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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2009

자아에 대한 세 개념과 윤동주

자아를 이해하는 데 는 세 가지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잠재적 자아potential self와 존재적 자아existing self, 그리고 자아의 이미지the image of the self이다."

Lewis Sherrill, The Gift of Power, 19

잠재적 자아는 되어저 가는 과정,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자아이다.
존재적 자아는 특정 순간에 존재하는 자아이다.
자아의 이미지는 내가 어떻게 나를 보는가에서 내가 생각하는 자아상이다.
잠재적 자아와 존재적 자아, 그리고 자아상을 되도록이면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일은 절대타자인 하나님이라는 거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자아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상호의존적이다. 이 자아에 대한 이해가 신념체계의 형성에 근본이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만약 이 세가지 자아에 근본적인 혼동이 올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면 어떨까? 죄된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세상과 내 자신의 실체에 대해 뒤틀린 상을 강요한다. 따라서 절대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은 왜곡된 세계속에서 억압된 내 자아와의 충돌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그 충돌은 의미의 통합을 위한 혼란을 가져온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나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혼란이 지향점을 향한 동경,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배태하고 있다면 그 혼란은 아련한 아픔을 품고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곡된 세계속의 자아와 진리와의 충돌이 긍정적 통합 지향할지, 아니면 파괴적인 분열을 가져 올 지의 분기점에 십자가가 서 있다. 제임스 로더의 표현을 빌자면 "창조의 영"의 "인간 영"에 대한 역동적 역사가 필요하다.

쉐릴이 윤동주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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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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