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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2008

개혁

종교개혁은 반드시 우주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장소와 모든 사람과 모든 직업을 개혁해야 합니다. 사법부를 개혁하고 대학교를 개혁하고 도시를 개혁하고 국가를 개혁하고...안식일을 개혁하고 성직을 개혁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개혁해야 합니다.

Thomas Case recited from Michael Walzer, The revolution of the Saints: A Study in the Origins of Radical Politic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5), 1-2.

위선

열정을 전하려 하다보면 쉽게 말이 앞선다. 말은 값싼 것이지만...크리스천의 행위는 값비싼 노동이다. 크리스천들에게 요구되는 자기부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은 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위선자들은... 성자처럼 말하는 사람이다.

Jonathan Edwards, Religious Affections (1746), ed. John E Smith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9), 411.

문: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으로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나를 고소하기를
하나님의 명령에 저항하여 지독히 죄를 지음으로
결코 그 명령들을 지키지 않으며
여전히 모든 죄악으로 향하는 죄성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무가치한 나를 순전한 은혜로써
마치 내가 한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마치 내가 완전히 순종한 것 처럼
그리스도의 나를 위한 순종으로
그분의 완전한 보상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내게 부어주시고 나의 것으로 여겨 주셨습니다.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은
믿는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The Heidelberg Catechism Q/A 60

중생

...it is an entirely supernatural work, one that is at the same time most powerful and most pleasing, a marvelous, hidden, and inexpressible work, which is not lesser than or inferior in power to that of creation or of raising the dead, as Scripture (inspired by the author of this work) teaches.

중생이란 이런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일이며, 동시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기쁘고, 놀라우면서도 신비하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일이다. 중생은 능력 면에서 창조 사역이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The Canons of Dort, Article 12

유치한 것을 구함

하나님께 유치한 것들까지 구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큰 것을 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높은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위대하심보다는 우리 자신의 위대함에 사로잡혀 작은 기도조차 하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합니다.

C. S. Lewis, Letters to Malcolm: Chiefly on Prayer (NY: Harcourt Brace, 1964), 23.

12.23.2008

죄, 습관 그리고 예속

그러나 우리는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거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예를 들어서 마약 중독자 자신은 그가 마약을 투여하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약에 손을 댄다. 그는 얼마간 자유롭게 마약을 가까이하며 지낸다. 그에게는 선택이 있다. 그는 자유롭게 "죽음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시작했고, 자기 자신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서 그것을 멈추지 못한 채 끝내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도 처음에는 자신의 '선택'으로 마약을 시작했다. 하지만 끝내 '습관'으로 마치게 된다. 그 습관은 하나님에 의해서만...깨어질 수 있는 일종의 '예속'으로 서서히 바뀐다.

Patrick McCormick, Sin as Addiction (New York: Paulist, 1989), 152.

운명


"어떤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다면, 그들의 운명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개략적으로 생각해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운명이란 결핍과 비참함과 고난과 불행과 죽음이다."

Arthur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Idea (London: Everyman, 1995), 216.

노동

기도만 아니라 노동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쇠망치를 내려치는 일, 톱질하는 일,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일, 말 타는 일, 비질하는 일, 세탁하는 일등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당신이 마땅히 할 일로 알고 그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합당하게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하지만 손에 쇠스랑을 든 남자나 설거지물에 손을 담그고 있는 여자도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분이셔서 모든 것이 그분에게 영광이 됩니다.

Gerard Manley Hopkins, The Spiritual Exercises of St. Ignatius Loyola

노동이 기도라는 오랜 경구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깊은 기도역시 노동에 준한다는 사에 신실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동의할 것이다. 노동이든 기도든,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 그분에게는 모든 것이 성스럽고 모든 것이 영광이 된다. 그것이 그분의 위대함이다.

눈맞은 가시떨기

떨기나무에 불이 붙듯
하이얀 불꽃들이
나무에게 쏱아진다.

