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s

Showing posts with label 하나됨.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하나됨. Show all posts

1.14.2010

같음과 다름은 하나됨의 다른 이름입니다.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을때 우리는 혼란과 갈등의 가능성 앞에 노출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흔히 사용되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통된 경험과 사고를 강조하는 것 입니다. "서로 같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가치이겠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각기 다른 사고와 경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린 서로 다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어느것이 더 좋은 방법일까요?

그렇습니다. 두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는 것입니다. 공통된 인식의 기반이 없다면 대화자체가 불가능하겠죠. 그러나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모든 대화는 획일과 강압, 그리고 조정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같음을 기반으로 다름을 수용할 때 혼란과 갈등의 위기는 새로운 창조와 진보의 기회로 변할 것입니다. 서로 같은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그리고 어떻게/왜 다른지 (무엇이 다른지가 아니라..)를 탐구해 보세요.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될 거에요.  그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멋진 방법에 대해서 말이죠. 종국에는 "무한히 이질적이고 영원히 저급한 나"와 같음을 공유하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사시고는 나무에 달려 돌아가신 삼위 하나님의 무한한 "다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야 같음과 다름은 하나됨의 다른 두 이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겠죠.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때문에 괴로워하는 이에게 
bk

8.05.2009

원탁의 그리스도

원탁의 그리스도스탠리 존스 지음 황병규 옮김평단문화사 국판 변형 420쪽 13,000원

원탁의 그리스도 (Christ at the Round Table)교회의 선민의식과 배타적 독선에 경종을 울리고세상 속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제시한 책!

“세계적 베스트셀러 《인도의 길을 걷고 있는 예수》의 저자 스탠리 존스의 두 번째 책!”

“진정한 종교는 몸을 구부려 겸손히 섬기고 육체와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며 약해진 영혼과 대화하고 그 영혼을 다시 살려내어 하늘의 아버지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타임> 지가 뽑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선교사 스탠리 존스가 자신의 사명을 알고 그 사명을 완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 시대 최고의 복음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종교관을 가진 인도 사람들의 사상을 그들의 언어로 직접 들으면서 다원주의 사회에서 복음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규명한다. 또한 현대의 문화와 전통이 다원多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복음이 여전히 진리임을 강조하고, 그들의 신관神觀, 내세관, 세계관 등을 파악하면서 진정한 기독교적 복음을 제시함으로써 교회의 역사적 사명과 선교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일깨워 주고 있다.이 책은 저자가 감리교 선교사로 20여 년간 인도 각처를 전도 여행하면서 만난 인도의 대표 지성인들, 즉 브라흐마 학자, 이슬람교 학자, 불교 승려, 힌두교 지도자 등과 함께 종파주의를 초월해 열린 원탁에 둘러앉아 허심탄회하게 나눈 종교적 신념을 촘촘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종교적 승리주의와 종파주의를 초월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영혼의 가면을 벗어 놓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신념을 토로하고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시대 진정한 그리스도의 길이 무엇인지 묻는다.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이 땅의 끝없는 고난과 모순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야 할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논리적으로 변증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것을 변증론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스탠리 존스라는 사람에 대해 두 번 놀라게 될 것이다.“이 시대 진정한 그리스도의 길이란 무엇인가?”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킨 이 시대 최고의 복음서!이 책은 1928년 영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심금을 울리며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으며,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선교 사역의 최대 명저로 꼽히고 있다. 교회의 선민의식과 배타적 독선에 경종을 울리고 세상 속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제시한 이 책은 총 1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초반부에는 인도의 종교지도자, 사상가, 정치가 등과 같이 각계각층 사람들이 원탁에 둘러앉아서 그들의 사상과 종교를 솔직하게 토론한다. 후반부로 가면서 인도 사람들의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서 희망의 증거를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이 왜 복음이고 참길인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변증론적으로 입증해 보인다.이 책은 시공을 초월하는 우주적 복음의 실체를 낯선 땅에서 평생의 삶으로 증거한 신앙의 거인 스탠리 존스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신앙 고백서다! 자신의 목적을 알고 그 사명을 완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다.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길을 설명하고자 한 스탠리 존스의 이 새로운 시도는 수백만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 저자 및 역자 소개저자 : 스탠리 존스 E. Stanley Jones1884년,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18세 되던 해 예수 그리스도께 회심했다. ‘따뜻해진 마음’과 ‘세계 교구’를 강조하는 애즈베리대학에서 수학한 뒤, 1907년부터 감리교 선교사로 인도에서 평생 사역했다. 1920년대 초반, 마하트마 간디, 타고르 등과 함께 아슈람Ashram운동에 참여했으며, 1930년대부터는 기독교 아슈람운동을 펼치며 간디의 정신적 지도력을 바탕으로 한 크리스타그라하Kristagraha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40년 미국 뉴욕시에 할렘 아슈람을 세우면서 그의 기독교 아슈람운동은 인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1938년 12월 12일자 〈타임〉 지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선정되기도 했고, 1961년에는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인도 독립운동과 연관된 활동과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펼친 평화활동 등으로 두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스탠리 존스는 철저한 복음주의자로 살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인도인들에게 다가갔으며,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했던 인물이었다.

