십시오. 나는 이제 평안하고 싶습니다. 기뻐하고 싶습니다. 내 영혼이 양심으로 함께 자유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BK

12.24.2008

문: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으로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나를 고소하기를
하나님의 명령에 저항하여 지독히 죄를 지음으로
결코 그 명령들을 지키지 않으며
여전히 모든 죄악으로 향하는 죄성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무가치한 나를 순전한 은혜로써
마치 내가 한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마치 내가 완전히 순종한 것 처럼
그리스도의 나를 위한 순종으로
그분의 완전한 보상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내게 부어주시고 나의 것으로 여겨 주셨습니다.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은
믿는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The Heidelberg Catechism Q/A 60

12.14.2008

게으름의 친구: 포기

끝까지 하지 않는 것도 게으른 것입니다.
필요한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일해야지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예상대로 일이 끝났으면 끝난 대로 감사할 수 있고, 어려운 일이 발생해 예상보다 일이 복잡해져도 위기 상황에 원활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 100의 힘을 들여서 이룬 일을 자신은 요령과 기술로 50의 차이를 줄여 50 정도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50의 힘으로도 될 줄 알았는데 안되므로, 포기하고 돌아서 버리는 것은 게으른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일 수록 포기가 많습니다...여기서 포기하고 말면, 다음엔 더 빨리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기는 사람은 계속 이기며 살고, 포기하는 사람은 계속 포기하며 삽니다.

"포기"라는 말은 배추 셀 때나 쓰자!

4.28.2008

원래 모습

특별히 잘한 것이 아니라
그게 원래 자매의 모습입니다.

주님과 함께 서로 사랑하면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눌 때,
그리고 서로를 향해 고요한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그래서 내 안에 숨겨진 가능성이 최대로 발휘 될 뿐만 아니라,
혹여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분에 대한 소망으로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의 원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러한 삶의 성스러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인터뷰를 성공스럽게 마친 자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