그렇게 그자리에
오래도록 있었건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떨기나무에 불이 붙듯
타닥타닥 흰 연기가
나무에서 솟아난다

무엇이 안타깝고
무엇이 아쉬운지
분간할 수 없어
애꿋은 마음만 타고

떨기나무에 불이 붙듯
흩뿌려진 새하얀 재가
나무를 휘덮는다

신벗고 옷 벗고
다 타버린 속도 벗어
부끄럼 없이 거룩하게
그렇게 서고싶다.

bk

12.22.2008

기도

"전에 우리가 조용히 기도하던 중 우리 주님을 만난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을...시장에서, 마을의 광장에서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우리 마음 중심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일상적인 비즈니스에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Henry Nouwen, Gracias! A Latin American Journal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3), 21.

갈망의 근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갈망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것, 너무나 약하다는 점을 아시는 것 같다. 우리는 냉담한 피조물들이다.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이 주어졌을 때에도 우리는 술과 섹스와 야망 주변만을 맴돌 뿐이니 말이다. 마치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어서 뒷골목이나 배회하고 싶어 하는 무지한 아이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여간해서는 만족하지 않는다."
C. S. Lewis, "The Weight of Glory," in The Weight of Glory and Other Addresses, ed. and with an intro. by Walter Hooper (NY: Collier, 1980), 3-19.

우리의 욕구는 영원하다. 이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그분이 영원하시고 완전하시기에 우리는 이 두 가지 조건이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가 비록 깊은 사랑에 빠져 영적이고 육체적인 하나됨을 이룬다 할 지라도, 그 하나됨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 땅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를 최종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없다.

향수, 갈망, 동경, 그리움... 우리가 계속 굶주려 있다는 증거이다.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체에서 "직접"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온다. 그것이 사랑이든, 아름다움이든, 의로움이나 선함이든 이 모든 것들이 최종적인 가치 자체가 아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이 갈망하는 최종적 선을 오랬동안 찾아 해맨 후 그것을 "지고의 선, summum bonum" 이라고 불렀다; "오 주님,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는 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갈망이나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갈망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갈망은 하나님을 향해 있다. 진정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학문과 자유

Abraham Kuyer (1837-1920)


하나, 학문이 융성하기 위하여 대중의 마음이 자유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교회는 삶이ㅡ 유일한 목적을 공로를 통해 하늘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교회가 주된 목적과 일치한다고 인정하는 만큼만 세상에서 향유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무도 지상적 실존에 대한 연구에 공감을 갖거나 헌신할 수가 없었다. 모든 참된 칼빈주의자에게 복된 상태는 '중생'에서 자라며 '성도의 견인에 의하여 보증된다. '믿음의 확실성' 근거로,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에게 창조 명령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가운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땅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고, 대양과 자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자연의 속성과 법칙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문을 권장하기를 꺼리는 백성이 새롭고 활기 넘치는 힘으로 자유의 느낌을 향유하도록 학문에 박차를 가했다.


갈등은 신앙과 학문의 갈등이 아니다. 그런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은 어느 정도 신앙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학문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잘못된

앙이거나 미신이다. 참되고 진정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신앙을 전제한다.

특별히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원리에서 신앙을 전제한다. 이는 학문적 탐구에 필요한 모든 공리가 우리의 자의식과 더불어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반면에 모든 신앙은 발언하려는 충동을 내적으로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신앙은 말과 용어와 표현을 필요로 하고, 말들은 사상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 사상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함께 상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이 우리의 의식에 빛을 비추자마자 학문과 논증의 필요가 생겨난다.


