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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2011

사람에 대한 신뢰와 발달주의의 한계

They talk about the people, but they do not trust them; and trusting the people is the indispensable precondition for revolutionary change. A real humanist can be identified more by his trust in the people, which engages him in their struggle, than by a thousand actions in their favor without that trust."
Paulo Freire, Pedagogy of the Oppressed, 30th Anniversary Edition, p. 60

의식화(Conscientization) 교육의 창시자인 프레리는 주입적 암기와 반복rote memory을 통해 이루어 지는 은행예금식 학습(Banking education)은 학습자들의 주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을 구속함으로서 개인의 인격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종속적이며 타율적인 인간을 양성한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학습의 실천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현격히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대화와 활동를 거부하여 배움을 고립된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공부"로 축소시켰음을 지적하였다. 그에게 있어서의 교육은 학습자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고 (Problem-posing education) 비평적 의식을 스스로 일깨우도록 도움으로 환경과 상황의 압제로 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변혁과 갱신의 주체자로 개발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의 "빨간책"은 독재자들의 금서목록 1호였으며 동시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회 운동가들의 사회과학 필독서 1위였다. 

거지에게 많은 돈을 적선하기 보다, 왜 거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가를 묻고 거지생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용기와 자기희생, 그리고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타적 자기 희생의 사랑은 의식화 교육이나 주체화 교육으로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남미의 사회적 상황과 공산체제의 붕괴는 여실히 가르쳐 준다.  

일반적인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한계는 프레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간됨의 이해,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죄성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순진하다.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인간의 궁극적인 개발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필요로 할 만큼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또 다른 한계는 목적과 수단의 혼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 목적(또는 이차적 목적)이 궁극적 목적(일차적 목적)을 대치하게 되면 마치 외발자전거를 타는 것 같은 멈출 수 없는 순환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타르타로스의 언덕에서 끝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돌을  계속해서 올려대야 했던 시지프스처럼, 성취될 수 없기에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면 그것은 허무의 형벌에 해당하는 것이지 결코 진보와 발전일 수 없다. 사회 구조의 변혁과 갱신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왜냐햐면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으로 인해, 하나의 변혁과 갱신은 반드시 또 다른 변혁과 갱신을 긴급하게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으로서의 개발은 "인간됨"이라는 유한하고 상대적 가치에 묶여 있을 때 가장 크게 왜곡되고 제한된다. 모든 발달주의자들이 부르짖는 "인간 개발"은 누구에 의한,  어떤 목적을 가진, 어떤 방식의 개발이냐에 대한 질문에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궁극적인 지향점을 인간에서 옮겨 무한한 초월적 존재에 위치 시킬 때에라야 가변적이고 순환적인 상대적 가치가 영원하고 절대적 가치로 승화 될 수 있으며 비로서 구조와 방향을 갖춘 진정한 의미로서의 개발이 현실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개발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이 아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 두가지는 분리되어있지 않고 상호적으로 맞물려 있다.

고독과 허무, 존재적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인간의 왜곡된 자기 인식과 한계때문에 인간의 내적 가능성에서도 찾을 수 없고, 사회 구조적인 변혁과 개혁으로 실현될 수도 없다. 오직 인간의 실존을 뚫고 침입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역동적 역사와 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실천적 신앙을 통해 부분적으로 경험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의 구원의 완성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레리가 주장한 인간 신뢰의 필요성은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 안에서는 인도주의자들 만큼의 사람사랑이 이루어 지기는 커녕, 권위주의적이고 폭압적인 맹신과 맹종의 교육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의 해방적 교육은 신앙교육을 평가하고 교정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bk

1.01.2011

진정한 장벽

1947년 10월 14일, 조종사 척 예거 (Chuck Yeager, 1923-)는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알려져 온 음속의 한계를 돌파함으로써 마침내 초음속 비행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저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음속의 한계는 결코 깨뜨릴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다른 과학자들 역시 마하 1의 속도에서는 조종사와 비행기 모두가 산산 조각날 것이라느니, 혹은 조종사는 목소리를 잃고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또 극심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등 섬뜩한 예견들을 하던 터였다. 그러나 예거는 그 역사적인 날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벨 항공(Bell-Aviation)의 X-1기에 탑승하여 시속 700마일 (마하 1.06)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3주후 마하 1.35로 비행했고, 6년 후에는 다시 시속 1,612마일(마하 2.44)이라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깨뜨릴 수 없는 장벽에 대한 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이었다.

