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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2011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다.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다
                                                                          
                                                 -박해조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합니다.
둘은 혼인해 살게 됩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합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을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합니다.
문제를 잘못 풀어 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소와 사자는 다툽니다.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헤어지며 서로에게 한 말,
"난 최선을 다했어"였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입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를 못보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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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이루는 가정을 비평적으로 평가하여 자신의 관점을 교정하는 일련의 사고방식을 "비평적 사고critical thinking"라 한다. 중요한 점은 공동체, 즉 갈등과 그 너머를 수용할 수 있는 관계가 없이는 비평적 사고는 일어날 수도 그리고 교정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bk 

10.04.2010

주체적 사고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아이러니irony," 즉 의심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 형식으로서의 풍자가 만들어낸 결정적인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개인이 자신의 신념을 성찰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natural attitude를 우회적으로 해체시켰다는 것이다. (풍자irony를 통해) 개인은 객관적 지식의 확실성을 상실하는 반면에 자기 자신(또는 주관적 자기해석)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야 비로소 개인은 자신이 지식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닿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지식이 '무엇'인가라고 묻기 보다, 개인이 어떻게 지식과 자기 자신을 연결시키면서 자기 주관을 유지하는 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키에르케고르가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인식하는 사람과 그가 인식하는 내용을 날카롭게 분리시켜버렸다. 어떻게 인식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 인식하는 내용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Ronald J. Manheimer, Kierkegaard as Educator,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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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2010

성공하는 가르침의 10가지 법칙

1. 가르치려 하지 말라; 대신 가르치려는 대로 살아라.
2. 말로 바뀔것이라는 근거없는 가정을 버려라.
3.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대신 직접 보여 주어라.
4. "벌"로서 다스리려 하지 말아라; 고래조차 벌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로 변한다.
5. 최고의 선생이 되려고 하지 말아라; 대신 최고의 학습자가 되도록 도우라.
6. 당신이 알고있는 것에 집중하게 말아라; 학습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주목하도록 하라.
7. 학습자를 과소평가하지 말아라; 대신 그들의 눈높이에서 시작하라.
8. 책에 의존하지 말아라; 책은 필수적이나 삶은 책에 제한되지 않는다.
9.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경청은 배움의 시작이요 끝이다. 반드시 개발되어져야한다.
10. 속해있는 교육기관의 문화를 존중하라.

Dr. Ted W. Ward
Professor Emeritus of Education and International Studies
Michigan State University and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http://www.wardconsultation.org/
http://www2.talbot.edu/ce20/educators/view.cfm?n=ted_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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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종이에 글을 써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이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강한 흔적을 남김으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사람이 있다. 워드 박사의 삶은 후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미시건 주립대(MSU)와 트리니티 신학대학원(TEDS)에서 40년 이상을 가르쳤던 테드 워드박사는 교육자 리더십 개발에 있어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의 제자들이 미국 신학대학원과 선교단체를 식민지화하고 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돌 정도이면 그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의 가르침은 학습자의 역량을 최대한 그리고 지속적으로 개발하도록 돕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그의 확고부동한 교육철학에 기초한다. 이를 위해 워드 박사는 학습자 중심의 가르침, 학습공동체를 통한 협동학습, 그리고 엄격한 질적연구조사방법을 강조하였다.

80에 가까운 노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정신은 날카롭고 균형있으며 그의 마음은 따듯하고 겸손하다. 평생을 교육자 개발에 헌신해 온 그가 이제 막 박사과정에 입문한 교육자들에게 작은 선물처럼 전해 준 "성공적인 교사의 십계명" 생각해 보니 그의 교육철학에 뭍어있는 집요하고도 지혜로우며 깊이있는 사람사랑을 느낄 수 있다.

bk

12.15.2009

인생성공 단십백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내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온 존재로 호흡하는 시대정신을 분별하며,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절대명령의 소명을 받들고 살아가려면 깊이있고 체계적인 독서와 사색이 필수적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명의 샘물을 길어 마시는 지혜를 터득하려면 같은 고민과 질문 속에 몸부림첬던 인생선배들의 정돈된 생각들로부터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독서와 사색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삶의 습관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들에게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 필수적이듯 실천적 삶을 위한 독서와 사색도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효과적인 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 지도자, 그리고 헌신된 팀의 삼요소가 갖추어 져야 합니다.