역자 : 황병규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1984년부터 World Leadership Conference를 비롯하여 컨퍼런스 강의와 설교를 통역함. 2003년부터 아내와 함께 영묵, 예정, 승묵, 세 자녀를 홈스쿨링하고 있다. 현재 IBLP-Korea에서 삶의 기본 원리와 품성 계발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역서로는 《지혜의 시작》, 《고전적 교육 입문》, 《흔들리지 않는 고전교육의 뿌리를 찾아서》가 있다.

《원탁의 그리스도》에 보내 온 각계의 추천사

위대한 선교사 스탠리 존스는 이 책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역사적 사명과 선교의 올바른 방향을 일깨워 주고 있다. 특히 종교적 선민의식과 종파주의를 초월해 열린 원탁에 둘러앉아 허심탄회하게 종교적 신념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잃어버린 천국’으로 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길을 안내하고 있다!-한완상(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교회의 선민의식과 배타적 독선에 경종을 울리고 세상 속 기독교가 지향해야 할 좌표를 제시한 복음서다. 특히 종교적 승리주의와 종파주의를 초월했던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영혼의 가면을 벗어 놓고 허심탄회하게 종교적 신념을 토로하고 있는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종교인들에게 미래 교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보여 주고 있다.-이어령(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겸 중앙일보 고문)

청소년 시절, 영적으로 매우 고갈되고 생의 여러 문제에 봉착했을 때 스탠리 존스의 책은 내 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데 빛이 되었다. 복음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해 명확하게 안내하고 있는 이 책은 요즘처럼 복음의 능력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에 대한 분명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임영수(모새골 공동체 목사)

스탠리 존스는 시공을 초월하는 우주적 복음의 실체를 낯선 땅에서 평생의 삶으로 증거한 신앙의 거인이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종교관을 가진 인도 사람들의 사상을 그들의 언어로 직접 들으면서 이 시대 진정한 그리스도의 길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몸으로 보여 주고자 했던 진정한 복음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오정현(사랑의 교회 목사)

본문 속으로

나는 한 종교가 다른 종교를 이기고 승리하는 일 따위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혹시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의 목표는 진실이고, 만유의 실재이며, 영의 자유이다. 한 종교가 다른 종교를 정복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이런 문제를 등한시하거나 잊고 악화시킬 수 있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했지만 결국 그리스도가 거기 계시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다.-p.9 (프롤로그)

종교는 삶에 적절한 해답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삶 자체나 삶의 의미와는 아무 공통점도 없는, 즉 삶에 해결책을 주지 못하는 정신적·사회적 찌꺼기인가? 우리는 이 위대한 실험 결과를 보고해야 하고, 확인한 내용이 있다면 기꺼이 알려야 했다. 마음속 깊은 곳을 향해 말하는 것은 정말이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p.15 (제1장 출발)

“저는 욕망의 격렬한 싸움 속에서 스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리스도의 발아래 제 욕망을 내려놓자 그분이 폭풍우를 잠재우고 제 자신에게서 저를 구해 주셨습니다.” “제 인생이 산산이 부서져 있을 때 그리스도가 다가와 정상으로 돌려놓으셨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하나님은 숨을 쉬는 것보다 더 가깝고 손발보다 더 가까운 친밀한 실재입니다.” -p.25 (제2장 인도인의 삶과 맞붙다)

