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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010

교회와 문화

교회 문화라는 개념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교회 문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이듯이 교회와 문화도 하나’입니다. 교회 문화는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문화는 여러분이 선택하고 도입하는 온갖 프로그램의 색깔을 결정합니다. 리더를 뽑고 훈련시키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 교회 문화입니다. 성급하게 들여온 처방이나 프로그램은 잠시 영혼을 들뜨게 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이 소망하는 것과 같은 더 철저하면서도 더 완전한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불어넣지 못합니다. 변화는 결코 밖으로부터 일어날 수 없습니다. 변화는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일입니다.

교회 문화 = 디폴트값
문화 바꾸기는 컴퓨터의 디폴트값(default value: 이용자가 값을 지정하지 않은 경우 자동으로 선택되는 것) 바꾸기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컴퓨터는 기본 폰트의 크기가 10포인트입니다. 만일 좀 더 큰 글자, 이를 테면 12포인트로 출력해서 계속 보고 싶다면 디폴트값을 영구히 바꾸어야 합니다. 만일 지금 작업하고 있는 문서에만 국한하여 디폴트값을 바꾸어 놓으면 다음에 컴퓨터를 쓸 때에는 다시금 10포인트로 돌아가 있을 것입니다.
문화를 바꾸는 것도 이와 아주 흡사합니다. 새 프로그램을 교회에 주입하려고 애쓰면, 처음에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다음 주가 되면 모든 것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런 일이 2주 전에도 일어나고 지난주에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이번 주에도 되풀이된다면 실질적으로 교회의 문화를 전혀 바꾸지 못한 것입니다.

문화를 바꾸기 위해 고려할 일들
- 현재의 모든 것을 평가하라.
우선 할 일은 현재 문화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여러분 교회의 문화를 여러분이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평가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성장시키실 수 있다는 것을 얼마나 굳게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보다 앞서 가셔서 실제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성장시키실 것이란 점을 얼마나 굳게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교회에서 얼마만 한 영적 잠재력을 보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방해하는 핵심 인물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어떤 식으로 표현합니까? 현재 교회가 가진 문화에서 건강하지 못한 부분, 겉과 속이 뒤집어진 부분을 알아내십시오. 여러분이 잘못된 과녁을 겨누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니면 아예 엉뚱한 것을 다루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확인해보십시오.
- 교회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는 자신의 역할을 평가하라.
여러분은 교회의 지도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받아들이고 열정을 다해 그 비전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비전을 다른 성도들에게 설득하기 전에 먼저 그 비전이 여러분 자신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이 비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비전이 되어야지, ‘큰 교회가 되는 방법’이라든지, ‘그 일대에서 유명 인사가 되는 방법’ 따위나 꿈꾸는 비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사고방식과 가슴을 뛰게 하던 것도 바꾸어야 합니다.
- 가치들의 목록을 만들고 사람들의 협력을 끌어내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문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 줄만한 구체적 가치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십시오. 그 가치들은 성경에 부합합니까? 그 가치들은 긍정적입니까? 이 일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치들이 결국 토템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도자들의 마음을 사십시오.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그들을 가르치십시오. 건강한 대화와 토론을 장려하십시오. 현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여러분 교회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십시오. 조지 바나는 비전을 가리켜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종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서 그 종의 마음에 명료하게 떠오르는 미래상”이라고 정의합니다.
- 기록하고 보여주라.
예수께서 여러분 교회를 향하여 처음 제시하신 비전은 ‘...이다.’ 비전이었습니다( 5:3~11). 따라서 우선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를 물어야만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다 함께 ‘...이 되자’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교회의 비전 선언으로 채택하십시오. 그 비전 선언을 글로 적어 보십시오.
- 삶으로 가르치라.
교회 전체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일련의 설교부터 시작해서 교회의 토템들을 체험하게 하십시오. 이 비전을 적절한 장소에 잘 보이도록 게시하십시오. 그리고 이 비전을 소그룹이나 주일학교 수업 시간에 토론하게 하십시오. 교회 직원을 채용할 때, 새신자를 제자로 양육할 때, 새 아이디어들을 내놓을 때, 행사나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때, 새 지도자를 선출할 때 등등의 경우에 교회가 표방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활용하도록 하십시오. 이 비전은 서면과 실제 삶의 간증을 통해 회중에게 자주 전달되어야만 합니다. 새 비전이 교회 전체로 스며들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유념하십시오. 문화를 바꾸는 일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 축하하고 기념하라.
만일 여러분의 가치가 사람의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교회의 성도 가운데 누가 그런 변화를 겪은 사람처럼 보입니까? 예배나 설교 때에 그런 성도들의 모습을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십시오.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간증하게 하십시오. 그들의 신앙 내력을 비디오로 만드십시오. 교회가 내거는 모든 것을 삶으로 보여주거나 구현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포상하고 잔치를 베풀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축하하고 기념해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모방하려 할 것이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할 것입니다.
- 점검하고 또 점검하라.
여러분은 어떻게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춘 비전에서 어긋난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까? 연말결산당회, ‘교회 현황 보고회’ 같은 모임을 통해 점검하고 또 점검하십시오.

