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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2008

사랑과 자유

“사랑은 스스로 자유를 억제함으로 더 큰 자유를 누린다.”
토마스 아켐피스

실수

실수를 두려워 마라

실수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빨리 배운다.
실수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깊게 배운다.
실수하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 사람보다 쉽게 적응한다.
가장 큰 실수는 실수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 여훈의《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최고의 선물》중에서 -


* 맞습니다.
실수를 두려워하면 발전도 전진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반드시 경계할 것이 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고도리 편지


주체가 되라

삶에 주체가 되십시오.”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스스로 주도적이 되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내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이래라 저래라 없습니다. 그렇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같은 이치로, 나도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삶에 주체가 된다는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해 때에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분은 자신의 십자가를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하셨다면 십자가를 지지도 않으셨겠죠.

다만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섬김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사람들은 말이 아닌 행동에 영향을 받습니다.

행동이 뒷받침 되지 않은 강한 말들은 비난의 화살이 되어 되돌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절이 바뀌듯 모든 것은 변합니다.

환경도 바뀌고 사람들도 바뀝니다.

변화를 탓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변화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창조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화를 즐기고 변화를 주도하는 우리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느 형제에게 bk

개혁주의

개혁주의자들은 세가지 중요한 강조점을 가진다.

1. 개혁주의자들은 "교리주의자들 the doctrinalist"이다.
교리주의자들은 교리를 영원 불변한 것이라고 고집하여 구체적인 조건과 변화된 상황, 새로운 인식과 실천적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고정된 개념과 문자적 의미에 매여 무비판적이 되는 교조주의dogmatism와는 다르다. 교리주의자들은 성경에 의해 가르쳐지고 신조들에 의해 정리된 기독교의 교리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가 삶에 궁극적인 변화와 영향력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자들은 (1) 성경을 영감되고inspired, 절대적이며infallable, 권위있는authoritative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2) 개혁주의자들은 창조-타락-구속으로 설명되는 구속사적 성경관을 믿는다. (3) 개혁주의자들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를 철저히 배재하는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믿는다. (4)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과 그 백성들이 맺으시는 특별한 관계로서의 언약을 믿는다. (5) 개혁주의자들은 죄를 억제하셔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보존하시고 구속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일반은총을 사용하신다고 믿는다.

2. 개혁주의자들은 "경건주의자들the pietiest"이다.
교리주의자들에 대한 강조는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함이 삶 속에 어떻게 구현되는가? 어떻게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가?
경건주의자들로서 개혁주의자들은 경건에 있어 (1)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2) 성화로 이끄시는 성령의 역사와 사역을 강조한다. (3) 성화의 과정을 은혜의 조건이 아닌 은혜의 결과로 보며 감사를 강조한다. (4)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강조한다. (5) 말씀과 성례가 가지는 독특성과 중요성을 강조한다.

3. 개혁주의자들은 "변혁주의자들the transfomationalist"이다.
개혁주의자들은 문화와 세계관, 그리고 문화를 변혁하시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다. 어떻게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
변혁주의자들로서 개혁주의자들은 (1)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의 주되심을 강조한다. (2) 이미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강조한다. (3) 말과 행위의 일치를 강조한다. (4)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창달하는 문화적 명령을 강조한다. (5) 가정과 학교와 교회의 세가지 영역에서의 기독교 교육을 강조한다. (6) 각각의 부르심에 따라 일하는 직업적 소명을 강조한다.

고백

주여, 당신의 눈앞에서는 사람의 양심이 그 바닥까지도 "벌거벗은 것같이" (히4:13) 드러나오니, 내 속에 있는 것 가운데 당신께 고백하기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그 무엇이 감춰질 수 있겠습니까? 이는 내가 당신을 보지 않으려 내 눈을 가릴 수는 있어도, 나 자신을 당신에게서 숨길 수는 없음입니다.
이제 나는, 나의 한숨이 증거 하듯, 나 자신이 싫사오니, 당신이 내게 빛을 비추사 당신에게서 만족을 얻게 하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바라보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나 자신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껴 나 자신을 버리게 해 주십시오! 대신 당신을 붙들게 하셔서 오직 당신께 의지함으로 당신을 만족케 나며, 나 자신을 만족케 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Augustiuns, Confessio, 497, 10.2.2

주님, 당신으로 인해 만족을 얻게 해 주십시오. 내 자신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에는 열심이고 부지런했지만 그 결과는 만족이 아닌 허무와 절망과 좌절뿐이었습니다. 내 양심이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을 얻기 위해 달려간 그 곳에서 양심의 호된 질책과 꾸지람을 듣고 낙망하였으며, 내가 만족을 얻지 못한 것은 아직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다른 강렬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혼돈이요 무질서였습니다. 성난 파도에 휩슬리는 작은 배 처럼 나의 영혼은 그렇게 흔들리었습니다. 달리고 달리면서도 불안하고 고독하였으며 결국은 죄책감에 만신창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내 영혼의 만족과 쉼은 그저 당신 뿐이었건만 나는 그것이 싫었고, 내 스스로 나를 만족시키고 쉼을 얻으려 그렇게 당신을 뒤로 하고 달려만 갔습니다.
주님, 이제 내게 당신의 빛을 비추사 당신을 사랑함으로, 당신께 돌아옴으로 만족을 누리고 행복을 맛보게 해 주십시오. 나는 이제 평안하고 싶습니다. 기뻐하고 싶습니다. 내 영혼이 양심으로 함께 자유하고 싶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BK

The Purpose of My Life

I exist in order to glorify and enjoy God by loving Him and loving people through all of my God-given life, resources, and character.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과 자원들(은사/소유/관계/지식/전문성/시간), 그리고 성품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영광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위해 존재한다.