예거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비행은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마하를 가리키는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늘은 마하 0.965에 도달했고, 곧 속도계의 오른쪽 끝이 기울었다. 나는 마치 환각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초음속을 날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어린아기의 엉덩이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그 편안함이라면 나이 든 할머니라도 거기 않아서 레모네이드를 즐길 수 있으리라! 나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염려하고 그토록 기대했건만, 막상 음속을 돌파하고 나니 오히려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미지의 것이었던 음속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실은 포크로 젤리를 가르는 것처럼, 마치 잘 포장되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쉬웠다. 그러나 나는 훗날 그때의 임무가 왜 그렇게 실망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그건 진정한 장벽은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음속 비행에 관한 우리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븐 코비, 원칙 중심의 리덥십, 김영사,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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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웃과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진보와 개혁을 가로막는 장벽은 외부의 환경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장벽은 인간의 지식과 경험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절대 진리인양 확신해 버리는 내적 교만과 아집, 그리고 두려움이며, 초월적 힘을 간과하고 부러 잊으려 하는 영적 완고함과 둔감함입니다.

내 안에 있는 거대한 장벽을 뛰어 넘으려면 절대 타자에 대한 절대적 의존과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훈련함으로 성취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절대진리에 대한 감정적 확신으로서의 믿음, 하나님 신앙을 기반으로 한 풍부하고 건강한 상상력의 발현으로서의 소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시위된 희생적 섬김의 사랑을 연습하고 경험함으로 길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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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2010

기독교 신학 입문

Plantinga, Richard J, Thompson Thomas R, and Matthew Lundberg. 2010.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theology.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개혁파들에게 있어 신학이란 하나님에 대한 지적 탐구에 그치지 않는다. 개혁파들에게 신학은 인간의 지, 정, 의를 포괄하는 전인격적인 만남이며 존재적 충돌이고 영적인 사건이다. 신학의 출발점이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자신을 계시하시는 사랑의 충만으로서의 창조주 하나님임을 신앙함에 일말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혁파 신학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신학을 포괄적이고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쓴 조직신학 개론서가 출간되었다. 신학을 "하나님과 씨름하며 사랑함"에 유비하는  저자들은 모두 칼빈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고전과 종교사, 철학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다. 

전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신학 서론으로 신학의 역할과 배경 그리고 의미를,  2장에서는 신학의 제 주제들을, 그리고 3장에서는 각 시대별로 신학의 발전과정과 함의들을 탐구한다. 세 사람의 저자들이 함께 조직신학 개론서를 썼다는 것이 특이할 만한 점이며, 신학사를 함께 취급하여 신학서론, 신학주제들, 그리고 신학사를 간결하게 진술하고 묶었다는 점에서 Alister McGrath의 Christian Theology: An Introduction 과 상당히 유사하다. 조직신학을 가르치면서 잘 정리된 신학 입문서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칼빈교수들에 의해 쓰여진 책이 출간되어 반갑고 기쁜 한 편, 한국 신학자들에 의해 쓰여진, 전통에 충실하고 현대적 상황에 적합한 조직신학 입문서에 대한 목마름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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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hat is theology --
The critical context of theology --
Revelation and the knowledge of God --
A tale of two theisms --

II.
The triune God --
The world as creation --
Humanity in the image of God and the disfigurement of sin --
The problem of evil and the question of theodicy --
The identity and person of Jesus Christ --
The reconciling work of Jesus Christ --
The person and work of the Holy Spirit --
Dimensions of salvation --
The church and its mission --
Christianity in a global context --
Hope and the future --

III.
Theology in the patristic era (c.100-500) --
Theology in the Middle Ages (c.500-1400) --
Theology in the Reformation period (c.1400-1700) --
Theology in the modernity (c.11700-1960) --
Theology in the contemporary period (c.1960-present)

12.27.2010

개념 없는 인식은 무지

"Percept without concept is blind" I. Kant

경험이란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이기 보다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이다. 의미를 만들거나 의미를 변경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의미를 만드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근원적으로 중요하다. 인식에 개념이 부과된다면 의미가 된다. 같은 인식에 다른 개념을 부여한다면 의미의 변경 즉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인식하는 방식/틀/구조 자체가 변화된다면 의미구조meaning perspective,  즉 인식의 지평이 확장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 구조의 변화(changes of form)을 교육계에서는 변형학습 trans-from-ative learning 이라 부르고 심리학계에서는 구조-발달주의constructive developmentalism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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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링컨의 기도

아브라함 링컨의 기도

제일은,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생활에 힘쓸 것이다.

제이는, 나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할 것이다.

제삼은, 나는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날마다 겸손히 기도할 것이다.

제사는, 나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이다.

제오는, 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것이다.

제육은,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것이다.

제칠은, 나는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려 드릴 것이다.

제팔은, 나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하며 평등하다고 믿는다.

제구는,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것이다.

