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역사 변혁의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셔서 이 시대를 바꾸실 것이라고 믿는 역사 변혁의 주인공의식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지고 하나님은 자신을 사용하여 한 시대를 움직이실 것이라고 믿는 폭발적인 열망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사람에게로부터 비롯된 야망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꿈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꿈을 가진 사람들만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오늘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거룩한 비밀을 알리시고 당신이 이루고자 하시는 놀라운 계획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김남준, 자네 정말 그길을 가려나,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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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꿈을 성서는 "계시" 또는 "비전"이라 지칭한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분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눈물겹도록 행복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꿈을 심으시며 그 꿈을 이루어 가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방식이며 계시의 기본적인 요건이다. (요 14:21)
"역사변혁의 주인공의식"이 "폭발적인 열망"으로 충만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흐르자 패기는 수그러들고 열정은 식어간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의식과 열망보다는 내 안에 역사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의식과 열망을 더욱 신뢰한다. 그것이 나의 야망을 꺽고 하나님의 뜻(계시)을 수용하고 순종하는 데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나의 하늘 아버지는 더 잘 아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폭발적인 열망을 철저하게 의뢰하는 것이 "역사변혁의 주인공의식"을 가장 현실적으로 지혜롭게 그리고 중단없이 실천해 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운다.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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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2011
11.28.2010
이 시대에 목회자로 산다는 것은
오랜 기간 쉽지 않은 신학수업과 삶속에서의 고단한 훈련과 고통스러운 연단을 통과하시고 목회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시는 두 분의 목사님들과 가족을 축하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축하할 내용이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이 시대에 목회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워 지는데, 축하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네요. 아이러니지만 이런 것이 목회자가 된다는 것일까요?
너무나 감각적이고 지독하게 이기적이며 참을 수 없이 찰라적인 이 세상의 물줄기가 폭포수와 같이 쏟아져 내려, 그 거센 물살을 거치며 예수를 닮아 살아 가려는 그리스도인의 노력이 초라하게까지 여겨지는 때입니다. 예수님의 그 존귀한 이름이 땅에 떨어져 그리스도교가 욕이 되어 버린 이 시대에, 세상을 향해 “예수만이 살길이라고,” “예수가 당신의 삶에 모든 것이 아니라면 예수는 당신의 삶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멸망에 이르는 편안하고 안락한 길에서 벗어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그리고 계속해서 그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외치고 또 외쳐야 하는 이 고독한 길에 첫 발걸음을 떼신 분들에게 어떤 축하를 해야 할까요?
형식과 전통, 종교적 습관에 젖어있는 동료 형제들, 예수를 믿는다 사랑한다 말하고 노래하지만, 정작 마음속에는 자기를 내세우려는 자기 의와 세속적 욕망들이 가득 차 있는 동료 형제들과 자매들을 향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뿐 아니라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래서 차던지 더웁던지 하지 않으면 한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랑했던 당신을 그 입에서 내 치실 것이라고 하나님의 불타는 진노와 두려운 회개의 메세지를 전해야 하는 이 길을 걸어가려 하는 분들에게 어떤 축하를 해야 할까요?
겸손과 희생과 사랑의 예수님을 쫓아 스스로 낮아지고 자기를 비우고 부정함으로서 섬김과 희생의 본을 보여야 하는 동료 목회자들이 힘과 명예와 부와 욕망에 대한 추한 집착을 대놓고 과시하고 자랑하는 이 세대에, 고작 별 볼일 없는 열 댓명의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며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닦아 주시고는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돌아가신 나사렛의 젊은 목수의 모습을 흠모하고 그 분 처럼 살아가기 위해 날마나 처절하게 자기를 성찰하고 육체의 본성을 죽이기 위해 피와 살이 튀기는 내적 전투를 벌여야 하는 이 길을 걸어가려 하는 분들에게 도대체 어떤 축하를 해야 할 까요?
오직 한가지 밖에는 축하드릴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길을 걸어가라고 삼위 하나님께서 두분의 목사님들을 특별히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외로운 길이라도 내가 네게 기름을 부었으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포로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여 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하나님께서 두분 목사님을 부르셨다는 이 위대한 소명 받으십을 축하드립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마른 뼈에 생기를 주시며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인생이 아니셔서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셔서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말씀하신 바를 결단코 이루시는 하나님,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그 권능의 편 팔로 능력을 행하시며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부요한 자를 가난하게 하시며, 권세있는 자를 내리 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 세상에서 미련한 자를 택하셔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연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들을 수치스럽게 하시는 하나님, 외모로 사람을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며 간절히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이제 장차 다시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심판하실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두 분 목사님을 사용하시고자 부르셨다는 그 한가지를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다”(요6)고 말씀하신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주어진 십자가를 행복하게 지시고 가는 두 분 되시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목사 안수 감사예배에 축사를 대신하여 드린 편지
bk
7.18.2010
소명, 사명자, 그리고 배신자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주신 사람을 내가 한 사람도 잊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요한복음 6: 37-38
소명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소명의 내용에 집중한 나머지 소명을 주신 분을 잊어 버리는 것이다. 소명의 중요성은 소명의 내용에 있지 않고 소명의 원인자인 “부르시는 분”에게 있다. 소명의 원인자이며 조력자이시고 완성자이신 부르신 분의, 부르신 분을 위한, 부르신 분에 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명자라고 부른다. 사명자의 문자적 의미는 반드시 완수해야 할 명령을 부여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사명자는 어디로 부르시든, 무엇으로 부르시든, 언제 부르시든 간에 부르신 분에게 집중하고 그 분을 위해, 그 분을 향해, 그리고 그 분에 의해 살아간다. 아버지의 일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고 선포하고 십자가를 지신 행복했던 예수를 쫓아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려 보냈던" 초대교회의 사명자들을 향해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일방적인 방식을 통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진실되고 진지한 논의와 공동체적 기도 없이 더 크고 부유한 교회를 "섬기기"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미 부르심을 받은 교회 공동체를 일방적으로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영적 리더들의 "소명"운운은 아전인수의 극치이다. 예수의 소명은 자신에게 맏겨진 양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양들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망한 자기의 야망을 비전이라는 허울로 포장하여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한 지체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면서 맡겨준신 공동체를 자신의 꿈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려는 야심가들을 하나님은 증오하신다고 지적한 본 회퍼의 통찰이 가슴에 칼을 대는 듯 하며, "나는 성공이 아니라 성실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테레사 수녀의 말씀이 머리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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