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2012
완전한 선
C. S. Lewis, 고통의 문제, p. 51
3.04.2009
불꽃놀이와 창조
어두운 밤하늘에 강력하게 솟아올라 분수처럼 흩어지는 불빛들의 향연을 보노라면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경외감 마져 느껴진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마치 불꽃놀이를 하시는 것 처럼 즐겁고 재미있으셨지 않을까? 혼돈과 공허, 흑암가운데 오색찬란한 빛들이 우주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제 자리를 찾아 퍼져 나간다. 빛이 생겨난 자리에 어둠은 물러가고 열기와 생명력의 에너지들은 형형의 색들로 옷을 입고 장엄한 조화를 형성하며 밤하늘의 캔버스를 진하게 물들인다. 광대하고 아름다운 우주적 예술...
누군가는 차이코프스키가 불꽃놀이와 어울린다지만, 나는 그래도 모짜르트가 더 좋다.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올 해 독립기념일에는 아이들과 함께 폭죽놀이를 해 볼 것이다. 모짜르트를 크게 들어 놓고 말이다.
창조를 예술적 표현artistic expression 또는 놀이play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전통적으로 창조는 역사work로 인식되었다. "창조사역"이라는 말은 창조를 "일" 또는 "노동"으로 보는 견해를 반영한다. "일"이라는 단어는 댓가를 얻기 위해 지불되어야 하는 노력의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전적으로 자유로우며free 자발적spontaneous이다.
1. 창조는 자유로우며 구속이나 제한됨이 없는 행위이다. 다른 모든 예술적 표현과 같이 자유로우며, 표현적이고, 즐거우며 창조적인 행위이다.
2. 놀이로서의 창조에는 자발적 구속과 제한을 포함한다. 조화와 통일, 균형과 화합을 위한 종합적 통합성은 자발적인 자기제한을 요구한다.
3. 개채와 전체의 어우러짐은 상호 보완과 견제, 그리고 협력의 상호의존성을 근간으로 한다. 개채는 그 자체로서 완전하며 동시에 전체에 의존적이다.
4. 개채는 전체의 일부가 되었을 때 새로운 존재로 재구성된다.
2.20.2009
앎과 노출
"The truth is a snare: you cannot have it, without being caught. You cannot have the truth in such a way that you catch it, but only in such a way that it catches you."
진리는 인격이다. 진리는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에게 우리가 노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진리에 의해 점령당하는 것이다. 진리는 살아있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아간다는 것은 그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는 뜻이다. 그래서 진정한 앎은 내 자유를 댓가로 지불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하신 말씀은 이런 점에서 역설이다. 내 자유를 그분에게 내려 놓는 믿음이 선행되어야 진리를 알 수 있게 된다. 내 자유를 포기할 때에라야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키에르케가르는 말할 것이다. 내가 누리려는 자유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는 자유에는 극명한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이다.
"무엇이 삶이냐"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물어라.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 내 삶을 규정하는 것이지 삶을 정의내리자고 내가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차피 삶은 누구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방황하지 말아라. 대신 의미있다고 믿는 바를 행하며 오늘을 살아라. 그것이 의미있는 삶이며 삶의 의미이다.
2.13.2009
종교 교육의 목적
William Ellery Channing이라는 미국 교육자가 쓰신 글을 읽다가 감동받은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Channing은 1780년에 태어나신 분이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조선시대 정조때 사람이에요. 이 분이 1830년에 선데이스쿨 연합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내용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요.
"진정한 종교교육의 목적은, 그것이 주일학교에서건, 아니면 가정에서건 간에, 우리의 생각을 아이들의 마음에 도장 찍듯 새겨 넣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불러 일으키도록 돕는 것이며; 아이들이 우리들의 시각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탐구하면서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정해진 양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열정적 사랑을 고취시키는 것이며; 외적 규범들을 형성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적 동기를 자극하는 것이며; 암기의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능력을 강화시키고 촉진시키는 것이며; 편협하고 좁은 특정한 그룹의 뿌리깊은 편견으로 아이들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떤 주제이든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며; 진정한 기반 없이 그저 어른들의 전통과 규칙들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일깨우고 도덕적 분별력을 함양하게 함으로 아이들이 자신과 세계를 위해 궁극적으로 선하고 옳은 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안과 밖에서 선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 눈을 열어 그리스도의 아름답고 광대하신 성품을 보게 하여 그를 흠모하며 닮아가고 싶은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William E. Channing, The Sunday School: A Discourse Pronounced Before the Sunday School Society (Boston: James Munroe, 1838), 9-10.
