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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2009

인생성공 단십백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내가 살고 있는 자리에서 온 존재로 호흡하는 시대정신을 분별하며,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의 절대명령의 소명을 받들고 살아가려면 깊이있고 체계적인 독서와 사색이 필수적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명의 샘물을 길어 마시는 지혜를 터득하려면 같은 고민과 질문 속에 몸부림첬던 인생선배들의 정돈된 생각들로부터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독서와 사색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삶의 습관으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들에게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 필수적이듯 실천적 삶을 위한 독서와 사색도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효과적인 훈련이 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 지도자, 그리고 헌신된 팀의 삼요소가 갖추어 져야 합니다.

이제 막 독서와 사색의 훈련을 통해 변화를 소망하며 발걸음을 내딛는 크리스찬 젊은이들을 위해 필요한 책들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책 선정의 기준은 (1) 꾸준히 영향력을 주는 고전에 속할 것, (2) 너무 전문적이거나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 (3) 분량이 적절해야 할 것, (4) 지속적인 독서를 권장하고 지침을 줄 것, (5) 다양한 분야를 망라할 것을 고려하였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수정 보완하여 "내 인생의 100권의 책"을 만들고 그 책들을 통해 받은 유익을 정리해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 봅니다. "인생 성공 단십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스승 한분, 마음을 나누는 친구 열명, 그리고 삶의 토대를 제공해 줄 백권의 좋은 책을 가지고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뜻이겠지요. 진정한 스승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삶을 나누기로 헌신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나의 인생을 풍성하고 견고하게 할 100권의 책을 정리해 보는 일일 것입니다.


(Link) 내 인생의 100권의 책: The 100 Books of My Life

bk

8.03.2009

기독교의 위험한 사상


Christianity's Dangerous Idea: The Protestant Revolution--A History from the Sixteenth Century to the Twenty-First, Sep. 1997, by Alister E. McGrath 560 pages
This is McGrath's third book title borrowed from his atheist bête noir Richard Dawkins. But don't let the titular borrowings fool you: this is an original and important book. Someone had to imitate the long, popular works of history being written on secular subjects from Lewis & Clark to FDR, and McGrath has the theological and historical expertise necessary to tell a story stretching from the Reformation's origins in the 16th century to today. The dangerous idea was Martin Luther's: that individual believers could and should read the Bible for themselves. The result was occasionally violent (as in the peasants' revolt and the English Civil War), occasionally brilliant (musicians like Bach, theologians like Calvin and Jonathan Edwards, poets like Milton) and certainly world altering (the Calvinist Reformation clearing space for the rise of secular science and capitalism). McGrath concludes not with the faith practices of present-day England or America, but with the increasingly Pentecostal global south. The book occasionally falls into the dry tone of a textbook and assumes points that historians would want to debate, but is still the most readable introduction to the history, theology and present-day practices of Protestantism. (Oct.) Copyright © Reed Business Information, a division of Reed Elsevier Inc. All rights reserved.
"맥그래스는 야심찬 사상을 대담하게 제시하면서 종교개혁으로부터 현대 세계 기독교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개신교와 그 변형들의 역사를 체계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아주 쉽게 읽을 수 있고, 놀라울 정도로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공정한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필립 젠킨스"


이 책은 개신교와 그 역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검토하여 재해석하고, 개신교가 지닌 놀라운 다양성과 내적 일관성을 함께 제시하며, 상세한 연구 내용을 통찰력 넘치는 광대한 해석들과 잘 결합시켜 놓았다.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했다. 정말 잘 쓴 책이다."-후스토 곤살레스"

각 사람이 성경을 이해하고 자신과 자신이 사는 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상은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에 무한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폭발적 사상이다. 이 책<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는 이 사상으로부터 발전된 것과, 이 사상이 전 세계 기독교의 현재와 미래에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독특하면서도 고귀한 도움을 제공해 준다."-댈러스 윌러드


옥스퍼드 석학,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념비적 저작!개신교 역사와 그 세계적 영향력을 새롭게 해석하다!
개신교의 중심에 자리 잡은 '위험한 사상'은 성경 해석이 각 사람의 권리이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원리가 확산되면서 개신교는 500년에 걸쳐 두드러진 혁신과 적응의 역사를 보여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일관성이 사라지고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고집불통인'사상들을 통제할 수 있는 최고 권위가 없었기에 쟁점을 놓고 논쟁하는 당사자들은 성경에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갖가지 수많은 해석들에게 그 문을 열어놓고 있다.
이 책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는 처음으로 개신교의 핵심 요소와 이 위험한 사상이 만들어낸 종교적, 문화적 역동성을 정의해 보려고 시도한 책이다. 이 종교적, 문화적 역동성은 결국 20세기에 이르러 개신교에 놀랍도록 새로운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적 명성의 옥스퍼드 석학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독특한 접근방법을 이용해 전 세계 개신교 교회들과 공동체들이 연관된 논쟁과 분열에 여전히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매력적 인물들과 운동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 1부(기원)는 연대를 따라 내려가며 역사를 관통해가는 유희를 제공한다. 2 부(표현)는 개신교의 신앙과 관습이 지닌 독특한 특징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3부(변형)는 전 세계 개신교의 미래에 대해 깜짝 놀랄 평가를 내리고 있다.


