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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2011

사람에 대한 신뢰와 발달주의의 한계

They talk about the people, but they do not trust them; and trusting the people is the indispensable precondition for revolutionary change. A real humanist can be identified more by his trust in the people, which engages him in their struggle, than by a thousand actions in their favor without that trust."
Paulo Freire, Pedagogy of the Oppressed, 30th Anniversary Edition, p. 60

의식화(Conscientization) 교육의 창시자인 프레리는 주입적 암기와 반복rote memory을 통해 이루어 지는 은행예금식 학습(Banking education)은 학습자들의 주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을 구속함으로서 개인의 인격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종속적이며 타율적인 인간을 양성한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또한 학습의 실천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현격히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대화와 활동를 거부하여 배움을 고립된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공부"로 축소시켰음을 지적하였다. 그에게 있어서의 교육은 학습자 자신이 문제를 제기하고 (Problem-posing education) 비평적 의식을 스스로 일깨우도록 도움으로 환경과 상황의 압제로 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변혁과 갱신의 주체자로 개발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의 "빨간책"은 독재자들의 금서목록 1호였으며 동시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회 운동가들의 사회과학 필독서 1위였다. 

거지에게 많은 돈을 적선하기 보다, 왜 거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가를 묻고 거지생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용기와 자기희생, 그리고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타적 자기 희생의 사랑은 의식화 교육이나 주체화 교육으로 절대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남미의 사회적 상황과 공산체제의 붕괴는 여실히 가르쳐 준다.  

일반적인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한계는 프레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간됨의 이해,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죄성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순진하다.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은 인간의 궁극적인 개발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필요로 할 만큼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발달주의자들이 갖는 또 다른 한계는 목적과 수단의 혼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 목적(또는 이차적 목적)이 궁극적 목적(일차적 목적)을 대치하게 되면 마치 외발자전거를 타는 것 같은 멈출 수 없는 순환논리에 빠져들게 된다. 타르타로스의 언덕에서 끝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돌을  계속해서 올려대야 했던 시지프스처럼, 성취될 수 없기에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면 그것은 허무의 형벌에 해당하는 것이지 결코 진보와 발전일 수 없다. 사회 구조의 변혁과 갱신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왜냐햐면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으로 인해, 하나의 변혁과 갱신은 반드시 또 다른 변혁과 갱신을 긴급하게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으로서의 개발은 "인간됨"이라는 유한하고 상대적 가치에 묶여 있을 때 가장 크게 왜곡되고 제한된다. 모든 발달주의자들이 부르짖는 "인간 개발"은 누구에 의한,  어떤 목적을 가진, 어떤 방식의 개발이냐에 대한 질문에 일관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궁극적인 지향점을 인간에서 옮겨 무한한 초월적 존재에 위치 시킬 때에라야 가변적이고 순환적인 상대적 가치가 영원하고 절대적 가치로 승화 될 수 있으며 비로서 구조와 방향을 갖춘 진정한 의미로서의 개발이 현실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개발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됨의 최고의 발현이 아닌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어야 하며 이 두가지는 분리되어있지 않고 상호적으로 맞물려 있다.

고독과 허무, 존재적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인간의 왜곡된 자기 인식과 한계때문에 인간의 내적 가능성에서도 찾을 수 없고, 사회 구조적인 변혁과 개혁으로 실현될 수도 없다. 오직 인간의 실존을 뚫고 침입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역동적 역사와 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실천적 신앙을 통해 부분적으로 경험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창조주의 구원의 완성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레리가 주장한 인간 신뢰의 필요성은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교회 안에서는 인도주의자들 만큼의 사람사랑이 이루어 지기는 커녕, 권위주의적이고 폭압적인 맹신과 맹종의 교육이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의 해방적 교육은 신앙교육을 평가하고 교정하는데 큰 공헌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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