따라서 갈등은 신앙과 학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우주가 정상적 상태인가 비정상적 상태인가 하는 주장 사이에 존재한다. 만일 우주가 정상이라면, 우주는 잠재력에서 이상(ideal)으로 가는 영원한 진화의 의미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주가 비정상이

라면, 과거에 란이 일어났고 목적의 최종적 달성을 보증할 있는 것은 중생적 능력뿐이다. 대립은 학문의 영역에서 사유하는 가지 지성을 전투 대형으로 나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

12.18.2008

뇌의 마음

뇌의 마음 - 10점
월터 J. 프리먼 지음, 진성록 옮김/부글북스

나는 무엇일까? 내 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누가 좀 꺼내 봐 주었으면...
그래서 내가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12.17.2008

신경과학과 인간 본성


인간이란 무엇인가. 특히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은 신앙과 학문 등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철학자 칸트는 이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를 철학의 근본 물음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세 가지 물음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환원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철학을 ‘인간학’이라고 정의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 이야기/이현복 외 지음/아카넷/1만3000원

5월 들어 나란히 번역 출간된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 이야기’(이현복 지음, 아카넷), ‘의식의 재발견-현대 뇌과학과 철학의 대화’(마르틴 후베르트 지음, 원석영 옮김, 프로네시스), ‘꿈꾸는 기계의 진화-뇌과학으로 보는 철학 명제’(로돌포 R. 이나스 지음, 김미선 옮김, 북센스)는 모두 끝없는 물음의 원천인 ‘인간’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들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 이야기’는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이고, 그 본성은 어떻게 파악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세계 안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떠한지 등 인간 본성과 관련해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인류가 축적한 철학적 사유를 총동원해 고찰하고 있다. 한양대 이현복 교수를 비롯해 세종대 이태하, 경북대 손성철, 서강대 김영건 류제동 교수 등 대학에서 철학과 종교학을 강의하는 13명의 필자가 참여했다. 정낙림 경북대 교수는 ‘자기를 긍정하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에서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

◆의식의 재발견-현대 뇌과학과 철학의 대화/마르틴 후베르트 지음/원석영 옮김/프로네시스/1만3800원

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고 있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는 니체의 사유를 인용하며 인간을 설명했다.

‘인간은 자유의지의 주인인가 신경 회로의 노예인가’라는 화두를 먼저 던지고 출발하는 ‘의식의 재발견’은 “인간의 자유의지는 뇌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단정한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이전인 16세기까지 인간은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며 하늘은 한낱 지구를 도는 바퀴로 상상했으나 지금은 지구란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점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듯이, 현재 인간은 자신의 사유기관을 들여다보는 기계들을 만들어 내 뇌 속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한다’는 수천 년간 지속하여 온 인간에 대한 견고한 생각은 타격을 입었고, ‘인간은 한 조각 자연에 불과하다’는 자조까지 하게 됐다. 물론, 인간이 느끼는 황혼의 장려함이나 바이올린 현의 미묘한 울림, 사랑에 빠진 순간의 불가해한 심적 상황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꿈꾸는 기계의 진화-뇌과학으로 보는 철학 명제/로돌포 R. 이나스 지음/김미선 옮김/북센스/1만8000원

미국 뉴욕대 의대 생리학 및 신경학과 학과장 로돌포 R 이나스가 쓴 ‘꿈꾸는 기계의 진화’는 인간 뇌의 운동을 단순한 ‘작용’으로 파악하지 않고, 생명의 ‘기억’으로 바라본다. ‘마음은 곧 뇌’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뇌의 신비를 단일 신경세포 단위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나스 교수는 ▲뇌의 기능과 언어·감정은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된다 ▲뇌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예측한다 ▲인지능력의 대부분은 유전적으로 갖추어진 채 태어난다 ▲운동과 언어와 감정은 이미 패턴화되어 있다는 등 네 가지 특징으로 인간의 뇌과학 연구 성과를 정리한다.

‘마음은 생명체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진화의 산물’이라고 결론 내린 이나스 교수는 “인간의 유전자에는 30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온 인류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이를 ‘생명체의 기억’이라고 표현한 나이스 교수는 “마음의 본성을 완전히 이해하는 날, 우리는 서로를 더욱 존중하고 찬미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쯤 되니, 인간은 곧 우주이고, 인간은 곧 한울님이라는 종교의 경지가 낯설지 않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Nancy Murphy 교수님을 통해 신경과학과 철학이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대화 해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물질적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플라톤-데카르트식의 이원론을 극복하는 인간 이해가 절실히 요청된다. Non-reductive monism...