Q. 1. What is the chief end of man?
A. Man’s chief end is to glorify God,[1] and to enjoy him forever.[2]

[1] Psalm 86. Isaiah 60:21, Romans 11:36, 1 Corinthians 6:20, 31, Revelation 4:11.

[2] Psalm 16:5-11. Psalm 144:15, Isaiah 12:2, Luke 2:10, Philippians 4:4. Revelation 21:3-4.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12.30.2008

공동체를 위한 신학교육

I. 1983년 Edward Farley (professor of Theology at Vanderbilt Divinity School, Nashville, Tennessee) 가 내놓은 이론 (Theologia: The Fragmentation and Unity of Theological Education)은 교회와 신학 사이의 단절에 대한 신학 논쟁에 불을 던졌다. 신학자들은 신학을 '과학화'함으로 신학을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신학교는 과학적 신학에 적응하면서 또 다른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신학과 신학 교육은 신학적 합일(theological unity)을 잃으면서 기능과 기술 중심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I-1 Farley의 주장을 긍정하고 환영한 신학자는 Charles M. Wood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였다. Wood는 (Vision and Discernment, Scholarly, 1985) 실천적 지혜라는 주제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추적하였다.
우드에 의하면 '성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목회학'의 4중적 형식의 신학교육은 16세기 종교개혁에 뒤따른 목회자 양성의 필요성에 따라 고착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16세기 성서신학의 일차적 목표는 신학생이 성서를 통해 신앙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학적인 성서주석의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이었다. 조직신학의 목표는 신학생들에게 성경의 교리적 내용을 합리적으로 이해시키며 장차 그 내용을 교육하고 논쟁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역사신학은 과거의 역사와 전통을 이해함으로 교회와 세계 역사 뒤에 흐르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의 패턴을 보게 하고, 그러한 관점으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목회학은 신앙 공동체의 상황과 신학 과목을 결합하여 목회의 본질과 의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드에 따르면 18세기 산업혁명에서 대두된 '과학주의 (scientism)' 는 현대 대학을 태동시켰으며 아울러 신학의 상황마저 바꾸어 놓았다. 성서신학은 성서비평으로, 조직신학은 철학적 논쟁으로, 역사신학은 종교사로, 그리고 목회학은 학문의 반열에서 추방되었다. 이때부터 신학은 신학적 통전성을 잃기 시작했으며, 실천성practicality 마저 잃은 채 교회와 신학이 갈라지게 되었다.

II. 한편, Joseph C. Hough (Union Theological Seminary)와 과정신학자 John B. Cobb (School of Theology Claremont) 는 우드가 Vision and Discernment를 편찬한 같은 해에 Christian Identity and Theological Education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Hough and Cobb은 Farley의 이론이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추상적이며 형식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두 학자들은 오늘의 신학교와 교회 사이의 문제는 과학주의에 적응하려 했던 4중적 신학교육의 변질이 문제라기 보다는, 16세기의 목회자양성을 위한 4중적 신학교육 시스템과 변화된 현대의 목회자의 역할 사이의 거대한 괴리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호우와 콥에 의하면, 16-17세기의 신학교육은 '스승, 교사, 지식인'상의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한 커리큘럼 구조였다. 지식인으로서 목사는 고전어, 성경, 역사, 철학, 논리학등을 통달한 스승이었으며 목회의 권위는 잘 가르치는 것에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부흥운동과 종교의 무한경쟁으로 목회자는 지식인에서 설득력있는 웅변가로 바뀌었다. 부흥사와 설교가들이 급부성하였으며 여기서부터 신학 교육과 교회는 서서히 불협화음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목회자는 회중을 모으고 교회 건물을 짓고 제도를 만들어내는 조직의 건설자(Builder)로 바뀌었으며, 20세기 중반에는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경영하는 지도자, 경영자, 치유자로 목회자상이 급변하였다.

그러기에 오늘의 신학 교육의 문제는 지식인 양성을 위해 만들어 놓은 Academic Norms학문적 규범과 변화된 목회자상이 요구하는 Professional Norms전문적/기능적/직업적 규범 사이의 공백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코우와 홉은 학문적 규범과 전문적 규범 사이를 연결하는 새 목회자상을 Reflective Practitioner or Practical Theologian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6학기 새 커리큘럼 시안까지 제시하였다.

