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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010

기도

"기도란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행하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 329

기도는 아버지와 나누는 친밀한 대화라고 예수님은 가르쳐 주셨다. 내 생각을 말씀드리면 그분의 생각을 들려 주신다. 내 관점을 말씀드리면 그분의 관점을 말씀해 주신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씀드리면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하늘 아버지는 자상하시고 지혜로우셔서 내가 알아 들을 수 있을 만큼만 알려 주신다. 그리고 알아 들을 수 있게 말씀해 주신다. 중요한 것은 기도는 인격적인 대화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존중하고 그분의 의중을 가치있게 여기며 간절한 마음으로 이해하기를 "열망"할 때 그분은 말씀하신다. 그분의 기록된 말씀을 통해, 나의 양심을 통해,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또렸하고 확실하게 말씀하신다.

"나의 주님. 당신은 아침마다 내 목소리를 들으십니다. 그러니 이 아침에 내가 당신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당신을 소망하고 기다립니다." 시편 5:3

bk

2.20.2009

앎과 노출

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

"The truth is a snare: you cannot have it, without being caught. You cannot have the truth in such a way that you catch it, but only in such a way that it catches you."

진리는 인격이다. 진리는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에게 우리가 노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진리에 의해 점령당하는 것이다. 진리는 살아있는 인격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아간다는 것은 그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는 뜻이다. 그래서 진정한 앎은 내 자유를 댓가로 지불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하신 말씀은 이런 점에서 역설이다. 내 자유를 그분에게 내려 놓는 믿음이 선행되어야 진리를 알 수 있게 된다. 내 자유를 포기할 때에라야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키에르케가르는 말할 것이다. 내가 누리려는 자유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는 자유에는 극명한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이다.

"무엇이 삶이냐"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라고 물어라.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 내 삶을 규정하는 것이지 삶을 정의내리자고 내가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차피 삶은 누구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방황하지 말아라. 대신 의미있다고 믿는 바를 행하며 오늘을 살아라. 그것이 의미있는 삶이며 삶의 의미이다.

12.10.2008

예배전 기도


말씀을 선포하기 전 나는 늘 기도한다.
"성령님, 제발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소리없는 절규를 들어 주십시오.
무엇이 필요한 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분별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머리와 마음과 감정의 출렁임을 진리로 확신하는 우리의 우매함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래서 이 모든 연약함, 무지, 고집과 편견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당신의 거룩하고 정확하며 완전한 진리의 말씀에 우리의 영혼이 사로잡히는 영적 사건이 바로 지금 이시간 이 장소에서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끝도 없는 자기사랑과 멈출줄 모르는 욕심,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교만을 꺽으시고 죄로 인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시어 이 세상에 충만하게 계시는 당신을,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깊이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당신을 닮아가려는 마음과 의지,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당신의 그 놀라운 사랑과 능력에 즐거워하고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설교가 마치면 나의 연약함과 실수, 모자람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믿고 여전히 송구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뿌려진 당신의 말씀이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믿습니다. 말씀대로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4.25.2008

리더로 키우려면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라

오늘 아침 날아온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내용입니다.

{리더로 키우려면 사랑하는 마음부터}

리더로 키우려면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쳐라.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려면 두 가지 마음을 갖춰야 한다.
하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깨닫는 마음' 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처지를 동정해서 작은 힘이지만
기꺼이 빌려주는 마음' 이다.


- 마츠나가 노부후미의《작은 소리로 아들을 위대하게 키우는 법》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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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리더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삶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 두 가지가 실제로 가능하려면 예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는 결정적인 사실이 빠져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리더십의 핵심을 “깨달음”과 “사랑하는 마음”에서 찾은 마츠나가의 통찰은 참으로 적절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기 위해 필요한 훈련은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삶 속에서 적용하는 contemplative prayer”다 라는 것이 나우웬의 첫 번 째 제안이었는데 흥미롭게도 그 contemplative prayer 의 핵심도 바로 “깨달음”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이 두 가지가 내일 우리가 나누려고 하는 말씀묵상의 주제입니다.

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