이제 막 독서와 사색의 훈련을 통해 변화를 소망하며 발걸음을 내딛는 크리스찬 젊은이들을 위해 필요한 책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책 선정의 기준은 (1) 꾸준히 영향력을 주는 고전에 속할 것, (2) 너무 전문적이거나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 (3) 분량이 적절해야 할 것, (4) 지속적인 독서를 권장하고 지침을 줄 것, (5) 다양한 분야를 망라할 것을 고려하였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수정 보완하여 "내 인생의 100권의 책"을 만들고 그 책들을 통해 받은 유익을 정리해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 봅니다. "인생 성공 단십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스승 한분, 마음을 나누는 친구 열명, 그리고 삶의 토대를 제공해 줄 백권의 좋은 책을 가지고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뜻이겠지요. 진정한 스승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삶을 나누기로 헌신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나의 인생을 풍성하고 견고하게 할 100권의 책을 정리해 보는 일일 것입니다.


(Link) 내 인생의 100권의 책: The 100 Books of My Life

bk

11.03.2009

선배로 부터 듣는 리더십 훈수

리더의 책무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들과 팀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일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다른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세운 후에는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덴버 세미나리를 떠나올 때 학교의 전통에 따라 초상화를 찍을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팀으로 일했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면 팀 모두가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초상화 대신 함께 일한 팀사진을 건다면 승락하겠다고 했더니 실무자들은 무척 난감해 했고 이사들은 화를 내었습니다. 이상하죠? 리더가 팀으로 일한다는 것은 리더의 존재적 전제조건이기도 합니다. 팀이 없는데 무슨 리더가 존재한단말입니까? 좋은 리더가 있다는 것은 좋은 팀이 있다는 전제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좋은 팀의 핵심은 유기적 다양성과 하나됨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리더는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교만한 이상을 내려 놓아야합니다. 즉 리더는 전략적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리더십 스타일에도 해당되겠지만 또한 조직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모든 부서가 A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상적으로는 모든 부서들이 보통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리더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몇가지에 신중하게 계획된 에너지와 자원을 집중해 탁월성을 나타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참 이상하게도 나머지 부분들도 같이 개발되기 시작할 테지만, 그렇지 못하면 모든 것이 지리멸렬해 집니다.

전략적 목표세우기는 문제의 핵심을 간파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내가 트리니티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배운 것 중 가장 값진 것은 "문화인류학적 연구조사ethnographical research"방법을 배운 것입니다. 즉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기저에 감춰진 문제의 핵심을 찾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학과 철학 뿐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문화학등을 배우지 않습니까? 어떤 한 현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합니다. 리더는 단편적인 이해를 가지고 현상을 해결하려 하면 안됩니다. 보이는 현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잠재된 다른 문제들을 부상시켜 어려움을 가중시키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현상을 가져온 더 근본적인 수준의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이런 능력은 경험이 쌓인다고 저절로 갖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의도적이고 깊이있는 대화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팀 모두가 이러한 자질을 갖추도록 함께 배우는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리더십의 덕목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왜 Trinity 의 EDS program이 전 세계의 수많은 리더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와 연관됩니다. 리더는 기본적으로 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리더는 항상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귀에 따갑도록 들었겠지만 배움learning은 혼자하는 지식 습득으로서의 공부study가 아닙니다. 배운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사고 패턴을 교정하고 확장해 가는 과정입니다. 필연적으로 자기 생각의 습관과 틀을 비평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내 방식을 고집하는 것, 자신의 직관을 의심하지 않는 것, 듣고 이해하고 질문하기 보다는 지시하고 설명하고 통제하는 것, 의사소통이 권위적으로 되는 것, 홀로 스타가 되어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리더들이 진정한 "배움의 자세"를 잃어 버렸을 때 나타나는 부정적 증상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일들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꿈과 비전이 (내 것이 아니라) 현실화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고정된 사고체계가 배움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교정되고 확장되어야만 합니다. 이런 점에서 리더는 모든 상황과 환경, 특별히 하나님이 함께 두신 동료들을 통해 심각한 자세로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리더에게 요구하시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하나님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은 우리를 낙심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리더들은 끊임없이 이러한 도전의 한복판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리더들은 책임감responsibility을 통해 힘을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책임을 감당하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도전들보다 크시며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십니다. 그리고 감당할 힘을 주시고 친히 이끌어 가십니다. 도전이 클수록 책임은 무거워 지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도 더 커지고 감당할 능력도 더욱 강하게 자라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을 때 책임을 통해 힘을 얻게 되며 배움에 대한 "용기"와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일련의 교과과정(Curriculum)이니까요. 그리고 그 교과과정은 언제나 완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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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신학대학원과 대학교에 신임 총장으로 부임한 Craig Williford는 덴버 세미나리의 전 총장이었으며 오랫동안 지역교회를 목회하기도 하였다. Ted Ward, Linda Cannell, Warren Benson, Perry Downs의 지도로 성인교육과 영성개발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가 선배로서 EDS Advisee Meeting 에 시간을 내어 참석하였고 함께 피자를 먹으며 나눈 대화에서 연륜있는 크리스찬 리더의 깊은 통찰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내가 배운 것들이 장래에 어떻게 쓰여질 것인가에 대한 한 모델을 보는 것 같아 기뻤다. 여러 질문과 대답을 통해 진술된 내용을 나름대로 요약 정리 각색해 보았다.
bk

