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s

8.21.2009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

예배공동체를 세우는 예배사역 Worship Ministry For Building a Worshiping Community

오늘날 예배사역은 곧 예배이벤트(worship event)와 예배상품(worship product)을 의미하는 것으로 더욱 보편화 되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예배가 너무 좋았다"라는 말은 예배인도자와 예배기획자가 듣기에 기분좋은 말인건 사실이지만 그런 평가로 예배가 성공적이었다고 자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오늘날 예배사역의 무게가 지나치게 '개인적인 예배체험을 만들어내는 것(creating personal worship experience)'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예배체험'이 예배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 사람들은 예배인도자와 기획자들에게 자신들의 눈과 귀를 맡긴채 '자, 최고의 예배의 경험으로 나를 인도해 보시죠.'라는 태도로 예배에 참여하고 또 예배상품을 구입한다. 예배이벤트와 예배상품이 만족할 만한 개인적 예배의 체험을 만들어 냈을 때 사람들은 '예배 참 좋았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배사역자, 예배기획자들은 이러한 경험을 안겨주기 위해 더 화려한 조명과 음향, 미디어등을 통한 기획효과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개인적인 예배의 체험(personal worship experience)을 만들어 내기 위한 예배사역은 결국 모든 힘이 worship production에 집중될 수 밖에 없으며 '예배사역은 곧 개인의 예배체험을 만들어 내기 위한 예배프로덕션'이라는 공식에 대한 염려와 우려의 목소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 문제는 예배프로덕션 자체가 아니라 예배프로덕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개인적인 예배의 경험을 만들어내는데 멈추고 있다는 것이다. 예배사역의 궁극적인 목표는 개인적인 '예배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creating personal worship experience)'에서 멈추어선 안되며 '예배공동체를 세우는 것(building a worshiping community)'이 되어야 한다. 예배이벤트와 예배상품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예배공동체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갖고 예배이벤트와 상품을 기획하고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적 예배체험을 만들어내는 예배사역과 예배공동체를 세우는 예배사역이 실제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도록 하자. 개인적 예배체험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배사역은 모든 힘을 창조성(creativity)에 집중시킨다. Emphasizing creativity for producing personal worship experience 매주 예배이벤트에 참가하는 개인들에게 개인적 예배체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사람들의 현실적 필요(felt-need)로 부터 예배의 주제(central theme of worship)의 논의가 시작된다. 예배의 주제를 정할때는 주제가 사람들의 실제적 삶의 필요에 얼마나 적합한가(relevant)가 최고의 관심요소가 된다. 사람들의 삶과 관련 없게(ir-relevant) 여겨지는 주제들은 예배의 주제에서 외면당하기 쉽다. 사람들의 관심과 필요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해 예배의 주제를 정하면 이제는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 주제을 머리로 이해 할 뿐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다감도(multi-sensory) 예배기획이 이뤄지며 이러한 예배기획에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개인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예배의 창조성(creativity)에 모든 힘이 모아진다. 즉 창조적인 기획력을 통해서 예배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강한 개인적 임팩트를 주는 것이 목적이 된다. 즉 사람들의 실제적인 필요에 입각한 central theme을 중심으로 메세지가 준비되고 creative elements를 총동원하여 사람들에게 강한 개인적 임팩트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단회적 이벤트 중심의 예배프로덕션이 다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배공동체를 세우겠다는 큰 목표가 없을 때 몇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는데 첫째, 예배의 강한 임팩트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점이다. 극장이나 콘서트홀에서 청중은 같은 내용의 영화와 공연에 울고 웃지만 이런 경험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이며 쇼가 진행되는 동안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공동체적인 성숙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배가운데서도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고 있다. 둘째,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반응이 아닌 프로덕션에 의한 반응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 조명, 무대디자인, 미디어등을 통해 우리는 믿는자들의 모임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이것이 돕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대신하는(replace)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아닌 창조적 프로덕션에 대한 반응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움직일 수는 있어도 내면의 진정한 변화로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예배기획의 목표가 예배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계속해서 예배의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주제들만을 물색하게 된다. 사실 교회의 예배에서 사람들은 그들의 실제적인 필요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는 것을 뛰어넘어 성경전체에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스토리를 연속적으로 배우고 그에 반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통독을 하다보면 각 장을 읽을 때마다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지루한 장도 있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장도 있다. 그러나 이모든 장들이 연결되어 결국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연속적으로 계시하며 하나님의 스토리를 완성해 가고 있음으로 우리의 예배가운데 연속적인 하나님의 스토리를 다루어야 한다.

