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교회의 정신ethos은 저항protest이다. 근대주의에 함몰된 기독교신앙을 구출하고자 저항하는 이머징 교회의 실천들은 역설적으로 탈근대주의에 과도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신의 존재기반인 '저항정신'을 스스로 위협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탈근대화가 그토록 해체하고 싶어하던 근대성의 뿌리는 바로 자기 이성과 합리성을 숭앙하는 자기중심성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으로 대변되는 이시대의 정신은 상대주의, 다원주의, 개인주의로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근대성의 전체주의, 획일주의, 집단주의의 숭배대상인 자기중심성에는 조금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면서 오히려 인간에게 부여된 보편자와 도덕률에 대한 인식능력은 부정함으로써 인간이성을 파도에 밀려 표류하는 부유물정도로 전락시켜버렸다. 이러한 탈근대주의에 의존하는 이머징 교회들이 갖는 위험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전통과 경험과 이성과 문화를 재해석하고 교정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 상징과 경험을 형성하고 촉진시키려는 문화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에 과도히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편,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의 개혁대상은 바로 교회 자신이며 개혁의 근거는 다른 어떤 사상이 아닌 진리의 말씀(sola scriptura) 이어야 한다는 개혁자들의 오래된 기치는 개인과 공동체가 진지하고 겸손한 자기성찰을 추구하는데 초월적 힘을 의존하게 함으로 자기 한계를 뛰어 넘어 계속되는 변혁과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사고의 틀(frame of reference)을 제공한다고 하겠다.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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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2010
12.16.2008
문화와 신학
신학 일반과 특히 복음주의 신학의 지역적(국지적) 성격은 그것이 문화적 활동이라는 데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현대에는 인류학자들이 문화를 문화적 집단의 성원들에게 외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개인들을 사회에 묶는 선재하는 사회 질서적 힘으로 묘사했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은 문화 안에서의 결렬과 나뉨(disjuncture)을 지적한다. 그들은 여러 다른 문화들이 전체를(wholes) 이룬다는 것을 쉽게 인정한다. 그런데 이 전체(wholes)는 단일한 성질의 것(monolithic)이 아니라, 내적으로 갈라진 것이라는 것을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은 지적하는 것이다.[24] 그래서 헨리 코헨(Henry Cohen)은 문화를 "사람들과 과정들을 통합(統合)시키기(integrates) 보다는 그들을 집적(集積)시키는(aggregates) 것"이라고 묘사한다.[25]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은 문화를 사회적 상호 작용의 결과나 산물이라고 말한다.[26] 사회는 공적 상징들의 의미를 규정하고 그렇게 해서 의견의 일치(consensus)를 형성하려고 계속 투쟁하는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집적(集積)이라는 것이다.[27] 결과적으로, 알랑 뚜랑(Alain Touraine)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사회 관계의 일반적 틀이나, 분명히 이해된 일단의 신념이나 가치들, 또는 주도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함께 엮어 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적 접착제는 "사회적 행동가들이 조절하고 통제하려 하고, 충용하며, 또는 그것들을 사회적 조직으로 변혁시킬 때 그들이 서로 양보하고 절충하는 일련의 자원들과 모델들"로 구성된다.[28]
신학은 모든 문화 안에 있는 의미를 형성하는 활동(the meaning-making activity)과 연관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신학은 특정한 사회의 건축 벽돌과 문화 의미의 전달자로서 기능하는 다양한 상징들과 실천들과 연관된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은 '기독교 문화적' 의미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형성하는 과제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스 프라이(Hans Frei)는 신학을 "기독교 공동체에 내재해 있는 규범이나 규범들 아래서 그 공동체 자체의 언어나 행동을 기독교 공동체가 다시 평가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29] 또한 캐떠린 태너는 신학을 "의미 생산에 전념하는 실질적 사회적 습관"(a material social practice that specialized in meaning production)이라고 선언한다.[30]
24 Kathryn Tanner, Theories of Culture: A New Agenda for Theology (Minneapolis: Augsburg Press, 1997), 56.
25 Anthony P. Cohen, Self Consciousness: An Alternative Anthropology of Identity (London: Routledge, 1994), 118-19.
26 Cohen, Self Consciousness, 118-19.
27 Tanner, Theories of Culture, 56.
28 Alaine Touraine, Return of the Actor, trans. Myrna Godzich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apolis Press, 1988), 8, 26-27, 54-55.
* 여기서 신학의 문화적 환원이 발생할 위험이 있음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신학이 문화 형성적 작업과 관련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의 여러 기능 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학의 의미를 이 글에서의 그렌츠와 같이 오직 문화의 의미 형성 작업과만 연관시키면, 신학의 다른 측면을 놓치고, 문화론적, 의미론적 환원일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역자 주).
29 Hans W. Frei, Types of Modern Theology, ed. George Hunsinger and William C. Placher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2), 2.
30 Tanner, Theories of Culture,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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