문화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1904
년 웨일즈에 부흥이 일어났을 때, 많은 술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술에 취하도록 마시는 사람들이 절반으로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범죄가 하도 줄어서 판사들이 파리를 날릴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경찰이 직장을 잃게 된 동네도 많았습니다. 그 부흥은 다른 지역과 나아가 나라 전체, 그리고 온 세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때 기차를 타고 웨일즈를 찾은 한 관광객이 이 부흥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차 차장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디에 부흥이 있죠? 하나님과 만나는 이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가 어디에 있나요?” 그러자 차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조금만 걸어보면 아시게 될 겁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가 건강한 문화를 앙양해서 그 문화가 현실로 이루어지면, 그 결과는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그 흡인 효과를 체험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그 문화는 그 문화를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파고들 것입니다. 한 세기 전의 기차 차장이 그랬던 것처럼, 그 지역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도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교회가 다른게 뭐냐고요? 간단합니다. 그 교회 사람들 서넛만 만나 보세요. 그럼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문화가 바뀌면, 교회의 미래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바뀝니다.

※ 이 글은 “인사이드 아웃 교회개혁 이야기(국제제자훈련원)에서 발췌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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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2009

왜 라고 묻게 하라

불쾌한 질문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면 성자가 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왜 가난하냐고 물으면 화를 내고 욕을 먹는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주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난의 이유"를 밝혀 내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은 현상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와 환경을 지적해 내고 근본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기독교의 위험한 사상


Christianity's Dangerous Idea: The Protestant Revolution--A History from the Sixteenth Century to the Twenty-First, Sep. 1997, by Alister E. McGrath 560 pages
This is McGrath's third book title borrowed from his atheist bête noir Richard Dawkins. But don't let the titular borrowings fool you: this is an original and important book. Someone had to imitate the long, popular works of history being written on secular subjects from Lewis & Clark to FDR, and McGrath has the theological and historical expertise necessary to tell a story stretching from the Reformation's origins in the 16th century to today. The dangerous idea was Martin Luther's: that individual believers could and should read the Bible for themselves. The result was occasionally violent (as in the peasants' revolt and the English Civil War), occasionally brilliant (musicians like Bach, theologians like Calvin and Jonathan Edwards, poets like Milton) and certainly world altering (the Calvinist Reformation clearing space for the rise of secular science and capitalism). McGrath concludes not with the faith practices of present-day England or America, but with the increasingly Pentecostal global south. The book occasionally falls into the dry tone of a textbook and assumes points that historians would want to debate, but is still the most readable introduction to the history, theology and present-day practices of Protestantism. (Oct.) Copyright © Reed Business Information, a division of Reed Elsevier Inc. All rights reserved.
"맥그래스는 야심찬 사상을 대담하게 제시하면서 종교개혁으로부터 현대 세계 기독교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개신교와 그 변형들의 역사를 체계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아주 쉽게 읽을 수 있고, 놀라울 정도로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공정한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필립 젠킨스"


