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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011

진정한 장벽

1947년 10월 14일, 조종사 척 예거 (Chuck Yeager, 1923-)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알려져 온 음속의 한계를 돌파함으로써 마침내 초음속 비행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저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음속의 한계는 결코 깨뜨릴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다른 과학자들 역시 마하 1의 속도에서는 조종사와 비행기 모두가 산산 조각날 것이라느니, 혹은 조종사는 목소리를 잃고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또 극심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등 섬뜩한 예견들을 하던 터였다. 그러나 예거는 그 역사적인 날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벨 항공(Bell-Aviation)의 X-1기에 탑승하여 시속 700마일 (마하 1.06)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3주후 마하 1.35로 비행했고, 6년 후에는 다시 시속 1,612마일(마하 2.44)이라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깨뜨릴 수 없는 장벽에 대한 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이었다.

예거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비행은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마하를 가리키는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늘은 마하 0.965에 도달했고, 곧 속도계의 오른쪽 끝이 기울었다. 나는 마치 환각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초음속을 날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어린아기의 엉덩이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그 편안함이라면 나이 든 할머니라도 거기 않아서 레모네이드를 즐길 수 있으리라! 나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염려하고 그토록 기대했건만, 막상 음속을 돌파하고 나니 오히려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미지의 것이었던 음속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실은 포크로 젤리를 가르는 것처럼, 마치 잘 포장되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쉬웠다. 그러나 나는 훗날 그때의 임무가 왜 그렇게 실망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그건 진정한 장벽은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음속 비행에 관한 우리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븐 코비, 원칙 중심의 리덥십, 김영사,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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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웃과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진보와 개혁을 가로막는 장벽은 외부의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장벽은 인간의 지식과 경험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절대 진리인양 확신해 버리는 내적 교만과 아집, 그리고 두려움이며, 초월적 힘을 간과하고 부러 잊으려 하는 영적 완고함과 둔감함입니다.

내 안에 있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 넘으려면 절대 타자에 대한 절대적 의존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훈련함으로 성취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절대진리에 대한 감정적 확신으로서의 믿음, 하나님 신앙을 기반으로 한 풍부하고 건강한 상상력의 발현으로서의 소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시위된 희생적 섬김의 사랑을 연습하고 경험함으로 길러집니다.

bk

11.10.2010

기다림





기다림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좀더 많은 기다림을 내 생활 속에 만들어 놓고 살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나누게 될 아름다운 사랑의 기다림, 좋은 우정의 기다림, 행복한 결혼의 기다림, 배움과 성숙의 기다림, 지혜와 겸손의 기다림 등등. 많은 기다림을 바다에 그물을 내리듯 내 생활 속에 펼쳐 놓으면 많은 행복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기다림은 삶의 맛을 달게 하며 향기롭고 윤기나게 하며, 늘 지금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믿음과 신뢰가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소망이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오면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강이 또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을 따라 지나간 날들의 그리움과 앞으로 올 날들의 기다림을 하나씩 만나게 될것입니다. 올 가을에는 지난날의 그리움도 만나야 하겠지만 좋은 기다림을 더 많이 만나보면 좋겠습니다. 

5.17.2010

한번도 가지 않은 길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나섰다.
난데 없이 교회 뒤쪽으로 난 산을 따라 걸으며 기도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내 마음이 "가보자"와 "가지말자"로 나뉘어 분열하기 시작했다.
가지 말자는 쪽이 더 좋은 그리고 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가보자는 쪽은 시덥지 않은 한두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한가지 이유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소망이었다.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이 있으리라는, 어렵더라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소망과 기대 말이다. 소망이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 때 배웠다 .

아직도 검푸른 여명속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두려운 마음을 흥얼흥얼 찬양으로 잠재우며 걷다가 작은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갑자기 큰 개가 미친듯이 짖어대며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너무 놀라 거의 중심을 잃고 나 자빠지려 하는 찬라에 내 몸을 덮칠 그녀석의 거친 앞발과 내 목을 향해 날아오는 날카로운 이빨을 상상했다. 그러나 나는 넘어지지도 물리지 않았다. 개와 나 사이에는 철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놀랬으나 현실적으로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 "돌아갈까?"하는 마음이 놓치지 않고 고개를 바짝 들었으나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번연의 주인공 크리스천이 쇠줄에 묶인 사자의 포효에 주춤하며 전진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계속 짓어대는 개에게 예수님처럼 "잠잠하라"고 영어로 말해 주었다-shut up!