7.20.2009

학습욕구

"Humans are the learning organism par excellence. The drive to learn is as strong as the sexual drive--it begins earlier and lasts longer."

Edward Hall

학습에 대한 욕구는 성욕보다 강하다. 학습욕구는 성욕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며 보다 오랫동안 지속된다.

7.04.2009

배움을 위한 기도

배우게 하소서 -존 베일리-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을 잘 이용하여
죄의 열매를 거두지 않고
성결의 열매를 거두게 하소서

실망으로 희망을 배우게 하소서
성공으로 감사를 배우게 하소서
불안으로 참음을 배우게 하소서
위험으로 담대함을 배우게 하소서

비난으로 오래 참음을 배우게 하소서
칭찬으로 겸손을 배우게 하소서
기쁨으로 절제를 배우게 하소서
고통으로 인내를 배우게 하소서

6.19.2009

회개와 배움

To grasp the meaning of "metanoia" is to grasp the deeper meaning of "learning," for learning also involves a fundamental shift or movement of mind.

Peter Senge, The Fifth Discipline, Doubleday, 2006 revised ed., p. 13

배움은 그 깊고 진정한 의미에 있어 "회개"에 상응한다. 진정한 배움은 단순한 지식습득의 피상성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과 생각과 감정과 행동의 통전적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와 왔다"는 요한과 예수의 선포는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가치체계, 새로운 관점으로의 인식의 전환을 명령한 것이었다. 실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생각의 틀'에 비판적 성찰을 요청한 후에는 예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원리를 선포하는 discourse강화들이 뒤따르며 이를 바탕으로 실제 삶에서 구체적인 행동의 변화와 교정이 촉구된다.
진정한 배움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변화이며 더 나아가 전 인격의 통합으로서 "영혼의 변화"이다. 이런 점에서 탁월한 조직은 계속적인 "회개"를 통해 세상과 개인의 의미있는 발전과 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직이라는 Senge의 통찰이 기업 경영의 영역에서 활발히 논의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나의 가정, 내가 속한 공동체가 "회개"하는 공동체인가 생각하고 점검하며 진정으로 회개할 일이다.

bk

4.07.2009

존재 이유와 존재 양식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점은 우리가 교회의 존재 이유와 존재양식을 혼동하는 것입니다...예배와 선교 자체가 교육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모든 영역이 교육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구원의 주체도, 매개도 아닙니다... 교회는 화해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은준관-

초기 웨스터호프John Westerhoff의 공동체적 접근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그는 90년대 이후 개신교회의 양적 정체와 사회적 신임 상실에 대한 원인을 웨스터호프의 이론에서 찾으며 신앙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어 지는 것이며 공동체의 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Westerhoff의 주장을 한국적 상황에 접목시키려 애쓰고 있다.

이런 점에서 100여년 전 스미스Shelton Smith의 비판은 예언자적이다. 역사는 주일학교를 통해 교회 공동체에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을 한번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래서 진정한 기독교 교육은 구속적 학습공동체의 존재양식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기능적 측면에서도 적합성을 가진다는 나의 생각은 더욱 공고해 진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 나라의 구속적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 16, 28; 요 17, 엡1, 4).
bk

3.05.2009

호기심

Curiosity is the thirst of the soul.
호기심은 영혼의 갈증이다.