12.16.2008

문화와 신학

Stanley J. Grenz

신학 일반과 특히 복음주의 신학의 지역적
(국지적) 성격은 그것이 문화적 활동이라는 데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현대에는 인류학자들이 문화를 문화적 집단의 성원들에게 외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개인들을 사회에 묶는 선재하는 사회 질서적 힘으로 묘사했었다. 그런데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은 문화 안에서의 결렬과 나뉨(disjuncture)을 지적한다. 그들은 여러 다른 문화들이 전체를(wholes) 이룬다는 것을 쉽게 인정한다. 그런데 이 전체(wholes)는 단일한 성질의 것(monolithic)이 아니라, 내적으로 갈라진 것이라는 것을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은 지적하는 것이다.[24] 그래서 헨리 코헨(Henry Cohen)은 문화를 "사람들과 과정들을 통합(統合)시키기(integrates) 보다는 그들을 집적(集積)시키는(aggregates) "이라고 묘사한다.[25]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인류학자들은 문화를 사회적 상호 작용의 결과나 산물이라고 말한다.[26] 사회는 공적 상징들의 의미를 규정하고 그렇게 해서 의견의 일치(consensus)를 형성하려고 계속 투쟁하는 일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집적(集積)이라는 것이다.[27] 결과적으로, 알랑 뚜랑(Alain Touraine)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람들은 사회 관계의 일반적 틀이나, 분명히 이해된 일단의 신념이나 가치들, 또는 주도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함께 엮어 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화적 접착제는 "사회적 행동가들이 조절하고 통제하려 하고, 충용하며, 또는 그것들을 사회적 조직으로 변혁시킬 때 그들이 서로 양보하고 절충하는 일련의 자원들과 모델들"로 구성된다.[28]

신학은 모든 문화 안에 있는 의미를 형성하는 활동(the meaning-making activity)과 연관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신학은 특정한 사회의 건축 벽돌과 문화 의미의 전달자로서 기능하는 다양한 상징들과 실천들과 연관된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은 '기독교 문화적' 의미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형성하는 과제와 연관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스 프라이(Hans Frei)는 신학을 "기독교 공동체에 내재해 있는 규범이나 규범들 아래서 그 공동체 자체의 언어나 행동을 기독교 공동체가 다시 평가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29] 또한 캐떠린 태너는 신학을 "의미 생산에 전념하는 실질적 사회적 습관"(a material social practice that specialized in meaning production)이라고 선언한다.[30]
24 Kathryn Tanner, Theories of Culture: A New Agenda for Theology (Minneapolis: Augsburg Press, 1997), 56.
25 Anthony P. Cohen, Self Consciousness: An Alternative Anthropology of Identity (London: Routledge, 1994), 118-19.
26 Cohen, Self Consciousness, 118-19.
27 Tanner, Theories of Culture, 56.
28 Alaine Touraine, Return of the Actor, trans. Myrna Godzich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apolis Press, 1988), 8, 26-27, 54-55.
* 여기서 신학의 문화적 환원이 발생할 위험이 있음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신학이 문화 형성적 작업과 관련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학의 여러 기능 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학의 의미를 이 글에서의 그렌츠와 같이 오직 문화의 의미 형성 작업과만 연관시키면, 신학의 다른 측면을 놓치고, 문화론적, 의미론적 환원일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역자 주).
29 Hans W. Frei, Types of Modern Theology, ed. George Hunsinger and William C. Placher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2), 2.
30 Tanner, Theories of Culture, 72.

Getting Things Done

we spend so much time worrying about the agreements we make with others, but it begins with making and keeping agreements with ourselves, eliminating the negativity that happens when we don't.

David Allen

이론상으로는 단무지... 실천으로는 영무지
영어로 는 Just Do It... 한글로는 "그냥 해?!"

12.15.2008

세계관


Albert M. Wolters
What is a Worldview?
Creation
Fall
Redmption
Discerning Structure and Direction

Worldview is "the comprehensive framework of one's basic beliefs about things."
The most significant feature of worldviews is their tendency toward pattern and coherence; even their inconsistencies tend to fall into clearly recognizable patterns.
In general, therefore, everyone has a worldview, however inarticulate he or she may be in expressing it. Having a worldview is simply part of being an adult human being.

