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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011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오늘 새벽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다.
내 마음에 가득찬 죄의 비열함과 부패의 역겨움
입을 여는 것 조차 두려운 절망  


그러나 주님은 찬양을 주셨고, 내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
나의 죄악에 고통하시는 하늘 아빠의 가슴아픔
죄악된 나와 일그러진 세상을 회복하시려는 창조주의 열정
그 말씀하신 바를 결단코 이루시는 전능자의 결심

내 마음은 녹아내렸으며 새로운 책임감과 삶에 대한 의욕이 솟아난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를 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단순한 기쁨이나 만족보다 더 깊은 차원의 갈망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카도쉬!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게 사랑을 가르치소서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의 성령 내게 채우사 주의 길 가게 하소서 주님 당신 마음 주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주소서 (x2)

11.10.2010

피그말리온 효과

redwiki: 피그말리온 효과

고대 그리이스에 살던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는 고민을 했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어야하는데 모델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예쁘다는 여자를 봐도 성에 차질 않았고, 자기가 찾는 이상적인 모델을 찾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모델 없이 조각을 하기로 결정했다. 현실에서는 없는, 자기 머릿속에만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기로 한 것이다.


이 조각상은 지상의 어느 여자도 감히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한 처녀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작품에 완전히 빠져 버린 피그말리온은 이 조각상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수줍음을 많이 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조각상인 갈라테아를 깊이 흠모하게 되었다.


그는 조각상이 살아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가끔씩 만지기도 하고, 끌어 안기도 하고, 여러 장신구들로 꾸미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조각상이 단지 상아에 불과하다는 것 때문에 슬픔을 갖게 되었다. 슬픔이 깊어지자 그는 조각상에 옷을 입히고, 보석으로 장식도 해주며 한없는 애정으로 슬픔을 달랬다.


덕분에 조각상은 갈수록 더 살아있는 것 같았다. 급기야 피그말리온은 뮈로스 지방에서 나는 염료로 물들인 천을 덮은 침대와 부드러운 깃털을 넣고 만든 베개에 갈라테아를 눕히고, 그녀를 아내인양 대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프로디테의 제전이 다가왔다. 피그말리온은 이 제전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다 끝내고 난 후 제단 앞에서 갈라테아와 같은 여인을 아내로 점지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이 때 제전에 참석해 있던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알아채고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표시로 제단의 불길을 세 번이나 위로 솟아오르게 하였다.


소원을 빌고 집에 돌아 온 피그말리온은 침대에 있는 사랑스런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각상의 입술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피그말리온은 놀라면서 이번에는 조각상의 손을 만져보았다. 조각상은 피그말리온의 손을 잡았다.


조각상은 그의 소원대로 살아있었다.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고 기쁨에 겨워 다시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다. 조각상은 그의 입맞춤에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피그말리온을 바라보았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본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맺어준 아름다운 한 쌍의 연인들에게 한없는 축복을 내렸다.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과 결혼을 하고 파포스라는 딸을 낳게 된다.





심리학자 로젠탈(T.L.Rosenthal)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한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어린이 지능향상을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테스트 입니다. (사실은 거짓말)"


라고 설명을 해 놓고 검사를 실시했다. 그 후 20% 정도의 아이를 난수로 뽑아 놓고 "이 애들은 앞으로 지적발달이나 학업이 틀림없이 급상승할 것입니다"라고 선생님에게 결과보고를 해 주었다.


그런 암시후 8개월이 지난 다음 과거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지능 테스트를 하여 지난 번의 지능테스트 결과와 비교해 보았다. 그랬더니 앞으로 잘 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던 이이들의 지능이 다른 아이들의 지능에 비하여 현저하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의 이름을 따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선생님이 20%의 아이들을 지적 발달과 학업성적이 향상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정성껏 돌보고 칭찬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니까 공부하는 태도도 변하고 공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결국 능력까지 변하게 된 것이다.


이 결과로 "칭찬하면 칭찬한 만큼 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은 직장에서도 적용된다. 주위에 칭찬과 격려가 풍부하게 흘러다니는 부서와, 질책이나 강요만이 남발하는 부서는 그 구성원들의 애착심이나 생산성에 있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나타나려면 무엇보다도 구성원 상호간의 진지한 관심과 애정 및 인간적인 존중감이 실린 칭찬과 기대가 전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조직의 리더는 부하사원들에게 칭찬을 통하여 회사생활의 즐거움과 기대감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기다림





기다림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좀더 많은 기다림을 내 생활 속에 만들어 놓고 살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나누게 될 아름다운 사랑의 기다림, 좋은 우정의 기다림, 행복한 결혼의 기다림, 배움과 성숙의 기다림, 지혜와 겸손의 기다림 등등. 많은 기다림을 바다에 그물을 내리듯 내 생활 속에 펼쳐 놓으면 많은 행복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기다림은 삶의 맛을 달게 하며 향기롭고 윤기나게 하며, 늘 지금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믿음과 신뢰가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소망이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오면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강이 또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을 따라 지나간 날들의 그리움과 앞으로 올 날들의 기다림을 하나씩 만나게 될것입니다. 올 가을에는 지난날의 그리움도 만나야 하겠지만 좋은 기다림을 더 많이 만나보면 좋겠습니다. 

5.17.2010

한번도 가지 않은 길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나섰다.
난데 없이 교회 뒤쪽으로 난 산을 따라 걸으며 기도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혼자서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내 마음이 "가보자"와 "가지말자"로 나뉘어 분열하기 시작했다.
가지 말자는 쪽이 더 좋은 그리고 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가보자는 쪽은 시덥지 않은 한두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한가지 이유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소망이었다.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이 있으리라는, 어렵더라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는 소망과 기대 말이다. 소망이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나는 그 때 배웠다 .