차례
들어가는 글
1부 기원
1장 몰려오는 폭풍
2장 우연히 혁명가가 된 혁명가 - 마르틴 루터
3장 루터의 대안들 - 종교개혁의 다양화
4장 힘의 이동 - 칼뱅과 제네바
5장 잉글랜드 - 성공회의 등장
6장 전쟁, 평화 그리고 무관심 - 위기에 빠진 유럽의 개신교 (1560~1800)
7장 미국의 개신교8장 19세기 - 전 세계로 뻗어나간 개신교
2부 표현
9장 성경과 개신교
10장 믿음과 특성 - 개신교의 몇 가지 두드러진 믿음들
11장 신앙의 틀 - 조직, 예배, 설교
12장 개신교와 서구 문화의 형성
13장 개신교와 예술 그리고 자연과학3부 변형
14장 미국 개신교의 변화상
15장 불의 혀 - 개신교 안에서 일어난 오순절 혁명
16장 개신교의 새 개척자들 - 남반구
17장 개신교 - 다음세대
옮긴이의 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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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알리스터 맥그래스1953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벨파스트에 있는 감리교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 등을 공부한 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의 위클리프 홀(Wycliffe Hall)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같은 대학에서 역사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역자: 박규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3월 교회 사역에서 물러난 뒤, 현재는 영미권과 독일어권 신학서 번역과 저작에 전념하고 있다. 역서로는 『종교개혁 시대의 영성』, 『기독교의 미래』, 『성경완전정복』(이상 좋은씨앗), 『약할 때 기뻐하라』(복있는사람), 『세상을 잃은 제자도 세상을 얻는 제자도』(국제제자훈련원) 등이 있다.
from 국제제자훈련원 "사랑몰"
올해 필독도서에 추가됨

2.27.2009

우주적 그리스도

장공 김재준(金在俊, 1901~1987)

"크리스챤이 역사에 대하는 태도란 언제든지 구속사적 입장과 성격 안에서 이 현실의 역사를 비판해야 하며, 동시에 그 역사로 하여금 구원의 목표를 지향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 비판과 지향에서 크리스찬은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기독교 사상 제2권 3호-

장공의 사상은 변혁적이며 문화적이고 창조적이다. 무엇보다 역사참여의식이 강한 선지자적 '얼'을 담고 있다. 바르트와 니버의 신정통주의를 수용하는데 있어 민족적 주체성이라는 자기의식을 잃지 않는다. 장공은 주체적 한국 신학을 정립하고 그 정신을 역사속에 구현하려 몸부림쳤던 선지자였다. 그에게 있어 복음의 핵심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초월적 하나님이 강조된 신정통주의를 수용하며 한국의 근대상황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강조함으로 주체적 신학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강조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초월성보다 내재적 그리스도를 더욱 강조하는 진보신학의 토대가 되면서 토착화 신학, 민중신학등의 원류를 제공한다.

장공은 시대의 사상적 조류를 꿰뚤어 보는 넓은 안목을 지닌 학자였다. 자신을 공격하는 수구 보수세력의 신학적 정체성과 그 뚜렸한 한계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의 장로교가 19세기 말부터 사멸의 길을 걷는 구프린스턴 중심의 근본주의에 과도히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성경 연구에 과학적 방법을 수용하면서도 사도적 신앙을 타협하지 않는 자율적 신학과 역사참여적 신앙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신학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을 변혁하는 창조적인 소수를 양성하고자 애썼다. 강원용,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등은 그가 배출한 인물들이었다.

그의 선교의식 역시 선지자적이다. 교회의 선교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전도로 축소될 수 없다. 역사속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의 역사를 변혁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뜻인 자유와 사랑과 정의의 평화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다.

장공의 신학과 사상은 주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우주적이었다. 그에게 우주는 "하느님의 집," "아버지의 집"이었고 삶의 목표는 "범세계적, 더 넓게는 전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카인의 문명과 아벨의 구속사가 하나로 통합이 되는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 그것을 실현하는 주체가 교회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선교였다.