이 책은 개신교와 그 역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검토하여 재해석하고, 개신교가 지닌 놀라운 다양성과 내적 일관성을 함께 제시하며, 상세한 연구 내용을 통찰력 넘치는 광대한 해석들과 잘 결합시켜 놓았다.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했다. 정말 잘 쓴 책이다."-후스토 곤살레스"

각 사람이 성경을 이해하고 자신과 자신이 사는 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상은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에 무한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폭발적 사상이다. 이 책<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는 이 사상으로부터 발전된 것과, 이 사상이 전 세계 기독교의 현재와 미래에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독특하면서도 고귀한 도움을 제공해 준다."-댈러스 윌러드


옥스퍼드 석학,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념비적 저작!개신교 역사와 그 세계적 영향력을 새롭게 해석하다!
개신교의 중심에 자리 잡은 '위험한 사상'은 성경 해석이 각 사람의 권리이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원리가 확산되면서 개신교는 500년에 걸쳐 두드러진 혁신과 적응의 역사를 보여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일관성이 사라지고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고집불통인'사상들을 통제할 수 있는 최고 권위가 없었기에 쟁점을 놓고 논쟁하는 당사자들은 성경에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갖가지 수많은 해석들에게 그 문을 열어놓고 있다.
이 책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는 처음으로 개신교의 핵심 요소와 이 위험한 사상이 만들어낸 종교적, 문화적 역동성을 정의해 보려고 시도한 책이다. 이 종교적, 문화적 역동성은 결국 20세기에 이르러 개신교에 놀랍도록 새로운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적 명성의 옥스퍼드 석학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독특한 접근방법을 이용해 전 세계 개신교 교회들과 공동체들이 연관된 논쟁과 분열에 여전히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매력적 인물들과 운동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 1부(기원)는 연대를 따라 내려가며 역사를 관통해가는 유희를 제공한다. 2 부(표현)는 개신교의 신앙과 관습이 지닌 독특한 특징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3부(변형)는 전 세계 개신교의 미래에 대해 깜짝 놀랄 평가를 내리고 있다.


차례
들어가는 글
1부 기원
1장 몰려오는 폭풍
2장 우연히 혁명가가 된 혁명가 - 마르틴 루터
3장 루터의 대안들 - 종교개혁의 다양화
4장 힘의 이동 - 칼뱅과 제네바
5장 잉글랜드 - 성공회의 등장
6장 전쟁, 평화 그리고 무관심 - 위기에 빠진 유럽의 개신교 (1560~1800)
7장 미국의 개신교8장 19세기 - 전 세계로 뻗어나간 개신교
2부 표현
9장 성경과 개신교
10장 믿음과 특성 - 개신교의 몇 가지 두드러진 믿음들
11장 신앙의 틀 - 조직, 예배, 설교
12장 개신교와 서구 문화의 형성
13장 개신교와 예술 그리고 자연과학3부 변형
14장 미국 개신교의 변화상
15장 불의 혀 - 개신교 안에서 일어난 오순절 혁명
16장 개신교의 새 개척자들 - 남반구
17장 개신교 - 다음세대
옮긴이의 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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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알리스터 맥그래스1953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벨파스트에 있는 감리교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 등을 공부한 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의 위클리프 홀(Wycliffe Hall)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같은 대학에서 역사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역자: 박규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3월 교회 사역에서 물러난 뒤, 현재는 영미권과 독일어권 신학서 번역과 저작에 전념하고 있다. 역서로는 『종교개혁 시대의 영성』, 『기독교의 미래』, 『성경완전정복』(이상 좋은씨앗), 『약할 때 기뻐하라』(복있는사람), 『세상을 잃은 제자도 세상을 얻는 제자도』(국제제자훈련원) 등이 있다.
from 국제제자훈련원 "사랑몰"
올해 필독도서에 추가됨

