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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3.2009

기독교의 위험한 사상


Christianity's Dangerous Idea: The Protestant Revolution--A History from the Sixteenth Century to the Twenty-First, Sep. 1997, by Alister E. McGrath 560 pages
This is McGrath's third book title borrowed from his atheist bête noir Richard Dawkins. But don't let the titular borrowings fool you: this is an original and important book. Someone had to imitate the long, popular works of history being written on secular subjects from Lewis & Clark to FDR, and McGrath has the theological and historical expertise necessary to tell a story stretching from the Reformation's origins in the 16th century to today. The dangerous idea was Martin Luther's: that individual believers could and should read the Bible for themselves. The result was occasionally violent (as in the peasants' revolt and the English Civil War), occasionally brilliant (musicians like Bach, theologians like Calvin and Jonathan Edwards, poets like Milton) and certainly world altering (the Calvinist Reformation clearing space for the rise of secular science and capitalism). McGrath concludes not with the faith practices of present-day England or America, but with the increasingly Pentecostal global south. The book occasionally falls into the dry tone of a textbook and assumes points that historians would want to debate, but is still the most readable introduction to the history, theology and present-day practices of Protestantism. (Oct.) Copyright © Reed Business Information, a division of Reed Elsevier Inc. All rights reserved.
"맥그래스는 야심찬 사상을 대담하게 제시하면서 종교개혁으로부터 현대 세계 기독교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개신교와 그 변형들의 역사를 체계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아주 쉽게 읽을 수 있고, 놀라울 정도로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공정한 시각에서 서술하고 있다."-필립 젠킨스"


이 책은 개신교와 그 역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검토하여 재해석하고, 개신교가 지닌 놀라운 다양성과 내적 일관성을 함께 제시하며, 상세한 연구 내용을 통찰력 넘치는 광대한 해석들과 잘 결합시켜 놓았다. 우리에겐 이런 책이 필요했다. 정말 잘 쓴 책이다."-후스토 곤살레스"

각 사람이 성경을 이해하고 자신과 자신이 사는 세계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상은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에 무한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폭발적 사상이다. 이 책<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는 이 사상으로부터 발전된 것과, 이 사상이 전 세계 기독교의 현재와 미래에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데 독특하면서도 고귀한 도움을 제공해 준다."-댈러스 윌러드


옥스퍼드 석학,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념비적 저작!개신교 역사와 그 세계적 영향력을 새롭게 해석하다!
개신교의 중심에 자리 잡은 '위험한 사상'은 성경 해석이 각 사람의 권리이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 원리가 확산되면서 개신교는 500년에 걸쳐 두드러진 혁신과 적응의 역사를 보여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일관성이 사라지고 사회 불안을 조성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고집불통인'사상들을 통제할 수 있는 최고 권위가 없었기에 쟁점을 놓고 논쟁하는 당사자들은 성경에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갖가지 수많은 해석들에게 그 문을 열어놓고 있다.
이 책 <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는 처음으로 개신교의 핵심 요소와 이 위험한 사상이 만들어낸 종교적, 문화적 역동성을 정의해 보려고 시도한 책이다. 이 종교적, 문화적 역동성은 결국 20세기에 이르러 개신교에 놀랍도록 새로운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적 명성의 옥스퍼드 석학 앨리스터 맥그래스는 독특한 접근방법을 이용해 전 세계 개신교 교회들과 공동체들이 연관된 논쟁과 분열에 여전히 영감을 불어넣고 있는 매력적 인물들과 운동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 1부(기원)는 연대를 따라 내려가며 역사를 관통해가는 유희를 제공한다. 2 부(표현)는 개신교의 신앙과 관습이 지닌 독특한 특징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3부(변형)는 전 세계 개신교의 미래에 대해 깜짝 놀랄 평가를 내리고 있다.


차례
들어가는 글
1부 기원
1장 몰려오는 폭풍
2장 우연히 혁명가가 된 혁명가 - 마르틴 루터
3장 루터의 대안들 - 종교개혁의 다양화
4장 힘의 이동 - 칼뱅과 제네바
5장 잉글랜드 - 성공회의 등장
6장 전쟁, 평화 그리고 무관심 - 위기에 빠진 유럽의 개신교 (1560~1800)
7장 미국의 개신교8장 19세기 - 전 세계로 뻗어나간 개신교
2부 표현
9장 성경과 개신교
10장 믿음과 특성 - 개신교의 몇 가지 두드러진 믿음들
11장 신앙의 틀 - 조직, 예배, 설교
12장 개신교와 서구 문화의 형성
13장 개신교와 예술 그리고 자연과학3부 변형
14장 미국 개신교의 변화상
15장 불의 혀 - 개신교 안에서 일어난 오순절 혁명
16장 개신교의 새 개척자들 - 남반구
17장 개신교 - 다음세대
옮긴이의 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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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알리스터 맥그래스1953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벨파스트에 있는 감리교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 등을 공부한 뒤,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의 위클리프 홀(Wycliffe Hall)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같은 대학에서 역사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역자: 박규태 고려대학교 법과대학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3월 교회 사역에서 물러난 뒤, 현재는 영미권과 독일어권 신학서 번역과 저작에 전념하고 있다. 역서로는 『종교개혁 시대의 영성』, 『기독교의 미래』, 『성경완전정복』(이상 좋은씨앗), 『약할 때 기뻐하라』(복있는사람), 『세상을 잃은 제자도 세상을 얻는 제자도』(국제제자훈련원) 등이 있다.
from 국제제자훈련원 "사랑몰"
올해 필독도서에 추가됨