제십은, 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할 것이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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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링컨이이 기도문을 만들고 기도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특히 그의 유려한 문체와 깊은 사고에 비해 너무 짧고 또 인위적이다. 차라리 한국의 보수교회 지도자들의 형식적 기도문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링컨이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의미하는 바가 크다.  첫째로는 기도의 내용에 하나님 사랑과 사람사랑이 담뿍 묻어나는 것 때문이요, 둘째로는 그가 이 기도문대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했으며 고난과 역경을 뚫고 이 기도를 실현해 내려 몸부림쳤음을 역사가 증언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기도문대로 살아가기를 다짐해 보며 이에 나의 중보기도수첩에 적어 놓는다.

적다 보니 십계명을 따라가며 기도문을 만들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 경천애인이라 했던가? 기도의 핵심이며 삶의 확고부동한 원칙이어야 한다. 링컨의 유명한 케티스버그Gettysburg의 연설(사실 수많은 전사자들의 무덤앞에서 유족들에게 행한 연설이다) 가운데 삽입된 그의 기도생활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 노력한 바를 증언한다.

"Well, I will tell you how it was. In the pinch of the campaign up there (at Gettysburg) when everybody seemed panic stricken and nobody could tell what was going to happen, oppressed by the gravity of our affairs, I went to my room one day and locked the door and got down on my knees before Almighty God and prayed to Him mightily for victory at Gettysburg. I told Him that this war was His war, and our cause His cause, but we could not stand another Fredericksburg or Chancellorsville... And after that, I don't know how it was, and I cannot explain it, but soon a sweet comfort crept into my soul. The feeling came that God had taken the whole business into His own hands and that things would go right at Gettysburg and that is why I had no fears about you." [July 5, 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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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2010

Integrity 인테그리티

"Integrity without knowledge is weak and useless, and knowledge without integrity is dangerous and dreadful." Samuel Johnson

지식이 없는 성실함은 약하거나 쓸모가 없다. 성실함이 없는 지식은 위험하고 위협적이다.
실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사랑할 줄 아는 인격과 인품이 합쳐졌을 때 거기서 우리는 신의 성품을 맛본다. 헤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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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ery 용기

Courage is the resistance to fear, mastery of fear, not the absence of it." Mark Twain
용기는 두려움에 대한 저항,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 진정한 용기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해 피어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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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4.2010

십자가의 깊이와 폭력

자기에 대한 죄인들의 이러한 반항을 참아내신 분을 생각하십시오. 히 12:3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겼던 사람에게 배신과 경멸과 모욕을 당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 이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기 스스로가 하늘 아버지의 형용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모욕하고 경멸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려면, 사랑하는 이로부터 당한 배신때문에 분노와 복수심으로 온 밤을 하얗게 지새는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은혜는 고통을 댓가로 지불한 깨달음이라는 말이 성립한다. 

복수와 응징의 폭력 액션영화를 즐기는 사이, 우리는 이 히브리서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더 상실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인간의 사랑이 가진 한계와 대조된 십자가 사랑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죄와 맞서서 싸우지만,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없습니다..." 살이 찣기고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맞서 싸우는 일은, 아이러니겠지만 폭력을 통해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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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2010

이 시대에 목회자로 산다는 것은


오랜 기간 쉽지 않은 신학수업과 삶속에서의 고단한 훈련과 고통스러운 연단을 통과하시고 목회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시는 두 분의 목사님들과 가족을 축하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축하할 내용이 떠오르지를 않습니다. 이 시대에 목회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워 지는데, 축하를 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네요. 아이러니지만 이런 것이 목회자가 된다는 것일까요?

너무나 감각적이고 지독하게 이기적이며 참을 수 없이 찰라적인 이 세상의 물줄기가 폭포수와 같이 쏟아져 내려, 그 거센 물살을 거치며 예수를 닮아 살아 가려는 그리스도인의 노력이 초라하게까지 여겨지는 때입니다. 예수님의 그 존귀한 이름이 땅에 떨어져 그리스도교가 욕이 되어 버린 이 시대에, 세상을 향해 예수만이 살길이라고,” “예수가 당신의 삶에 모든 것이 아니라면 예수는 당신의 삶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멸망에 이르는 편안하고 안락한 길에서 벗어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그리고 계속해서 그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외치고 또 외쳐야 하는 이 고독한 길에 첫 발걸음을 떼신 분들에게 어떤 축하를 해야 할까요?

형식과 전통, 종교적 습관에 젖어있는 동료 형제들, 예수를 믿는다 사랑한다 말하고 노래하지만, 정작 마음속에는 자기를 내세우려는 자기 의와 세속적 욕망들이 가득 차 있는 동료 형제들과 자매들을 향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뿐 아니라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래서 차던지 더웁던지 하지 않으면 한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 자랑했던 당신을 그 입에서 내 치실 것이라고 하나님의 불타는 진노와 두려운 회개의 메세지를 전해야 하는 이 길을 걸어가려 하는 분들에게 어떤 축하를 해야 할까요?