Samuel Johnson

질문

No man really becomes a fool until he stops asking questions
질문하기를 멈추기 전 까지는 누구도 멍청하지 않다.

-Charles P. Steinmetz-

"Believe those who are seeking the truth. Doubt those who find it."
--Andre Gide
슬라이드 10

2.13.2009

종교 교육의 목적

사랑하는 당신에게,

William Ellery Channing이라는 미국 교육자가 쓰신 글을 읽다가 감동받은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Channing은 1780년에 태어나신 분이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조선시대 정조때 사람이에요. 이 분이 1830년에 선데이스쿨 연합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내용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요.

"진정한 종교교육의 목적은, 그것이 주일학교에서건, 아니면 가정에서건 간에, 우리의 생각을 아이들의 마음에 도장 찍듯 새겨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불러 일으키도록 돕는 것이며; 아이들이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탐구하면서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정해진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고취시키는 것이며; 외적 규범들을 형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며; 암기의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능력을 강화시키고 촉진시키는 것이며; 편협하고 좁은 특정한 그룹의 뿌리깊은 편견으로 아이들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주제이든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며; 진정한 기반 없이 그저 어른들의 전통과 규칙들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일깨우고 도덕적 분별력을 함양하게 함으로 아이들이 자신과 세계를 위해 궁극적으로 선하고 옳은 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안과 밖에서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 눈을 열어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광대하신 성품을 보게 하여 그를 흠모하며 닮아가고 싶은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William E. Channing, The Sunday School: A Discourse Pronounced Before the Sunday School Society (Boston: James Munroe, 1838), 9-10.

너무나 옳기에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한 진술이지요? 그런데 이분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그저 위대한 선생님으로 보는 유니테리안주의자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가 무슨 주의의 사람이었건 간에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 많큼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말로 설명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주셨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되 한번도 강요하신 적이 없으세요. 다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자라도록 꿈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그분은 한번도 자기처럼 생각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대신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전하셨고, 정형화된 교리와 도덕주의에 안주하며 사람들을 정죄하고 스스로 분리되려고 했던 종교지도자들을 무섭게 비판하시고는 말씀과 율법에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현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무시당하던 절대 약자인 아이들을 "천국의 주인"으로 표준화 하시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시고는 꼬질꼬질 더럽고 냄새나고 천방지축인 가난한 아이들을 사랑으로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교사이셨던 그분의 가르침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어디 아이들 뿐 이겠습니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죽는 그날 까지 배워가는 평생 학습자들입니다. 진정한 개인과 사회의 변화는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상대를 존중하고, 공동체를 가치있게 여기며, 서로 다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배우고 자라가려는 겸손한 마음의 태도 속에서, 그리고 각자가 처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너른 상상력과 공교한 실천적 지혜로 대안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무엇보다 우리 안에서 일을 이루어 가시는 삼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러한 믿음을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180년 전에 선포된 Channing의 교육에 대한 메세지를 대하면서 내가 받았던 교육과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을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끄러운 복잡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부러 "사람으로는 할 수 없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어 보며, 아이들과 우리 자신을 위한 특별한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무릎꿇기를 고대해 봅니다.

오늘도 힘내시고 많이 행복하세요.

bk

1.02.2009

이해하기 위해 믿는 신앙


I do not seek to understand that I may believe, but I believe in order to understand (fides quaerens intellectum). for this I believe-that unless I believe, I should not understand.

Anselm (1033-1109), Proslogium


Anselm is the most important Christian theologian in the West between Augustine and Thomas Aquinas. His two great accomplishments are his Proslogium (in which he undertakes to show that Reason requires that men should believe in God), and his Cur Deus Homo? (in which he undertakes to show that Divine Love responding to human rebelliousness requires that God should become a man).

12.31.2008

실수

실수를 두려워 마라

실수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빨리 배운다.
실수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깊게 배운다.
실수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쉽게 적응한다.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 여훈의《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최고의 선물》중에서 -


* 맞습니다.
실수를 두려워하면 발전도 전진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반드시 경계할 것이 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고도리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