물이 말라버린 얕으막한 계곡에 지저분한 쓰레기들과 버려진 차들이 보였다. 높은 기둥에 마치 피가 흐른듯이 빨간색 페인트로 갱단원들이 한 것 처럼 여겨지는 지저분하고 기괴한 낙서들이 역겨운  냄새와 함께 기분을 상하게 하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결코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소망이 위협을 당하자 다시 두려움이 업습한다. "돌아가자..."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웠고 아찍 끝나지 않았다는 새로운 소망거리를 찾아내었다.
한 30분을 더 기도하며 산을 오르자 온 몸에서는 땀이 흐르고 기도는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산의 정상에 섰을 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아름다운 절경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인내하지 앟았으면, 두려움을 물리치지 않았으면, 소망을 포기했다면 결코 볼 수 없었던 장관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가득 차 올랐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그리고 소망은 사랑으로 가득찬 성품을 만들어 낸다는 바울의 고백을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정상에서 내려 올 때 하나님은 또다른 선물을 준비하고 계셨다. 산을 오를 때 겪었던 장애물들의 실체가 찬란한 아침 햇빛 아래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위협적이었던 모든 것들이 별것 아닌 것이 되어있었다. 오를 때 의심되었던 하나님의 임재가 내려갈 때는 자부심과 성취감, 보람과 삶의 긍정으로 충만하였다. 시내산을 내려가는 모세의 기분이 그랬을까?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은 두려운 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길이 행복하고  의미있고 보람된 길이 된다는 사실 또한 틀림없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 자신이 행복이며 의미이며 보람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길을 끝까지 마쳐본 사람만이 그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으며, 그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성숙을 노래할 수 있을뿐이다. 

bk

1.15.2010

신앙

첫째, 신앙은 인간 존재의 확실성을 준다. 인간이 가지는 존재적 절망은 오직 하나님께서 수여하시는 신앙을 통해서만 극복된다. 따라서 신앙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기반이다. 이런 점에서 신앙은 단순히 의미 구성을 통한 인식론적 확장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보다 포괄적이다.

둘째, 신앙은 미래지향적이다. 신앙은 현재의 갈등을 치유하고 회복하여 미래를 현실화시키는 힘이다. 따라서 신앙은 현재속에 미래를 배태하며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신앙은 현재의 상태를 초월한다.

셋째, 신앙은 역동적이며 초월적인 능력이다. 신앙은 실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절망을 뚫고 침투하시는 창조주의 초월성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넷째, 신앙은 공동체를 통해 경험된다. 신앙의 본질은 창조주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는 것이며 이는 증거와 고백을 필요로 한다. 개인적 인식의 확장은 신앙의 결과일 수 있으나 신앙 그 자체는 아니다.

다섯째, 신앙은 구체적이다. 삶의 구체적인 사건들속에서 신앙은 형성되고 변형된다. 신앙은 인지구조의 확장에 제한될 수 없으며 삶의 행위들이 발생하는 상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섯째, 신앙은 구속적이다.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샬롬회복이다. 신앙은 성취되거나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초월적이며 구속적 은혜로 계속해서 변형되어가는과정이다.

파울러의 신앙이해에 대한 로더의 반박 중, The Logic of the Spirit, 257

1.08.2010

소망

소망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도전이다.
소망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열정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반박청구이며 언약신학의 선포이다.
소망은 실제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간섭하시도록 자극하는 행위이다.

자크 엘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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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죄송해요. 올해는 하나님을 많이 자극하기로 결심했어요. ^^
괜찮으시겠죠?
bk

7.18.2009

로마서를 읽다가 십자가 앞에 서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깊다.
나무는 푸르고 바람은 시원하다.
세상은 아름답고 평온해 보인다.

난 두려워하고 있다.
"두려워말라"
그래도 두렵다고
너무도 떨린다고
두눈을 감는다.