III. 호우는 1988년 이미 고인이 된 James F. Hopewell을 기념하는 책을 편집하면서 새로운 신학교육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Hopewell은 Beyond Clericalism: The Congregation as a Focus for Theological Education에서 목회자 패러다임 clerical paradigm 은 성직자 후보인 신학생 개개인의 신앙적 순례와 직업적 윤각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개인의 발달단계와 기능주의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신학교육이 성직자 하나만을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는 동안, 정작 성직자를 통해 구현되는 궁극적 목표인 구속적 공동체redemptive community의 형성은 외면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신학교육이 "성직자 양성"에만 집중하면, 목회는 성직자 개인에게 시작되고 교회공동체는 그 한 성직자에게 모든 것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교회 공동체는 신학과 신학 교육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성직자만이 존재하였다. 여기에 실패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Hopewell은 여기서 혁명적인 제안을 한다. 그는 신학교육을 "목회자" 패러다임에서 "회중congregation"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마치 법학 교육이 타협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정의 공동체'의 실현인 것 같이, 의학교육이 '질병 치료'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과 같이 신학교육이 '목회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사회의 대안인 구속 공동체'를 세우는 일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속적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신학교육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우선적으로 우리의 신앙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모든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서 실천적이며 책임감있는 신앙을 형성하고 그 신앙이 구체적인 삶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신앙이 자기 자신과 이웃, 그리고 사회와 세계앞에서 구체적이고 책임있게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임무이다. 신학은 신학자의 독점물 이기 이전에 모든 신앙인의 성찰의 과정이며 더 나아가 신앙공동체를 통해서만 가능한 작업이다. 신학의 자궁은 신앙공동체이다. 신앙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을 신학화하고 신학을 실천할 수 있는 교회공동체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신학교육은 선장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큰 배를 공동적으로 움직여 갈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한 훈련의 장이어야 한다.

Sharpen your Saw

Covey calls this habit the "Principles of Balanced Self-Renewal." This habit causes us to pause from our ever-busy lives and work to renew ourselves in four key aspects of our lives. We can become so caught up in our busy-ness that we can lose the edge of our effectiveness. Habit 7 causes us to consciously spend time and energy "honing" ourselves and our skills to keep and increase our effectiveness.

Habit 7 is about taking care of the most important resource you have - yourself. This habit is a quadrant II activity that I call "re-creation" - not just "recreation" of play or frenetic vacation as an interlude to work, but as time and activity that truly rejuvenates us. These re-creation activities are important, but rarely urgent until we become ill and must address it. Habit 7 is about increasing your PC (production capability) by taking care of yourself.

Four Dimensions of Renewal

We must focus on renewing ourselves in four critical areas of our lives - physical, spiritual, mental and social/emotional - in order to optimize our effectiveness (See Figure 1).


Physical Dimension. The physical dimension is about taking care of your physical self - eating right, getting the necessary rest and exercising. A balanced exercise program addresses three areas, endurance, flexibility and strength. Endurance is improved through aerobic exercise, increasing the ability of the heart to pump blood through the body to provide oxygen. Without oxygen, the tissue can deteriorate or die. Flexibility is improved by stretching muscles so the body can better handle strain without tearing. Strength is improved through resistance exercise that increases the body's ability to perform the physical exertion required to perform our work or leisure activities safely and efficiently.Spiritual Dimension. This dimension is the core of your life, your center and your commitment to your value system that provides the basic "leadership" to your life. It's a very private area of life and a supremely important one. It draws upon the sources that inspire and uplift you and tie you to the timeless truths of all humanity. And people do it very, very differently.3

Mental Dimension.
Mental development comes through education -- formal and informal. Without a study discipline, our minds can atrophy. The information age demands continuous learning in all forms. However, we must ask a key question: Are we learning things that help us grow?

Social/Emotional Dimension. The first three dimensions - physical, spiritual and mental - align closely with Habits 1, 2 and 3, respectively. The fourth dimension (social/emotional) focuses on Habits 4, 5 and 6 - the "public victory" triad. These represent the principles of interpersonal leadership, empathic communication and creative cooperation.

As information professionals, we must develop ourselves as leaders, regardless of whether we hold a title of manager or professional. Only as leaders can we effect positive change and growth in the area of our scope of influence.

The social and emotional sides of our lives are interdependent. They are shaped by and are exhibited in the interpersonal relationships with others, at home, at work and at play. The renewal of this dimension happens through our interactions with others.

While the first three dimensions are renewed by carving out Quadrant II time for them, we have ample opportunity in regular contacts with people to sharpen the saw of our social skills. We hone them by practicing Habits 4 (Think Win/Win), 5 (Seek First to Understand, then to Be Understood) and 6 (Synergize).

12.29.2008

Education for Shalom

Shalom goes beyond justice, however. Shalom incorporates right relationships in general...right relationships to God, to one's fellow human beings, to nature, and to self. the shalom community is not merely the just community but is the responsible community, in which God's laws for our multifaceted existence are obeyed.

