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역사 변혁의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셔서 이 시대를 바꾸실 것이라고 믿는 역사 변혁의 주인공의식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하나님은 자신을 사용하여 한 시대를 움직이실 것이라고 믿는 폭발적인 열망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사람에게로부터 비롯된 야망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꿈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꿈을 가진 사람들만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오늘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거룩한 비밀을 알리시고 당신이 이루고자 하시는 놀라운 계획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김남준, 자네 정말 그길을 가려나,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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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꿈을 성서는 "계시" 또는 "비전"이라 지칭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눈물겹도록 행복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꿈을 심으시며 그 꿈을 이루어 가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방식이며 계시의 기본적인 요건이다. (요 14:21)
"역사변혁의 주인공의식"이 "폭발적인 열망"으로 충만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흐르자 패기는 수그러들고 열정은 식어간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의식과 열망보다는 내 안에 역사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의식과 열망을 더욱 신뢰한다. 그것이 나의 야망을 꺽고 하나님의 뜻(계시)을 수용하고 순종하는 데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나의 하늘 아버지는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폭발적인 열망을 철저하게 의뢰하는 것이 "역사변혁의 주인공의식"을 가장 현실적으로 지혜롭게 그리고 중단없이 실천해 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운다.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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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2011
7.18.2010
소명, 사명자, 그리고 배신자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잊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요한복음 6: 37-38
소명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소명의 내용에 집중한 나머지 소명을 주신 분을 잊어 버리는 것이다. 소명의 중요성은 소명의 내용에 있지 않고 소명의 원인자인 “부르시는 분”에게 있다. 소명의 원인자이며 조력자이시고 완성자이신 부르신 분의, 부르신 분을 위한, 부르신 분에 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명자라고 부른다. 사명자의 문자적 의미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명령을 부여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사명자는 어디로 부르시든, 무엇으로 부르시든, 언제 부르시든 간에 부르신 분에게 집중하고 그 분을 위해, 그 분을 향해, 그리고 그 분에 의해 살아간다. 아버지의 일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고 선포하고 십자가를 지신 행복했던 예수를 쫓아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려 보냈던" 초대교회의 사명자들을 향해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일방적인 방식을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진실되고 진지한 논의와 공동체적 기도 없이 더 크고 부유한 교회를 "섬기기"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미 부르심을 받은 교회 공동체를 일방적으로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영적 리더들의 "소명"운운은 아전인수의 극치이다. 예수의 소명은 자신에게 맏겨진 양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양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망한 자기의 야망을 비전이라는 허울로 포장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한 지체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면서 맡겨준신 공동체를 자신의 꿈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야심가들을 하나님은 증오하신다고 지적한 본 회퍼의 통찰이 가슴에 칼을 대는 듯 하며, "나는 성공이 아니라 성실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테레사 수녀의 말씀이 머리를 울린다.
3.23.2010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예쁜이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요. 어떻게 들을 수 있죠?
나: 참 좋은 질문 (얼굴만 예쁜 줄 알았더니 마음도 예쁘군...) 예쁜이들은 어떻게 생각해?
예쁜이들: 말씀, 기도, 환상, 계시, 양심, 조언, 실천....
나: (보통이 아니군...) 다 알면서 왜 물어볼까?
예쁜이들: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갈켜주삼...)
나: 가장 강력하고 분명하며 또렸하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방법을 알려줄까.... (말까...)
예쁜이들: (똘망똘망... 초롱초롱...우린 예쁜데...)
나: (가르쳐 줘야겠군) 실수, 실패, 낙망, 좌절,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학.실.히. 말씀하시던데..
예쁜이들: (먹던 감자칩 떨어뜨리며...) 목싸님! 실수 안하려고 음성 들으려는 거잖아요!
나: (미안하구나...) 아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음성 듣는 거야. 그럼 하나님이 "너 좀 실수해 줄래..." 그러면 하나님 음성 안듣겠네 (이경우 듣는다는 것은 순종함을 의미하겠지...). 순종하지 않을 거면서 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예쁜이들: ...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게 어려운게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순종하기위한 결단과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려운 거네요.
나: ... (내가 잘 가르친 것일까 예쁜이들이 똑똑한 것일까?)
성령님: 오늘은 거기가지만 진도 나가자...
나: 아차 아이스크림 사주는 것 깜빡 잊었네....
bk
"최초의 가르침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네." 마법사가 말했다.
"일단 길을 발견하게 되면 두려워해선 안 되네.
실수를 감당할 용기도 필요해. 실망과 패배감,
좌절은 신께서 길을 드러내 보이는 데
사용하는 도구일세."
- 파울로 코엘료의《브리다》중에서 -
나: 참 좋은 질문 (얼굴만 예쁜 줄 알았더니 마음도 예쁘군...) 예쁜이들은 어떻게 생각해?
예쁜이들: 말씀, 기도, 환상, 계시, 양심, 조언, 실천....
나: (보통이 아니군...) 다 알면서 왜 물어볼까?
예쁜이들: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갈켜주삼...)
나: 가장 강력하고 분명하며 또렸하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방법을 알려줄까.... (말까...)