온 세계를 덮어버린 칧흙같은 어두움
폭풍우 속에 성난 산 솟구친 파도
내려 꽃히는 번개 찟을 듯한 천둥사이
삼켜져 버릴듯 요동치는 배 한조각
그 속에 쪼그라든 내가 웅크려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평안하라고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증거를 보이라고

벌거벗긴채
침뱃음을 당하는
만왕의 왕

가시로 만든
왕관에 찔려
나무에 매달린
하나님의 아들

아하 아하
하나님의 아들이여
만왕의 왕이여
스스로 구원하고
거기서 내려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물처럼 쏟아지는 피
죽음보다 고통스러운 갈증
터처버린 심장
뻣뻣해진 근육
멈추고 싶은 호흡
마비되는 정신

"일로이 일로이 라마 사박다니"
외로운 외침
소망 향한 절규

"나의 주 당신의 손에
다시 또 한번
당신을 위해
나의 영혼을 맡겨 드리니

내가 사는
이세상
죽음까지도
당신의 손에 있는것

내가 살아가는
바로 그 목적
내가 노래하는
바로 그 이유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당신의 품에
그렇게 영원히
나 있기에..."


다윗의 노래를 따라
수백번 수천번
겟세마네에서 드렸던
바로 그 기도

나의 주님 그렇게
기도하시다
마치지도 못한 채
운명하셨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신뢰하는 자
부끄러움 없으리

하나님의 눈물
땅을 뒤덮고
막혀진 죄의 휘장
찟겨 나갔다.

into your hand I commit again
with all I am
for you Lord

you hold my world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I'm yours forever

Jesus I believe in you
Jesus I belong to you
You're the reason that I live
the reason that I sing
with all I am

I'll walk with you
wherever you go
throguh tears and joy
I'll trust you

and I will live
in all of your ways and
your promises forever

I will worship
I will worship you
forever

Amen

-Hillsong United-
Psalm 22
Mark 15
Romans 10


bk

5.29.2009

상상력을 춤추게 하라

상상력을 춤추게 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서 상상력을 춤추게 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정신신체의학자들은 심리적 원인에서 시작된 질병은 거의 항상 상징기능의 장애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상징기능의 장애란 자신의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징기능의 장애는 현실을 변화시키거나 그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꿈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 기 코르노의《마음의 치유》 중에서 -

* 사람이 현실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그러나 현실에만 묻히거나 갇혀 있으면 안됩니다.현실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며 새로운 상상력을 춤추게 하고, 그 상상력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자꾸자꾸 해야 합니다.상상력은 영혼이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입니다.나이가 젊을수록 상상력이 춤을 추어야 영혼이 아름답게 자라납니다.

-고도원 편지중-

3.31.2009

내 인생은 십자수

My Life
- Anonymous

My life is but a weaving, between my God and me,
I do not choose the colors, He worketh steadily.

Of times He weave the sorrow, and I in foolish pride,
Forget He sees the upper, and I the underside.

Not till the loom is silent, and shuttles cease to fly,
Will God unroll the canvas and explain the reason why.

The dark threads are as needful in the skillful weaver’s hand,
As the threads of gold and silver in the pattern He has planned.


내 인생

내 인생은
하나님과 나, 둘이서 꾸며가는 십자수라네
나 아무런 색상도 고르지 못할 때
그 분의 손길은 여전히 바쁘다오

때론 칙칙한 실 꿰어가는 그 분을 보며
내 눈가에
불만이 차 오른다네
그 분의 시선 머무는 곳을 벌써 잊었기 때문이라오

꿰메고 자르고 잇대어 옹쳐 매고
머지 않아 바지런한 두 손을 멈춘다네
그림 펼쳐들고 그 분이 친히 설명하신다오
그 때는 왜 그렇게 하셨는지

나 원치 않던 어두운 실들도
청실 홍실만큼이나 소중하다네
내 인생 가꾸시는 그 분의 계획 속에
이 모든 것 어우러짐을 그제서야 보게 된다오…

3.25.2009

깊은 냄비를 주시는 하나님

늦은 밤, 도서관을 나서 집으로 가는 중 선교사님을 만났다. 사실은 선교사님이 어두운 곳에서 내 이름을 부른 통에 놀라서 섰다. 반가운 목소리로 불러주는 소리가 즐거웠고 한적한 곳에 큼직한 빡스를 어깨에 매고 있는 선교사님이 엉뚱했다. "선교사님, 이 밤에 거기서 뭐하십니까?" 싱글벙글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하신다. "아내가 기도하던 깊은 냄비를 주셨어요!"

"아내가 기도하던 깊은 냄비..." 몇마디 않고 헤어졌지만 "아내가 기도하던 깊은 냄비..."가 계속 마음 속에서 맴돌았다.

모교회에서 후원이 끊겨 기도하는 중이지만 하나님이 더 좋은 후원자들을 만나게 하실것이라며 함께 식당에서 손붙잡고 기도했던 것이 두 주 전이었다.