겸손과 희생과 사랑의 예수님을 쫓아 스스로 낮아지고 자기를 비우고 부정함으로서 섬김과 희생의 본을 보여야 하는 동료 목회자들이 힘과 명예와 부와 욕망에 대한 추한 집착을 대놓고 과시하고 자랑하는 이 세대에, 고작 별 볼일 없는 열 댓명의 제자들과 함께 다니시며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닦아 주시고는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돌아가신 나사렛의 젊은 목수의 모습을 흠모하고 그 분 처럼 살아가기 위해 날마나 처절하게 자기를 성찰하고 육체의 본성을 죽이기 위해 피와 살이 튀기는 내적 전투를 벌여야 하는 이 길을 걸어가려 하는 분들에게 도대체 어떤 축하를 해야 할 까요?

오직 한가지 밖에는 축하드릴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길을 걸어가라고 삼위 하나님께서 두분의 목사님들을 특별히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외로운 길이라도 내가 네게 기름을 부었으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포로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여 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하나님께서 두분 목사님을 부르셨다는 이 위대한 소명 받으십을 축하드립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마른 뼈에 생기를 주시며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인생이 아니셔서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셔서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 말씀하신 바를 결단코 이루시는 하나님,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응답하겠고 내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그 권능의 편 팔로 능력을 행하시며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부요한 자를 가난하게 하시며, 권세있는 자를 내리 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 세상에서 미련한 자를 택하셔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 연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들을 수치스럽게 하시는 하나님, 외모로 사람을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며 간절히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이제 장차 다시 오셔서 모든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심판하실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두 분 목사님을 사용하시고자 부르셨다는 그 한가지를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다”(6)고 말씀하신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주어진 십자가를 행복하게 지시고 가는 두 분 되시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목사 안수 감사예배에 축사를 대신하여 드린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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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010

영혼과 자아



『영혼과 자아의 성장과 몰락』은 서양지성사에 나타난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유물론 철학자들의 사상을 발판으로 한 고대 그리스철학을 시작으로 사도 바울, 필로,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몽테뉴 등 교부시대와 중세 르네상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거쳐, 17세기 자연철학을 통해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이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에서 더 과학적이며 사회적 개념으로 바뀐 과정을, 또 근대 철학과 심리학 사상을 중심으로 페미니즘과 성차별, 윤리학 연구가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크 라캉,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와 같은 현대 철학자들은 어떤 식으로 자아와 인격동일성을 부인했는지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그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사상'을 통해 살피고 있는 이 책은 서양지성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중요한 철학자와 사상들을 다루고 있어 책의 주제인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뿐만 아니라 서양지성사의 흐름을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저자 : 레이먼드 마틴(Raymond Martin)

유 니언 대학(Union College) 철학교수이자 학과장으로, 《자기관심: 인간의 존속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경험적 접근법(Self-Concern: An Experiential Approach to What Matters in Survival)》을 비롯한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저자 : 존 배러시(John Barresi)

댈하우지 대학(Dalhousie University) 심리학교수로, 《영혼의 자연화: 18세기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Naturalization of the Soul: Self and Personal Identity in the Eighteenth Century)》을 레이먼드 마틴과 공동 저술했다.


역자 : 마리오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캐나다 테일러 신학교(Taylor Seminary)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스승으로 산다는 것》《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람세스 최후의 비밀》 등이 있다.

 목차
1장 신화에서 과학으로
2장 인간과 개인
3장 서양 종교사상
4장 부활한 자아
5장 두 갈래 사상
6장 아리스토텔레스주의 합성
7장 영혼을 염려하다
8장 자연의 기계화
9장 영혼의 자연화
10장 정신 철학
11장 인간본성학
12장 추락하는 자아
13장 잃어버린 낙원
14장 자초지종과 그 의미
관련 자료
1 장 신화에서 과학으로에서는 철학사상이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에 고대 그리스인들이 영혼과 내세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았는지 살펴보고 있다. 호메로스의 작품이나 디오니소스와 오르페우스를 숭배하던 신비종교 사상, 핀다로스의 시(詩)나 소포클레스의 희곡 등에 나타난 단순한 영혼과 내세관이 기원전 5세기에 접어들어 자아에 관심을 보인 최초의 철학자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어떻게 철학적으로 풀이되는지 각각의 철학자들의 저술을 통해 밝히고 있다.