The vision of shalom comes to us, for one thing, as a two-part command: we are to pray and struggle for the release of the captives, and we are to pray and struggle for the release of the enriching potentials of God's creation. we live under both a liberation mandate and a cultural mandate.

The goal for which Christian educators are to teach is that our students be agents and celebrators of shalom, petitioners and mourners.
Nicholas Wolterstorff, Educating for Shalom (MI: Eerdmans, 2004) 24-25.

Education for Freedom or for Kingdom

Authentic education is for liberation and emancipation from the closed-in particularities of one's specific historical and social situation into the wide-open possibilities of humanity's understandings, imaginations, and desirings as a whole.

진정한 교육이란 한 인간이 처한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닫혀진 특수성들로 부터 해방키키고 자유케 해 인간의 이해와 상상, 욕구들의 너른 가능성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Summarized by Nicolas Wolterstorff from Oakeshott, "Education: The engagement and Its Frustration," in Education and the Development of Reason, edited by R. F. Dearden, P. H. Hirst, and R. S. Peters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72), pp. 19-59.

"Education is by a kingodm and for citizenship in that kingdom." Education is always religious in its import. the situation is not that the Christian educator practices committed education while everyone else practices neutral eduction; ultimately everyone practices committed education.
The goal of Christian education for Jellema was to initiate the student into the Christian mind.
Students must be freed from the bondage of thinking with the mind of modernity and led to think with the Christian mind.

Models of Religious Education

Harold W Burgess

"By extension, theory provides a plausible explanation of the principles underlying a practice."

1. The Relationship between Theory and Practice: An Introduction
2. The Historic Prototype of Religious Education: A Backdrop to Twentieth-Century Models
3. The Classical Liberal Model (John Dewey, George Coe, William Clayton Bower.)
4. The Mid-Century Mainline Model (Reinhold Niebuhr, H. Shelton Smith, and Randolph C. Miller)
5. The Evangelical/Kerygmatic Model (Charles Burton Eavey, Lois E. LeBar, Robert W. Pazmino)
6. The Social-Science Model (James Michael Lee, Ted Ward)
7. Celebrating a Fruitful Field


Six Categories
1. Aim
2. Content
3. Teacher
4. Learner
5. Environment
6. Evaluation

12.28.2008

공감적 경청 vs 동감

공감적 경청이란 이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경청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즉 진정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공감적 경청이란 다른 사람이 가진 준거틀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것, 즉 그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에 입각하여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그들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또 그들이 느끼는 감정도 이해한다.

공감이란 동감을 말하는 것이아니다. 동감은 합의의 한 형태인 판단을 포함한다...[동감]은 사람들을 서로 종속적으로 만든다. 공감적 경청의 본질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이것은 어떤 사람을 감정적으로는 물론 지적으로도 완전하고 깊게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바에 의하면, 커뮤니케이션 중 불과 10%만이 우리가 말하는 내용에 의해 전달되고 있다고 한다. 다른 30%는 우리가 내는 소리에 의해, 그리고 나머지 60%는 우리의 신체 언어를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공감적 경청을 하는 경우 우리는 귀로 말을 들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더욱 중요한 눈과 가슴으로 듣는다.

The 7 Habits





























내게 진정한 영향력을 미치는 관건은 실제로 보여주는 당신의 행동에 달려 있다. 당신이 보여주는 실제 행동은 당신의 성품, 즉 진정 당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평판이나 당신이 나로부터 받고 싶은 평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영향력은 내가 당신을 실제로 어떻게 경험했는가에 따라 확실히 달라진다.

Vision 2009 "Fervant In Spirit"

우선순위



















1. Necessity-Manage-Do It Now
2. Quality-Focus-Decide When to Do It
3. Deception-Be Careful-Delegate It
4. Waste-Avoid-Dump It

마음의 혁명

Pragrance of Princess

I like the fragrance (only the fragrance I should say) of the princess in my book. It's sweet.

자존감의 심리학

자부심이 내려가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리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사건 컨트롤 역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역의 명제도 성립한다. 자부심이 올라가면 생산성과 사건 컨트롤이 올라가는 것이다.

이 3등식의 제일 쉬운 부분은 당연히 사건 컨트롤 쪽이다. 살아가면서 사건을 더 많이 컨트롤할 수 있으면 더욱 생산적이 된다. 또 일을 훨씬 더 조직적으로 처리할 수 있으며, 가치 있는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물론 자연히 자부심이 올라가는 부산물도 얻는다.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다 잘 컨트롤하면 할수록 자신에 대하여 더욱 만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정말 주요한 것들을 컨트롤하면 할수록 정말 자신이 더 자랑스러워진다.

Hyrum Smith 46-47

리더십

"상의를 벗고 일하다니, 왜 그랬는가?"
"구덩이를 파는 데 옷을 입고 팔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상의를 벗고 있으면 자네가 장교인지 누가 알아보겠나?"
...