깊은 냄비가 필요해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 깊은 냄비가 필요한데 마련해 주세요"라고 순수하고 친밀한 기도를 드렸을 사모님의 성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아내의 기도를 유심히 귀담아 듣고 "깊은 냄비의 필요"를 자기 일처럼 묵상했을 선교사님의 따듯하고 책임감있는 마음이 느껴졌다.

누군가 놓아둔 박스를 어둡고 바람부는 밤에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보물 찾듯 소망의 기대를 놓치지 않는 그의 성실함과 믿음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깊은 냄비가 거기 그렇게 놓여져 있었던 것이 결코 우연이나 운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자애롭고 치밀한 준비하심이라고 생각하는 영적 민감함과 깨어있음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그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 나로하여금 그 현장에 참여하게 하심으로 "내가 너를 기억하며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아침의 말씀을 컨펌해 주시는 놀랍고도 달콤한 하나님의 사랑에 코끗이 찡하고 가슴이 묵직하게 아려왔다.

"사랑하는 아들아 보았니? 어땠니?" 라고 물으시는 것 같아 반짝이는 별들을 향해 말씀드렸다. "깊은 냄비의 사랑을 보여주신 아버지, 사랑합니다."

3.25.09, bk

사랑하다 헤어질 때

사랑하다 보면 헤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고 말하자.
사랑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사랑받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살면서 당신을 만난 것이
가장 좋았다고. 그래서 너무나 고맙다고,
그렇게 이별의 인사를 하자.
헤어짐은 끝이 아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다시 시작되고,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 권소연의《사랑은 한 줄의 고백으로 온다》중에서 -


* 사랑은 때때로 헤어짐으로 끝이 납니다.
아프고 쓰리지만 '사랑의 경험'은 그대로 남아,
다음에 오는 사랑을 더 찬란하게 꽃피웁니다.
그 '사랑의 경험'을 안겨주고 떠난 사람이
고마운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헤어짐은 사랑의 종착역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랑의 시작입니다.

1.24.2009

주 없이 살 수 없네

오늘 새벽 이 찬양을 통해 주님은 나를 만져 주셨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그 귀한 보배 피로 날 구속하소서
구주의 사랑으로 흘리신 보혈이
내 소망 나의 위로 내 영광 됩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서리
힘없고 부족하며 지혜도 없도다
내 주는 나의 생명 또 나의 힘이라
주님을 의지하여 지혜를 얻으리

주 없이 살 수 없네 내 주는 아신다
내 영의 깊은 간구 마음의 소원을
주 밖에 나의 마음 뉘 알아주리요
내 마음 위로하사 평온케 하시네

주 없이 살 수 없네 세월이 흐르고
이 깊은 고독 속에 내 생명끝나도
사나운 풍랑 일 때 날 지켜 주시니
내 곁에 계신 주님 늘 힘이 됩니다.

아멘 (새찬292/통415)

I could not do without Thee
O Savior of the lost,
Whose precious blood redeemed me
At such tremendous cost.
Thy righteousness, thy pardon
Thy precious blood, must be
My only hope and comfort,
My glory and my plea.

I could not do without Thee,
I cannot stand alone,
I have no strength or goodness,
No wisdom of my own;
But Thou, beloved Savior,
Art all in all to me,
And weakness will be power
If leaning hard on Thee.

I could not do without Thee,
For, oh, the way is long,
And I am often weary,
And sigh replaces song:
How could I do without Thee?
I do not know the way;
Thou knowest, and Thou leadest,
And wilt not let me stray.

I could not do without Thee,
O Jesus, Savior dear;
E’en when my eyes are holden,
I know that Thou art near.
How dreary and how lonely
This changeful life would be,
Without the sweet communion,
The secret rest with Thee!

I could not do without Thee;
No other friend can read
The spirit’s strange deep longings,
Interpreting its need;
No human heart could enter
Each dim recess of mine,
And soothe, and hush, and calm it,
O blessèd Lord, but Thine.

I could not do without Thee,
For years are fleeting fast,
And soon in solemn oneness
The river must be passed;
But Thou wilt never leave me,
And though the waves roll high,
I know Thou wilt be near me,
And whisper, “It is I.”