Paulo Freire


Paulo Freire (1921-1997)
Brazilian educational philosopher and social educator
Christian humanist

"Our pedagogy cannot do without a vision of man and his world. It formulates a scientific humanist conception which finds its expression in a dialogical praxis in which teachers and learners, together, in the act of analyzing a dehumanizing reality, denounce it while announcing its transformation in the name of the liberation of man."

교육

{Trans-cultural}
1. Biblical Foundations
2. Theological Foundations
3. Philosophical Foundation
{Cultural}
4. Historical Foundations
5. Sociological Foundations
{Personal}
6. Psychological Foundations
{Educational}
7. Curricular Foundations

Educational Principles
Educational Practice

신학

fides quaerens intellectum


"Theology is a continuing search for the fullness of the truth of God made known in Jesus Christ."


신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풍부한 진리에 대해 탐구하는 행위이다.

안셀름의 유명한 경구를 빌자면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이다. 모든 진실된 탐구와 정직한 진리의 추구는 믿음을 전제로한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믿어야 한다. 믿기 위해 이해하려 한다면 켤코 작은 "이해"조차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진정한 믿음은 켤코 이성의 욕구를 배제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믿음은 맹신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믿음은 철저하게 이해를 추구하고 거기서 만족과 기쁨을 얻는다. 이것은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며, 하나님은 진리이신 자신을 계시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진리를 이해하고 즐거워 함으로 그분을 영광돌리도록 창조하셨다고 믿는 믿음의 결론이다.

미소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지 않으면 험해 보입니다.
살짝 미소를 지어 보세요.
행복해 질 것입니다.
당신도 그리고 당신을 보는 사람들도 밝아지고 기분이 훨씬 좋아 질 거에요.
무엇보다, 웃는 당신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bk

기도와 소망

기도는 자신의 본성과 싸우는 전투이다.
기도는 소망의 행위이며 종말론적 행위이다.
기도는 기도하기 싫어하는 본능과의 싸움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도전이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열정이다.
소망은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반박 청구이며 언약신학의 표현이다.
소망은 실제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간섭하시도록 자극하는 행위이다.
-자크 엘룰-

12.14.2008

게으름의 친구: 포기

끝까지 하지 않는 것도 게으른 것입니다.
필요한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일해야지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뛰어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예상대로 일이 끝났으면 끝난 대로 감사할 수 있고, 어려운 일이 발생해 예상보다 일이 복잡해져도 위기 상황에 원활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 100의 힘을 들여서 이룬 일을 자신은 요령과 기술로 50의 차이를 줄여 50 정도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50의 힘으로도 될 줄 알았는데 안되므로, 포기하고 돌아서 버리는 것은 게으른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일 수록 포기가 많습니다...여기서 포기하고 말면, 다음엔 더 빨리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이기는 사람은 계속 이기며 살고, 포기하는 사람은 계속 포기하며 삽니다.

"포기"라는 말은 배추 셀 때나 쓰자!

용기

용기는 우리가 두려움을 느낄 때 생기는 것임을 명심하라.
당신이 도전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어느정도 긴장해야 한다.
용기는 두려움 없이 생기지 않는다.
용기는 두려움의 산물이다.
월터 앤더슨 <삶을 바꾸는 내 안의 힘>

간단히 말해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굴하지 않는 것이다.
용기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다.
용기는 두려워 하는 내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분의 성품을 신뢰하고 믿는 행위이다.
용기는 여전히 두려워 하면서도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는 두려움의 폭풍우를 뚫고 피어나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꽃이다.

legei autois, Ego eimi. John 18:5
내겐 지금 용기가 필요하다.

12.13.2008

시간의 과학적 사용

TIME지에 게재된 시간과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떤 생활형인가에 따라 효과적인 삶을 영위하는 시간대에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에 맞추어 시간표를 짜고 생활한다면 더 효율적인 성과를 거두는 인생을 살지 않을까 생각된다.