"글쎄요, 견장을 차고 있어야만 내가 장교라고 알아본다면 그게 더 문제가 아닐까요?"

동기와 감정

우리가 취하는 대부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3가지 중요한 감정이 있다.
바로 두려움, 의무감, 사랑이다.

The Journey From Fear to Love Kay Allan

자랑

고린도후서 11장

What do you boast about?

은연중 내가 자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뽐내고 싶을까?
다른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사도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사랑 받기를 원한다.
대단한 능력, 많은 경험, 높은 학식, 뛰어난 지혜, 풍부한 소유, 아름다운 외모...
모두 다 자랑거리들이다.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관심을 끈다.
사랑받고 존경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조정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은 모두 왕자이고 싶고, 공주이고 싶다.

사도바울이 말한다:
"If I must boast, I will boast the things that show my weakness."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사랑받는 자들이다.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그분의 인정, 관심, 보호, 인도, 공급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영원하고 다함없는 그분의 성품을 쫓아
영원하고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들이다.

굳이 자랑을 해야 한다면, 그것을 자랑할 일이다.
얼마나 내가 부족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연약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미련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가난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상처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잔인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이기적인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교만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조급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무식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고집센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산만한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게으른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정욕적인 사람인지
얼마나 내가 비판적인 사람인지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모든 추악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당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신다.
이것이 내가 자랑하며 노래할 유일한 제목이다.

12.27.2008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습관

나는 언제나 당신 곁을 떠나지 않는 동반자.
나는 당신의 가장 충실한 조언자일 수도 있고, 가장 무거운 짐일 수도 있죠.
나는 당신을 끌어 올릴 수도 있고 아니면 실패의 나락으로 끌어 내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당신의 일의 절반이라도 떠맡길 수 있어요.
그러면 나는 순식간에, 그리고 정확하게 해치웁니다.

나를 다루는 일은 쉽습니다. 나를 꽉 붙잡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은지 정확하게 보여만 주십시오.
몇 번만 연습하고 나면 나는 자동으로 해 냅니다.

나는 모든 위대한 인물들의 하인입니다.
하지만 모든 실패자들의 주인이기도 하지요.
위대한 사람들은 나를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실패자들은 나에게 지배를 당합니다.

나는 기계처럼 정확하게 움직이지만, 그렇다고 기계는 아니에요.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있을 다름입니다.

당신은 나를 이용해 유익을 얻을 수도 있고, 파멸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 쪽이든 나한테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나를 꽉 붙잡고 훈련 시키십시오.
그러면 이 세상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나를 편히 놓아주시면 반드시 당신을 파멸로 인도할 것입니다.

나의 이름은 바로 "습관"입니다.

의지 Will

There is no chance, no destiny, no fate,
Can circumvent or hinder or control
The firm resolve of a determined soul.
Gifts count for nothing; will alone is great;
All things give way before it, soon or late.
What obstacle can stay the mighty force
Of the sea-seeking river in its course,
Or cause the ascending orb of day to wait?

Each well-born soul must win what it deserves.
Let the fool prate of luck. The fortunate
Is he whose earnest purpose never swerves,
Whose slightest action or inaction serves
The one great aim. Why, even Death stands still,
And waits an hour sometimes for such a will.

Will by Ella Wheeler Wilcox (1859-1919)

의지가 강한 사람의 단호한 결심을
막거나 방해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수 있는
가능성이나 운명이나 숙명 따위는 없다.

목표

"목표는 현재 상태와의 계획된 갈등이다"

목표에 이른다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것, 안정된 상태라는 편안하고 익숙한 영역에서 빠져 나와 새로운 미개척지로 탐험 하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는 일은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힘든 경험일 수도 있다.

-중력을 이겨 하늘을 날으려면 중력을 극복할 만큼의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SMART의 법칙

Specific
Measurable
Action-Oriented
Realistic
Timely

기측기와 영성 테스터

도시를 떠나 산 속 깊은 곳에 사시는 한 집사님 집을 방문했다가 기를 측정하는 기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기측기(氣測器)(?)라고나 할까요? 기구까지라고 할 수 도 없는 이 기역(ㄱ) 자 같이 생긴 두 개의 쇠막대는 신통하게도 물건이나 공간, 사람의 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가늠해 줍니다. 만약 양 손에 이 쇠막대를 잡고 그 물건이나 공간, 사람을 향해 들면 기의 양에 따라 오므려졌다 펴졌다 합니다. 만약 기가 적다면 이 막대기가 거의 X자를 만들지만 기가 많다면 각이 넓은 V를 만들게 되지요. 그 집사님이 시험 삼아 제 머리에 그 쇠막대를 접근시켰을 때 저는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그 짧은 순간 속으로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주님. 그래도 명색이 목산데 기가 안 나와 영성이 모자란다거나 머리가 나쁘다거나 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산다면 제 망신 주님 망신 단체망신입니다. 힘좀 써 주세요. 네? 그러면서 복어처럼 머리에 힘을 바짝 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기가 많이 나와 쇠막대가 V자를 그려졌지만 그 집사님 웃으면서 그러시더군요. 목사님. 힘주면 기 대신에 응아 나와요

