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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2010

영적 유기

"주일 아침마다 우리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 .'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더 이상 믿지 못하고 멈춰 설 때, 예레미야처럼 신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경험할 때,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깊은 회의 에 빠지게 되는 때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기도한다." 다시 말해서 계속 믿을 수 있도록, 우리의 신앙이 떨어지지 않도록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믿는 일을 계속 할 것입니다. 왜입니까?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믿고'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놀라운 은혜라고 부릅니다.
때로 신앙의 깊이를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앙을 상실하는 것, 신앙의 붕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상실과 붕괴는 신앙의 크기 혹은 깊이를 경험하게 합니다. 자신의 신앙이 참으로 하찮고 보잘것없음을 체험할 때, 바로 그때 당신은 집요하고도 완강한 그리스도의 결심, 나의 신앙이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당신의 영혼과 육체, 온몸과 온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며 소름끼치게 하는, 그럼에도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경험입니다."

유호준, 인간의 죄에 고뇌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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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유기spiritual desertion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신앙여정의 한 부분이다. 주변의 환경이나 인간관계, 또는 신앙공동체에서 경험하는 여러가지 갈등, 고통, 긴장과 스트레스가 지속되거나 또는 자신만이 아는 멈출 수 없는 죄된 습관이 계속되어 불안과 죄책감 수치감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영적 침체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영적 침체가 계속 되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과 감정에 휩사여 절망의 심연으로 끝도없이 떨어져 버릴 때가 있다.

17세기 화란에서 일어났던 제 2의 개혁운동에 큰 역할을 감당했던 기스베르투스 후치우스Gisbertus Voetius(1589-1676)는 이러한 영적 유기의 상태를 "신앙인이 중심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감정을 갖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내적 십자가 또는 영적 슬픔과 시련"이라고 정의했다 (Spiritual Desertion 1659, 30). 후치우스는 놀랍게도 (그가 야코보스 알미니우스의 제자라는 점에서 본다면 참 경악스러울 정도이지만, 그가 깔뱅의 후예라는 점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신자들의 영적 유기의 일차적 원인을 하나님 자신에게서 찾는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시지 않는다면 인간편에서는 사실 제 아무리 노력을 기울인다 할 지라도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신앙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영적 유기의 좀더 직접적이고 주요한 실제 원인은 믿음에 의한 분명한 확신의 결여이다. 즉 영적 유기의 문제는 믿음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침체와 유기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것은 마치 먹을 빵이 없어 배고파하는 사람들에게 빵을 먹고 배부르라고 권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영적 침체와 유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영적인 붕괴에서 어떻게 탈출 하여 다시금 굳건한 신앙의 반석 위에 설 수 있을 것인가? 신앙의 확신결여로 인한 영적 침체를 경험하는 당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끊임없는 사랑과 은혜로 신앙을 주시는 분도, 신앙의 침체를 허락하시는 분도, 그리고  신앙을 다시 회복하시는 이도 그리스도이시다. 인간 편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처절하게 경험하는 것은 가혹하리 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이지만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집요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영적 침체 역시 신앙의 더 깊은 지경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다만 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믿음의 공동체 안에 머물면서 버티라"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앙은 개인사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경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바로 이 때 절실하고 위력적으로 작용한다. 다윗은 "부르짖어도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송"중에 거하시며, 신앙공동체의 모임에서 선포와 증거와 찬양과 부르짖음을 통해 수치를 면하고 "찬송"을 회복할 수 있음을 노래하였다 (시22).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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