7.14.2009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학습에 대한 두 관점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학습에 대한 두 관점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한국 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나라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어떤 면에서는 현재까지도 지배적인, 학습문화는 "수용"적 학습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수용적 학습관은 학습learning을 "지식의 수용"으로 이해한다. 이는 "공장의 생산라인"이나 "은행구좌"같은 메타포로 설명될 수 있다. 지식은 전달자(교사)로 부터 수용자(학습자)으로 전달되며 단시간 최대량의 지식을 전달하고 저장하는 것이 학습의 목표가 된다. 학습의 평가는 교사가 전달한 지식과 학생이 획득한 지식이 얼마만큼 일치하는가, 교사가 전달한 지식을 학습자가 얼마나 저장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수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오랬동안 수용된 지식을 정확하게 저장할 수 있는가가 최고의 관심이다.

수용적 학습관에 기초한 지식의 획득과 저장을 특징으로 하는 학습문화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담고 있다. (1) 지식은 객관적이며 독립적이다. 이 세상의 실체는 인식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지식은 실재에 대한 객관적인 표상이다. 지식은 언어를 포함한 매체를 통해 그 순수성을 상실하지 않고 유통될 수 있다. (2) 가르침 또는 교수instruction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교사는 축척되고 조직된 지식을 효과적으로 학습자들에게 전달하는 전달자transformer이다. (3) 학습learning은 전달된 지식을 획득하고 저장하는 것이다. (4) 저장된 지식은 언제든지 다른 상황에 적용된다. 지식의 적용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기초적이고 일반화된, 추상적 지식이 선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수용적 학습관은 여러가지 면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Paulo Freire는 수용적 학습관을 폭압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주입적 암기와 반복rote memory을 통해 이루어 지는 은행예금식(banking) 학습은 학습자들의 주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을 구속함으로서 개인의 인격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종속적이며 타율적인 인간을 양성한다고 보았다. 또한 학습의 실천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현격히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대화와 활동를 거부하여 배움을 고립된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공부"로 축소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수용적 학습문화는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창의력, 그리고 상상력같은 고차원적 사고의 발달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데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었다.

행동주의와 인지발달주의를 거처 1970년대 이후 끊임없이 주목을 받아온 학습에 대한 관점은 구성주의constructionism 관점이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지식은 인식의 주체인 학습자가 내적 인식과 외적 환경사이에서 끊임없이 구성, 해체, 재구성된다. 학습은 이러한 인식 주체의 능동적 지식 구성의 과정이다. 구성주의 학습관에서는 학습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학습자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과정이 학습이라고 보기 때문에 학습은 본질적으로 상황 의존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가가 학습의 내용과 결과를 규정하게 된다. 따라서 학습은 고립된 개인의 활동일 수 없으며 전달자와 수용자의 관계에서 처럼 일방적일 수도 없다.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구체적 학습의 상황이나 학습자가 처한 사회문화적 환경등이 학습에 있어 본질적인 요소들이며 따라서 학습은 상황적이고 사회적이다.

이러한 학습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교사와 학습자의 역할에 근본적 변화를 요청한다. 교사는 학습자가 주체적으로 지식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 또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학습자가 최대로 자기 자신을 개발 할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최적화 해 주어야 한다. 또한 학습자 개개인의 특성과 역사를 이해하며 그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인격적인 신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습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학습자를 신뢰하고 인내함으로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문화와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학습자는 학습의 주체로 자기 주도적이며, 창의적이고 비평적이며 탐구적인 학습행위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지식구성행위에 능동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스스로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을 떠받치고 있는 전제와 가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고와 행동에서 대립되는 차이점을 긍정하고 수용하며 상호 발전시키는 자세와 노력이 요구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함께 배워가려는 겸허한 마음과 구성된 지식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검증하고 확인하는 용기와 도전이 있어야 한다.