기는 생명력이다라고 정의하시면서 모든 살아있는 것에는 기가 있다고 설명해 주시는 집사님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을 측정하는 그런 도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딱 갔다 대면 얼마나 성령으로 충만한지, 얼마나 영성이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지를 알려주는 그런 도구. 그런 도구가 있다면 매일 매일 내 영성을 측정해 보면서 최고의 영적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할 텐데. 또 다른 사람들의 영성을 측정해 주고 말만 많고 아무런 능력 없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수 있을 텐데.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봐라 당신은 살아있지만 실제는 죽었다.고 말해주면서 도전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공상을 부담 없이 하고 있을 때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그런 도구가 이미 있단다.흠짓 놀라며 주님. 그런 도구가 정말 있단 말입니까? (큰일인데) 라고 묻는 제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은 도구가 아니라 테스터, 즉 시험지란다. 90점 만점의 시험지이지. 영성을 측정하는 시험지 뿐만 아니라 타락의 정도를 측정하는 시험지도 같이 있단다. 한번 풀어보렴. 그리고 네 점수에 너무 놀라거나 낙심하지는 말거라. 시험에 점수에 상관 없이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시험지는 네가 가진 성경 신약 308쪽에 있단다."

여러분의 편의를 위해 영성 테스터(시험지)를 제가 여기 복사해 놓습니다.(바울에게 저작권이 있는 문제지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부로 복사하셔도 무방합니다. 사용료는 각자 교회에다 내세요; 갈 5:22-23). 총 9개의 문제이구요 특히 1번 문제는 20점이 만점이구요 나머지는 문제들은 각각 10점이 만점입니다. 그러면 100점이 만점이겠지요? 건투를 빕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0점) 어쩌다 그렇다. (3점) 가끔 그렇다. (5점) 종종 그렇다. (7점) 항상 그렇다. (10점)

1. 나는 내 삶 속에서 예수님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경험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하며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 처럼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 (점수에 2를 곱하세요. )
2. 나는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삶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다. 그래서 매사에 긍정적이다.
3. 나는 예수님 때문에 환경과 상황과 조건들을 초월하는 마음의 평강과 평안이 있다.
4. 나는 내 삶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나를 짓누르는 여러가지 조건들과 사람들에 대해 끝까지 참고 인내한다.
5. 나는 예수님처럼 어려운 일을 당했거나 힘든 사람들을 보면 참지 못하고 같이 아파하며 돕는다.
6. 나는 예수님처럼 악한 사람들에게 똑같이 악을 행함으로 지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긴다.
7. 나는 예수님처럼 늘 신실하며 약속을 잘 지키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산다.
8. 나는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세우고 섬기기 위해 나의 자랑이나 지위나 권리, 힘을 유보하는 온유함을 실천한다.
9. 나는 예수님처럼 식욕, 성욕, 수면욕, 구매욕, 음주 흡연욕, 소유욕, 노동욕, 게으름 등등의 욕구를 주님의 요구에 따라 조절(Control)한다.

참고로 본인이나 타인의 타락 정도를 측정하고 싶으시다면 같은 페이지의 갈라디아서 6장 16절부터 21절까지를 참조하세요.


bk



12.26.2008

인격

"인격이란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 하겠다고 한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인격이란 가치 있는 결정을 내린 후 그것을 결정할 때의 감동이 사라진 다음에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능력이다.

만재홀수선 Plimsoll Line

우리 모두 '만재홀수선 Plimsoll Line'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1880년, 영국의 새뮤얼 필림솔은 과도한 짐을 실은 배가 바다에 빠지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씨름했다. 그는 모든 영국 배의 선체에 하나의 선을 그리자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배에 짐을 실을 때 그 선에 물이 올라오면 더 이상 싣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법안이었다. 그 선이 바로 만재홀수선이다.

Ibid, 63

사건관리

뉴턴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며, 우주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그런데 라이프니치가 등장, 뉴턴의 정의를 뒤집었다. 그는 "시간은 단순히 여러 사건들의 순서일 뿐이다.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라이프니치의 뒤를 따랐고, "시간은 사건들의 순서일 뿐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사건의 순서를 통해서 시간을 측정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동시 발생 사건 (simultaneous events)"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열차가 오후 7시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시계의 작은 바늘이 7자를 가리키는 순간에 열차가 도착하는 것이 된다.

마음의 평화란 무엇일까?
마음의 평화는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적절하게 컨트롤함으로써얻은 평온함, 균형, 그리고 조화의 상태를 말한다.
시간관리의 목표는 마음의 평화이다. 이제부터 '시간관리'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사건 컨트롤 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시간관리 하면 으레 시계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시계를 들여다 보아서는 태양이 떴다가 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사건이다. 진짜 문제는 과연 '나는 어떤 사건들'을 컨트롤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마음의 평화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내가 믿는 바가 일치하고 조화를 이룰 때 얻을 수 있다."

