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011
성화와 인간발달
John Owen's Works, The Death of Death in The Death of Christ, 1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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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의 대부인 존 오웬의 인간론은 신학적 또는 창조적 발달주의를 반영한다. 중생과 성화는 하나님의 창조의도를 회복하는 것이며 이것은 순환적 발달주의의한계를 극복하고 목적 지향적인 발달을 가능하게 한다. 하나님의 세계창조의 목적은 인간됨의 최대 발현을 통해 전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bk
12.24.2008
의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으로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나를 고소하기를
하나님의 명령에 저항하여 지독히 죄를 지음으로
결코 그 명령들을 지키지 않으며
여전히 모든 죄악으로 향하는 죄성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무가치한 나를 순전한 은혜로써
마치 내가 한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마치 내가 완전히 순종한 것 처럼
그리스도의 나를 위한 순종으로
그분의 완전한 보상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내게 부어주시고 나의 것으로 여겨 주셨습니다.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은
믿는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The Heidelberg Catechism Q/A 60
중생
중생이란 이런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일이며, 동시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기쁘고, 놀라우면서도 신비하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일이다. 중생은 능력 면에서 창조 사역이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The Canons of Dort, Article 12
12.22.2008
학문과 자유
Abraham Kuyer (1837-1920)
또 하나, 학문이 융성하기 위하여 대중의 마음이 자유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교회는 삶이ㅡ 유일한 목적을 그 공로를 통해 하늘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교회가 이 주된 목적과 일치한다고 인정하는 만큼만 세상에서 향유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무도 지상적 실존에 대한 연구에 공감을 갖거나 헌신할 수가 없었다. … 모든 참된 칼빈주의자에게 이 복된 상태는 '중생'에서 자라며 '성도의 견인에 의하여 보증된다. 이 '믿음의 확실성'을 근거로,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에게 창조 명령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그 가운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땅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고, 대양과 자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이 자연의 속성과 법칙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문을 권장하기를 꺼리는 백성이 새롭고 활기 넘치는 힘으로 자유의 느낌을 향유하도록 학문에 박차를 가했다.
이 갈등은 신앙과 학문의 갈등이 아니다. 그런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학문은 어느 정도 신앙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학문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잘못된 신
앙이거나 미신이다. 참되고 진정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신앙을 전제한다.
특별히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원리에서 신앙을 전제한다. 이는 학문적 탐구에 필요한 모든 공리가 우리의 자의식과 더불어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반면에 모든 신앙은 발언하려는 충동을 내적으로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신앙은 말과 용어와 표현을 필요로 하고, 이 말들은 사상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 이 사상들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함께 상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이 우리의 의식에 빛을 비추자마자 학문과 논증의 필요가 생겨난다.
따라서 갈등은 신앙과 학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우주가 정상적 상태인가 비정상적 상태인가 하는 주장 사이에 존재한다. 만일 우주가 정상이라면, 우주는 잠재력에서 이상(ideal)으로 가는 영원한 진화의 의미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주가 비정상이
라면, 과거에 혼란이 일어났고 그 목적의 최종적 달성을 보증할 수 있는 것은 중생적 능력뿐이다. 이 대립은 학문의 영역에서 사유하는 두 가지 지성을 전투 대형으로 나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