2장 인간과 개인에서는 알렉산더 제국이 해체된 후 새로운 제국으로 떠오른 로마의 철학자들이 그리스 철학을 바탕으로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을 어떻게 발달시켰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 중심의 전통 그리스 사상과 개인 중심의 로마 사상을 접목하여 인간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 키케로, 키케로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타고난 성격이나 외부환경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 에픽테토스, 에픽테토스의 제자로 영혼의 문제에 깊이 몰두하여 종교적이고 내면적인 사상을 표출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실체가 없는 영혼과 내세의 존재를 부정하고 에피쿠로스 사상을 반영하는 장편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통해 중세와 근대 사상가에게 영향을 준 루크레티우스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3장 서양 종교사상에서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서양의 종교사상에 나타난 영혼과 자아 개념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이들 세 종교는 발상지가 비슷한 유일신교로 우주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신앙과 그리스 철학의 통합을 시도한 사상가들을 통해 발전했다. 인간이 육체가 죽은 후에 부활하여 지상의 행적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는 세 종교의 관점은 인격동일성과 육체의 동일성에 철학적 관심이 쏠리게 된 계기가 되어 철학사에 인성, 개체성, 동일성이라는 최장수 논제를 남기게 된다.

4장 부활한 자아에서는 썩은 육체가 부활한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신학적 입장을 최초로 제시한 유스티누스, 아테나고라스와 같은 초기 기독교 변증가들부터 최후의 변증가로 불리며 3대 부활사상을 제기한 이레나이우스, 미누키우스 펠릭스, 테르툴리아누스의 사상을 통해 육체의 부활이 어떻게 철학적으로 증명되었는지 살피고 있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 이전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는 플라톤철학을 받아들여 비물질적인 영혼과 물질적인 육체라는 이원론을 정립했고, 그의 사상은 메토디오스, 니사의 그레고리가 더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기독교 사상 최고의 신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등장하면서 중세부터 종교개혁까지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던 삼위일체, 악의 존재, 자유의지, 시간의 본질, 인간의 심리와 부활 등의 문제를 정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5장 두 갈래 사상에서는 플라톤주의와 기독교 사상을 조화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보편자와 개별자, 이데아의 실재성 등을 설명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던 교부시대 말기부터 르네상스 초기에 이르는 중세초기 철학과 아랍철학, 유대철학, 13~14세기 중세후기 철학 시대의 사상가들을 살피고 있다.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의 이단을 축출하는 데 관심을 쏟았던 보에티우스, 아리스토델레스 저작에 대한 최고의 주석가인 아프로디시아스의 알렉산더, 그의 사상에 의존하다가 개인의 불멸성 쪽으로 선회한 테미스티우스, 동방의 신플라톤주의를 도입한 사상을 펼치다 이단으로 몰린 에리우게나, 인간의 부활이 영적인 육체의 부활이라고 주장한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등이 이 시대에 활동하던 철학자들이다.

6장 아리스토텔레스주의 합성에서는 그동안 플라톤학파의 탈현실적인 논쟁에만 익숙해 있던 라틴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과 그에 대한 아비켄나와 아베로에스의 주석서들을 접하면서 당시 막 발달하기 시작한 자연주의 사상과 맞물려 신플로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자아와 영혼에 대한 사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점점 우세해 지면서 영혼을 자연주의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과정과 이들에 의한 이중진리론이 스콜라학파와 르네상스 사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 과정을 자세히 살피고 있다.

7장 영혼을 염려하다에서는 르네상스 초기의 인본주의와 페트라르카, 미란돌라, 피치노의 플라톤주의, 그리고 폼포나치, 피콜로미니, 자바렐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나타난 자아 사상이 16세기에 들어서 종교개혁에 따른 신학적 논쟁과 파라셀수스, 텔레시오, 브루노 등의 자연철학자들의 사상에 의해 도전을 받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몽테뉴로 대표되는 주관주의가 자기성찰의 관점에서 자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도 정리하고 있다.

8장 자연의 기계화에서는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과학사상이 서양의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에 어떤 큰 변화를 일으켰는지 살피고 있다. 플라톤의 영혼 사상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요소를 제거하면서 당시 다른 사상가들처럼 영혼을 물질적 세계와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데카르트의 사상 중에서 개인의 통합성, 실체, 이원적 상호작용론, 개인의 동일성과 불멸성 등을 중심으로 이에 반대하거나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하려 했던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가상디, 홉스 등의 사상을 설명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르네상스 과학이 종말을 고함과 동시에 자연의 완전 기계화를 목표로 하는 시대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설명한다.

9장 영혼의 자연화에서는 로크의 사상과 그의 사상에 대한 비평을 중심으로 근대 인격동일성 사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살피고 있다. 이 시기에는 영혼이 본질적으로 불멸하는가 라는 문제로 벌어진 새무얼 클라크와 앤서니 콜린스의 서면 논쟁, <마르티누스 스크리블러러스의 회상록>에 나타난 영혼과 의식에 대한 개념, 인격동일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쟁 등을 통해 근대 인격동일성 사상의 기틀이 마련된다.