7.10.2009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말씀 읽기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순종되고 복종되어 "현실"이 되는 세계다 (시 103:19-22). 그것은 곧 공평과 정의를 인간 역사속에 실현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 (창 18:19, 삼하 8:15)의 빛 아래서 성경을 읽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성경과 기독교 복음이 단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만을 위한 선물이 아니라 온 누리의 만민을 위한 선물임을 강조하는 성경 읽기다. 기독교 신앙의 공공성과 역사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성경읽기다. 성경에서 영혼 구원의 원리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 국제관계등의 공적 영역 속에 성경적 원리와 가치를 뿌리내리게 하고 실현시키려는 성경읽기다.
김회권,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사도행전 1, 복있는 사람 2007, p. 11.

창조와 타락과 구속의 구속사적이며 개혁주의적 세계관의 렌즈를 쓰고 읽어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진 하나님의 세계 통치를 염두에 두고 개인과 사회, 성과 속, 삶과 정신, 현상과 본질, 구조와 방향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며 읽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통해 나와 세상을 보고, 역사를 통해 말씀을 이해하는 통전적인 접근만이 주관적인 자의적 해석의 유혹, "영지주의적 심령주의의 침잠spiritualistic retreat into the private realm"(김회권, 16) 과 그로 인한 우월감, 그리고 문자와 교리에 사로잡힌 경직된 적용의 폭압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인간과 세상을 해방하시는 하나님의 따듯한 진리를 풍성하게 누리도록 할 것이다.
bk

7.06.2009

해돈 로빈슨의 조언

오늘날 강해설교가 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강해설교를 논할 때, 그것은 단순히 설교의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을 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성경에 굴복시킬 것인가, 아니면 성경을 우리의 생각에 굴복시킬 것인가?’ 이 질문에 얼마나 정직한 대답을 하느냐가 그 사람이 진정한 강해설교자인지 아닌지를 판별해 주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강해설교가 더 중요한 이유는 과거의 설교자들이 지녔던 권위가 이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성장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은 설교자를 지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리더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목사를 대상으로 법적인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목사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들은 배심원들에게 그가 목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하려고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이유로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 자체가 스스로 진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게 만든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설교자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보고, 듣고, 이해하게 만든다면, 성경은 그 자체로 그들을 확신시키고,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우리가 성경본문을 가지고 설교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본문 자체가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본래의 정체성,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하고, 성령이 그 말씀에 응답하며, 설교자가 그 말씀을 청중들의 삶과 연관된 방식으로 전달할 때, 성경은 설교자의 권위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해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설교의 형식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
설교의 형식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설교의 형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것입니다. 설교의 형식은 본문의 형식을 반영해야 합니다. 설교는 본문의 사상을 반영할 뿐 아니라 본문의 형식에도 영향을 받아야만 합니다. 만약 우리가 구약의 내러티브 문학을 다룬다면, 설교도 반드시 구약에서 사용한 이야기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시편을 다룬다면, 시편은 사람들이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보여 주거나, 예배에 대해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시편의 문학과 씨름해야만 합니다. 시편이 전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우리의 설교에서 어떻게 시적인 요소들을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하나님이 자신의 진리를 전달하실 때 특정한 형식을 취하셨기 때문에 설교자는 그 형식을 반영해야 한다는 철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설교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복음주의진영과 자유주의 진영의 심각한 이단들의 이론은 교리 자체보다 적용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본문을 특정한 방식으로 적용할 때, 설교자는 여전히 성경의 권위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고대 세계의 진리를 성경의 권위라는 이름으로 설득시키려면 반드시 본문과 씨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는 본문을 적용하는 일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필수입니다. 청중들이 적용된 진리를 삶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본문을 적용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적용에는 율법주의의 위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어머니가 몸이 아픈데 자식들이 부모님을 모시지 않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우리는 만약 부모를 진정으로 공경한다면,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 아프실 때 집에서 모셔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바로 그 적용(부모님을 집에서 모셔야 함)이 원리(부모님을 공경해야 함)를 지배하게 됩니다. 원리의 적용이 율법주의가 될 때, 적용 자체가 원리를 지배하게 될 때, 우리는 그릇된 길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적용 방식에는 신학적 위험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청중들에게 전하는 설교내용이 본문에서 추출한 원리와 본문의 상황을 역동성 있고 정확하게 반영하려면, 더 많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분명, 설교자들은 전에 비해 이 부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만, 저는(로빈슨 교수) 설교자들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청중들에게 죄책감을 심어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이 본문이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고 가르쳤는데, 청중들이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자, 설교자들이 그것을 ‘당신이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바꿔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만약 거기에 ‘주께서 이르시기를’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면,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력을 갖추게 되는 셈입니다.

