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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2011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다.


눈먼 최선은 최악을 낳는다
                                                                          
                                                 -박해조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합니다.
둘은 혼인해 살게 됩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합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을성은 한계가 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합니다.
문제를 잘못 풀어 놓으면
큰 사건이 되고 맙니다.

소와 사자는 다툽니다.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
헤어지며 서로에게 한 말,
"난 최선을 다했어"였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입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를 못보는 최선-
그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을 낳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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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이루는 가정을 비평적으로 평가하여 자신의 관점을 교정하는 일련의 사고방식을 "비평적 사고critical thinking"라 한다. 중요한 점은 공동체, 즉 갈등과 그 너머를 수용할 수 있는 관계가 없이는 비평적 사고는 일어날 수도 그리고 교정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bk 

2.12.2011

1.04.2009

죄의 발전

Hieronymus Bosch's Garden of Earthly Delights.

죄의 발전과정에 대한 설명은 바빙크와 오웬을 참조하라.

(1) 유혹
(2) 자유/순종에 대한 혼동
(3) 의심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4) 불신앙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파기)
(5) 상상의 자유로운 확장
(6) 의지와 감정이 어우러진 계획
(7) 작은 실행
(8) 욕심/정욕의 확장
(9) 더 큰 실행

1.01.2009

고통스러운 조사

축구 팀에 비유한다면, 운동장에서 뛰는 11명의 선수들 가운데 4명만이 어느 쪽 골대에 골을 넣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셈이다. 또한 11명 가운데 2명만이 골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자기 포지션과 그 역할 을 알고 있다. 2명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상대팀과 싸우기 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을 것이다.

Stephen Covey, The 8th Habit, 22

12.27.2008

목표

"목표는 현재 상태와의 계획된 갈등이다"

목표에 이른다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것, 안정된 상태라는 편안하고 익숙한 영역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미개척지로 탐험 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는 일은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경험일 수도 있다.

-중력을 이겨 하늘을 날으려면 중력을 극복할 만큼의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SMART의 법칙

Specific
Measurable
Action-Oriented
Realistic
Timely

12.22.2008

학문과 자유

Abraham Kuyer (1837-1920)


하나, 학문이 융성하기 위하여 대중의 마음이 자유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교회는 삶이ㅡ 유일한 목적을 공로를 통해 하늘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교회가 주된 목적과 일치한다고 인정하는 만큼만 세상에서 향유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무도 지상적 실존에 대한 연구에 공감을 갖거나 헌신할 수가 없었다. 모든 참된 칼빈주의자에게 복된 상태는 '중생'에서 자라며 '성도의 견인에 의하여 보증된다. '믿음의 확실성' 근거로,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에게 창조 명령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가운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땅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고, 대양과 자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자연의 속성과 법칙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문을 권장하기를 꺼리는 백성이 새롭고 활기 넘치는 힘으로 자유의 느낌을 향유하도록 학문에 박차를 가했다.


갈등은 신앙과 학문의 갈등이 아니다. 그런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은 어느 정도 신앙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학문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잘못된

앙이거나 미신이다. 참되고 진정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신앙을 전제한다.

특별히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원리에서 신앙을 전제한다. 이는 학문적 탐구에 필요한 모든 공리가 우리의 자의식과 더불어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반면에 모든 신앙은 발언하려는 충동을 내적으로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신앙은 말과 용어와 표현을 필요로 하고, 말들은 사상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 사상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함께 상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이 우리의 의식에 빛을 비추자마자 학문과 논증의 필요가 생겨난다.


따라서 갈등은 신앙과 학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우주가 정상적 상태인가 비정상적 상태인가 하는 주장 사이에 존재한다. 만일 우주가 정상이라면, 우주는 잠재력에서 이상(ideal)으로 가는 영원한 진화의 의미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주가 비정상이

라면, 과거에 란이 일어났고 목적의 최종적 달성을 보증할 있는 것은 중생적 능력뿐이다. 대립은 학문의 영역에서 사유하는 가지 지성을 전투 대형으로 나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