당 신이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자정에 자는 올빼비(Night Owl)형이라면, 오전 10-12시가 가장 창조적인 시간이며, 낮 12-1시, 저녁 6-11시가 어려운 작업들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시간대에 해당한다. 오전 8-10시와 오후 2-3시는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이며, 오후 3-6시는 전환기에 해당한다.

한편, 당신이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저녁 10시에 자는 아침(Morning Person)형이라면, 아침 6-8시가 가장 창조적인 시간이며, 오전 8-12시 반과 오후 2시반-4시반이 어려운 작업들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시간대에 해당한다. 아침 5시반-6시와 오후 12시반-2시반, 그리고 저녁 8-10시는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이며, 오후 4시반-8시가 전환기에 해당한다.

창 조적인 시간대는 창조적인 사고와 아이디어 개발에 가장 효율적이며, 어려운 작업(problem solving)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시간에는 두뇌가 깨어 집중을 하기에 적합하므로 그 날의 과업을 처리히면 좋다. 집중하기 어려운 시간에는 휴식을 취하든지 집중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하면 좋고, 전환기는 하루 일과에서 신체가 다시 회복(rejuvenation)되는 시간이므로 일상적인 일이나 독서, 예술 감상, 게임 등 두뇌를 다시 신선하게 만드는 일이 적합하다고 한다.

하루 일과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간은 오전 9시, 오후 1시반, 5시, 그리고, 취침전이라고 하는데, 오전 9시에는 두뇌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준비가 완료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에서 가장 활력적인 두뇌 영양을 제공하는 아침을 거르지 말아야 한다. 오후 1시반에는 체온이 최저치로 떨어지고 정신도 쉬려고 하기 때문에 무리해서는 안 되며 중요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오후 5시는 운동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다. 오전에는 신체기관의 협동이 원할하지 않고 저녁은 수면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취침전에는 소화작용의 부담으로 인해 고질의 수면을 방해할 수 있는 간식 섭취를 피하고 조용한 수면 준비가 필요하다.

기 상과 취침 시간에 차이가 있으면, 먼저 두 유형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판단한 후, 자기 상황에 맞추어 추정하면 될 것이다. 비록 우리 마음대로 시간을 배정할 수 없는 현실이 있지만 가능한 한 시간과학을 참고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 몸은 실로 오묘하고 정확하여 그에 순응하면 건강하고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다.

From 이정석 목사님
http://www.unaecclesia.blogspot.com/

12.10.2008

예배전 기도


말씀을 선포하기 전 나는 늘 기도한다.
"성령님, 제발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있는 소리없는 절규를 들어 주십시오.
무엇이 필요한 지, 무엇을 노래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분별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머리와 마음과 감정의 출렁임을 진리로 확신하는 우리의 우매함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래서 이 모든 연약함, 무지, 고집과 편견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당신의 거룩하고 정확하며 완전한 진리의 말씀에 우리의 영혼이 사로잡히는 영적 사건이 바로 지금 이시간 이 장소에서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끝도 없는 자기사랑과 멈출줄 모르는 욕심,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교만을 꺽으시고 죄로 인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시어 이 세상에 충만하게 계시는 당신을, 그래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깊이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당신을 닮아가려는 마음과 의지, 지혜와 용기를 주시는 당신의 그 놀라운 사랑과 능력에 즐거워하고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설교가 마치면 나의 연약함과 실수, 모자람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위해 나의 기도를 들으셨음을 믿고 여전히 송구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뿌려진 당신의 말씀이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믿습니다. 말씀대로 살도록 도와 주십시오."

