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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2009

위대한 그리스도인

몇 해 동안 톰 랜드리는 미국인의 우상이었다. 그는 최고의 미식축구 팀 중 하나인 '달라스 카우보이즈'의 수석 코치였다. 몇 번인가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코치로 일하는 동안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만났지요. 하지만 위대한 선수는 극소수예요. 훌륭한 선수와 위대한 선수는 단 45센티미터 차이로 판가름이 납니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죠. 경험으로 볼 때, 훌륭한 선수는 특출한 자질을 갖추고 있어요. 그러나 위대한 선수는 열정 어린 마음을 가진 선수에요. 즉 자기 희생, 잔인하리만치 길고 고도니 훈련과 연습, 전심전력을 다하는 집중력으로 결국 위대한 성과를 이뤄 냅니다."

거의 30년에 걸쳐 기독교 사역을 하는 동안 나 역시 그랬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많이 만나 봤지만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였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 돈, 욕구를 희생하는 그리스도인,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포기하려는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의 직업, 명성, 신분, 우정, 재산, 심지어 생명까지 바치려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 어린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앤 그레이엄 로츠, 위기속에 만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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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그리스도인이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형제들에게 잔해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단지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신앙의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 당해야 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기 원했고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그들은 예수를 너무도 사랑했다. 자기 생명보다 예수가 더 귀했다.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인간적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로츠"를 잘 못 이해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잔인하리만치 길고 고된 훈련과 연습"은 그만큼 강한 동기와 열정이 없다면 애시당초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고" "생명"까지 희생하는 삶의 모습은 절대로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단 한가지 만이 그 위대함을 가능하게 한다. 그건 사랑이다.

따라서,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사랑"으로 만들어 진다. 예수의 무한한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에 빠져 든 사람은 거부할 수 없는 예수의 사랑으로 자신을 초월 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저주를 달게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수의 위대함, 예수의 능력, 예수의 아름다움을 맛본 사람들은 그래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를 초월하여 위대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 즉 예수의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 물으시는 주님 앞에서, 사랑할 능력조차 없고 사랑받을 가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신실하게 사랑하시는 주님 발앞에 겸손한 무릎을 조아리는 사람이 될 일이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과 감사와 감격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그분을 인정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될 일이다.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이뤄 내는"것이 아니라 "은혜로 수용하며 반응하는"것이라는 점에서 랜드리와 로츠는 오해했다.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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