학습에 대한 수용적 관점과 구성적 관점의 차이점은 교회 사역에 대해 심각한 시사점들을 제공한다.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부터 시작하여 예배와 선교에 이르기 까지 교회 사역 본질중 하나는 칼빈이 지적한 바 대로 어머니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성도들을 단순한 성경지식의 전달과 문화화된 교회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도록 강요함으로서 현재도 상당히 진행되어 온 교회의 세속화를 심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을 준거의 틀로 삼아 개인과 공동체의 성향과 활동에 녹아 있는 세속성을 분별하도록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함양하게 하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문화를 창조하여 세상에 대안을 제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양육할지는 교회의 책임있는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학습"에 대한 이해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학습에 대한 두 관점을 생각하면서 실제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사역을 예로 들어 성찰해 보자. 위성을 통한 예배, 인터넷을 통한 신앙강좌, 텔레비전을 통한 복음 전도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성서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서는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수용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터넷이나 기타 위성과 텔레비전을 통한 신앙행위들은 원하는 정보를 습득하고 주관적 감정을 움직이는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데에는 상당한 도움을 주고 또 효과적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학습자/성도들의 필요와 취향에 따라 지식습득(신앙/말씀 강좌)과 신앙적 행위(예배)를 선택하고 향유할 수 있기 대문이다. 따라서 지식의 전달과 수용, 그리고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인터넷 예배나 성경공부는 탁월한 학습의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

한편, 구성주의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본다면, 학습자 또는 청중의 컨텍스트와 특성이 고려 될 수 없는 일방적 전달의 의사소통과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속에서의 상호작용이 없는 정보의 수동적 수용은 개인의 비판적 성찰 능력을 개발하고 더 넓은 진리를 이해하며 실천하는 데 주체적 노력을 기울이는 변화와 성숙을 가져 오기에는 제약되는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축척된 (수용된) 지식이나 경험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질적인 적용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는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

설교에 있어서 예를 들어 보자.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선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설교자를 "말씀의 대언자"로 보려는 시각이 있었다. 이러한 접근은 지식의 수용적 관점을 그대로 대변한다. 선포자는 전달하며 청중은 수용하고 축적한다. 성서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설교자의 고독한 작업에 의존하며 일체의 질문과 의심을 용납되지 않는다. "믿으시면 아멘하세요!"라는 설교자의 외침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토마스 롱을 주축으로 하는 "공동체적 증언"의 관점으로 설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설교자를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중 하나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역시 지식의 구성주의적 측면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대화적 설교dialogical preaching"를 통해 설교자가 청중들과 서로 양방향의 의사소통을 추구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고차원의 학습을 통한 창조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학습자의 필요와 동기, 그리고 삶의 현장과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일어나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학습을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듯 실제 삶에서 살아가는 방식, 즉 의사소통의 스타일, 조직의 구조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많은 차이를 나타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회과학의 발견과 발전을 잘 이해하여 좀 더 신학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 왕성하게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bk

4.14.2009

"그 신성한 덮개" -종교 사회학적 이론의 요소들

Peter Berger (1929-)
피터 버거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국 사회학자이며 루터파 신학자이다. 토마스 루크만Thomas Luckmann과 공저한 "실체의 사회적 구성" The 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 A Treatise in the Sociology of Knowledge (New York, 1966) 이라는 책으로 종교사회학 분야에 의미있는 공헌을 하였다.

3.29.2009

동양과 서양

동양과 서양의 문화차이는 의사소통에서도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메세지의 내용 뿐만 아니라 의사전달의 통로인 언어의 문장구조와 구문syntax도 큰 차이를 보인다. 다음 문장들을 관찰하면서 차이점을 찾아보자. 그리고 왜 그런 차이들이 나타나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

동: 접시가 깨졌네
서: I broke the plate.

동: 버스가 벌서 떠나 버렸어요.
서: I missed the bus.

동: 문제가 있어. 잘 되겠지만 말이야.
서: I have a problem. Let's talk about it.

동: 잔디깎기가 고장났네. 고쳐야지.
서: I forgot to check the oil in the lawnmower and burned out the engine.