아직도 검푸른 여명속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두려운 마음을 흥얼흥얼 찬양으로 잠재우며 걷다가 작은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갑자기 큰 개가 미친듯이 짖어대며 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너무 놀라 거의 중심을 잃고 나 자빠지려 하는 찬라에 내 몸을 덮칠 그녀석의 거친 앞발과 내 목을 향해 날아오는 날카로운 이빨을 상상했다. 그러나 나는 넘어지지도 물리지 않았다. 개와 나 사이에는 철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놀랬으나 현실적으로는 아무일도 생기지 않았다. "돌아갈까?"하는 마음이 놓치지 않고 고개를 바짝 들었으나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번연의 주인공 크리스천이 쇠줄에 묶인 사자의 포효에 주춤하며 전진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계속 짓어대는 개에게 예수님처럼 "잠잠하라"고 영어로 말해 주었다-shut up!

물이 말라버린 얕으막한 계곡에 지저분한 쓰레기들과 버려진 차들이 보였다. 높은 기둥에 마치 피가 흐른듯이 빨간색 페인트로 갱단원들이 한 것 처럼 여겨지는 지저분하고 기괴한 낙서들이 역겨운  냄새와 함께 기분을 상하게 하자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결코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소망이 위협을 당하자 다시 두려움이 업습한다. "돌아가자..."

그러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웠고 아찍 끝나지 않았다는 새로운 소망거리를 찾아내었다.
한 30분을 더 기도하며 산을 오르자 온 몸에서는 땀이 흐르고 기도는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산의 정상에 섰을 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아름다운 절경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인내하지 앟았으면, 두려움을 물리치지 않았으면, 소망을 포기했다면 결코 볼 수 없었던 장관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가득 차 올랐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그리고 소망은 사랑으로 가득찬 성품을 만들어 낸다는 바울의 고백을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정상에서 내려 올 때 하나님은 또다른 선물을 준비하고 계셨다. 산을 오를 때 겪었던 장애물들의 실체가 찬란한 아침 햇빛 아래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위협적이었던 모든 것들이 별것 아닌 것이 되어있었다. 오를 때 의심되었던 하나님의 임재가 내려갈 때는 자부심과 성취감, 보람과 삶의 긍정으로 충만하였다. 시내산을 내려가는 모세의 기분이 그랬을까?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은 두려운 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길이 행복하고  의미있고 보람된 길이 된다는 사실 또한 틀림없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 자신이 행복이며 의미이며 보람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길을 끝까지 마쳐본 사람만이 그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으며, 그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성숙을 노래할 수 있을뿐이다. 

bk

너른 사람

마음과 사고와 태도, 그리고 언어에 있어서 깊고 너른 사람이 되고싶다.

상대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너그럽고 오래참지만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서는 솔직하고 엄정한 사람이고 싶다.

상대의 장점과 선한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칭찬하고 격려하지만

자신의 성과나 장점에 대해서는 겸손하며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예수님께서 그런 분이셨고 지금 내게도 그렇게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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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원한지 10년이 넘어가건만 여전히 일말의 진보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오호 통재라...

bk

6.16.2009

받아들임


"나는 받는 법, 감사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인내와 받아들임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얻어야 할 배움입니다. 사랑을 받고, 보호를 받고, 보살핌을 베푸는 대신 보살핌 받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내가 마음의 주위에 큰 돌담을 쌓아놓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설계한 것이지만, 사랑이 들어오는 것도 막았습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인생수업> 중에서

6.13.2009

수용과 견딤

'수용'은 매력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소비자 만족'이 중심인 시대에 사람들은 직접 메뉴를 살펴보고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원하지 않는 것을 거절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환영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힘든 현실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수용하는 것은 더욱 낯설고 불편할 뿐입니다.

'견딤'도 매력적인 단어가 아닙니다. 빠른 변화, 초고속 인터넷, 퀵 서비스 등으로 원하는 모든 것이 신혹히 제공되는 시대에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싫증이 나면 쉽게 버리고 새것으로 바꿉니다. 불만족스러운 사람과의 관계나 상황을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라는 말씀은 무겁고 힘든 부담일 뿐입니다.

그러나 수용과 견딤의 과정이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사람이란 단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신령한 은사로 능력을 행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수용과 견딤을 통해 주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을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게 되고 그를 통해 복음과 생명이 전해집니다.

이훈 "영성의 길 9"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롬15:7)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 21:19)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을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3)

3.31.2009

내 인생은 십자수

My Life
- Anonymous

My life is but a weaving, between my God and me,
I do not choose the colors, He worketh steadily.

Of times He weave the sorrow, and I in foolish pride,
Forget He sees the upper, and I the underside.

Not till the loom is silent, and shuttles cease to fly,
Will God unroll the canvas and explain the reason why.

The dark threads are as needful in the skillful weaver’s hand,
As the threads of gold and silver in the pattern He has planned.


내 인생

내 인생은
하나님과 나, 둘이서 꾸며가는 십자수라네
나 아무런 색상도 고르지 못할 때
그 분의 손길은 여전히 바쁘다오

때론 칙칙한 실 꿰어가는 그 분을 보며
내 눈가에
불만이 차 오른다네
그 분의 시선 머무는 곳을 벌써 잊었기 때문이라오

꿰메고 자르고 잇대어 옹쳐 매고
머지 않아 바지런한 두 손을 멈춘다네
그림 펼쳐들고 그 분이 친히 설명하신다오
그 때는 왜 그렇게 하셨는지

나 원치 않던 어두운 실들도
청실 홍실만큼이나 소중하다네
내 인생 가꾸시는 그 분의 계획 속에
이 모든 것 어우러짐을 그제서야 보게 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