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ording to Niebuhr, humankind exists in a dual state of finite and self-transcendence. Since we face our mortality and yet our ability to at times “go beyond” ourselves, human exists in a state of anxiety. To deal with this anxiety, we pursue pride to cover up our finitude resulting in self-justification, self-rationalization, and the stereotyping of the oppressed. We also pursue sensuality to abdicate responsibility resulting in resentment, rebellion, and repression. Consequently, human sin is making self efforts to cover up their finitude without trusting God. To combat sin, we should correct our sins by mutual support in the 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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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009
1.04.2009
죄의 발전
죄의 발전과정에 대한 설명은 바빙크와 오웬을 참조하라.
(1) 유혹
(2) 자유/순종에 대한 혼동
(3) 의심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4) 불신앙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파기)
(5) 상상의 자유로운 확장
(6) 의지와 감정이 어우러진 계획
(7) 작은 실행
(8) 욕심/정욕의 확장
(9) 더 큰 실행
12.09.2008
게으름의 발전: 정욕

3. 게으름의 발전: 정욕
게으름이 게으름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의무가 필요합니다. 의무가 없는 곳에서는 그 사람의 게으름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작 단계의 게으름은 늘 이러한 형태고 출발합니다. 아예 의무를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귀찮은 부분을 소흘히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게으름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그것은 바로 의무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계속 발전하는 것은 게으름의 원인인 자기 사랑이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은 영육간에 편안한 삶을 이룬 것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삶은 게으름의 소극적인 목표일 뿐입니다. 이 소극적인 목표가 만족되고 나면 나타나는 적극적인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쾌락입니다. 이처럼 게으름의 끝에는 길이 없습니다.
신자로서 해야 할 선하고 마땅한 의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급기야 그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편안함은 획득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에서 오는 사랑의 연합이 주는 신령한 기쁨도 사라졌습니다. 이 때 육체는 게으름으로 얻을 수 있는 편안함보다 더 자극적인 즐거움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요구의 대부분은 죄를 짓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청교도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행동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욕구를 살펴라. 그 사람의 욕구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다."
발전된 게으름은 정욕들을 계속 솟아나게 하여, 신자로 하여금 의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 편안함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악을 행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고자 하도록 만듭니다...더구나 이 후자의 욕구는 전자의 욕구보다 훨씬 강합니다. 죄를 지은 대가를 치르며 느끼는 괴로움 보다는, 불타오르는 정욕에도 불구하고 그 죄에 접근하지 못할 때에 느끼는 안타까움이 더 힘든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게으름 때문에 정욕에 완전히 사로잡힌 존재로 전락하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은혜의 통치 아래 사는 사람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죄의 지배 아래서 죄의 종이 되어,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방불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게으름이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하는 종착지는 바로 여기이며, 이것을 행해 게으름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달프지만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으로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일에 충성하고 분투하는 과정에 대해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땀 흘리는 부지런함, 게으름의 욕구를 꺾는 삶, 의무를 실천하고자 하는 진지한 몸부림이 있을 때, '하나님, 도와주세요'하는 기도에 눈물과 진액이 밸 수 있습니다.
12.06.2008
게으름의 정체: 싫증
정해진 삶의 길이 속에서 보다 많은 일을 하며 사는 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가치가 적은 일보다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여 사는 것,
유능해지는 것,
부지런히 사는 것입니다.
인간 안의 부패성은 자기 중심적인 욕망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는 부지런하게, 선한 의무를 행하는 데 있어서는 게으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본성적 게으름은 영적인 변화 없이는 벗어 버릴 수 없습니다.
...거룩한 삶에 대한 그러한 모든 무기력 뒤에는 자기의 마음의 정욕을 따라 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게으름의 정체입니다.
1. 게으름의 정체: 싫증
게으름은 바로 그렇게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인 악이며, 영적인 불결입니다. 따라서 게으름과 싸워 그 뿌리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의 영향력으로 파괴하지 않으면, 성화에 있어서 진전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날마다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배우는 실천적인 순종함 없이는 어떠한 영적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성품, 그리고 익숙해진 삶의 갈피갈피마다 깊이 배어 있는 게으름을 색출해 낼 것입니다. 말씀의 빛이 우리 안에 있는 게으름의 정체를 드러낼 때 여러분들은 더 이상 그것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며, 이제껏 여러분 안에서 하나 된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하여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입니다. 마치 환자가 수술 후 자기 몸에서 떼어 낸 암덩이를 보고 끔찍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멈췄던 '착하고 충성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으름이 들어오면, 신자의 지성에서 건강하고 바람직한 정신적 작용들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투철한 사상을 지닌 사람을 만나 보기 힘듭니다... 뚜렸하고 건강한 사상을 지닌 사람들은 어김없이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분명하게 정리된 정신 세계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타고난 입담으로 개똥철학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지는 몰라도, 많은 백성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건강한 사상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게으름은 악입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자기 속에 있는 무엇을 쏟아 내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체력을 소진하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헌신하거나 해서라도 뭔가를 이루어야 하겠다는 목표가 없습니다... 목표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불태워서 매진하는 실제적 삶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목표가 되는 것이지, 그것을 위한 실제적 삶은 싫고 단지 그 자체만 원할 뿐이라면 그것은 한낱 희망 사항에 불과합니다...목표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서 있고, 노력하면 성취가 가능한 단계에 있어, 꿈꾸는 이로 하여금 그것을 생각 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망상이나 희망 사항을 가지고 사는 데는 비용이 안 들지만,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사는 데에는 반드시 비용이 듭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꼭 희생하여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좋게 변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환경은 영원히 우리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환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극복하고 싸우면서 이겨야 할 상대입니다. 잘 점검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게으름입니다.
게으름, (김남준 200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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