필요성이 충분히 클 때, 우리는 평소에는 컨트롤할 수 없다고 믿는 사건들도 다 컨트롤할 수 있다. 문제는 '필요성의 차이'이다.

...사건을 보다 잘 컨트롤하면 할수록 자신에 대하여 더욱 만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을 컨트롤하면 할수록 정말 자신이 더 자랑스러워진다.

그러면 왜 일을 미룰까?...
(1) 아마도 그 가장 흔한 이유는 중요한 일이 즐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미루기를 극복하는 몇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데드라인을 정하라
-싫은 것부터 먼저 처지하라
-게임하듯 하라
-스스로 상을 주어라

(2) 일일을 미루는 또 다른 이유는 일이 너무나 엄청나 보이기 때문일 경우가 있다. 일의 크기나 기한, 또는 복잡성이 부담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엄청난 일이라도 헨리 포드의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그래도 덜 압도당할 것이다.
"일을 잘게 나눈다면 특별히 어려운 일이란 없다"

일을 미루는 또 다른 이유들도 여러 가지가 있다. 지나친 약속 (이것은 일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정보부족, 불분명한 목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시의 적절하지 못함, 그리고 일에 대한 잦은 혼란, 무관심 등이 있다. 미루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미루고 있는 일에 어떻게 해서든지 긴박감을 불어 넣는 것이다.

Hyrum W. Smith, The 10 Natural Laws of Successful Time and Life Management, 1994

12.24.2008

개혁

종교개혁은 반드시 우주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모든 장소와 모든 사람과 모든 직업을 개혁해야 합니다. 사법부를 개혁하고 대학교를 개혁하고 도시를 개혁하고 국가를 개혁하고...안식일을 개혁하고 성직을 개혁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개혁해야 합니다.

Thomas Case recited from Michael Walzer, The revolution of the Saints: A Study in the Origins of Radical Politic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65), 1-2.

위선

열정을 전하려 하다보면 쉽게 말이 앞선다. 말은 값싼 것이지만...크리스천의 행위는 값비싼 노동이다. 크리스천들에게 요구되는 자기부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은 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 위선자들은... 성자처럼 말하는 사람이다.

Jonathan Edwards, Religious Affections (1746), ed. John E Smith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59), 411.

문: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으로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나를 고소하기를
하나님의 명령에 저항하여 지독히 죄를 지음으로
결코 그 명령들을 지키지 않으며
여전히 모든 죄악으로 향하는 죄성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무가치한 나를 순전한 은혜로써
마치 내가 한번도 죄를 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마치 내가 완전히 순종한 것 처럼
그리스도의 나를 위한 순종으로
그분의 완전한 보상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내게 부어주시고 나의 것으로 여겨 주셨습니다.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은
믿는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The Heidelberg Catechism Q/A 60

중생

...it is an entirely supernatural work, one that is at the same time most powerful and most pleasing, a marvelous, hidden, and inexpressible work, which is not lesser than or inferior in power to that of creation or of raising the dead, as Scripture (inspired by the author of this work) teaches.

중생이란 이런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일이며, 동시에 가장 강력하고, 가장 기쁘고, 놀라우면서도 신비하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일이다. 중생은 능력 면에서 창조 사역이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The Canons of Dort, Article 12

유치한 것을 구함

하나님께 유치한 것들까지 구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큰 것을 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높은 마음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위대하심보다는 우리 자신의 위대함에 사로잡혀 작은 기도조차 하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합니다.

C. S. Lewis, Letters to Malcolm: Chiefly on Prayer (NY: Harcourt Brace, 1964), 23.

12.23.2008

죄, 습관 그리고 예속

그러나 우리는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거부하는 삶을 살고 있다...예를 들어서 마약 중독자 자신은 그가 마약을 투여하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약에 손을 댄다. 그는 얼마간 자유롭게 마약을 가까이하며 지낸다. 그에게는 선택이 있다. 그는 자유롭게 "죽음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시작했고, 자기 자신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서 그것을 멈추지 못한 채 끝내 파멸에 이르고 만다.
그도 처음에는 자신의 '선택'으로 마약을 시작했다. 하지만 끝내 '습관'으로 마치게 된다. 그 습관은 하나님에 의해서만...깨어질 수 있는 일종의 '예속'으로 서서히 바뀐다.

Patrick McCormick, Sin as Addiction (New York: Paulist, 1989), 152.

운명


"어떤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다면, 그들의 운명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개략적으로 생각해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운명이란 결핍과 비참함과 고난과 불행과 죽음이다."

Arthur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Idea (London: Everyman, 1995), 216.

노동

기도만 아니라 노동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쇠망치를 내려치는 일, 톱질하는 일,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일, 말 타는 일, 비질하는 일, 세탁하는 일등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당신이 마땅히 할 일로 알고 그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합당하게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하지만 손에 쇠스랑을 든 남자나 설거지물에 손을 담그고 있는 여자도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분이셔서 모든 것이 그분에게 영광이 됩니다.

