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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2009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학습에 대한 두 관점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학습에 대한 두 관점과 문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

한국 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나라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어떤 면에서는 현재까지도 지배적인, 학습문화는 "수용"적 학습관에 기초를 두고 있다. 수용적 학습관은 학습learning을 "지식의 수용"으로 이해한다. 이는 "공장의 생산라인"이나 "은행구좌"같은 메타포로 설명될 수 있다. 지식은 전달자(교사)로 부터 수용자(학습자)으로 전달되며 단시간 최대량의 지식을 전달하고 저장하는 것이 학습의 목표가 된다. 학습의 평가는 교사가 전달한 지식과 학생이 획득한 지식이 얼마만큼 일치하는가, 교사가 전달한 지식을 학습자가 얼마나 저장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수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오랬동안 수용된 지식을 정확하게 저장할 수 있는가가 최고의 관심이다.

수용적 학습관에 기초한 지식의 획득과 저장을 특징으로 하는 학습문화는 다음과 같은 가정을 담고 있다. (1) 지식은 객관적이며 독립적이다. 이 세상의 실체는 인식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지식은 실재에 대한 객관적인 표상이다. 지식은 언어를 포함한 매체를 통해 그 순수성을 상실하지 않고 유통될 수 있다. (2) 가르침 또는 교수instruction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교사는 축척되고 조직된 지식을 효과적으로 학습자들에게 전달하는 전달자transformer이다. (3) 학습learning은 전달된 지식을 획득하고 저장하는 것이다. (4) 저장된 지식은 언제든지 다른 상황에 적용된다. 지식의 적용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기초적이고 일반화된, 추상적 지식이 선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수용적 학습관은 여러가지 면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Paulo Freire는 수용적 학습관을 폭압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주입적 암기와 반복rote memory을 통해 이루어 지는 은행예금식(banking) 학습은 학습자들의 주체적이며 비판적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사고와 표현을 구속함으로서 개인의 인격과 독특성을 파괴하고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사고체계에 순응하는 종속적이며 타율적인 인간을 양성한다고 보았다. 또한 학습의 실천적이며 공동체적인 특성을 현격히 제한하여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 하는 대화와 활동를 거부하여 배움을 고립된 개인의 수행으로서의 "공부"로 축소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수용적 학습문화는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창의력, 그리고 상상력같은 고차원적 사고의 발달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데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었다.

행동주의와 인지발달주의를 거처 1970년대 이후 끊임없이 주목을 받아온 학습에 대한 관점은 구성주의constructionism 관점이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지식은 인식의 주체인 학습자가 내적 인식과 외적 환경사이에서 끊임없이 구성, 해체, 재구성된다. 학습은 이러한 인식 주체의 능동적 지식 구성의 과정이다. 구성주의 학습관에서는 학습자가 처해 있는 상황과 학습자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과정이 학습이라고 보기 때문에 학습은 본질적으로 상황 의존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어떤 상황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가가 학습의 내용과 결과를 규정하게 된다. 따라서 학습은 고립된 개인의 활동일 수 없으며 전달자와 수용자의 관계에서 처럼 일방적일 수도 없다.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구체적 학습의 상황이나 학습자가 처한 사회문화적 환경등이 학습에 있어 본질적인 요소들이며 따라서 학습은 상황적이고 사회적이다.

이러한 학습에 대한 이해는 자연스럽게 교사와 학습자의 역할에 근본적 변화를 요청한다. 교사는 학습자가 주체적으로 지식을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 또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학습자가 최대로 자기 자신을 개발 할 수 있도록 상황과 환경을 최적화 해 주어야 한다. 또한 학습자 개개인의 특성과 역사를 이해하며 그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인격적인 신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학습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학습자를 신뢰하고 인내함으로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문화와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학습자는 학습의 주체로 자기 주도적이며, 창의적이고 비평적이며 탐구적인 학습행위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지식구성행위에 능동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스스로의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을 떠받치고 있는 전제와 가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사고와 행동에서 대립되는 차이점을 긍정하고 수용하며 상호 발전시키는 자세와 노력이 요구된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서 함께 배워가려는 겸허한 마음과 구성된 지식을 구체적인 현장에서 검증하고 확인하는 용기와 도전이 있어야 한다.

학습에 대한 수용적 관점과 구성적 관점의 차이점은 교회 사역에 대해 심각한 시사점들을 제공한다.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부터 시작하여 예배와 선교에 이르기 까지 교회 사역 본질중 하나는 칼빈이 지적한 바 대로 어머니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성도들을 단순한 성경지식의 전달과 문화화된 교회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도록 강요함으로서 현재도 상당히 진행되어 온 교회의 세속화를 심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을 준거의 틀로 삼아 개인과 공동체의 성향과 활동에 녹아 있는 세속성을 분별하도록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함양하게 하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문화를 창조하여 세상에 대안을 제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양육할지는 교회의 책임있는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학습"에 대한 이해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학습에 대한 두 관점을 생각하면서 실제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사역을 예로 들어 성찰해 보자. 위성을 통한 예배, 인터넷을 통한 신앙강좌, 텔레비전을 통한 복음 전도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성서신학적인 지식을 가지고서는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수용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터넷이나 기타 위성과 텔레비전을 통한 신앙행위들은 원하는 정보를 습득하고 주관적 감정을 움직이는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데에는 상당한 도움을 주고 또 효과적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학습자/성도들의 필요와 취향에 따라 지식습득(신앙/말씀 강좌)과 신앙적 행위(예배)를 선택하고 향유할 수 있기 대문이다. 따라서 지식의 전달과 수용, 그리고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인터넷 예배나 성경공부는 탁월한 학습의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

한편, 구성주의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본다면, 학습자 또는 청중의 컨텍스트와 특성이 고려 될 수 없는 일방적 전달의 의사소통과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속에서의 상호작용이 없는 정보의 수동적 수용은 개인의 비판적 성찰 능력을 개발하고 더 넓은 진리를 이해하며 실천하는 데 주체적 노력을 기울이는 변화와 성숙을 가져 오기에는 제약되는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축척된 (수용된) 지식이나 경험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실질적인 적용성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점에서는 실증적 연구가 필요하다.

설교에 있어서 예를 들어 보자.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선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설교자를 "말씀의 대언자"로 보려는 시각이 있었다. 이러한 접근은 지식의 수용적 관점을 그대로 대변한다. 선포자는 전달하며 청중은 수용하고 축적한다. 성서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과정은 전적으로 설교자의 고독한 작업에 의존하며 일체의 질문과 의심을 용납되지 않는다. "믿으시면 아멘하세요!"라는 설교자의 외침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토마스 롱을 주축으로 하는 "공동체적 증언"의 관점으로 설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설교자를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중 하나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역시 지식의 구성주의적 측면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대화적 설교dialogical preaching"를 통해 설교자가 청중들과 서로 양방향의 의사소통을 추구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고차원의 학습을 통한 창조적 변화가 일어나려면 학습자의 필요와 동기, 그리고 삶의 현장과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일어나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학습을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듯 실제 삶에서 살아가는 방식, 즉 의사소통의 스타일, 조직의 구조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많은 차이를 나타낼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일반 은총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회과학의 발견과 발전을 잘 이해하여 좀 더 신학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 왕성하게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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