12.09.2008

게으름의 발전: 정욕



3. 게으름의 발전: 정욕

게으름이 게으름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의무가 필요합니다. 의무가 없는 곳에서는 그 사람의 게으름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작 단계의 게으름은 늘 이러한 형태고 출발합니다. 아예 의무를 행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귀찮은 부분을 소흘히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게으름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그것은 바로 의무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계속 발전하는 것은 게으름의 원인인 자기 사랑이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게으름은 영육간에 편안한 삶을 이룬 것에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편안한 삶은 게으름의 소극적인 목표일 뿐입니다. 이 소극적인 목표가 만족되고 나면 나타나는 적극적인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쾌락입니다. 이처럼 게으름의 끝에는 길이 없습니다.
신자로서 해야 할 선하고 마땅한 의무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급기야 그 의무를 저버림으로써 편안함은 획득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에서 오는 사랑의 연합이 주는 신령한 기쁨도 사라졌습니다. 이 때 육체는 게으름으로 얻을 수 있는 편안함보다 더 자극적인 즐거움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요구의 대부분은 죄를 짓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청교도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행동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욕구를 살펴라. 그 사람의 욕구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준다."

발전된 게으름은 정욕들을 계속 솟아나게 하여, 신자로 하여금 의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 편안함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악을 행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고자 하도록 만듭니다...더구나 이 후자의 욕구는 전자의 욕구보다 훨씬 강합니다. 죄를 지은 대가를 치르며 느끼는 괴로움 보다는, 불타오르는 정욕에도 불구하고 그 죄에 접근하지 못할 때에 느끼는 안타까움이 더 힘든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게으름 때문에 정욕에 완전히 사로잡힌 존재로 전락하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은혜의 통치 아래 사는 사람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죄의 지배 아래서 죄의 종이 되어,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방불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게으름이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하는 종착지는 바로 여기이며, 이것을 행해 게으름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달프지만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으로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일에 충성하고 분투하는 과정에 대해서 보상하시기 때문입니다.

땀 흘리는 부지런함, 게으름의 욕구를 꺾는 삶, 의무를 실천하고자 하는 진지한 몸부림이 있을 때, '하나님, 도와주세요'하는 기도에 눈물과 진액이 밸 수 있습니다.

12.08.2008

게으름의 뿌리: 자기 사랑

2. 게으름의 뿌리: 자기사랑

게으른 자라고 해서 그의 혀까지 게으르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게으른 자일수록 핑계가 많고 변명이 많습니다. 몸은 게을러도 혀는 게으르지 않은 것입니다...대부분의 경우 게으른 사람은 본질적으로 빗나간 자기 사랑에 깊이 빠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게으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태도의 옳지 못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따라 충실하게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끊임없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우리의 발목을 붙드는 자기 사랑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위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인간의 게으름은 거룩한 삶의 목표를 성취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얻는 보람보다, 지금 당장 좀더 편하게 살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육적인 요구를 붙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온전히 자신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사진을 향한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의 위치와 목적, 그 하나님께 받는 사랑의 정체, 그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행복,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창조된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자각하고 거기에 자기를 정확하게 맞출 때에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위없이는 누구도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방향으로 흐리지 않고, 온전하게 자기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지런함은 단지 기계적인 성실함과 근면함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들과 함께 지혜로움도 필요합니다. 여기서 지혜롭다는 것은 쓸모 없이 낭비되던 시간들을 정돈하여 보다 중요한 일에 사용할 줄 아는 것이고, 급한 일과 꼭 해야 할 일들을 조화롭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며, 맡은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소유한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해야 할 일을 안 할 구실을 찾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해야 될 것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현재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는 일의 대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일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놓으면, 전 인생을 두고 엄청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다름 사람에게 맡기고, 제가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함에 있어서 늘 보다 빠르고 완벽하게 수행하는 방법들을 터득해 가고자 애를 쓰며 삽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한된 시간을 남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김남준, 게으름

12.06.2008

게으름의 정체: 싫증

정해진 삶의 길이 속에서 보다 많은 일을 하며 사는 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가치가 적은 일보다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여 사는 것,
유능해지는 것,
부지런히 사는 것입니다.

인간 안의 부패성은 자기 중심적인 욕망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는 부지런하게, 선한 의무를 행하는 데 있어서는 게으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본성적 게으름은 영적인 변화 없이는 벗어 버릴 수 없습니다.