동: 라디오가 없어졌어.
서: My radio was stolen.

동: 사고가 났어.
서: I was in an accident.

차이점들:


차이들의 원인들:

3.27.2009

문화의 정의들

Culture is "the collective programming of the mind that distinguishes the members of one group or category of people from others." Hofstede, Geert. Culture and Organization. 2005. p.5


호프스테드는 문화를 "정신의 프로그램" 또는 "정신의 소프트웨어"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본성과 개성의 사이에서 문화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습득되는 것이며 한 개인을 넘어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것이다.

12.16.2008

문화와 신학

Stanley J. Grenz

신학 일반과 특히 복음주의 신학의 지역적
(국지적) 성격은 그것이 문화적 활동이라는 데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현대에는 인류학자들이 문화를 문화적 집단의 성원들에게 외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개인들을 사회에 묶는 선재하는 사회 질서적 힘으로 묘사했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은 문화 안에서의 결렬과 나뉨(disjuncture)을 지적한다. 그들은 여러 다른 문화들이 전체를(wholes) 이룬다는 것을 쉽게 인정한다. 그런데 이 전체(wholes)는 단일한 성질의 것(monolithic)이 아니라, 내적으로 갈라진 것이라는 것을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은 지적하는 것이다.[24] 그래서 헨리 코헨(Henry Cohen)은 문화를 "사람들과 과정들을 통합(統合)시키기(integrates) 보다는 그들을 집적(集積)시키는(aggregates) "이라고 묘사한다.[25]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은 문화를 사회적 상호 작용의 결과나 산물이라고 말한다.[26] 사회는 공적 상징들의 의미를 규정하고 그렇게 해서 의견의 일치(consensus)를 형성하려고 계속 투쟁하는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집적(集積)이라는 것이다.[27] 결과적으로, 알랑 뚜랑(Alain Touraine)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사회 관계의 일반적 틀이나, 분명히 이해된 일단의 신념이나 가치들, 또는 주도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함께 엮어 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적 접착제는 "사회적 행동가들이 조절하고 통제하려 하고, 충용하며, 또는 그것들을 사회적 조직으로 변혁시킬 때 그들이 서로 양보하고 절충하는 일련의 자원들과 모델들"로 구성된다.[28]

신학은 모든 문화 안에 있는 의미를 형성하는 활동(the meaning-making activity)과 연관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신학은 특정한 사회의 건축 벽돌과 문화 의미의 전달자로서 기능하는 다양한 상징들과 실천들과 연관된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은 '기독교 문화적' 의미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형성하는 과제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스 프라이(Hans Frei)는 신학을 "기독교 공동체에 내재해 있는 규범이나 규범들 아래서 그 공동체 자체의 언어나 행동을 기독교 공동체가 다시 평가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29] 또한 캐떠린 태너는 신학을 "의미 생산에 전념하는 실질적 사회적 습관"(a material social practice that specialized in meaning production)이라고 선언한다.[30]
24 Kathryn Tanner, Theories of Culture: A New Agenda for Theology (Minneapolis: Augsburg Press, 1997), 56.
25 Anthony P. Cohen, Self Consciousness: An Alternative Anthropology of Identity (London: Routledge, 1994), 118-19.
26 Cohen, Self Consciousness, 118-19.
27 Tanner, Theories of Culture, 56.
28 Alaine Touraine, Return of the Actor, trans. Myrna Godzich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apolis Press, 1988), 8, 26-27, 54-55.
* 여기서 신학의 문화적 환원이 발생할 위험이 있음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신학이 문화 형성적 작업과 관련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의 여러 기능 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학의 의미를 이 글에서의 그렌츠와 같이 오직 문화의 의미 형성 작업과만 연관시키면, 신학의 다른 측면을 놓치고, 문화론적, 의미론적 환원일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역자 주).
29 Hans W. Frei, Types of Modern Theology, ed. George Hunsinger and William C. Placher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2), 2.
30 Tanner, Theories of Culture,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