적용에 관해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목회자가 회중들을 격자로 구분하는 방법이 유용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격자든지 괜찮겠지만, 한쪽은 베이비붐 세대, 베이비버스터 세대(출생률 격감기에 태어난 세대), Y세대와 같이 연령별 구분을 하고, 다른 한 쪽은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자, 무자녀 부부, 기혼자, 이혼자와 같은 식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격자구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격자구분을 만들고 나면, “나는 오늘 내가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임을 믿는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가족 없이 혼자 생활하는 18세의 젊은 여성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룸메이트와 함께 살면서 직장에 다니는 여성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만약 그 자매가 사무실에 찾아와 ‘목사님, 까다로운 룸메이트랑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혹은 ‘온종일 저만 감시하는 직장상사는 어떻게 대해야하죠?’라고 질문했을 때 이 본문은 과연 그녀에게 답을 제시해 주는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설교자는 청중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회중들을 구분해 놓으면, 각 개인들 혹은 비슷한 개인을 묶어 놓은 그룹들을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제제자훈련원의 신간 “능력있는 설교 이렇게 한다!”에 실린 이 새대 최고의 설교자 20인의 조언 가운데 하나인 해돈 로빈슨 교수의 조언(69-94쪽)

2.10.2009

배움이란

배움이란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현재의 경험들을 의미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들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 통일성을 부여하고, 일관된 설명이 가능하게 하는 것, 즉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배움이란 끊임없는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 즉 경험의 해석과정이다.

Jack Mezirow, Transformative Dimensions of Adult Learning, 1991. p. 11

사람들은 저마다의 "습관화된 기대의 틀sets of habitual expectation" 또는 "의미관점meaning perspective"을 통해 감각된 자료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기억한다. 의미관점은 Albert Wolters가 설명한 세계관일 수도 있고, Thomas Kuhn의 패러다임일 수도 있고, Sara Little의 신념체계일 수도 있다. 여기서 매저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점은 사람들이 외부의 정보들을 수용할 때 주체적으로 이미 스스로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구조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과를 본다고 할 때, 그 사과가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순한 과일로, 다른 사람에게는 누가 남기고 간 쓰레기로, 또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고 싶은 대상물로 수용된다. 이렇게 같은 사물을 놓고도 다른 의미가 만들어 질 수 있는 원인은 그 대상물 자체의 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실체를 수용하는 수용자의 "의미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의미를 느낀다",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를 창출한다", 또는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은 모두 외부의 자료를 수용하는 데 있어 "의미관점"을 활발하게 사용하여 외부의 자료들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사실상 언어라는 시스템을 통해 구체화된다. 사과를 인식할 때 이미 거기에는 "사과"라는 언어로 제한된 의미가 부여된 또는 분류categorized된"사과"의 개념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비트겐쉬타인을 좀 공부해 놓을 것을 그랬다. 소쉬르로 부터 시작되는 언어사회학/기호학의 기본 개념을 배워둘 필요가 있다. 랑그와 빠롤, 그리고 기표와 기의를 구분하고자 했던가? 랑그는 빠롤이 가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기의와 기표의 관계는 사물과 단어가 아니라 개념과 청각이미지와의 관계이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언어가 역사와 사회를 통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의미관점은 사회의 산물이며 문화적 상황에 항상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상인과 현대의 비즈니스맨은 언어만 다른 것이 아니다. 의미는 선언어적으로는 prelingustically 상황과 상징적 모델들을 통해,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언어를 통해 구성된다.

의미관점은 새로운 자료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일정한 구조를 따르게 하며 수용된 경험은 다시 의미관점을 재형성하고 확장시킨다. 배움이라는 것은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기존의 의미관점에 커다란 변화가 올때 일어난다. 이미 구성화된 의미관점들, 선입관, 가정, 전제,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입장, 사회적 상태와 교육된 이해들의 복잡한 의미관점들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매저로는 이를 관점의 변화perspective transformation라고 지칭한다.

배움은 해석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의미관점을 통해 대상들이나 사건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보통은 이미 형성된 의미관점을 가지고 현재 사건이나 대상을 해석한다. 그러나 변화학습은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지나간 과거의 경험을 재해석하여 결국 과거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관점을 창조해 낸다.

배움은 현재 경험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 장래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강화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