10장 정신 철학에서는 칸트의 자아 사상과 비교하여 프랑스 · 독일 · 영국의 낭만주의와 독일 관념철학에 나타난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을 설명하고, 독일 관념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니체의 사상과 딜타이의 해석학 등을 통해 19세기 정신철학에 나타난 자아 사상을 살피고 있다.

11장 인간본성학에서는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진보주의자들조차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믿던 관념이 찰스 다윈과 카를 마르크스의 영향으로 인간은 '생물과 사회'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믿게 되는 영혼의 자연화 또는 인간의 자연화가 완결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12장 추락하는 자아에서는 현상학, 분석철학, 심리학, 비판이론 등 20세기 초반의 다양한 사상에서 언급된 자아와 인격동일성 개념과 이를 통해 이전까지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인식되던 자아가 사회적 · 심리적 상황의 부산물이라는 이름으로 추락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13장 잃어버린 낙원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여 현상학, 분석철학, 심층심리학, 실존주의 · 인본주의 심리학, 사회 · 발달 심리학, 비판이론 등의 집중포화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살아남았던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여러 다양한 이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해체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14장 자초지종과 그 의미에서는 자아와 인격동일성 사상을 통해 우리가 자기행동이나 자기현상에 대해 계속 지식을 쌓아갈 수는 있지만 단일자아에 대한 하나의 통합된 이론에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저자들은 결론을 내리며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인간의 실존적 질문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떤 통합적인 관점이나 단일자아 없이도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런 질문에 대해 그냥 무시해 버릴 것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출판사 리뷰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극작가 에피카르모스가 쓴 희극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다. 그러자 채무자가 이렇게 되묻는다.
"사물에 변화가 일어날 때, 예를 들어 돌무더기에서 하나가 더해지거나 제거되면서 그 형태가 달라질 경우, 그 사물은 이전 것과 같은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채권자는 다른 것이라고 대답한다. 채권자는 계속 묻는다.
"그렇다면 사람들도 끊임없이 변하지 않습니까?"

채권자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채무자는 "그렇다면 저는 더 이상 당신에게 빚진 사람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빚을 갚을 필요가 없어요." 라고 말한다.

화가 난 채권자는 채무자를 마구 때린다. 채무자가 항의하자 채권자는 그런 항의는 하지 말라고 대꾸한다. 자신은 더 이상 때린 사람이 아니니까.

이처럼 인간이나 자아(영혼)가 동일한 존재로 지속되는지 여부를 따지는 인격동일성 문제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극장 관객들조차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였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이 일화에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나눈 대화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늘 변한다. 엄밀히 따져 본다면 우리는 변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채무자가 돈을 빌린 사람이 아니며, 채권자는 때린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내가 어제 너를 보았어"라고 말할 때 이것이 사실이 되려면 우리가 변화 속에서도 동일한 인물로 지속됨을 주장할 수 있는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한다. 바로 그 근거를 밝히는 것이 인격동일성 사상의 과제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근거로 육체나 사람이 세월과 변화 속에서도 동일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피그말리온 효과

redwiki: 피그말리온 효과

고대 그리이스에 살던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는 고민을 했다.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어야하는데 모델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예쁘다는 여자를 봐도 성에 차질 않았고, 자기가 찾는 이상적인 모델을 찾을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모델 없이 조각을 하기로 결정했다. 현실에서는 없는, 자기 머릿속에만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기로 한 것이다.


이 조각상은 지상의 어느 여자도 감히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완벽한 처녀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작품에 완전히 빠져 버린 피그말리온은 이 조각상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수줍음을 많이 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조각상인 갈라테아를 깊이 흠모하게 되었다.


그는 조각상이 살아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가끔씩 만지기도 하고, 끌어 안기도 하고, 여러 장신구들로 꾸미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조각상이 단지 상아에 불과하다는 것 때문에 슬픔을 갖게 되었다. 슬픔이 깊어지자 그는 조각상에 옷을 입히고, 보석으로 장식도 해주며 한없는 애정으로 슬픔을 달랬다.


덕분에 조각상은 갈수록 더 살아있는 것 같았다. 급기야 피그말리온은 뮈로스 지방에서 나는 염료로 물들인 천을 덮은 침대와 부드러운 깃털을 넣고 만든 베개에 갈라테아를 눕히고, 그녀를 아내인양 대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프로디테의 제전이 다가왔다. 피그말리온은 이 제전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다 끝내고 난 후 제단 앞에서 갈라테아와 같은 여인을 아내로 점지해 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이 때 제전에 참석해 있던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소원을 알아채고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표시로 제단의 불길을 세 번이나 위로 솟아오르게 하였다.


소원을 빌고 집에 돌아 온 피그말리온은 침대에 있는 사랑스런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각상의 입술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피그말리온은 놀라면서 이번에는 조각상의 손을 만져보았다. 조각상은 피그말리온의 손을 잡았다.