Gerard Manley Hopkins, The Spiritual Exercises of St. Ignatius Loyola

노동이 기도라는 오랜 경구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깊은 기도역시 노동에 준한다는 사에 신실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동의할 것이다. 노동이든 기도든,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 그분에게는 모든 것이 성스럽고 모든 것이 영광이 된다. 그것이 그분의 위대함이다.

눈맞은 가시떨기

떨기나무에 불이 붙듯
하이얀 불꽃들이
나무에게 쏱아진다.

그렇게 그자리에
오래도록 있었건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떨기나무에 불이 붙듯
타닥타닥 흰 연기가
나무에서 솟아난다

무엇이 안타깝고
무엇이 아쉬운지
분간할 수 없어
애꿋은 마음만 타고

떨기나무에 불이 붙듯
흩뿌려진 새하얀 재가
나무를 휘덮는다

신벗고 옷 벗고
다 타버린 속도 벗어
부끄럼 없이 거룩하게
그렇게 서고싶다.

bk

12.22.2008

기도

"전에 우리가 조용히 기도하던 중 우리 주님을 만난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을...시장에서, 마을의 광장에서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우리 마음 중심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일상적인 비즈니스에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Henry Nouwen, Gracias! A Latin American Journal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3), 21.

갈망의 근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갈망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것, 너무나 약하다는 점을 아시는 것 같다. 우리는 냉담한 피조물들이다.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이 주어졌을 때에도 우리는 술과 섹스와 야망 주변만을 맴돌 뿐이니 말이다. 마치 바닷가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어서 뒷골목이나 배회하고 싶어 하는 무지한 아이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여간해서는 만족하지 않는다."
C. S. Lewis, "The Weight of Glory," in The Weight of Glory and Other Addresses, ed. and with an intro. by Walter Hooper (NY: Collier, 1980), 3-19.

우리의 욕구는 영원하다. 이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그분이 영원하시고 완전하시기에 우리는 이 두 가지 조건이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가 비록 깊은 사랑에 빠져 영적이고 육체적인 하나됨을 이룬다 할 지라도, 그 하나됨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 땅에 있는 어떤 것도 우리를 최종적으로 만족시켜 줄 수 없다.

향수, 갈망, 동경, 그리움... 우리가 계속 굶주려 있다는 증거이다.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체에서 "직접"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온다. 그것이 사랑이든, 아름다움이든, 의로움이나 선함이든 이 모든 것들이 최종적인 가치 자체가 아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이 갈망하는 최종적 선을 오랬동안 찾아 해맨 후 그것을 "지고의 선, summum bonum" 이라고 불렀다; "오 주님,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는 쉼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갈망이나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갈망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갈망은 하나님을 향해 있다. 진정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싶어 한다.

학문과 자유

Abraham Kuyer (1837-1920)


하나, 학문이 융성하기 위하여 대중의 마음이 자유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교회는 삶이ㅡ 유일한 목적을 공로를 통해 하늘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고, 사람들은 교회가 주된 목적과 일치한다고 인정하는 만큼만 세상에서 향유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무도 지상적 실존에 대한 연구에 공감을 갖거나 헌신할 수가 없었다. 모든 참된 칼빈주의자에게 복된 상태는 '중생'에서 자라며 '성도의 견인에 의하여 보증된다. '믿음의 확실성' 근거로, 칼빈주의는 기독교 세계에게 창조 명령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가운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땅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고, 대양과 자연에 대한 지식, 그리고 자연의 속성과 법칙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학문을 권장하기를 꺼리는 백성이 새롭고 활기 넘치는 힘으로 자유의 느낌을 향유하도록 학문에 박차를 가했다.


갈등은 신앙과 학문의 갈등이 아니다. 그런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은 어느 정도 신앙에서 출발하지만, 반대로 학문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은 잘못된 잘못된

앙이거나 미신이다. 참되고 진정한 신앙은 그렇지 않다. 모든 학문은 신앙을 전제한다.

특별히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원리에서 신앙을 전제한다. 이는 학문적 탐구에 필요한 모든 공리가 우리의 자의식과 더불어 주어져 있음을 뜻한다.


반면에 모든 신앙은 발언하려는 충동을 내적으로 갖고 있다. 이를 위하여 신앙은 말과 용어와 표현을 필요로 하고, 말들은 사상의 구현이 되어야 한다. 사상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상황과 함께 상호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이 우리의 의식에 빛을 비추자마자 학문과 논증의 필요가 생겨난다.


따라서 갈등은 신앙과 학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존재하는 우주가 정상적 상태인가 비정상적 상태인가 하는 주장 사이에 존재한다. 만일 우주가 정상이라면, 우주는 잠재력에서 이상(ideal)으로 가는 영원한 진화의 의미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주가 비정상이

라면, 과거에 란이 일어났고 목적의 최종적 달성을 보증할 있는 것은 중생적 능력뿐이다. 대립은 학문의 영역에서 사유하는 가지 지성을 전투 대형으로 나눈다.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