...거룩한 삶에 대한 그러한 모든 무기력 뒤에는 자기의 마음의 정욕을 따라 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게으름의 정체입니다.

1. 게으름의 정체: 싫증

게으름은 바로 그렇게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인 악이며, 영적인 불결입니다. 따라서 게으름과 싸워 그 뿌리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의 영향력으로 파괴하지 않으면, 성화에 있어서 진전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날마다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배우는 실천적인 순종함 없이는 어떠한 영적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성품, 그리고 익숙해진 삶의 갈피갈피마다 깊이 배어 있는 게으름색출해 낼 것입니다. 말씀의 빛이 우리 안에 있는 게으름의 정체를 드러낼 때 여러분들은 더 이상 그것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며, 이제껏 여러분 안에서 하나 된 삶을 살았다는 것에 대하여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입니다. 마치 환자가 수술 후 자기 몸에서 떼어 낸 암덩이를 보고 끔찍해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멈췄던 '착하고 충성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으름이 들어오면, 신자의 지성에서 건강하고 바람직한 정신적 작용들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게으르게 사는 사람들 중에서는 투철한 사상을 지닌 사람을 만나 보기 힘듭니다... 뚜렸하고 건강한 사상을 지닌 사람들은 어김없이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분명하게 정리된 정신 세계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타고난 입담으로 개똥철학을 널리 퍼뜨릴 수 있는지는 몰라도, 많은 백성들이 믿고 따라갈 수 있는 건강한 사상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게으름은 악입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자기 속에 있는 무엇을 쏟아 내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체력을 소진하거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헌신하거나 해서라도 뭔가를 이루어야 하겠다는 목표가 없습니다... 목표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불태워서 매진하는 실제적 삶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목표가 되는 것이지, 그것을 위한 실제적 삶은 싫고 단지 그 자체만 원할 뿐이라면 그것은 한낱 희망 사항에 불과합니다...목표는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서 있고, 노력하면 성취가 가능한 단계에 있어, 꿈꾸는 이로 하여금 그것을 생각 하면서 자신의 삶을 그 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망상이나 희망 사항을 가지고 사는 데는 비용이 안 들지만,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사는 데에는 반드시 비용이 듭니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꼭 희생하여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좋게 변할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환경은 영원히 우리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환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극복하고 싸우면서 이겨야 할 상대입니다. 잘 점검해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게으름입니다.

게으름, (김남준 2003, 9)

11.25.2008

Cross-Cultural Connections


Cross-Cultural Connections: Stepping Out and Fitting in Around the World
By Duane Elmer
Published by InterVarsity Press, 2002
ISBN 0830823093, 9780830823093
200 pages

Table of Contents
Preface
Section 1: Getting a Perspective
1. Monkeys, Mission and Us
2. Your Part of God's Story
3. Right, Wrong and Different

Section 2: Dealing with the New and Different
4. Culture is Everywhere, and It Sneaks Up on You
5. Culture Shocks
6. Identifying Expectations
7. Square Heads and Round Heads
8. Cultural Adjustment Map

Section 3: Attitudes and Skills for Cultural Adjustment
9. Openness: How to Be Approachable
10. Acceptance: How to Be Positive
11. Trust: How to Build Strong Relationships
12. Skills for Cross-Cultural Effectiveness

Section 4: Cultural Differences That Confuse
13. Time and Event
14. Task and Relationship
15. Individualism and Collectivism
16. Categorical and Holistic Thinking
17. Logic: Straight or Curved
18. Achieved Status and Ascribed Status
19. Guilt and Shame
20. Worship Expression: From Low to High

Section 5: Returning Home
21: Re-Entry: You Are Never the Same

Epilogue
Appendix
Notes
Selected Bibliography

  1. When we are confused and frustrated, we make negative attributions. that is raher than trying to understand, I assign a negative attribute to the other person.
  2. These negative attributions lovate the problem in someone else.
  3. If the other person is the problem, then we are freed from making any adjustments or seeking understanding the other person must change.
  4. This kind of thinking is called calonialism, imperialism, paternalism, neocolonialism. 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