“나 자신을 비울수록 하나님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질서정연한 기계이므로 우리가 그 법칙에 순종할 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적은 바랄 수 없기에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그래서 샹카라도 ‘하나님을 찾으려는 사람은, 바닷가에 앉아 지푸라기로 물 한 방울씩 묻혀 옮겨 놓아 대양을 비우려는 사람 같은 인내를 지녀야 한다’고 말한 것이지요.”-p.53 (제3장 종교에 대한 솔직한 고백들)

누가 진정 그리스도인일까? 루터는 “인간은 절대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단지 그리스도인이 되어 갈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는 모든 의미에 응답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사귐에 따라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사람이다. -p.79 (제4장 거듭남)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했다. 섬기지 않으려는 사람은 벽에 부딪힐 것이다. 나는 지난해에 유럽의 빈 왕궁 열세 곳을 둘러보았다. 그 왕궁들이 어째서 비어 있을까? 그 왕궁에 살던 사람들은 섬김을 받고 싶었을 뿐 섬기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이 법칙에 따라 스스로 망한 것이다. -p.104 (제5장 생명의 속죄)

원탁에 앉아서 사람들이 삶과 운명과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동안, 내 구원자가 앞에서 자라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나는 예수가 나를 어디에서 구원했고, 어디까지 구원했는지, 그리고 어디로 구원해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가장 먼저 예수는 나를 죄에서 구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예수는 내 우주를 구원하고, 내 우주 속에서 건드리는 모든 것을 구원한다.-p.128 (제6장 더욱 커지는 구원자)

우리의 영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라고 지어진 존재이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우리 자아, 곧 참다운 내 자아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법이 내 삶과 일치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붙잡아라.’ 물론 그 제의 속에는 회개하고, 자기를 포기하며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는 요구가 들어 있다. 그러나 일단 그 제의를 받아들이면 그 요구는 어느새 사라지고 즐거움으로 변한다. -p.155 (제7장 하나님에 대한 체험)

나는 《신약성서》를 펴고 기도하면서 어둠을 밝히고 길을 안내해 줄 말씀을 찾았다. 그 순간 〈사도행전〉 1장에 있는 사건이 떠올랐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p.175 (제8장 안타까운 약속의 땅)

우리는 어디서 권위를 찾을 수 있을까? 절대 오류가 없는 교회, 절대 오류가 없는 성서, 절대 오류가 없는 그리스도의 체험에 권위가 있을까? 권위는 세 가지 모두 안에 있다. 최종 확실성과 권위의 자리는 역사의 예수가 체험의 그리스도가 되는 연결점이며, 그 결과로 생긴 개인의 체험이 단체 체험으로써 확증되고 바로잡히는 곳이다. 그때 권위의 자리는 바로 그리스도다.-p.193 (제9장 확실성과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복음은 통역이다. 복음은 영원의 언어를 시간의 말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속죄 목적이 우리에게 가까이 와 닿아 현실이 되고, 누구나 얻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단테가 입을 열었을 때 ‘천 년의 침묵’이 깨졌다고 한다. 예수 안에서 ‘영원의 침묵’이 깨졌고, 우리는 복음을 듣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 속죄의 사실을 통역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p.214 (제10장 그리스도의 통역자)

섬기는 자세, 곧 종의 자세가 그리스도인의 자세다. 그것은 예수가 취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힌두교인 애국주의자는 우리에게 “현재 인도의 영혼을 붙잡고 있는 위대한 낱말 두 개가 있습니다. 곧 ‘섬김’과 ‘자기희생’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이상은 우리 복음의 심장부에 깊이 박혀 있다. 우리가 동양에서 도덕적 권위를 얻으려면 이것이 우리의 자세와 심장부에 깊이 박혀 있어야 한다.-p.233 (제11장 원탁에 앉은 선교 단체)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쥐고 있던 힘마저 다 빠졌을 때에도 여전히 예수는 최후이자 최고의 일을 하려고 했다. 사람들을 위해 죽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 성배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영혼이 악과 증오에 대해 분개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 우리는 이 완전한 승리를 마신다. 무엇으로도 사라지거나 꺼지지 않을 영원한 사랑을 마시면서 우리는 루터처럼 말할 수 있다. “내 영혼은 한없이 기쁘고 위대해서 어느 누구의 원수도 될 수 없다.” -p.279 (제13장 가장 신성한 원탁)