너무나 옳기에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한 진술이지요? 그런데 이분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고 예수님을 그저 위대한 선생님으로 보는 유니테리안주의자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가 무슨 주의의 사람이었건 간에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을깊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 많큼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말로 설명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 주셨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되 한번도 강요하신 적이 없으세요. 다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자라도록 꿈의 씨앗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그분은 한번도 자기처럼 생각하라고 강요하신 적이 없으셨어요. 대신 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도전하셨고, 정형화된 교리와 도덕주의에 안주하며 사람들을 정죄하고 스스로 분리되려고 했던 종교지도자들을 무섭게 비판하시고는 말씀과 율법에서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현실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무시당하던 절대 약자인 아이들을 "천국의 주인"으로 표준화 하시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시고는 꼬질꼬질 더럽고 냄새나고 천방지축인 가난한 아이들을 사랑으로 끌어 안아 주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교사이셨던 그분의 가르침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어디 아이들 뿐 이겠습니까?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죽는 그날 까지 배워가는 평생 학습자들입니다. 진정한 개인과 사회의 변화는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상대를 존중하고, 공동체를 가치있게 여기며, 서로 다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배우고 자라가려는 겸손한 마음의 태도 속에서, 그리고 각자가 처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너른 상상력과 공교한 실천적 지혜로 대안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서, 무엇보다 우리 안에서 일을 이루어 가시는 삼위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러한 믿음을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몸부림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180년 전에 선포된 Channing의 교육에 대한 메세지를 대하면서 내가 받았던 교육과 내가 하고 있는 교육을 생각해 보니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끄러운 복잡한 심정입니다. 그래서 부러 "사람으로는 할 수 없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뇌어 보며, 아이들과 우리 자신을 위한 특별한 기도의 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무릎꿇기를 고대해 봅니다.
오늘도 힘내시고 많이 행복하세요.
bk
1.04.2009
죄의 발전
죄의 발전과정에 대한 설명은 바빙크와 오웬을 참조하라.
(1) 유혹
(2) 자유/순종에 대한 혼동
(3) 의심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4) 불신앙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파기)
(5) 상상의 자유로운 확장
(6) 의지와 감정이 어우러진 계획
(7) 작은 실행
(8) 욕심/정욕의 확장
(9) 더 큰 실행
12.31.2008
고백
이제 나는, 나의 한숨이 증거 하듯, 나 자신이 싫사오니, 당신이 내게 빛을 비추사 당신에게서 만족을 얻게 하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나 자신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껴 나 자신을 버리게 해 주십시오! 대신 당신을 붙들게 하셔서 오직 당신께 의지함으로 당신을 만족케 나며, 나 자신을 만족케 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Augustiuns, Confessio, 497, 10.2.2
주님, 당신으로 인해 만족을 얻게 해 주십시오. 내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에는 열심이고 부지런했지만 그 결과는 만족이 아닌 허무와 절망과 좌절뿐이었습니다. 내 양심이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을 얻기 위해 달려간 그 곳에서 양심의 호된 질책과 꾸지람을 듣고 낙망하였으며, 내가 만족을 얻지 못한 것은 아직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다른 강렬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혼돈이요 무질서였습니다. 성난 파도에 휩슬리는 작은 배 처럼 나의 영혼은 그렇게 흔들리었습니다. 달리고 달리면서도 불안하고 고독하였으며 결국은 죄책감에 만신창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내 영혼의 만족과 쉼은 그저 당신 뿐이었건만 나는 그것이 싫었고, 내 스스로 나를 만족시키고 쉼을 얻으려 그렇게 당신을 뒤로 하고 달려만 갔습니다.