예배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예배사역은 모든 힘을 연속성(continuity)에 집중시킨다. Emphasizing continuity for building a worshiping community 오늘날 개인적 예배체험에 무게를 두는 예배프로덕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 두가지는 예배의 공동체성 상실과 예배의 비연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는 그 시작이 믿는자의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공동체적 행위이며 예배신학과 교회론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교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지 않고서도 이벤트와 상품을 통해 얼마든지 만족할 만한 예배를 경험할 수 있다. 또는 교회안의 예배사역이 교회의 목적들인 예배, 양육, 봉사, 선교, 교제의 중요성을 모두 균형있게 인식하지 않고 교회안의 다른 사역부서들과는 철저히 분리되어져 진행될 수 있으며 이러한 예배사역은 건강한 교회론에서 벗어난 예배체험만을 찾는 예배체험중독증에 빠진 비정상적 예배자들을 양산할 수 있다. 건강한 예배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안의 모든 부서들이 예배하는 부서들이 되어야 하며 교회의 모든 사역들이 예배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교회의 모든 세대들이 예배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한번의 예배를 디자인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어떻게 하면 교회의 모든 부서들과 모든 세대들로 예배하는 공동체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비연속적인 주제들을 바꿔가며 그때마다 감동을 선사하려는 단기적인 시도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스토리를 연속적으로 계시하며 궁극적으로 교회안의 모든 부서와 모든 세대가 예배하는 예배공동체를 세우려는 장기력인 노력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로 하여금 '교회력(Christian year)'에 근거한 예배디자인을 하도록 했는데 마치 오늘날 우리가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 처럼 교회의 예배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부활과 성령의 강림등을 중심으로 매년 반복되도록 하였다. 교회의 상황에 따라 교회력을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교회와 일부만 적용할 수 있는 교회들이 있겠지만 예배사역자, 기획자라면 충분히 교회력을 연구해 볼 가치가 있으며 일부만 적용하더라도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벤트성 예배가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비연속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치 영화을 볼 때는 울고 웃으며 영화에 동화가 되다가도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 영화가 나의 삶과 아무 상관 없어지듯이 오늘날 예배의 체험역시 교회건물을 나옴과 동시에 그냥 하나의 좋은 경험으로 남게되는 현상말이다. 이것은 예배가 반드시 180도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가 예배가운데 만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와 관련되어있다. 우리가 매주 예배가운데 만나는 하나님이 진정 성경이 계시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형식과 장소는 다를 지라도 반드시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이어져야 한다. 나는 예배의 연속성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예배사역자와 기획자들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벤트로서의 예배와 삶의 예배의 연속성이 우리 예배사역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실 삶으로 예배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벤트적예배로 모일때마다 서로에게 주기적으로 상기시키고 있다. 하지만 삶으로 예배한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인가를 모델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에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예배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처럼(요4장)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삶이 예배자의 삶이라는 것을 살아있는 모델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미국 달라스의 직장에서 일할 때 하루에 몇차례씩 시간을 정해 놓고 정해진 장소에 가서 기도하는 무슬림들을 보았다. 또 그들은 라마단이라는 장기간의 금식기도기간을 직장에서도 이행하는 것을 보았다. 이에 자극을 받고 나는 직장동료 크리스찬들에게 일시작하기전 아침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만나서 성도의 교제를 하자고 제안했으나 "교회에서 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느냐 왜 직장에서까지 만나야 하느냐"라는 답을 받았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무슬림들에게서 예배의 연속성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예배당안에서만 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연속적인 예배운동이 필요하다. 당신이 예배기획자라면 주일예배에 최고의 예배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월요예배자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주중 가정예배를 위한 지침과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소그룹으로 모였을때 할 수 있는 예배를 도울 수 있을것이며 연속적인 중보기도운동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예배사역과 예배프로덕션의 목적은 예배의 체험이 아니라 예배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이다. 예배공동체는 결국 어디서나 그들의 삶가운데 연속적으로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의 연합체인만큼 예배사역자들의 모든 예배기획은 교회의 모든 부서와 교회의 모든 세대들을 전인격적인 예배자로 양성하는데 무게를 두고 장기간의 계획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매주 한번 예배인도하는 것 외에 자신이 섬기는 공동체의 모든 부서와 모든 세대가 연속적으로 예배하도록 돕기위해 어떤 총체적인 그림과 계획을 갖고 있는가, 또 어떠한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김재우 (King's Region, Journey of Faith Church)
Magnifying the Glory of God among all peoples - kingsregion.org

삶이 예배여야 하며 예배의 전제는 믿음의 공동체라는 기초를 잘 설명해 주는 글을 만났다. 예배, 특히 예전으로서의 공동체 예배가 한 사람의 신념 형성과 유지, 그리고 확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 그리고 예배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는지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bk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