Frances Ridley Havergal (1836-1879)

12.31.2008

고백

주여, 당신의 눈앞에서는 사람의 양심이 그 바닥까지도 "벌거벗은 것같이" (히4:13) 드러나오니, 내 속에 있는 것 가운데 당신께 고백하기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그 무엇이 감춰질 수 있겠습니까? 이는 내가 당신을 보지 않으려 내 눈을 가릴 수는 있어도, 나 자신을 당신에게서 숨길 수는 없음입니다.
이제 나는, 나의 한숨이 증거 하듯, 나 자신이 싫사오니, 당신이 내게 빛을 비추사 당신에게서 만족을 얻게 하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나 자신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껴 나 자신을 버리게 해 주십시오! 대신 당신을 붙들게 하셔서 오직 당신께 의지함으로 당신을 만족케 나며, 나 자신을 만족케 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Augustiuns, Confessio, 497, 10.2.2

주님, 당신으로 인해 만족을 얻게 해 주십시오. 내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에는 열심이고 부지런했지만 그 결과는 만족이 아닌 허무와 절망과 좌절뿐이었습니다. 내 양심이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을 얻기 위해 달려간 그 곳에서 양심의 호된 질책과 꾸지람을 듣고 낙망하였으며, 내가 만족을 얻지 못한 것은 아직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다른 강렬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혼돈이요 무질서였습니다. 성난 파도에 휩슬리는 작은 배 처럼 나의 영혼은 그렇게 흔들리었습니다. 달리고 달리면서도 불안하고 고독하였으며 결국은 죄책감에 만신창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내 영혼의 만족과 쉼은 그저 당신 뿐이었건만 나는 그것이 싫었고, 내 스스로 나를 만족시키고 쉼을 얻으려 그렇게 당신을 뒤로 하고 달려만 갔습니다.
주님, 이제 내게 당신의 빛을 비추사 당신을 사랑함으로, 당신께 돌아옴으로 만족을 누리고 행복을 맛보게 해 주십시오. 나는 이제 평안하고 싶습니다. 기뻐하고 싶습니다. 내 영혼이 양심으로 함께 자유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BK

12.22.2008

갈망의 근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갈망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것, 너무나 약하다는 점을 아시는 것 같다. 우리는 냉담한 피조물들이다.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이 주어졌을 때에도 우리는 술과 섹스와 야망 주변만을 맴돌 뿐이니 말이다. 마치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어서 뒷골목이나 배회하고 싶어 하는 무지한 아이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여간해서는 만족하지 않는다."
C. S. Lewis, "The Weight of Glory," in The Weight of Glory and Other Addresses, ed. and with an intro. by Walter Hooper (NY: Collier, 1980), 3-19.

우리의 욕구는 영원하다. 이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그분이 영원하시고 완전하시기에 우리는 이 두 가지 조건이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가 비록 깊은 사랑에 빠져 영적이고 육체적인 하나됨을 이룬다 할 지라도, 그 하나됨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 땅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를 최종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없다.

향수, 갈망, 동경, 그리움... 우리가 계속 굶주려 있다는 증거이다.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체에서 "직접"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온다. 그것이 사랑이든, 아름다움이든, 의로움이나 선함이든 이 모든 것들이 최종적인 가치 자체가 아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이 갈망하는 최종적 선을 오랬동안 찾아 해맨 후 그것을 "지고의 선, summum bonum" 이라고 불렀다; "오 주님,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는 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갈망이나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갈망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갈망은 하나님을 향해 있다. 진정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12.15.2008

기도와 소망

기도는 자신의 본성과 싸우는 전투이다.
기도는 소망의 행위이며 종말론적 행위이다.
기도는 기도하기 싫어하는 본능과의 싸움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도전이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열정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반박 청구이며 언약신학의 표현이다.
소망은 실제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간섭하시도록 자극하는 행위이다.
-자크 엘룰-

12.14.2008

용기

용기는 우리가 두려움을 느낄 때 생기는 것임을 명심하라.
당신이 도전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어느정도 긴장해야 한다.
용기는 두려움 없이 생기지 않는다.
용기는 두려움의 산물이다.
월터 앤더슨 <삶을 바꾸는 내 안의 힘>

간단히 말해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굴하지 않는 것이다.
용기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다.
용기는 두려워 하는 내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분의 성품을 신뢰하고 믿는 행위이다.
용기는 여전히 두려워 하면서도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는 두려움의 폭풍우를 뚫고 피어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꽃이다.

legei autois, Ego eimi. John 18:5
내겐 지금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