조각상은 그의 소원대로 살아있었다. 피그말리온은 아프로디테에게 감사의 말을 올리고 기쁨에 겨워 다시 조각상에 입을 맞추었다. 조각상은 그의 입맞춤에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피그말리온을 바라보았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본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맺어준 아름다운 한 쌍의 연인들에게 한없는 축복을 내렸다. 피그말리온은 이 여인과 결혼을 하고 파포스라는 딸을 낳게 된다.





심리학자 로젠탈(T.L.Rosenthal)은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한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어린이 지능향상을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테스트 입니다. (사실은 거짓말)"


라고 설명을 해 놓고 검사를 실시했다. 그 후 20% 정도의 아이를 난수로 뽑아 놓고 "이 애들은 앞으로 지적발달이나 학업이 틀림없이 급상승할 것입니다"라고 선생님에게 결과보고를 해 주었다.


그런 암시후 8개월이 지난 다음 과거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지능 테스트를 하여 지난 번의 지능테스트 결과와 비교해 보았다. 그랬더니 앞으로 잘 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던 이이들의 지능이 다른 아이들의 지능에 비하여 현저하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피그말리온의 이름을 따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고 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선생님이 20%의 아이들을 지적 발달과 학업성적이 향상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정성껏 돌보고 칭찬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니까 공부하는 태도도 변하고 공부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결국 능력까지 변하게 된 것이다.


이 결과로 "칭찬하면 칭찬한 만큼 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론은 직장에서도 적용된다. 주위에 칭찬과 격려가 풍부하게 흘러다니는 부서와, 질책이나 강요만이 남발하는 부서는 그 구성원들의 애착심이나 생산성에 있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피그말리온 효과』가 나타나려면 무엇보다도 구성원 상호간의 진지한 관심과 애정 및 인간적인 존중감이 실린 칭찬과 기대가 전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 조직의 리더는 부하사원들에게 칭찬을 통하여 회사생활의 즐거움과 기대감을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와 문화

교회 문화라는 개념을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교회 문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이듯이 교회와 문화도 하나’입니다. 교회 문화는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일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 문화는 여러분이 선택하고 도입하는 온갖 프로그램의 색깔을 결정합니다. 리더를 뽑고 훈련시키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 교회 문화입니다. 성급하게 들여온 처방이나 프로그램은 잠시 영혼을 들뜨게 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이 소망하는 것과 같은 더 철저하면서도 더 완전한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불어넣지 못합니다. 변화는 결코 밖으로부터 일어날 수 없습니다. 변화는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일입니다.

교회 문화 = 디폴트값
문화 바꾸기는 컴퓨터의 디폴트값(default value: 이용자가 값을 지정하지 않은 경우 자동으로 선택되는 것) 바꾸기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컴퓨터는 기본 폰트의 크기가 10포인트입니다. 만일 좀 더 큰 글자, 이를 테면 12포인트로 출력해서 계속 보고 싶다면 디폴트값을 영구히 바꾸어야 합니다. 만일 지금 작업하고 있는 문서에만 국한하여 디폴트값을 바꾸어 놓으면 다음에 컴퓨터를 쓸 때에는 다시금 10포인트로 돌아가 있을 것입니다.
문화를 바꾸는 것도 이와 아주 흡사합니다. 새 프로그램을 교회에 주입하려고 애쓰면, 처음에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다음 주가 되면 모든 것이 이전 상태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런 일이 2주 전에도 일어나고 지난주에 일어나는 것도 모자라 이번 주에도 되풀이된다면 실질적으로 교회의 문화를 전혀 바꾸지 못한 것입니다.

