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막 15:30-32
하나님의 작정과 약속 대로 예수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의 경륜은 창조세계의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 자신의 아들이 죄의 댓가를 치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다시 새로운 생명을 통해 회복시키시는 것이었다. 사도바울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을 "하나님의 의" 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로 지칭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의"를 심각하게 오해했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구원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해 사이에 여전히 큰 차이가 존재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성경은 바로 이점, 즉 구원에 대한 오해가 죄의 근원이라고 가르친다. 죄의 근원은 절대 타자인 하나님 대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인간의 의식적이며 무의식적인 자율의지에 기인한다.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있는 인간은 바로 그 죄로 인해 샬롬을 상실하고 생명의 근원에서 뿌리 뽑혀 스스로의 한계로 인한 죄의 고통들로 처절하게 신음해야 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 즉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어떤 죄의 문제이든지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여 죽고 하나님의 힘으로 다시 사는 일 없이는 참된 구원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외쳤던 종교지도자들의 비아냥이 자신의 창조세계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향했다는 점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죽어야 다시 사는 십자가와 부활의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고 신뢰하고 순종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의" 때문이다 (롬 10:3). 자신의 논리와 상식과 경험과 합리성과 자원들에 대한 한계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것들로 구원을 획득하려는 지독한 경향성, 즉 "자기 의"의 응집체가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자기 의"는 십자가와 부활의 "그리스도의 의"와 격렬하게 충돌한다.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절규하며 죽어간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고 그의 부활과 온 세상의 주되심을 영혼 깊이 인정할 뿐아니라, 세상을 향해 선포하고 고백하며(homologeow) 그 분을 "의"를 쫓아 살아가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며 절대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막15:39; 롬 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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