종교는 인간을 자신의 가장 높은 자아와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분열된 영혼의 힘이 하나가 되고 형제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 또한 하나님과도 잘 어울리게 된다. 종교의 임무는 속죄다. 종교가 속죄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치명적이다. 종교 의식이 아름다울 수 있고, 종교 규약의 역사가 아주 오래될 수 있으며, 그 교훈이 좋을 수 있지만, 속죄에 실패한다면 회복할 길이 없다. -p.301(제14장 십자가는 삶의 열쇠)

사랑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의 법칙이다. 미움이 아니고 사랑이 바로 우리 존재의 법칙이다. 미움은 산酸처럼 우리 영혼을 부식시키지만, 사랑은 우리 영혼을 밝은 건강으로 빛나게 한다. 순결이 그리스도 안의 삶의 법칙이고, 우리 존재의 법칙이다. 불결은 내면의 삶을 시들게 하지만 순결은 내면의 삶을 상쾌함으로 설레게 한다. 선이 바로 우리 존재의 법칙이다. -p.327 (제15장 참길)

우주의 원탁에서는 모든 것, 곧 바울,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스승, 세상을 비롯한 모든 사실, 삶을 비롯한 모든 실재, 죽음을 비롯한 모든 변화, 현재와 미래를 비롯한 모든 시간을 포함하는 만물이 일어나 그리스도의 주권을 증언하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으로 조건을 확인해야 한다. 모든 것에는 불멸의 조건이 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라.” -p.383 (제17장 우주의 원탁)


■ 차 례
프롤로그 껍데기는 버리고 본질을 추구하라!
Ch. 1 출발 하나님의 약속|그리스도의 명령
Ch. 2 인도인의 삶과 맞붙다 원탁에서 만난 사람들|간절한 마음의 소리
Ch. 3 종교에 대한 솔직한 고백들 불확실한 영혼|고매한 절망
Ch. 4 거듭남 수평 개종과 수직 회심|회심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
Ch. 5 생명의 속죄 하나님 나라의 실현|좁은 문의 법칙
Ch. 6 더욱 커지는 구원자 사람의 아들, 예수|사람과 하나님이 만나는 곳, 예수
Ch. 7 하나님에 대한 체험 복음은 이론이 아닌 체험|복음은 요구가 아닌 제의
Ch. 8 안타까운 약속의 땅 거의 타오를 뻔하다가 꺼지는 불꽃|거의 될 뻔하다 가 실패하는 교회
Ch. 9 확실성과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인격|스스로 역사 의 증인이 된 예수
Ch. 10 그리스도의 통역자 복음은 생명 언어로의 통역이다|진정한 통역자는 예수
Ch. 11 원탁에 앉은 선교 단체 종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다|민족도 개인 도 사랑한 백부장
Ch. 12 원탁에 앉은 나라들 자기중심적인 바보들|자기희생의 권력
Ch. 13 가장 신성한 원탁 생명의 잔|완전한 승리
Ch. 14 십자가는 삶의 열쇠 값없이 받는 보혈의 선물|십자가는 하나님의 본성
Ch. 15 참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다가온 하나님|예수는 길이고 진리며 생명
Ch. 16 예수는 보편적인 실체 진리는 보편적, 오류는 제한적|어느 상황에서 든 예수는 그 상황의 빛
Ch. 17 우주의 원탁 우리는 예수의 것|예수만이 참 소망옮긴이의 말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From NewsNJoy 서평 이벤트

3.15.2008

삼위 하나님은 서로 질투하시는가?