문화를 바꾸기 위해 고려할 일들
- 현재의 모든 것을 평가하라.
우선 할 일은 현재 문화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 여러분 교회의 문화를 여러분이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평가해보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성장시키실 수 있다는 것을 얼마나 굳게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보다 앞서 가셔서 실제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성장시키실 것이란 점을 얼마나 굳게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교회에서 얼마만 한 영적 잠재력을 보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방해하는 핵심 인물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어떤 식으로 표현합니까? 현재 교회가 가진 문화에서 건강하지 못한 부분, 겉과 속이 뒤집어진 부분을 알아내십시오. 여러분이 잘못된 과녁을 겨누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아니면 아예 엉뚱한 것을 다루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확인해보십시오.
- 교회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는 자신의 역할을 평가하라.
여러분은 교회의 지도자로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받아들이고 열정을 다해 그 비전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비전을 다른 성도들에게 설득하기 전에 먼저 그 비전이 여러분 자신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이 비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비전이 되어야지, ‘큰 교회가 되는 방법’이라든지, ‘그 일대에서 유명 인사가 되는 방법’ 따위나 꿈꾸는 비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사고방식과 가슴을 뛰게 하던 것도 바꾸어야 합니다.
- 가치들의 목록을 만들고 사람들의 협력을 끌어내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문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 줄만한 구체적 가치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십시오. 그 가치들은 성경에 부합합니까? 그 가치들은 긍정적입니까? 이 일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가치들이 결국 토템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도자들의 마음을 사십시오. 그들에게 이야기하고 그들을 가르치십시오. 건강한 대화와 토론을 장려하십시오. 현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여러분 교회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십시오. 조지 바나는 비전을 가리켜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종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서 그 종의 마음에 명료하게 떠오르는 미래상”이라고 정의합니다.
- 기록하고 보여주라.
예수께서 여러분 교회를 향하여 처음 제시하신 비전은 ‘...이다.’ 비전이었습니다( 5:3~11). 따라서 우선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를 물어야만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다 함께 ‘...이 되자’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교회의 비전 선언으로 채택하십시오. 그 비전 선언을 글로 적어 보십시오.
- 삶으로 가르치라.
교회 전체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일련의 설교부터 시작해서 교회의 토템들을 체험하게 하십시오. 이 비전을 적절한 장소에 잘 보이도록 게시하십시오. 그리고 이 비전을 소그룹이나 주일학교 수업 시간에 토론하게 하십시오. 교회 직원을 채용할 때, 새신자를 제자로 양육할 때, 새 아이디어들을 내놓을 때, 행사나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때, 새 지도자를 선출할 때 등등의 경우에 교회가 표방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활용하도록 하십시오. 이 비전은 서면과 실제 삶의 간증을 통해 회중에게 자주 전달되어야만 합니다. 새 비전이 교회 전체로 스며들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유념하십시오. 문화를 바꾸는 일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 축하하고 기념하라.
만일 여러분의 가치가 사람의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교회의 성도 가운데 누가 그런 변화를 겪은 사람처럼 보입니까? 예배나 설교 때에 그런 성도들의 모습을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십시오.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간증하게 하십시오. 그들의 신앙 내력을 비디오로 만드십시오. 교회가 내거는 모든 것을 삶으로 보여주거나 구현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포상하고 잔치를 베풀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축하하고 기념해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모방하려 할 것이고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할 것입니다.
- 점검하고 또 점검하라.
여러분은 어떻게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춘 비전에서 어긋난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까? 연말결산당회, ‘교회 현황 보고회’ 같은 모임을 통해 점검하고 또 점검하십시오.

문화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1904
년 웨일즈에 부흥이 일어났을 때, 많은 술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술에 취하도록 마시는 사람들이 절반으로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범죄가 하도 줄어서 판사들이 파리를 날릴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경찰이 직장을 잃게 된 동네도 많았습니다. 그 부흥은 다른 지역과 나아가 나라 전체, 그리고 온 세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때 기차를 타고 웨일즈를 찾은 한 관광객이 이 부흥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차 차장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디에 부흥이 있죠? 하나님과 만나는 이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들이 다니는 교회가 어디에 있나요?” 그러자 차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조금만 걸어보면 아시게 될 겁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교회가 건강한 문화를 앙양해서 그 문화가 현실로 이루어지면, 그 결과는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그 흡인 효과를 체험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그 문화는 그 문화를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파고들 것입니다. 한 세기 전의 기차 차장이 그랬던 것처럼, 그 지역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도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 교회가 다른게 뭐냐고요? 간단합니다. 그 교회 사람들 서넛만 만나 보세요. 그럼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문화가 바뀌면, 교회의 미래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바뀝니다.

※ 이 글은 “인사이드 아웃 교회개혁 이야기(국제제자훈련원)에서 발췌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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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기다림이 많은 사람이 행복하고,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즐길 줄 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좀더 많은 기다림을 내 생활 속에 만들어 놓고 살면 될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나누게 될 아름다운 사랑의 기다림, 좋은 우정의 기다림, 행복한 결혼의 기다림, 배움과 성숙의 기다림, 지혜와 겸손의 기다림 등등. 많은 기다림을 바다에 그물을 내리듯 내 생활 속에 펼쳐 놓으면 많은 행복의 시간을 만나게 될 것임에 틀림 없습니다. 


기다림은 삶의 맛을 달게 하며 향기롭고 윤기나게 하며, 늘 지금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줍니다.

우리의 마음에 믿음과 신뢰가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소망이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다림은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오면 우리의 마음에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강이 또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을 따라 지나간 날들의 그리움과 앞으로 올 날들의 기다림을 하나씩 만나게 될것입니다. 올 가을에는 지난날의 그리움도 만나야 하겠지만 좋은 기다림을 더 많이 만나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