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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2009

진리는 사랑이다


"참 사랑은 리얼리즘realism이다...인간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한계성을 두려워하지 말고 똑바르게 정직하게 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만 된다...참된 진리를 찾아가는 자가 노력해야 될 것은 자기중심적인 거짓 자기를 부수고 진정한 참자기를 발견해 내는 일이다...진실은 항상 사랑과 함께 있어야 하고 사랑은 항상 진실과 함께 있어야 한다."

강원용 (1917-2006), 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19.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b-32) 이 말씀은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진리를 아는 것"은 어차피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진리를 알 수 있는 능력과 의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성은 참된 진리를 거부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진리를 혐오한다. 참된 진리는 인간의 부패와 죄악을 밝히 드러 내기 때문이다. 성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하며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절대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되며 성령을 통해 알려지는 하나님" 이심을 증거한다. 이 전제를 수용하려면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이 믿음을 거부하고 진리의 타자성을 무시하며 진리의 인격성을 멸시한다. 그래서 근대적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절대화 하여 유한하며 제한적인 이성의 두레박으로 망망한 진리의 바다를 재려는 우매함에 빠져 버렸다. 그래서 이러한 과학적 인간들은 진리를 자신의 사고와 이해의 한계라는 철장에 가두어 놓음으로서 고독과 소외, 허무라는 진창속에 스스로를 투신하고 말았다.

또 다른 극단의 부류들은 과학적 인간들의 이성주의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신앙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과학제일주의의 맹주인 절대이성을 타도하기 위해 신앙제일주의자들이 선택한 주인은 바로 도그마였다. 그러나 건강한 이성의 사용과 자기반성을 거부한 맹목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신앙주의는 절대이성의 왕좌위에 도그마적 신앙을 올려 놓아 경배의 대상을 바꾸었을 뿐, 절대 진리의 무한성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따듯한 인격으로서의 진리를 삶속에 실천하기를 거부하며 자신의 한계와 유한성을 철저히 부인한다는 점에서는 그토록 적대시했던 과학주의와 한 패였다.

참된 "진리를 앎"은 절대타자, 절대진리, 절대자의 존재를 긍정하고 믿음으로 수용하며 이성적 이해의 한계를 알면서도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려는 신앙을 요구한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으로 불렀다. 신앙은 참된 진리에 자신의 이성과 경험과 의지를 내려놓는 겸손한 삶의 태도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진실로 사랑하는 용기있는 행동이다. 그래서 모든 진리는 이러한 삶을 명징하게 보여준 예수 그리스도에게 귀착된다. 예수는 진리이고 예수는 사랑이다. 그래서 진리는 사랑이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진리를 아는 유일한 길이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하며 사랑은 리얼리즘이라는 강원용 목사님의 말씀은 이런 점에서 옳다.

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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