주님, 이제 내게 당신의 빛을 비추사 당신을 사랑함으로, 당신께 돌아옴으로 만족을 누리고 행복을 맛보게 해 주십시오. 나는 이제 평안하고 싶습니다. 기뻐하고 싶습니다. 내 영혼이 양심으로 함께 자유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BK
12.29.2008
Education for Shalom
The vision of shalom comes to us, for one thing, as a two-part command: we are to pray and struggle for the release of the captives, and we are to pray and struggle for the release of the enriching potentials of God's creation. we live under both a liberation mandate and a cultural mandate.
The goal for which Christian educators are to teach is that our students be agents and celebrators of shalom, petitioners and mourners.
Nicholas Wolterstorff, Educating for Shalom (MI: Eerdmans, 2004) 24-25.
Education for Freedom or for Kingdom
진정한 교육이란 한 인간이 처한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닫혀진 특수성들로 부터 해방키키고 자유케 해 인간의 이해와 상상, 욕구들의 너른 가능성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Summarized by Nicolas Wolterstorff from Oakeshott, "Education: The engagement and Its Frustration," in Education and the Development of Reason, edited by R. F. Dearden, P. H. Hirst, and R. S.
"Education is by a kingodm and for citizenship in that kingdom." Education is always religious in its import. the situation is not that the Christian educator practices committed education while everyone else practices neutral eduction; ultimately everyone practices committed education.
The goal of Christian education for Jellema was to initiate the student into the Christian mind.
Students must be freed from the bondage of thinking with the mind of modernity and led to think with the Christian mind.
12.23.2008
죄, 습관 그리고 예속
그도 처음에는 자신의 '선택'으로 마약을 시작했다. 하지만 끝내 '습관'으로 마치게 된다. 그 습관은 하나님에 의해서만...깨어질 수 있는 일종의 '예속'으로 서서히 바뀐다.
Patrick McCormick, Sin as Addiction (New York: Paulist, 1989), 152.
12.22.2008
학문과 자유
Abraham Kuyer (1837-1920)
또 하나, 학문이 융성하기 위하여 대중의 마음이 자유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교회는 삶이ㅡ 유일한 목적을 그 공로를 통해 하늘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교회가 이 주된 목적과 일치한다고 인정하는 만큼만 세상에서 향유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무도 지상적 실존에 대한 연구에 공감을 갖거나 헌신할 수가 없었다. … 모든 참된 칼빈주의자에게 이 복된 상태는 '중생'에서 자라며 '성도의 견인에 의하여 보증된다. 이 '믿음의 확실성'을 근거로,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에게 창조 명령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그 가운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땅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고, 대양과 자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이 자연의 속성과 법칙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문을 권장하기를 꺼리는 백성이 새롭고 활기 넘치는 힘으로 자유의 느낌을 향유하도록 학문에 박차를 가했다.
이 갈등은 신앙과 학문의 갈등이 아니다. 그런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학문은 어느 정도 신앙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학문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잘못된 신
앙이거나 미신이다. 참되고 진정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신앙을 전제한다.
특별히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원리에서 신앙을 전제한다. 이는 학문적 탐구에 필요한 모든 공리가 우리의 자의식과 더불어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반면에 모든 신앙은 발언하려는 충동을 내적으로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신앙은 말과 용어와 표현을 필요로 하고, 이 말들은 사상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 이 사상들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함께 상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이 우리의 의식에 빛을 비추자마자 학문과 논증의 필요가 생겨난다.
따라서 갈등은 신앙과 학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우주가 정상적 상태인가 비정상적 상태인가 하는 주장 사이에 존재한다. 만일 우주가 정상이라면, 우주는 잠재력에서 이상(ideal)으로 가는 영원한 진화의 의미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주가 비정상이
라면, 과거에 혼란이 일어났고 그 목적의 최종적 달성을 보증할 수 있는 것은 중생적 능력뿐이다. 이 대립은 학문의 영역에서 사유하는 두 가지 지성을 전투 대형으로 나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12.16.2008
Getting Things Done
12.15.2008
Paulo Freire
Paulo Freire (1921-1997)
Brazilian educational philosopher and social educator
Christian humanist
"Our pedagogy cannot do without a vision of man and his world. It formulates a scientific humanist conception which finds its expression in a dialogical praxis in which teachers and learners, together, in the act of analyzing a dehumanizing reality, denounce it while announcing its transformation in the name of the liberation of m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