"그래요. 정말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바다보다 깊고 우주만큼 넓은 내 죄를 완전히 덮으셨으니까요. 그리고 그 사랑을 알면 알수록 내 죄는 더욱 커져만 가고, 그래서 그분의 사랑은 더 넓고 깊어만 갑니다. 영원히… 하나님은 "사랑하심"입니다. 사랑의 한 부분을 질투라 표현한다면 삼위일체 하나님도 서로 질투 하실 테고(신명기 4:24), 질투가 자기사랑의 변질된 사랑이라면 당연 해당이 안되겠지요. 자매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삼위 하나님은 서로 질투하실 거에요. ㅎㅎㅎ

이러한 진리를 배워갈 수 있도록 공동체를 허락하신 주님의 사랑 또한 꼭 언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사랑은 있을 수 없으니까요. 하다못해 짝사랑도 대상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하심처럼,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비결입니다. 공동체가 없다면 "서로 사랑함"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심한 좌절과 갈등을 경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입장, 다른 관점, 다른 경험, 다른 나이, 다른 성장과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 갈등하고 아파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원하는 것이 다르고, 기대가 다르고, 이해하는 바가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처해진 상황이 다르니까요. 게다가 나도 내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은데 어떻게 남이 이해가 가겠습니까? 나도 내가 싫을 때가 많은데 어떻게 남이 마냥 좋겠습니까?

세상 공동체 같으면 좀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관계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니 목적을 위해 관계가 희생당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관계는 당연히 이해타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일을 위한 수단이 됩니다. 겉으로는 너무나 효율적이고, 너무나 조직적이고, 너무나 생산적일 수 있지만, 오히려 모든 도덕적 비극이 여기서(인격의 소외) 발생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정 반대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의 핵심이고 교회의 힘입니다. 교회공동체는 관계 자체가 목적입니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 일이 성취됩니다. 신앙이라는 목적을 이룰 수단으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 관계 속에서 신앙을 배워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배를 위해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사랑으로 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에 모일 때 마다 예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교라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관계는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선교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관계가 없이는 예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너희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내가 함께 있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것은 두 세 사람이 모인 장소에 예수님께서 같이 계신다는 뜻이기 보다는, 두 세 사람이 모인 그 관계 속에서 예수님이 드러나시고 경험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나와 여러분 속에 거하십니다. 그러니 모여서 공동체를 이룰 때 좀더 분명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만들어 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알고 느끼고 믿는 예수가 다라면 그렇게 부분적인 예수가 어떻게 진정한 예수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죠.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역사하시고 나타나시는 예수가 필요한 것이며 우리의 관계를 통해 역사하시는 예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만 더 풍성하고 더 깊고, 더 심오한 예수, 깊은 예수가 경험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내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얼마나 귀한 사람들입니까? 나에게 예수를 풍성하게 경험하게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사랑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죄를 깨닫게 해주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나로 하여금 기도의 자리를 펴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연약함과 오만과 독선과 아집과 상처를 발견하게 해 주는 영혼의 거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모습 그대로를 용납해 주며,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드러나게 하고, 나의 무너진 자아를 곧추켜 세워주고, 깨어진 자아를 다시 재구성해 주는 치유자들입니다. 이런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을 때에야만, 우리는 사랑, 기쁨,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온유, 절제, 충성과 같은 성령의 열매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맺어지는 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신비입니다. 연약한 공동체일 수록 그 신비가 더 뚜렸하게 나타납니다. 조용하고 느린 공동체일 수록 그 신비가 더 분명해 집니다. 오죽하면 하버드와 예일의 교수였던 헨리 나우웬은 정신 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슈에 들어갔을 때 진정한 "공동체"를 배우고 상처를 치유 받았다고 했겠습니까? 공동체는 행사나 집회, 강의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의 연약함 때문에 서로 아파하면서도 예수의 사랑으로 함께 인내하고 보듬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공동체적 삶을 통해서만 만들어 집니다. 그래서 순이 중요합니다.

쓰다 보니 직업병이 도지네요…  이 메일 길게 쓰는 것도 전염되는 모양입니다. 조심해야지…ㅎㅎ

오는 토요일에는 예수님이 세상을 향해 도전하셨던 공동체를 세우는 리더십에 대해 나눌 것입니다. 말씀 구절들을 성경에서 찾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 오시기 바랍니다. 7시 30분부터 간단한 아침을 나누고 8시부터 찬양으로 시작해서 10시에 마치도록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으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19.08 "삼위 하나님이 질투하시는가"를 묻는 자매에게 b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