예쁜이들: (똘망똘망... 초롱초롱...우린 예쁜데...)
나: (가르쳐 줘야겠군) 실수, 실패, 낙망, 좌절,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학.실.히. 말씀하시던데..
예쁜이들: (먹던 감자칩 떨어뜨리며...) 목싸님! 실수 안하려고 음성 들으려는 거잖아요!
나: (미안하구나...) 아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음성 듣는 거야. 그럼 하나님이 "너 좀 실수해 줄래..." 그러면 하나님 음성 안듣겠네 (이경우 듣는다는 것은 순종함을 의미하겠지...). 순종하지 않을 거면서 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예쁜이들: ...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게 어려운게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순종하기위한 결단과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려운 거네요.
나: ... (내가 잘 가르친 것일까 예쁜이들이 똑똑한 것일까?)
성령님: 오늘은 거기가지만 진도 나가자...
나: 아차 아이스크림 사주는 것 깜빡 잊었네....
bk
"최초의 가르침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네." 마법사가 말했다.
"일단 길을 발견하게 되면 두려워해선 안 되네.
실수를 감당할 용기도 필요해. 실망과 패배감,
좌절은 신께서 길을 드러내 보이는 데
사용하는 도구일세."
- 파울로 코엘료의《브리다》중에서 -
8.31.2009
하나님의 날에
하나님의 날
성전에 와 앉았다.
벽 사이 십자가 틈으로
따스한 빛 한줄기
내 몸에 내려 앉는다.
환희 웃으시는
예수의 얼굴
그 따스한 미소로
내 영혼에 와 닿았다.
차갑고 어두운
거부할 수 없는 기운에 눌려
애쓰고 고닳픈 영혼
그 감춰진 곤고함을 뚫고
강렬한 사랑의 생명으로
떨리는 울림으로
내 영혼을 감싸 흘렀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 하도록
나로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값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
찬미하며 드린 그 노래
눈물 사이로
나는 묻는다.
왜 내게 이런 은혜를 주실까?
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실까?
예수의 사랑은
원수 사랑이라
원수된 나를 위해
몸버려 사랑하신
예수를 위해
나도 그렇게
몸버려 내 원수 품기를
몸태워 빛이 되기를
녹아져 소금이 되기를
불가능한 사랑
순종의 열매
나의 사랑 예수처럼
사랑하며 죽고
사랑하며 살기를
매일 매일이
하나님의 날 되기를
나 하나님의 날에
그렇게 기도드렸다.
bk
8.21.2009
김대중 선생의 삶과 헤르만 헤세의 기도
"희망과 좌절, 기쁨과 공포, 그리고 해결과 의혹의 갈등과 번민을 매일 되풀이해왔고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 그분이 나와 같이 계시며,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그 사랑 때문에 지금의 이 고난을 허락하셨으며, 나를 위하여 사소한 일까지 돌보시며, 지금 이 시간에도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기 위한 역사를 쉬지 않고 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나의 감정이나 지식으로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통감하면서 부족한 믿음에 절망하고 화를 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현재의 환경도 주님이 주신 것이며, 주님이 보실 때 최선이 아니면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의 뜻과 앞으로의 계획하심을 알 수는 없으나 오직 주님의 사랑만을 믿고 순종하며 찬양하겠습니다."
죽음을 앞둔 감옥에서
후광 김대중
...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현재의 환경도 주님이 주신 것이며, 주님이 보실 때 최선이 아니면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의 뜻과 앞으로의 계획하심을 알 수는 없으나 오직 주님의 사랑만을 믿고 순종하며 찬양하겠습니다."
죽음을 앞둔 감옥에서
후광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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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믿음에 절망하고 화를 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만이 참 믿음이라고 성서와 신앙의 선배들은 늘 강조했다. 예수를 믿는 신앙은 철저한 자기 부정에서 출발한다. 스스로에 대한 절망은 신앙의 자궁이다. 스스로에 대해 절망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선"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절대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절망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죄성은 스스로 살기 위해 나와 이웃의 목숨마져 위태롭게 할 만 큼 뿌리 깊고 강력하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 대한 절망 마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며 기도가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당신 안에서 기꺼이 멸망하고 싶다"고 기도한 헤르만 헤세의 외침도 울림이 크지만, 후광의 기도는 헤세의 기도를 온 삶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헤세보다 더욱 위대하다.
기도
신이여, 저를 절망케 해주소서.
당신에게가 아니라, 제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미친 듯 모든 슬픔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모든 치욕을 맛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가눌 수 있게 돕지 마시고,
제가 뻗어 나가는 것을 돕지 마소서.
하나 저 자신 모두가 이지러질 때,
그 떼에는 제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보내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어가고 싶습니다만,
저는 오직 당신 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 (Hernman Hesse, 1877-1962)
1.04.2009
죄의 발전
죄의 발전과정에 대한 설명은 바빙크와 오웬을 참조하라.
(1) 유혹
(2) 자유/순종에 대한 혼동
(3) 의심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4) 불신앙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 파기)
(5) 상상의 자유로운 확장
(6) 의지와 감정이 어우러진 계획
(7) 작은 실행
(8) 욕심/정욕의 확장
(9) 더 큰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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