함석헌, 김교신, 이용도와 함께 1901년 생인 그는 구한말 "역사의 어둠이 짙었을 때에" 태어나 질곡의 한국 근대사를 걸었다. 그러나 암울하고 폭압적인 역사앞에 좌절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의 여명"이 왔음을 선포했고, 은둔과 자적의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인류의 횃불이 될 것"을 노래했다 (새찬582). 20세기를 살며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역사를 변혁하려 했던 그의 정신과 자취는 강렬한 빛이 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여전히 밝고 따습게 비췬다.
bk

12.22.2008

학문과 자유

Abraham Kuyer (1837-1920)


하나, 학문이 융성하기 위하여 대중의 마음이 자유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교회는 삶이ㅡ 유일한 목적을 공로를 통해 하늘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교회가 주된 목적과 일치한다고 인정하는 만큼만 세상에서 향유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무도 지상적 실존에 대한 연구에 공감을 갖거나 헌신할 수가 없었다. 모든 참된 칼빈주의자에게 복된 상태는 '중생'에서 자라며 '성도의 견인에 의하여 보증된다. '믿음의 확실성' 근거로,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에게 창조 명령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가운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땅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고, 대양과 자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자연의 속성과 법칙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문을 권장하기를 꺼리는 백성이 새롭고 활기 넘치는 힘으로 자유의 느낌을 향유하도록 학문에 박차를 가했다.


갈등은 신앙과 학문의 갈등이 아니다. 그런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은 어느 정도 신앙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학문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잘못된

앙이거나 미신이다. 참되고 진정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신앙을 전제한다.

특별히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원리에서 신앙을 전제한다. 이는 학문적 탐구에 필요한 모든 공리가 우리의 자의식과 더불어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반면에 모든 신앙은 발언하려는 충동을 내적으로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신앙은 말과 용어와 표현을 필요로 하고, 말들은 사상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 사상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함께 상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이 우리의 의식에 빛을 비추자마자 학문과 논증의 필요가 생겨난다.


따라서 갈등은 신앙과 학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우주가 정상적 상태인가 비정상적 상태인가 하는 주장 사이에 존재한다. 만일 우주가 정상이라면, 우주는 잠재력에서 이상(ideal)으로 가는 영원한 진화의 의미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주가 비정상이

라면, 과거에 란이 일어났고 목적의 최종적 달성을 보증할 있는 것은 중생적 능력뿐이다. 대립은 학문의 영역에서 사유하는 가지 지성을 전투 대형으로 나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12.06.2008

게으름의 정체: 싫증

정해진 삶의 길이 속에서 보다 많은 일을 하며 사는 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가치가 적은 일보다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여 사는 것,
유능해지는 것,
부지런히 사는 것입니다.

인간 안의 부패성은 자기 중심적인 욕망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는 부지런하게, 선한 의무를 행하는 데 있어서는 게으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본성적 게으름은 영적인 변화 없이는 벗어 버릴 수 없습니다.

...거룩한 삶에 대한 그러한 모든 무기력 뒤에는 자기의 마음의 정욕을 따라 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게으름의 정체입니다.

1. 게으름의 정체: 싫증

게으름은 바로 그렇게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인 악이며, 영적인 불결입니다. 따라서 게으름과 싸워 그 뿌리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의 영향력으로 파괴하지 않으면, 성화에 있어서 진전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날마다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배우는 실천적인 순종함 없이는 어떠한 영적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성품, 그리고 익숙해진 삶의 갈피갈피마다 깊이 배어 있는 게으름색출해 낼 것입니다. 말씀의 빛이 우리 안에 있는 게으름의 정체를 드러낼 때 여러분들은 더 이상 그것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며, 이제껏 여러분 안에서 하나 된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하여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입니다. 마치 환자가 수술 후 자기 몸에서 떼어 낸 암덩이를 보고 끔찍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멈췄던 '착하고 충성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으름이 들어오면, 신자의 지성에서 건강하고 바람직한 정신적 작용들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투철한 사상을 지닌 사람을 만나 보기 힘듭니다... 뚜렸하고 건강한 사상을 지닌 사람들은 어김없이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분명하게 정리된 정신 세계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타고난 입담으로 개똥철학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지는 몰라도, 많은 백성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건강한 사상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게으름은 악입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자기 속에 있는 무엇을 쏟아 내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체력을 소진하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헌신하거나 해서라도 뭔가를 이루어야 하겠다는 목표가 없습니다... 목표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불태워서 매진하는 실제적 삶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목표가 되는 것이지, 그것을 위한 실제적 삶은 싫고 단지 그 자체만 원할 뿐이라면 그것은 한낱 희망 사항에 불과합니다...목표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서 있고, 노력하면 성취가 가능한 단계에 있어, 꿈꾸는 이로 하여금 그것을 생각 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망상이나 희망 사항을 가지고 사는 데는 비용이 안 들지만,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사는 데에는 반드시 비용이 듭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꼭 희생하여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좋게 변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환경은 영원히 우리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환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극복하고 싸우면서 이겨야 할 상대입니다. 잘 점검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게으름입니다.

게으름, (김남준 200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